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83화-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2)
제국의 여기저기에서 시작된 민란의 불씨는 근본적으로 먹고 사는 것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분노때문이었다.
프랭크는 자작농 집안인 밀러 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언젠가 아버지에게서 땅을 물려받아 형제들과 농사를 짓고 아버지처럼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는 삶을 꿈꾸는 평범한 농사꾼이었다.
대화재의 불길을 피해 도망쳤다 돌아오고 나니 자신들의 땅은 영주의 것이 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결정에 항변을 토해봤지만 땅을 버리고 간 자들은 농사 지을 권리를 잃는다는 이상한 법에 따라 땅을 빼앗기고 말았다.
항거할 수 없는 권력의 횡포에 모든 걸 잃고 괴로워하던 이들 중 하나였던 프랭크는 스마르 교에서 파견된 사제의 말씀을 듣고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형제님, 신 아래에서 모든 존재는 평등합니다. 귀족이란 자들이 스포보와 모스다께서 주신 평등한 권리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욕심만을 채운 것은 잘못입니다.”
“그럼, 우리가 무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신이 당신들에게 부여하신 또 다른 권리를 행사하십시오.”
“그게 무엇입니까?”
“투쟁!”
사제의 입에서 나온 발언은 종교를 믿는 이에서 나오기엔 어울리지 않았지만 사제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자들의 대부분은 농부들이었고 교리 상의 옳고 그름을 따질만한 그런 교육은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
“스마르 교의 형제 신께선 형제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아시고 형제들이 쥐고 싸울 무기를 준비하셨습니다.”
사제의 옆에 있던 이들이 상자를 가져와 열자 창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인간이 태초에 인간의 힘으로 만든 태초의 무기는 창입니다. 싸우십시오. 당신들의 것을 언제까지 빼앗길 것입니까?”
“하지만 두렵습니다.”
“두려움은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신의 은총이 담긴 ‘페일’을 마시고 나면 내면에 떠오른 당신들의 두려움은 모두 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그마하고 투명한 병에는 우유빛깔의 하얀 액체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사제가 눈짓을 하자 주변에 서 있던 이들은 줄을 서라고 하며 창과 방패 그리고 액체가 담긴 병을 챙기고 먹을 식량을 조금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배를 채우고 여러분들의 것을 되찾으십시오. 스포보와 모스다 신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프랭크는 사제의 말들을 들으며 농사꾼으로 살아온 자신이 꿈꾸던 삶이란 영주들이 영지민들을 착취하여 자신들의 욕심을 차지하기 위한 고도의 세뇌임을 깨닫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같은자식들.”
“영주들을 죽여버리자!”
어느덧 배를 채운 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영주가 있는 성으로 밀려들어갔고 벌떼같이 밀려드는 이들에게 일부 기사들과 영주의 병사들이 항전을 해보았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칼에 베이고 방패에 찍혀도 피를 흘리며 다시 달려드는 영지민들의 분노를 막기엔 너무 부족했다.
흥분을 숨기지 못하는 군중은 이내 영주의 성 곳곳에 불을 지르며 약탈을 자행했다.
프랭크와 일부 젊은 군중들은 약탈을 하는 것보다 영주를 찾아 성 여기저기를 뒤져봤지만 어느새 비밀통로로 도망친 것인지 영주와 그 일가는 성급하게 떠난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져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스마르 교의 사제가 있건 없건 소문이 흘러 사람들 사이에 번지면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었다.
“더 이상 이렇게 미루고만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영주들이 수도로 몰려오고 있어요.”
“비트레이 후작님! 무도한 폭도들을 징치하여 주십시오.”
황제파와 누가 장군의 지휘를 맡을 것인지 비용 부담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아직까지 다투고 있던 귀족파의 거두 비트레이 후작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너무 미룬 것이 독이된 것인가?”
황제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이런 상황을 진작에 눈치챘고 비트레이 후작을 좀 더 공격하고 싶었지만 결국은 그 영주들의 땅에서 나오는 세금이 자신이 쓸 돈임을 모르는 것은 아닌지라 적당히 후작과 교섭을 하여 비용은 귀족파에 떠넘기고 비트레이 후작이 지휘를 맡기로 결정하게 했다.
