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7화 〉87화-삼겹살 합의 (87/239)



〈 87화 〉87화-삼겹살 합의

10발의 포탄 낙하 이후 양측을 진정시키고 불러들여 협상 테이블을 만들기까지 반나절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너무 과했나?”
“정후야, 좀 과하다 싶은 게 좋은 거야. 시나브로의 무력을 선보이는 첫인상인만큼 압도적인 파괴력을 보여주는 것도 좋아. 특히나  고압적인 귀족들이 바지에 지릴만큼의 파괴력이라면 더더욱.”

귀족들이 엎드려 빌고 바지에 지리면서 나자빠지는 모습은 망원경을 통해서 잘 보였는데 드마코 형은 어찌나 신이 나는지 맥주를 마시면서 다시 보고 싶은 장면이라고 소리쳤다.
“아까  장면은 제대로 찍은 거 맞지? 나한테 그거 꼭 줘야 된다.”
기록원을 통해 세븐시티의 시민들에게 추후에 공개할 장면을 찍고 있었는데 이를 알고 드마코 형은 해당 장면들만 편집해서 자기에게 꼭 소장용으로 제공해줄 것을 요구했다.
“돈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지불할게.”
‘어라? 앞으로 사진관 사업도 괜찮겠는데?’

드마코 형의 제안에 떠오른 사업 구상은 섀넌의 말에 밀어놔야 했다.
“사장님, 양측의 대표가 모두 준비된 테이블에 왔습니다.”
안락하고 푹신한 체어와 모두가 동등한 존재임을 의미하는 원탁의 형태를 가진 테이블. 즉, 고기구이용 원형 테이블과 뚜껑을 열면 옷을 집어넣을 수 있는 등받이 없는 의자가 포탄이 낙하된 지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준비되어 있었다.

“앉으시죠?”
꼭 손님맞이를 하는 것만 같은 알바의 추억을 되새기며 양측의 대표를 빨간색과 검은색의 원형 테이블에 앉혔다.
“등받이가 없으니 조금 불편하군.”
억지로 기세를 짜내서 귀족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는 비트레이 후작은 괜히 트집을 잡으려고 들었다.
난 가볍게 그 말을 무시하고 빈스라고 하는 농민군 대표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이대로 가면 농민군 측도, 귀족군 측도 그렇게 이득이라고 볼  없을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소. 언제까지고 귀족의 가축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모두가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일뿐이오.”
“풉, 농민들이 주제도 모르고 깝죽거리는군.”
“으득”

담담한 자세로 의연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빈스라는 남자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비트레이 후작을 쳐다보고 대답했다.
“원하시는 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 대답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많이 바라는 게 없습니다. 그저 먹고 살 수 있게 너무 많지 않은 세금을 거둬가길 바라는 것과 귀족들의 착취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  두가지뿐입니다.”
“뭣이라? 귀족은 귀족의 자리에서 농민은 농민들의 자리에 있을 때, 세상이 아름답게 돌아가는 것이다. 너희들은 그런 이치도 모른단 말인가? 너희들이 요구하는 것은 농민이 농민답지 않게 귀족의 삶을 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비트레이 후작의 말에 뒤에 시립한 보거농 자작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거슬렸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주의를 줬다.
“귀족군 대표님은 언행에 조금 주의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양측의 원만한 합의를 위해 모인 자리이니만큼 상대측을 향한 과도한 언사는 협상을 깨뜨릴 수 있는 행위입니다.”
“다 이긴 전투에 끼어들어 억지로 만든 협상인데 깨지면 더 좋은 거지.”

내 말에 대꾸하는 비트레이 후작의 말에 난 이 자리가 깨지는 것이 결코 귀족군 측에 좋지 않은 결과가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글쎄요, 절대 귀족군 측에 좋은 결과가 오진 않을 겁니다. 아까의 포탄이 어느 쪽으로 쏟아질지는 모르는 법이니까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던 비트레이 후작은 아까의 굉음과 엄청난 장면을 만들어  탱크의 위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의도적으로 포탄이 낙하된 곳 근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테이블을 배치해놨기에 눈만 돌리면 좀 전의 상황이 시선에 쏙 들어왔다.

“험험, 주의하겠소.”
“귀족군 측에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답해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반란..아니 농민군이 최대한 빨리 집단에서 개인들로 돌아가 평화를 찾아갔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오.”
귀족군 측의 속내는 패한 농민들을 잡아들여 인부로 팔아먹을 속셈이었지만 공식적으로 황제의 전권대사를 맡은 나의 앞에서 ‘노예’와 비슷한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던  잘 알고 있었다.

