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85화-그랜드 오픈.
회의 이후 연구소의 인원들이 10대의 탱크를 만드는 동안 코엘 누나와 섀넌과 함께 나는 전쟁의 판을 뒤집고 농민들을 매혹하여 진정시키기 위해 좋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예전부터 준비했던 작물 세가지를 퍼뜨리기로 결심했다.
“엄청 나오네요.”
“그러게. 나무도 아닌 것에서 이렇게 많은 생산물이 나오는 게 신기할 정도야.”
“그게 바로 고구마와 감자 그리고 옥수수의 힘이죠.”
고구마의 경우는 심기만 하면 4개월이 지나고 난 후 재배가 가능하고 감자나 옥수수도 약 3~4달이면 수확이 가능하다.
감자의 경우 척박한 땅에서 오히려 잘 자라는 대표적인 구황작물이라 북쪽의 추운 기후에서 키우기에도 알맞았다.
‘다만 수분이 많아서 운송도 쉽지 않고 잘 얼고 잘 썩어서 못 먹게 되기도 하고, 고구마에 비해서 칼로리가 낮아서 몇 개를 먹어도 쉽게 배가 꺼지는 단점이 있긴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자를 심으려고 한 이유는 감자에서 당분을 추출해서 설탕을 만들고 전분을 추출해서 빵을 만들거나 발효시켜 알콜로 만들 수 있어 여러 측면에서 효용성이 높았다.
“단위 면적당 인구부양력이 높은 쌀에 비해서 밀은 상대적으로 수확량이 너무 적어요. 사람들이 배불리 먹기에는 밀가루만으로는 부족해서 지금처럼 위기 시에 사람들이 대체해서 먹을 만한 작물이 필요하니까요.”
‘무엇보다 감자는 튀김으로 만들어 먹어도 맛있고 잘 갈아서 전으로 부쳐 먹어도 맛있는 작물이지.’
이런 감자보다도 배고픈 이들을 위해 존재한 더 위대한 작물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옥수수였다. 쌀과 밀보다도 높은 단위면적당 생산량과 높은 칼로리를 지닌 옥수수는 특별히 지역이나 기후를 가리지 않고 막 자라는 작물인데다 쪄서 먹든 구워 먹든 그 자체로도 맛있고, 기름을 짜게 되면 내가 이 세상에 가져온 닭을 치킨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마법의 작물이었다.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경우 전후에 먹을 게 없을 때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배급했던 옥수수빵 역시 미국에서 원조한 대량의 옥수수 가루를 이용해 만든 원조식품이었으니 빵에 익숙한 더스트 대륙의 사람들에게 옥수수 빵의 배급은 더할 나위가 없는 원조물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뉴슈가를 살짝 쳐 주면 쪄서 먹어도 환상인데.’
“두분이 즐겨 먹는 치킨도 이 옥수수로부터 기름을 짜서 튀기는 거니까요.”
“츄릅”
육식엘프들답게 치킨 이야기를 듣자마자 코를 벌름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게 웃겼지만 함부로 내색할 수는 없었다.
“옥수수만 키우자 그럼.”
“맞아요. 옥수수를 잔뜩 키워서 그걸로 닭들을 먹이고 남은 옥수수론 기름을짜서 치킨을 만드는 무한 행복의 세계.”
“두 사람 너무 흥분했어요. 지금.”
“아니, 치킨에 맥주라는 환상의 조합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모든 전쟁이 사라질지도 몰라.”
“그건 불가능해요.”
‘애초에 치맥 때문에 전쟁이 사라질 리가 있겠냐고.’
“아니, 왜요!”
평소에 조용하고 침착한 섀넌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슬쩍 엿볼 수 있었지만 이들의 흥분을 우선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옥수수는 계속 재배를 하기가 어려워요. 땅에서 영양분을 많이 뽑아먹기 때문에 한번 재배하고 나면 꽤 오래 농사를 짓지 않고 휴식기를 가져야 하죠.”
“정후야! 다른 방법은 없어? 있지? 있지?난 믿어. 분명히 있을 거야.”
“워워. 아예 없지는 않아요.”
“뭐죠?”
“저번에 먹었던 콩 기억해요?”
“윽.”
“코...콩이요?”
삼겹살을 먹을 때 한번은 콩밥을 해준 적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다 골라내고 먹었던 걸 본 적이 있어 두 사람의 표정에서 콩에 대한 거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콩이 얼마나 좋은 작물인데요. 그러고 보니 우리 버크 시티에서 나오는 간수로 두부를 만들어 먹어볼 생각을 못 했네요. 두부부침도 맛있고 두부조림도 맛있고 순두부찌개도 좋고.”
“그만.”
‘고기만 보면 환장하는 엘프같으니라구.’