비트레이 후작은 진압군의 지휘관으로서 귀족파에 속한 귀족들을 장수들로 기용하여 진압대를 조직하여 3군을 나눠 파병을 결정하였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기사와 사병들이 결코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서로 3군의 수장이 되어 명예를 얻기 위해 물밑 경쟁을 벌였다.
처음 진군한 3군의 기세는 기존의 영지에 남아 있던 이들의 기세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고 성을 점령하고 있었지만 딱히 전술도 싸우는 방법도 잘 모르는 농민들과의 전투는 그리 힘겹시 않게 밀어낼 수 있었다.
“주제를 모르는 것들이니 모두 죽여버려라.”
분노한군중을 다독거리기보다 본보기를 보여 공포심을 주기로 작정한 귀족들의 작전은 처음엔 잘 먹히는 것 같았다. 스마르 교의 사제들이 지원하는 농군을 만나기 전까진.
“이것들 뭐지?”
이전처럼 피를 보면 겁을 먹고 도망치는 반란군들과 다르게 창의 날이 날카롭게서 있는 반란군들은 몇차례의 전투를 겪으며 오합지졸의 티를 벗은 뒤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죽음이 끝이 아니며 스포보와 모스다란 쌍둥이 신께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정당하게 싸우는 자들의 뒤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기도와 함께 나눠준 하얀 액체는 죽어가는 이들에게서도 평온한 모습을 보여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의 가르침을 따르면 죽음조차 평온하단 기이한 믿음이 퍼져 흔들리지 않는 군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스마르 교가 제국 내에서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었군.”
드마코 형이 첩보를 듣고선 모두가 모인 곳에서 한탄을 내뱉었다.
3군은 강했지만 수가 부족했고, 반란군은 상대적으로 약했지만 수가 많은데다 세뇌와 약물의 효과 때문에 죽이고 죽이는 살육전을 벌여봤자 쉽게 흩어지질 않아 일반적인 반란군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그렇게 3군의 수만 줄어들고 있는 형국으로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귀족들과 반란군 간의 전쟁이 오래가면 피해보는 건 결국 평범한 이들이에요.”
세븐 시티를 운영하는 우리들로썬 어느 쪽을 선뜻 지원하기도 애매했다. 한쪽은 스마르 교의 사제들이 침투하여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반란군이었고 한쪽은 자신들의 책임으로부터 도망친 귀족들이 수뇌부인 진압군이었기에 어느 쪽도 정당한 정의를 추구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거 애매하네. 애초에 시작은 황제파와 귀족파의 실책이 큰 원인이었는데”
“이 둘의 대립 때문에 불티 프로젝트도 진행하다가 멈춘 상태야.”
“어떻게 풀어야 좋을까?”
앉아 있는 8명 모두 각자 고심을 하며 생각에 빠지자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빨리 종식시키는 것이 목적이면 진압군 쪽의 편을 드는 것이 효율적이긴 합니다.”
“아니, 난 빅터의 말에 반대야. 피해를 본 이들은 제국민들이잖아. 오히려 책임져야 하는 이들은 귀족들이라고.”
빅터와 에디나의 대립에 사람들의 시선이 둘 사이를 오갔다.
“흐음, 둘 다 일리가 있네.”
“근데 꼭 둘 중 하나를 편들어야 하나?”
“그게 무슨 소리야 요크? 군대가 두 개니까 둘 중 하나의 편을 들어 줘야지.”
“아니, 우리가 참전하면 둘 다 찌그러져야 할테니까 그렇지. 안 그래, 정후야?”
요크의 지적은 나 역시도 염두에 두고 있는 사항이었지만 어쩌면 더 많은 이들의 피를 흘리는 수가 될 수도 있는데다 차후에 세븐시티의 영향력을 넓히는 과정에서 제국의 압박을 받고 싶지 않다면 섣불리 선택하면 안된다는 엘리스의 조언이 옳다고 생각했다.
“무슨 소리지?”
코엘 누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요크의 말에 설명을 요구하자 요크는 정후에게 들으라며 다시 내게 토스를 했다.
“시나브로의 연구팀에서 그간 전쟁을 대비하고 준비해온 것들이 몇가지 있긴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이곳의 전쟁은 평야 지대에서 서로 간의 대결을 한다거나 성에 틀어박히면 어느 한쪽이 성을 무너뜨리고 뚫고 들어가는 식의 공성전의 형태로 흘러간다고 빅터 교관이 설명을 해주더군요.”