“양측에 중재안을 제안하도록 하겠습니다. 농민군 측에겐 먹을 식량을 저희들이 원조하고 앞으로 살아갈 터전을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받아들여 농민군이 해산을 결정하면 저기 탱크 뒤로 준비된 마차들을 타고 떠나시면 됩니다. 귀족군 측도 농민군이 해산을 하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이야기 하셨으므로 이에 대해서 딱히 거부하고 싶은 의사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전쟁에 소요된 비용 일부에 대해 저희들이 보전을 해드릴 예정이니 그 부분에 대해선 저희 회계 담당자와 이야기를 하시면 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귀족군 측에 돈을 주는 것이 탐탁치 않았지만 귀족들이 손해만 입게 되면 그 손해를 영지민들에게서 채우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는 기획팀의 분석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

답은 정해져 있어, 너희들은 대답만 하세요. 라는 수준의 중재안이었지만 귀족군 측은 탱크의 포신 앞에서 감히 반대의사를 표현할 수 없어 끙끙거려야 했고 농민군 측은 과연 이들을 따라 가는 것이 또 다른 가축 생활의 시작이 아닌가 싶어 의심스러워 하는 바람에 어느 쪽도 먼저 대답하는 이들이 없었다.

“좀 분위기를 바꿔 볼까요?”
“흥, 이런 곳에서 어떻게 무슨 수로 분위기를 바꾼단 말이오?”

별로 탐스럽지도 않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는 비트레이 후작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섀넌에게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섀넌, 준비된 것들 가져오세요.”
섀넌의 지시 하에 시나브로 사의 직원들이 준비된 것들을 착착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일단 먹고 이야기하죠? 먹으면서 잘 생각해보세요. 제가 제안한 중재안이 서로에게 이득일지 아닐지.”
고깃집 알바를 했던 추억을 떠올려 테이블 가운데에 마련된 뚜껑을 열고 달궈진 숯을 집어넣고 삼겹살을 굽기 시작하자 금세 고기 굽는 냄새가 중재하는 곳 주변에 퍼져 나갔다.

고기 굽는 냄새에 그동안 잘 먹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빈스와 그의 부관은 침을 꿀꺽 삼켰고 비트레이 후작과 보거농 자작도 냄새를 맡으며 코를 킁킁 거렸다.
‘이게 코리안 비비큐다.’

언제나 요리된 이후에 완성된 상태로 가져다주는 스테이크만 먹었던 비트레이 후작과 보거농 자작은 고기가 점차 노릇하게 구워지는 냄새가 자극적이었는지 아닌 척하는 겉모습과 다르게 눈동자는 빠르게 고기의 근처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고기를 구우면서 조그만 형태의 하얀 덩어리 7개를 넣어놓고 그릇에 물을 부었더니 보거농 자작이 내게 물어왔다.
“그게 뭔데 거기에 물을 붓는 겁니까?”
“이거요? 조금만 기다려봐요.”
하얀 덩어리들이 물덩어리를 빨아들이고 내 양 옆에 앉은 섀넌과 드마코 형에게 그릇을 들이밀자 둘은 자연스럽게 덩어리를 집어 활짝 폈다.
나머지 4명에게도 집어 가라고 이야기를 하며 그릇을 주니 섀넌과 드마코처럼 하나씩 집어 들고 둘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아, 형!”
“왜?”
“다 따라 하잖아요.”

섀넌은 그저 손만 닦고 내려놓았지만 드마코 형은 아재들처럼 손을 닦고 나선 얼굴을 닦고목까지 닦았는데 여자와 남자는 예법이 다른지 알았는지 드마코 형을 따라 4명의 남자들이 물수건으로 똑같이 따라  것이었다.

“흠흠, 이게 아닌가보군.”
“식사를 하기 전에 몸을 정갈히 하는 예법인줄 알았는데 손만 닦는 것인가 봅니다.”
“전 개운해져서 좋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드마코 형을 따라 닦은 덕분에 농민군  대표와 측근은 말끔해졌다. 다만 1회용의 목적을 200%이상 완수한 물수건은 처음의 하얀 원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어느 정도 고기가 익자 먹으라고 권해 봤지만 이들이 삼겹살 먹는 방식을 알 리가 없었고 난 어떻게 먹는 것이 쌈을 맛있게 먹을  있는 것인지 시범을 보였다.
“흠, 먹는 방법이 조금 야만적인 것 같군.”
“한번 드셔 보시죠.”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 독은 안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 이들은 이내 나와 섀넌 그리고 드마코를 따라 먹기 시작했는데 이내 4명의 남자들이 켁켁거렸다.
“이...이... 독을 탔구나!”
“콜록콜록”
“지독한 놈들, 자기들이 먹을 음식에 독을 타다니.”

4명의 남자가 얼굴이 벌겋게 변해서 물을 찾고 콜록거리는 바람에 그제야 뭐가 문제인지 깨달았다.
“아! 누가 청양고추 갖다 놨어요?”
“컥컥, 독의 이름이 청양고추인가?”
“지독합니다. 혓바닥과 목구멍이 다 타들어 가는 것 같군.”

4명의 남자가 칼을 빼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앉아요, 여기 초록색의 야채 있죠? 이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봐요, 제 옆의 두 사람은 멀쩡하잖아요. 이게 독이 아니란 걸 증명하기 위해서 계속 제가 먹을 테니 나머지 4분은 먹지 마세요.”
“큼큼, 그런 거였나?”

