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79화-후폭풍(1)
스마르 교가 성국으로의 선포를 준비하고 있는 과정은 대륙의 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 어쩌면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일 것도 같았지만 스마르 교의 횡포를 이겨내지 못한 상인들이나 귀족들의 탈출 러쉬가 계속되고 있는 걸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사람들이 많이 오면 오히려 우리 입장에선 우리가 파는 물건들을 구매해줄 고객의 수가 증가하는 거 아니야?”
“에디나, 그렇게만 접근해서 될 일은 아니야..”
“왜?”
“이건 부차적인 측면인데 이전엔 소국들이 제국의 힘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제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에선 어느 정도 통제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기도 해. 앞으로 성국이 얼마만큼 팽창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제국의 말에 고분고분한 분위기는 계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당장 제국에 미치는 영향은 클 겁니다. 모든 것의 가격이 치솟아 오를 테니까요.”
에디나 누나의 말을 듣고 코엘 누나와 빅터 교관이 에디나 누나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 주었다.
엘리스가 와처를 통해 얻게 된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대륙의 추정인구는 약 2억 정도였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한참 적은 숫자였는데 제국의 인구가 무려 8천만이었다. 나머지 1억 2천만의 인구는 연합국을 비롯한 소국들에 나눠져서 흩어져 있어 인구가 상대적으로 더 밀집된 제국의 국력에 밀리고 있다는 게 엘리스의 분석 결과였다.
“지금 몰려드는 이들의 추산되는 인구는 1천만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는 10년 전 인구조사를 토대로 현재 제국 인구를 예측한 바에 따르면 현 제국민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이들이 다 제국 내에 흡수되었을 땐 제국의 힘이 더 강력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제국이 이들을 흡수하기까지는 적지 않은시간과 진통이 필요할 겁니다.”
빅터 교관의 말을 듣고 있는데 엘리스가 서독과 동독의 통일 후 겪었던 진통에 관한 내용을 다룬 책과 함께 앞으로 대한민국이 만약 북한과 통일할 시 필요한 막대한 자금과 진통에 대한 수많은 기사들을 시선의 한 켠에 띄워 보여줬다.
“더구나 이들은 귀족이거나 부유한 상인집단이란 말이지. 가진 재산을 다 들고 오지 못하더라도 상급자는 적을수록 좋은 거야. 지금 제국의 귀족이 제국 내의 인구 중에서 약 15%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의 횡포를 보라고. 제국 밖에서 들어온 난민 아닌 난민들이 제국 여기저기 자리를 잡는 순간 그들이 머물 지역의 땅값은 치솟아 오를 것이고 이들이 먹고 마시기 위해 필요한 물자들이 급격히 증가하겠지.”
“드마코,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는 사람들이 돈 없는 이들이 아니란 거네.”
“버크 아저씨, 가장 문제는 현재 생산되는 제국의 식량 생산량으론 이들을 다 감당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우리가 만든 7개의 도시에서 나름 이 세상엔 없는 현대화된 장비와 기술력을 활용하여 물자들을 생산하고 있지만 당장 몰려드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선 생산설비를 키워 제국에 보급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식량을 구입하지 못하는 이들이 밀려나 굶어 죽어 나간단 소리야?”
“제한된 생산량 내에서 수요가 급증하면 가격은 올라가고 이를 구매할 여력이 없는 가난한 이들이 제일 먼저 타격을 입을 겁니다.”
“정후야, 그 말은...”
“요크, 대화재로 불타버린 농지를 복구하기까지 대륙은 일시적으로 흉작이 발생한 거나 마찬가지란 소리야. 제국에서는 사람들이 사용할 돈도 부족해지겠지.”
“제국의 귀족들도 이 문제를 알고 있으려나?”
“버크 아저씨, 이 문제는 알고 있어도 피할 수 없어요. 그저 견뎌내는 수밖에는. 다만 제국이 이걸 이겨낼 자본이나 아이디어가 있을지는 의문이네요.”
제국의 귀족들도 바보는 아닌지라 몰려드는 귀족들과 상인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연회에서 나오고 있었다.
“우리 쪽으로 끌어 들어야 해요.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귀족파들을 찍어 누를 수 있게 우리 황제파의 세력을 늘립시다.”
“옳습니다. 어서 망명 귀족들을 끌어들이러 가시지요.”
“에드워드 백작님, 망명 귀족들도 망명 귀족들이지만 우리 제국의 귀족들을 후원할 상인들을 끌어안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그렇소?”
