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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화 〉84화-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3) (84/239)



〈 84화 〉84화-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3)

탱크와 박격포를 보여주고 나자 내겐 고민의 밤이 찾아왔다.
“엘리스, 과연 그들에게 탱크와 박격포를 보여준 게 좋은 선택이었을까? 그리고 이 무기들을 실전에 배치해서 내전을 끝내는 게 옳은 일일까?”
<인간의 역사를 비춰 보면 내전이 길어지게 될  피해를 입는 것은 평범한 민중이고 길어지는 내전을 이겨내기 위해 밀리는 쪽에선 외세의 개입을 시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우리는 제국에 속한 단체인데 외세라고 볼 수 없지 않나?”
<이대로 가면 밀리는 쪽은 필연적으로 농민군 쪽이 될 것입니다.>
“농민군의 수가 저렇게 많은데 그렇게 쉽게 밀릴까?”
<기본적으로 농민들은 전략 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적은데다 전쟁을 위해 훈련받아본 적이 없는 이들이 대다수입니다. 긴 시간동안 제대로 먹을 것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스마르 교의 사제들이 약물과 세뇌를  덕분에 일시적으로 배고픔을 망각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상태이기에 비등비등해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가진 것이 많은 소수와 가진 것이 없는 다수의 싸움인가?”
<사용자 이정후가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향배를 가르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스트 행성의 역사의 방향을 바꿀 분기점에  있다고  수 있습니다.>
“하지만...내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많은 이들이 죽어 간다는 의미지?”

엘리스는 나의 마지막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아...어쩌면 좋냐...어느 쪽도 완벽한 정의와는 거리가 멀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지도 않은데...”

무기를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걱정하던 바가 눈앞의 현실이 되어 들이닥치자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어린애처럼 당황스러워졌다.
나의 고뇌를 엘리스도 알았는지 혼자 고민하지 말고 크로니클의 단원들과 대화를 통해 해답을 이끌어 볼 것을 권했다.
<혼자서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더 나은 선택지를 고르기보단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십시오. 모든 걸 당신이 책임져야  이유가 없습니다.>
“그게 좋을까?”

혼자 짊어질 자신이 없어 회피성으로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 같은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크로니클의 단원들은 그걸 왜 혼자 고민하고 있냐고 도리어 헛웃음을 지었다.
“정후 사장,  일은 크로니클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일입니다. 같이 고민해서 같이 결정해야할 일이죠.”
“내가 만든 물건이니 내가 투입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정후군, 물건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걸 정후군이 모두 책임질 필요는 없네. 나처럼 대장장이들은 수십년, 수백년간 무기와 장비들을 만드는데 우리는 그것들로 누가 어떤 일을 행하든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네.”
“왜죠?”
“물건을 만든 것은 우리지만 물건을 사용하는 이들은 우리가 아니니까. 자연 사용하는 이들의 책임인 것이지. 칼을 휘두르는 자의 책임은 만든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휘두르는 자에게 있는 법이네.”
“하지만...”
“정후야, 솔직히 말할게. 니가 만든 무기가 아니어도 사실 나와 버크가 전장에 투입해서 한쪽을 지지하는 것만으로도 전쟁의 방향은 얼마든지 달라질거야.”
“백발마녀와 붉은수염은 이제 전쟁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기로 한  아닌가요?”
“뭐, 그렇긴 한데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는 거니까.”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다?”

코엘 누나의 당연한 말에 난 머리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같은 충격을 느꼈다.
“정후군, 모든 존재는 언젠가 스러지기 마련이네. 자네의 앞에 있는 우리도 언젠간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우리가 만든 무언가도 언젠가 사라지겠지.”
“그렇다고 해서 어차피 죽을 것이니까 어차피 망가져 없어질 것이니까 막 대하거나 막 쓰란  아니고.”

