〈 89화 〉89화-환청인가?
두 귀족부인 덕분에 준비한 적 없던 바이럴 마케팅이 되어 버리고 시나브로 마켓에서 파는 갖가지 진귀한 상품들의 홍보가 저절로 되었다.
“원래 내가 생각한 그림은 이게 아니었는데...”
몰려드는 손님을 바라보며 뱉은 혼잣말에 섀넌이 원래 생각한 그림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우리 로로 시스터즈가 항상 똑같은 무대에만 오르는 것이 지겹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버스킹의 형태로 제국의 시민들을 위해 따로 돈을 받지 않고 공연을 하면서 시나브로 마켓을 홍보하려고 했었거든요.”
매일 똑같은 무대에서 똑같은 시간에 비슷한 옷을 입은 귀족 손님들만 모셔놓고 실내에서 공연하는 것이 처음에 즐거웠던 로로 시스터즈는 처음과 다르게 무대에는 점차 익숙해졌지만 그와 비례해서 새로운 무대에서 새로운 관객들을 만나고 싶은 열망이 생겼고 삼겹살 합의를 마치고 와서 가진 호텔 루프탑에서의 저녁식사 시간에 내게 이야기해왔다.
“정후 아저씨, 우리는 죽을 때까지 시나브로 호텔의 살롱에서만 공연을 해야 하는 건가요?”
“로모!”
“응?”
갑작스런 동생 로즈 모스의 발언에 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에요, 정후 아저씨. 우리는 시나브로의 살롱에서 공연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어요.”
“언니도 말했잖아. 1년이 넘게 매일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곡들을 반복해서 연주하는 것이 지루해지고 있다고.”
“로터스? 로모의 말이 맞아?”
“그게...”
로터스는 동생과 나눈 대화가 정후에게 너무 배은망덕한 소리로 들리지는 않을지 로즈 모스가 갑자기 내뱉은 말에 깜짝 놀라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터스. 너를 책망하거나 하려는 게 아니야. 난 너희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것 이외에는 딱히 바라는 것이 없어. 같은 무대에만 오르는 것이 지겨울 수도 있다는 걸 진작 생각했어야 하는데 내가 그걸 미리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네.”
정후 아저씨가 가져다 준 책 중에 있었던 키다리 아저씨라는 책의 내용처럼 아저씨는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오히려 자매에게 사과를 해왔다.
‘아, 그걸 생각 못했네. 걸그룹들도 똑같은 노래만 하루에도 몇 번씩 몇 달을 부르면 질려서 어지간하면 부르기도 싫어질텐데 심지어 얘들은 매일 같은 무대를 1주일에 이틀 빼곤 1년이 넘게 올랐던 거잖아.’
크게 차이나지 않는 공연 레파토리에도 불구하고 공연에 오는 손님들은 매일 공연을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각국의 귀족들이 돌아가며 듣고 있었기에 항상 예약이 만석이라는 말만 듣고 이 점을 깨닫지 못했다.
“한동안 쉬는 것은 어때?”
번아웃이 올 것을 걱정해서 한 말에 로터스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에요, 아저씨. 무대에 오르기 싫다는 것이 아니라.”
“알아. 로터스. 난 그저 너희들이 일주일에 고작 2일 쉬는 것만으로는 힘들지 않나 싶어서 꺼낸 말이야. 1년이나 일했으면 휴가를 갈 때도 되었잖아.”
“그치만 저희들이 없으면 살롱에서 공연할 사람이 없지 않나요?”
“언니는 그게 걱정인가봐요.”
자리에서 일어난 언니의 손을 잡아 끌어앉히고 상큼한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로즈 모스의 모습은 아이스크림 광고를 떠올리게 했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로터스는 평소에 좋아하던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눈앞에 두고도 먹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로터스, 고민이 있거나 고쳤으면 하는 부분들이 있으면 가족이나 친구끼리는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줘야 상대방도 알고 대처를 할 수 있어. 말하지 않고도 알아주기를 바라다가 혼자 실망하고 서로의 관계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야.”
“가족이나 친구끼리요?”
“아저씨, 우리가 그럼 가족이에요?”
“같은 집에서 살고 같이 밥먹는 우리가 가족이 아니면 뭐겠어? 가족이란 건 별개 아니야. 내가 있던 곳에서 쓰는 말 중에 가족을 의미하는 단어로 식구(食口)라는 단어가 있는데 식구의 의미란 식사를 같이 하는 입들을 말하는 거지. 그럼 우리 식구 아닌가?”
“식구...”
“피~맨날 늦게 들어오고 일찍 나가서 집에선 잠만 자느라 우리랑 같이 밥 먹는 건 1주일에 한번 정도면서.”
나의 말을 곱씹고 있는 로터스와 다르게 아이스크림을 어느새 다먹은 로즈 모스가 맑고 투명한 목소리로 내게 타박 아닌 타박을 해왔다.
“아니, 그건 말이지. 최근에 일이 너무 많아서.”
“우리집이 호텔 방인줄?”
“고마워요. 아저씨. 앞으론 솔직하게 털어놓을게요.”
나의 말에 한층 밝아진 표정의 로터스는 로즈 모스와 함께 식사 시간이 끝나고도 한참을 나를 붙잡고 그동안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해줬다.
‘로즈 모스랑 성격이 다른 줄 알았는데...얘도 참 말이 많은 평범한 애구나.’
그때의 대화에서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버스킹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둘은 너무나 좋아했지만 이 시대의 첫 번째 아이돌과 다를 바 없는 두 아이의 안전상의 문제로 아무렇게나 공연을 진행할 수 없고 더구나 일종의 프로듀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나로선 좀 더 극적인 기회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버스킹을 한다고 해도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공연하게 내버려 두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래서 시나브로 마켓을 오픈할 때 직원들로 하여금 통제를 하고 공연을 하게 해주려고 했는데.”