콩의 식감과 맛을 즐기던 버크 아저씨나 요크와는 다르게 엘프들은 썩 좋아하지 않았다.
콩과 두부예찬을 계속 이어나가자 육식 엘프들은 그만 닥치라는 눈빛 공격과 함께 콩이란 게 도대체 왜 필요한지를 물어봤다.
“옥수수를 재배하고 나서 콩을 재배하면 어느 정도 지력 소모를 막을 수 있거든요.”
“그럼 그렇게 하면 되잖아.”
“옥수수와 콩을 무한 재배하죠.”
“그래도 좀 부족해요.”
“아니 왜요!”
옥수수를 연작으로 재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콩의 재배뿐만 아니라 잡초를 제거할 농약과 질소비료의 존재가 필수적이었는데 화학비료라는 게 토양의 산성화를 일으키고 환경오염을 유발하기 때문에 당장 인구수가 현대 지구의 인구만큼 폭증한 수준이 아닌 이상 인구가 약 2억명 정도 되는 행성에 퍼뜨리기엔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는 엘리스의지적이 있었다.
“하, 모두가 왜 치킨세상에서 살 수가 없는 거야.”
“모두를 위한 천국은 없어요.”
“그거야 그렇지만.”
두 사람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화학비료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다른 이유는 화약의 주성분인 질산칼륨 혹은 질산암모늄이 비료의 주성분으로 겹치기 때문에 현재 생산해낸 양으로는 화약으로 가공하여 탱크에 실을 포탄에 사용하기에도 부족했다.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지.’
“아무튼 옥수수, 감자, 고구마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우리의 무기가 되줄 거예요.”
“맥주에 감자튀김이나 먹었으면 좋겠다.”
“오늘 한잔 할까요?”
“그럴까”
“저기요? 저 혼자 말하고 있는 거 아니죠?”
“듣고 있어.”
“오늘 저녁은 치킨 어때요?”
“섀넌?”
이미 머릿속으로 치킨을 뜯기 시작한 두 사람을 떼놓고 농업연구소에 속한 드루이드들과 다른 엘프들을 통해 탱크가 출전을 할 시기에 맞춰 수확을 마칠 수 있도록 지시를 내렸다.
“수확하고 나서도 계속 생산을 하도록 하세요.”
“계속입니까?”
“앞으로 시나브로에서 팔아먹을 또 하나의 상품들이니까요.”
전자제품이나 자동차같은 첨단산업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서는 잘 모르는 이들도 있지만 세계의 메이저 기업 중에서도 막강한 힘을 지닌 곡물 대기업들은 생산에서부터 유통 그리고 가공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모두 소유한 전통의 강자들이었다. 첨단산업의 업계에 속한 기업들이 부침이 있는 것과 다르게 곡물 대기업들은 크게 부침이 없었다.
한번 장악하고 나면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그들만의 리그가 바로 곡물 산업이었고 이들이 가진 작물에 대한 특허권은 현대에 종자산업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물류의 혁신이 일어나고 기술이 발전해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생명체는 없으니까.’
곡물대기업의 강자로 유명한 C사는 기업공개시 시가총액이 세계 기업 순위 10위 안에 들 정도이며 한국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현재 한국 사료 시장의 1위를 소유하고 있는 기업도 C 코리아라는 현지 법인이니 더 말해 무엇할까.
맥트럼프의 경우처럼 거대한 프랜차이즈를 일구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부동산의 존재였던 것처럼 농민들에게 원하는 이들에 한해서 고정적으로 자신들의 작물을 매입해줄 수 있는 기업이 존재한다면 사람들의 인식 속에 시나브로란 기업을 이 세상에 퍼뜨려 뿌리박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시나브로가 더스트 행성의 사람들에겐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 하는 기업이 되겠군요.>
‘그건 사회보장 제도의 목표니까 경우가 좀 다르지.’
<결국 사용자 이정후가 생각하는 목표란 시나브로를 위해 사람들이 물건을 만들고 시나브로의 물건을 소비하고 시나브로가 만든 건물에서 잠을 자고 시나브로를 통해 유통되는 식품을 소비하는 세상 아닌가요?>
‘그건 맞는데.’
<거대한 힘에는 거대한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까요. 시나브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준비를 해야 할 거예요.>
‘거미인간이 하던 고민을 나도 해야 하는 건가. 애초에 내가 그렇게 대단한 힘을 가질 때가 오기는 하려나?’
번번히 서류전형에서 걸러지던 평범하다 못해 못난 취준생이 인벤토리 능력을 지니고 이세계를 오갈 수 있는 제한적 이동능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는 내가 개발하거나 노력을 해서 얻은 능력이 아니라 우연히 얻게 된 능력이었다.