우리 3명이 계속 앉아서 먹고 있자 머쓱해진 4명은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지만 매운 맛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했고 난 바나나의 향기를 듬뿍 담은 옆구리가 뚱뚱한 우유를 옆에 준비해둔 박스에서 꺼내는 척 하면서 인벤토리에서 빼서 4명에 주려고 하자 섀넌과 드마코 형도 자신들도 달라고 했다.
“저도 주세요.”
“왜 쟤들만 주냐.”
“저 사람들은 매워서 어쩔줄 모르니까 그렇죠.”

고개를 살레 살레 흔들고 2명에게도 뚱뚱한 단지 형태의 우유를 줬는데 섀넌은 빨대도 달라고 요구했다.
“빨대가 없으면 제대로 맛이 안나요.”
“그건 맞지.”

둘이 빨대로 쪽쪽 노란 우유를 빨아 먹자 나머지 4명에게도 빨대를 꽂아 줬는데 갑자기 회담장에서 다 큰 성인들 6명의 빨대를 빠는 모습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이 노란색 액체는 무엇인가?”
“지금 느끼는 통증을 매운맛이라고 하는데 그 맛을 씻어 내려줄 겁니다.”

 말에 노란색 우유를 무슨 해독제라고 생각했는지 4명은 벌컥벌컥 들이켰는데 양측의 모습이 사뭇 달랐다.
“이...이런 맛이!”
“달다. 달아!”
이쪽은 단맛을 평소에 보지 못했던 농민군 측이었다.

“술과는 다른 것인데 은은한 향기가 나고 묘한 단맛이 자꾸 끌리는 것이 마치 어릴적 어머니 품을 떠올리게 하는 마력이 느껴집니다.”
“보거농, 이 음료의 이름은 무엇인지 자네도 모르겠지?”
뒷통수를 긁적이며 대답을 못하는 보거농 자작을 대신해 내가 대답해줬다.
“바나나 우유요.”
“바나나 우유?”
“원하시면 나중에 제국의 수도에서 판매해드릴게요.”
“꼭 좀 부탁하고 싶소.”
이쪽이 귀족군 측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모금씩 마시고 난 뒤 4명은 한층 풀어진 모습으로 우리를 따라 삼겹살을 먹기 시작했다.
“아까 그 초록색으로  것만  넣으면 정말 맛있군.”
“넣을 수 있는 재료에 따라 한가지 메인 재료를 가지고 다채로운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특히, 이 파채와 쌈무라는 것이 고기가 주는 맛의 무거움을 줄여주는군요.”
“스테이크를 먹을 때도 같이 먹으면 좋겠어.”

7명이 삼겹살만 7근을 먹었을 때쯤 모두가 배불러 하는 것 같아서 테이블 위를 치울 때쯤  의문이 생겼다.
준비된 고기가 생각보다 많이 필요해서 농민군 대표가 많이 굶주렸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섀넌이 혼자 3근을 먹어 치운 것임을 엘리스를 통해  수 있었다.

“이색적인 식사였소.”
비트레이 후작과 보거농 자작은 식사가 꽤나 만족스러웠는지 좋아했고 빈스라는 사람과 그 부관은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왜 그러시죠, 두분?”
“맛에 취해서 먹고 나니 우리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그럽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양측의 사람들에겐 다른 음식이 제공되었으니까.”
“그렇습니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어찌?”
“국밥이라는 음식들을 지금 먹고 있는 중이니 신경 쓰지 말아요.”

함께 온 시나브로의 직원들은 솥을 걸고 끓여  육수를 담아 팔팔 끓여 사람들에게 국밥과 막걸리를 줬기에 우리들이 식사하는 동안 이 평야에 있는 모든 이들은 함께 식사를 한 셈이었다.

“배도 부르시고 하니 이젠 커피나 한잔 할까요?”
“그거 좋습니다. 제이 사장이라고 했습니까?  좀 아시는 분이시군요.”
“그게 뭐죠?”
“한번 마셔보라고 제국의 수도에서 최신 유행하는 차문화를 농민 나부랭이들이 어찌 경험해봤겠는가?”

두 귀족이 커피를 가지고 빈스들에게 거들먹거리자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뭐가 그리 웃기시오?”
“두분이 즐기시는 커피도 저희가 만들어서 파는 겁니다.”
“그럼  시나브로가 그 시나브로입니까?”
“두분이 저희 호텔과 커피숍을 비롯한 상점들에 자주 오시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머쓱한 표정을 보이는 둘과 다르게 커피를 처음 접한 2명은 냄새에 푹 빠져 있었다.
“처음 마시면 조금 씁쓸할 수도 있는데 고기같이 기름진 걸 먹고 나면 뒷맛이 깔끔하지가 않은데 커피 한잔이면  잡아주죠. 정 너무 쓰면 옆에 놓인 각설탕을 넣어 드세요.”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시는 5명과 다르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흉내만 내는 둘에겐 내가 설명을 해줘서 7명의 커피 마시는 소리가 회담장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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