“그래요?”
로로 시스터즈와의 이야기를 듣고 묘하게 차가워진 섀넌은 처음의 사무적인 태도를 떠올리게 하듯 대답했다.
“로로 시스터즈의 버스킹에 대해선 조만간 와처 요원들과 협조하여 안전을 확보하고 공연할 수 있도록 기획을 진행시키면 될까요?”
“그렇게 해줄래요?”
“알겠습니다.”
얼마 전 가져다 준 맞춤 정장을 입고 환하게 좋아하던 모습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사장실 문을 닫고 후딱 나가버리는 바람에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떠올려야 했다.
“뭘 잘못한 거지?”
<모르면 깨지면서 배워야죠.>
“엘리스?”
엘리스조차 냉랭하게 이야기 하길래 한참을 고민했지만 알 수 없었다.
“혹시,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자긴 안 주고 우리들끼리만 먹어서 그랬나? 아니면 따로 공연을 해야 하는데 시나브로 마켓 오픈 행사랑 같이 하겠다고 해서? 쓰읍. 왜 그러냐고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고.”
<으이구.>
“응? 뭐지? 환청인가? 엘리스? 너였어?”
<사용자 이정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날의 약속을 기억했는지 섀넌은 버스킹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게 야외 공연장을 건설하여 대형 콘서트를 제국의 수도에서 진행시켰고 이때 진행한 콘서트를 경험한 제국민들을 로로 시스터즈의 팬으로 입덕시켜 버렸다. 이후 콘서트를 진행한 장소는 ‘음악가’를 지망하는 많은 지망생들이 시나브로로 찾아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나중엔 그들이 공연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니 섀넌의 통 큰 기획력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게 천상의 소리인가?”
“이게 음악이라는 거라고 하더라.”
“뭔가 내 안에 성스러움이 가득 차는것 같아.”
“나도 저들처럼 노래를 불러 보고 싶어.”
콘서트는 각기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첫 번째 반응은 이랬다.
“로로 시스터즈의 음반 판매 예약이 너무 많아서 이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고위 귀족들만이 들어오던 로로 시스터즈의 음악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문화공연 컨텐츠가 빈약한 이곳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어느 정도 소비능력이 갖춰진 제국의 수도 사람들 사이에서 ‘축음기’ 구매와 함께 로로 시스터즈의 LP판이 입고시키기 무섭게 팔려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기존에 활동하던 1기와 2기 팬클럽 이후 추가적으로 팬클럽 모집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귀족 중심으로 활동하던 1,2기 이후 3기의 가입문의가 연일 쏟아진 것이 두 번째 반응이었다.
세 번째 반응은 로로 시스터즈처럼 음악을 하고 싶다고 찾아온 지망생들의 방문이었는데 이는 나로 하여금 이곳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확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로로 시스터즈도 좀 쉴 필요가 있으니까 새로운 공연자를 구할 수 있으면 좋겠지?”
“로로 시스터즈도 좋아할까요?”
섀넌의 말에 의아해진 나는 두 자매도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대답해줬다.
“그래도 미리 이야기해주는 게 좋을 거예요.”
공연을 진행하면서 어느새 친해졌는지 아저씨 소리를 듣는 나와는 다르게 언니 동생하는 사이가 된 섀넌의 말에 내가 짚어내지 못한 점이 있진 않나 싶어 대기실에서 공연을 준비 중이었던 둘에게 찾아가 물어봤다.
“둘이 매일 공연하는것이 힘들다고 해서 이번에 둘의 공연을 듣고 찾아온 이들 중에서 새로운 공연자들을 선발해서 두 사람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해서 두 사람의 공연 시간을 줄여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물어보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두 자매는 기겁을 했다.
“아저씨, 이제 우리 내쫓는 거예요?”
“우리 이제 식구 아닌거예요?”
“무슨 소리야?”
“새로운 공연자를 뽑을 거라면서요.”
“그런데?”
“그럼, 이제 지겨워진 우리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거잖아요.”
로즈 모스가 요새 팬들에게 받은 선물 중에서 무슨 책을 읽고 있는 건지 궁금해질 찰나 나는 두 자매의 오해가 더욱 커지기 전에 해결해야 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너희들이 매일 공연하는 게 힘드니까 1주일에 3번만 한다든가 아니면 한동안 휴가 기간을 갖고 재충전을 한 다음에 새로운 곡들을 가지고 다시 공연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뽑으려는 거야. 우리 집에 굳이 또 다른 사람들을 들일 생각도 없고 너희들을 내쫓을 생각도 없어.”
어느새 울먹거리던 둘이 내 바짓가랑이를 하도 잡아 늘어난 것 같은 바지를 가다듬으며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너희들의 동료로 뽑을 거니까. 심사위원으로 너희들도 참가해봐.”
“저희들이 뽑아요?”
“지금 제국에서 공연에 대해 가장 전문가인 사람이 너희들 말고 누가 있어?”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벌겋게 된 눈으로 웃으면서 대답한 로터스의 변화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지 말아요.”
“아저씨, 무슨 생각했어요!”
겨우 진정을 마친 둘은 심사위원으로 자신이 참여하여 새로운 공연자를 뽑는다는 기획에 설레는 것 같았다.
‘오디션 프로그램 이름을 뭘로 진행해야 하지?’
“다음주 중으로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알려줄게.”
“다음주라 이거죠?”
눈물을 닦은 두 소녀는 어느새 오디션을 준비중인 심사위원의 눈빛을 살짝 내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