내가 얻게 된 능력이 있다면 빅터와 버크 아저씨를 통해서 얻은 검술 능력으로 이제 익스퍼트 중급을 지나 상급에 다다랐지만 현대 시대에서 어디 가서 쉽게 칼을 휘두를 수도 없었다.
“건강해진 건 정말 좋은데. 어디 가서 함부로 이 힘을 사용했다간 CCTV에 찍혀서 바로 철창행으로 직행하거나 정부기관에 잡혀가기 딱 좋은 능력이지.”
소설 속에서처럼 무공을 익혀서 정의를 행사하는 정의로운 자경단 활동을 하기엔 현대 사회는 제약조건이 너무 많았다. 문을 열고 집 밖을 나가는 순간부터 엘리베이터에 달린 CCTV로 내 동선을 파악당하고 지니고 있는 스마트폰을 통해 이동하는 지역이나 결제를 통해 내가어디서 무얼 샀는지까지 낱낱이 파악이 가능한 어쩌면 빅브라더의 세상을 살고 있는지 모를 현대인의 감각이 더 강한 나는 이곳에 올 때만 시선의 자유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 있었다.
<더스트 행성에서 이정후가 가진 힘은 초월적 능력을 가진 자경단 그 이상입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28년을 소시민으로 살아온 내 근본이 그걸 마음으로 이해하질 못하는 것 같아. 조금만 더 시간을 줘.”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언젠가 찾아올 것입니다. 미리 준비해 두세요.>
“지금은 그냥 이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 남고싶어.”
“이번 일은 와처에서 중재하고 싶다고?”
버크와 빅터는 비밀리에 황제를 알현하여 독대를 진행 중이었다.
“저희들이 개입하면 큰 분란 없이 제국민들의 반란을 중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얻는 이익이 뭐가 있을까?”
버크는 이전에 자신과 함께 세상을 바꾸자고 싸우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간 것인지 궁금해졌다.
‘불과 2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바뀐단 말인가?’
이후 이야기를 나누다가 버크가 황제를 보고 말을 잇지 않자 빅터가 대답했다.
“앞으로 시나브로의 이름으로 생산될 순이익의 10%를 제국에 세금으로 납부할 것입니다.”
“겨우 10%인가?”
빅터가 그 10%가 어느 정도 액수인지 제국 황실이 현재 운용하는 자금과 비교해서 말해주자 깜짝 놀랐다.
“일개 상회에서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상회가 아니라 기업입니다. 앞으로 진행될 시 1년 이후부터 가능한 추정치이고 비율로 드리기로 한만큼 시나브로의 성장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그 액수는 커질 수도 있습니다.”
“1년 뒤를 보고 기다리면 된다? 겨우 1년? 반란까지 제압해주는데 돈까지 주겠다니 마치 마법같군.”
“황실에선 특별히 투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희의 개입을 눈감아 주시는 것만으로도 황실의 재정은 저희 시나브로가 책임져 드릴 수 있습니다.”
황제가 눈을 감고 생각에 들어가자 독대하는 공간은 황제가 의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소리만이 가득 찼다.
“좋아. 버크 대장군과 빅터 단장의 제안을 수락하도록 하겠네.”
“이에 대한 서약서는 추후에 비밀리에 제공해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의 얼굴을 봐서라도 이 정도는 내가 해줘야지.”
황제와의 독대를 마치고 나온 버크의 얼굴이 여전히 어둡자 빅터가 물었다.
“마음에 걸리십니까?”
“정의를 외치던 샛별같은 두 눈에 탐욕이 깃들어 탁해지고 강철같은 육체는 쇠락해서 배가 잔뜩 나왔더군. 봤나? 그거 좀 걸어온 뒤 의자에 와서 앉는 별거 아닌 일로 호흡이 가빠져 있던 황제를? 내가 알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자신이 해야할 일을 우리가 대신해주겠다고 나서는데도 대가를 요구하고 계산을 하려고 하다니. 예전의 황제라면 그저 고맙다고 했을 거야.”
“황제는 제국을 책임지는 황제로서 책임이 있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변하지 않길 바랐는데 말이야.”
“이미 변한 사람을 어쩔 수는 없는 일이죠.”
두 사람은 부자처럼 서로 대화를 두런두런 나누다 이정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정후군은 황제처럼 바뀌지 않게 니가 옆에서 도와주렴.”
“제가 도와주지 않아도 사람 보는 제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정후 사장이 만들 세상은 적어도 지금의 세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더욱 편안하고 배고프지 않은 세상이 될 겁니다.”
“그렇게만 되면 좋겠구나.”
“저희들이 옆에 있는 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빅터도 옆에 있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구나.”
이후에도 걸어가는 두 사람의 그림자는 부자처럼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