“그게 일반적이지.”
“지금까지는 그랬지.”
“너희들이 만든 게 도대체 뭔데?”
드마코 형도 궁금한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물어보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리자 난 버크 아저씨에게 이걸 과연 공개해도 되는지 쳐다봤지만 아저씨도 우리가 만든 물건이 어쩌면 파국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답하지 못했다.
“우리가 만든 물건은 멀리서 상대방을 타격하여 집단을 와해시킬 수 있는 무기예요.”
“그럼, 그게 연구소에서 가끔 터져 나오는 폭음이란 관련이 있는 건가?”
엘프인 코엘 누나와 섀넌은 연구소 주변을 지나가면서 폭발음을 들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로만 들어선 잘 모르겠어. 한번 보여줄래?”
언젠가 한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물건이긴 했지만 이렇게 공개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스러웠다.
“음, 정후군, 우리가 모든 걸 책임질 수는 없네. 이들도 크로니클의 단원이니 이들과 함께 상의를 해보는 건 어떻겠나?”
어쩌면 비겁한 모습일 수도 있었지만 내가 만든 무기가 이 세상에 퍼졌을 때 생길 참상을 이미 엘리스의 시청각 자료들을 통해 학습한 나로썬 이들보다 전쟁의 역사를 더 정확히 알고 있기에 두려웠다.
“일단은 한번 보시죠.”
콰콰쾅
연구소 뒤편에 사람들의 출입이 통제된 야지에서 보인 시험 발사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다 못해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이곳에 처음 가져온 무기는 ‘박격포’였다. 공성전이 많은 이곳의 전투 특성상 한번에 상대방의 성벽을 무너뜨리기엔 박격포가 적합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구조인지라 이미 15세기 초의 조선에서도 비격진천뢰의 조상격인 ‘완구’의 등장이 기록되어 있었고 16세기에 등장한 비격진천뢰의 경우는 19세기 수준에 접어든 강철제작 능력을 지닌 시나브로의 연구소에서 만들기엔 그렇게 어려운 물건이 아니었다.
“이런 게 몇km를 날아가서 터진다는 거지?”
“밀집 대형일수록 파괴력이 크겠군요.”
전쟁을 경험해본 빅터 교관과 코엘 누나 그리고 드마코 형의 충격이 다른 사람들의 막연함에 비해 구체적이었다.
“이게 이 세상에 등장하고 나면 앞으로 전쟁의 역사는 지금과 달라질 거예요. 더 많은 이들이 더 짧은 시간에 죽어나갈 수도 있겠죠.”
“이래서 정후 사장이 선뜻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겁니까?”
“이 무기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지금 이곳에 자리한 이들을 빼면 연구소 내에서도 드워프 노장인들과 일부 기술연구원들 뿐이에요.”
“어쩐지 드워프 노인네들이 전쟁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별거 아니라고 넘기고 막걸리 마시면서 신경도 안 쓰는 이유가 이것때문이었구나.”
“아뇨, 이것만 있지는 않아요.”
“그럼?”
박격포를 보여준 참에 난 크로니클 단원들에게 몇가지 무기를 더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섀넌을 통해 ‘그것’을 야지 시험장으로 이동할 것을 요구했다.
“어라? 이거, 소방차 아닌가?”
“아니야, 모양이 조금 다른데?”
무한궤도가 달린 탱크는 소방차를 만들고 나서 프로토타입으로만 제작했는지라 소방차를 본 이들은 익숙해하면서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시작해요.”
내 손짓에 탱크에 탄 조종사가 움직이자 이내 탱크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탱크가 기동하기 시작했고 이내 이동을 하고 난 뒤 탱크는 이동하며 표적지를 향해 불을 뿜었다.
탱크에서 날아간 포탄의 충격은 박격포에서 터져나온 충격음보다 더 파괴력 있게 느껴졌다.
탱크의 무시무시한 움직임을 경험한 적이 있는 버크 아저씨와 요크조차도 시험 발사를 보고 멍해져서 말을 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나머지 크로니클의 단원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한참을 말을 잃고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는 이들은 내가 만든 무기가 가져올 전장의 변화를 정확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탱크랑 박격포가 투입되면 뭐 어느 쪽이든 끝은 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