두 사람은 날 위로하듯 예전에 일화를 이야기해줬던 것처럼 다독이고 회의를 이어나갔다.
“너희들은 어느 쪽을 선택하면 좋겠어?”
“그거 꼭 어디 하나를 선택해야 하나?”
“에디나, 무슨 말이야?”
“아니, 우리가 그렇게 강하다면 어느 쪽도 편들지 말고 제3의 길을 열어주면 되잖아. 지금 귀족과 반란군이 대치하는 건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고.”
“제 3의 길?”
“잠시만.”

빅터가 에디나의 말을 듣더니 잠시 생각에 빠지자 회의실은 정적에 빠졌다.
“에디나의 생각이 좋은 방안인  같습니다. 귀족들이 일어선 이유는 반란군을 해산하는 것이 주 목적이고 반란군이 일어선 이유는 먹을 것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빅터 말대로면 먹을 것만 보장해주면 되는 건가?”
“토지 문제도 있긴 한데 그건 세븐시티의 확장책의 일환으로 인구증가를 위해 외부의 인구 유입을 준비하던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면 될 거야.”

혼자 고민하던 것이 8명이 모이자 누굴 죽일 필요도 없이 바보처럼 허무해졌다.
“우선은 지속적인 전투를 멈추고 양측을 중재하는  우리가 맡는 걸로 하자고. 스마르 교의 사제들은 검은 올빼미들이 처리하고.”
“제국의 일은 제국민들끼리 해결해야 하는데 엉뚱한 녀석들이 분탕치는 꼴은 보기가 싫긴 했어.”
“진행시켜!”
“에디나, 니가 뭘 했다고 대장인척 ‘진행시켜!’야. 엄연히 크로니클의 단장은 나라고!”
“코엘, 내가 낸 방법이잖아. 제 3의 길.”
“그냥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으니까 다른  하자고 꺼낸 거 누가 모를 줄 알고?”
“아니거든?”

두 사람이 평소처럼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지금 진행하는 일이 그렇게 큰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요크, 탱크라는 시제품을  대 더 생산할 수 있겠습니까?”
“어디 보자. 당장 10대 정도는 연구소 인력을 모두 투입하면 2주 이내로 생산 가능할 것 같긴 한데 그러면 비밀 유지가 어려워질 걸.”
“어차피 전장에 탱크와  박격포라는 것이 등장하고 나면 비밀 유지는 의미 없어질 겁니다.”
“그것도 그렇네. 알았어. 박격포도 만들도록 풀가동 시켜볼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전의 소방차라는 물건의 등장처럼 사람들에게 일시에 충격을 줘야지만 사람들은 압도당할 겁니다.”

빅터는 이후 검은 올빼미 대장을 따로 불러 대화를 나눴는데 섀넌이 옆에 와서 말을 거는 바람에 듣진 못했다.

“정후 사장님은  무기들을 이 세상에 등장시키는 것이 싫으신가요?”
“네, 더스트의 행성의 사람들에게 앞으로 저 무기의 창작자의 이름은 제 이름으로 남을 거고, 저 무기들로 인해서 시작될 많은 전쟁무기들의 발명은 앞으로 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아 갈테니까요.”
“엘프들의 세계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지나가는 곰이 무서워 변을 못 볼 수는 없다.’ 아직 숲속의 동물들을 무서워하는 어린 엘프들의 야외 배변훈련을 도울  종종 하는 말이죠.”
‘그냥 화장실을 실내에 만들면 되잖아요.’
“그...그래요?”

예시가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섀넌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고마워요. 신경 써줘서.”
나의 대답에 섀넌은 멈칫하더니 해야할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빨리 비웠다.
“해야할 일이 뭐가 있지? 지금은 내전 때문에 따로 처리해야 할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스마르 교의 사제들을 잡아 들이고 그들이 나눠주는 ‘하얀 액체’를 꼭 챙겨 오도록 하게.”
“만약 잡아들일 수 없을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생포가 어렵다면 죽여도 좋다. 하지만 스마르 교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 필요가 있으니 되도록 생포했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다른 크로니클 단원들에게 지금 나눈 대화가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해주고.”
“평소처럼 하겠습니다.”

검은 올빼미를 이끄는 대장과 대화를 나눈 빅터는 자리를 비우는 섀넌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정후를 쳐다보았다가 다시 등을 돌리고 자리를 움직였다.
“때로는 모르는  좋은 일도 있으니까. 굳이 피를 묻힌 적 없는 에디나와 정후 사장이 이런 일들에 대해 알 필요는 없겠지.”
어둠의 일은 자신만 알고 넘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해서 이런 이유로 현재 제국에는 내전이 연일 격화되고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와이즈, 자네 의견대로 하길 잘했군 그래?”
“그만큼 귀족들에게 분노를 삼키고 있던 이들의 분노가 큰 탓이지 않겠습니까. 교리를 설명하는 중간중간에 대화재가 발생한 이유가 신께서 귀족들의 행태에 분노한 탓이라고 이야기하니 더욱 더 분노하면서 열을 올리는 모습이 이곳 저곳에서 목격된다고 하더군요.”
“사실이 아니지 않은가?”
“대화재의 발생 이유따위 분노한 민중들에게 중요할 리가 없지요. 그저 그럴듯한 이야기만 들으면 그뿐.”

크카이 로쉬의 사주를 받은 자신과 노자마 마을의 촌장 그리고 촌장의  이렇게 셋이서 불을 낸 것이 시작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서 외면을 받고 박대를 받았던 기억이 있는 자신은 이미 자신과 가족 이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인정을 베풀지 않을 것을 다짐했고 나중에 더  이익을 돌려받기로 약속받은 촌장과 그의 딸은 불을 질러 버리고 ‘풀’에게 그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일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근데 그렇게 크게 불이 날 줄은 셋 모두 알지 못했지.’

셋이 처음에 불을 질러 화전을 일구었던 지역 밖에는 오랫동안 유기물이 쌓여 있던 곳이 있었고 그들이 불을 저지른 지역이 ‘이탄층’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나중에 엘리스와 정후가 해당지역을 방문하면서였다.

“분노할 방향이 필요한 것이지.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누가 책임을 져야하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실제론 관심이 없습니다.”
평범한 상단의 직원이었던 자신에게 부정의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내쫓을 때 아무도 자신을 구제해주지 않았던 그때 와이즈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도망친 노자마 마을에서조차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하는 행동이 바뀌는 걸 보고선 확신을 품었다.
‘사람들은 불의에 반응하지 않는다. 불이익에 반응할 뿐.’


“어떻게 사제들과 페일의 지원을 좀  진행할까요?”
“뭐 그렇게 투입할 필요가 있을까? 적당한 시점에 빠지라고 해. 스마르 교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뛰어난 자들을 그렇게 쉽게 버릴 수는 없어.”
“그렇습니까?”
스마르 교의 교황인 로마베는 기이할 정도로 자신의  안에 들어온 이들에겐 항상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조직에 대한 충성은 오직 조직에 대해 충성하는 자들을 존중할 때 유지할 수 있는 법이야. 그들이 앞으로 신성왕국을 지킬 전사들인데 나의 전사들을 함부로 내버릴 수가 있나?”
“그럼, 교황님의 뜻대로.”
“그래그래,”

와이즈가 예를 표하고 떠나자 두명의 신녀가 나타나 에바에게 말을 걸었다.
“저 남자는 믿을 수 있나요?”
“와이즈는 똑똑한 자야. 내가 그에게 이익을 보장하고 존중을 보인다면 배신할 이유가 딱히 없는 사람이지. 한번의 친절함에 모든 것을 바친 지첨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랄까?”
“바닥에 내려앉은 이들에게 주어지는 친절함의 가치는 더욱 크게 느껴지죠.”
“우리가 도망치다가 먹었던 빵 한조각의 가치가 크게 느껴졌던 것처럼 말이지?”
“그때 먹었던  맛은 잊을 수가 없죠.”
“그래, 잊을 수가 없지. 우리는 은혜도 원한도 잊지 않는 모르 가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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