“물론입니다. 귀족들을 포섭해서 우리측의 힘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측의 귀족들에게 줄 혜택은 상인들의 주머니에서 나올 테니까요.”
“그건 내가 생각하지 못했군. 역시, 우리 황제파의 지낭(智囊)인 길버트 자작이야. 그대가 우리에게 있어 정말 다행이요. 귀족파 놈들은 그저 망명귀족들만 모으느라 바쁘겠지.”
“아닙니다. 이 정도 생각은 저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닐 겁니다.”
“이...거 참.”
에드워드 백작이 머쓱해하는 모습을 보니 길버트는 자신이 살짝 선을 넘은 것 같아 바로 백작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그 놈이라면 이 정도는 똑같이 생각하고 있겠지.’
“황제파에선 분명히 이번에 망명한 귀족들을 포섭하기 위해 애를 쓸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가, 보거농?”
“길버트 녀석이라면 분명 저와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겠죠. 후작님도 떠올리셨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황제파와 귀족파에서 책사 역할을 맡고 있는 둘은 서로 추구하는 바가 너무 달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인정하고 있었다.
“허허, 그래도 에드워드 녀석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걸. 보거농이 역시 내 수준을 잘 알아.”
“옆에서 제가 비트레이 후작님을 보좌해온 것이 벌써 몇 년입니까? 하하”
“그래, 다 좋은데 말이야. 어떻게 하면 망명 귀족들 중에서도 강력한 기사들을 보유했다거나 자산이 많은 알짜들만 우리 귀족파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쭉정이들은 많이 모아봐야 큰 의미가 없을 걸세. 근데 난 그걸 해결할 기발한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구만.”
“요 근래 대화재로 인해 고민할 일이 많으셔서 그런 것이지. 비트레이 후작님이 바쁜 일 때문에 신경 쓸 일만 없었다면 저보다 더 좋은 생각을 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겠지? 하하하”
비트레이 후작이 어떤 말에 반응하고 어떤 말을 싫어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보거농으로선 이전에 책사 자리를 맡고 있던 이가 어떻게 자리를 잃게 되었는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유지하고 있었기에 이제는 굳이 생각하거나 따로 의식할 필요 없이 비트레이 후작의 말에 자연적으로 대답이 나왔다.
“제가 생각한 방법은 이렇습니다. 앞으로 찾아올이들을 위해 유민들이 던져 버리고 간 땅들을 귀족파에서 끌어모아 자신의 수하로 들어올 귀족들에게 봉토를 하사하는 겁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비트레이 후작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따로 무얼 꺼내서 나눠줄 필요 없이 제국엔 불필요한 유민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자신들을 받들 귀족들로 채운다는 것이 무척이나 달콤하게 들렸다.
“이거이거, 이렇게 우리끼리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귀족파의 귀족들을 불러서 어서 움직이도록 한번 추진해 봐야겠군. 보거농 자작, 자네가 신경 좀 써주게.”
“폐하, 관리들의 말에 따르면 시중에 돈이 돌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쓸 돈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고 합니다.”
“그거 큰일이군. 누구 좋은 의견 없소?”
황궁 안에 준비되어 있는 거대한 회의실에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지만 누구 하나 황제의 말에 선뜻 의견을 내놓는 이가 없었다.
“허어, 어찌 말들이 없소?”
황제가 닦달하자 서로 눈치를 보긴 했지만 회의실 안에 양쪽으로 배치된 의자에 앉아 있는 어느 누구도 일어나 대답하지 못하니 황제가 답답해했다.
“전쟁만 하던 귀족들에게 감투를 씌워주는 게 아니었나? 순 전쟁만 하던 인간들이라 이럴 땐 도통 도움이 안돼. 도움이.”
황제가 나직하게 혼잣말을 했지만 회의실 안에 있는 모두가 황제의 다 들리는 혼잣말을 듣지 못할 수가 없었다.
“(또 시작이다. 또 시작.)”
“(누구 좋은 의견 없나? 보거농 자작하고 길버트 자작이 오늘따라 조용하네.)”
“(가만히 있어 봐. 분명 지 잘난 맛에 누가 먼저 시작하겠지. 어떤 놈이 먼저 시작하나 지켜나 보자고)”
속닥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황제파와 귀족파의 머리로 평가되는 길버트와 보거농에게 쏠렸지만 보거농과 길버트도 어떤 방법을 해결책으로 내놔야 사람들에게 역시라며 인정받을 만한 것인지 떠오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제가 의견을 내 봐도 괜찮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구석진 곳에 있던 누군가가 의견을 제시했다.
“어떤 의견이든 좋소. 부족한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지금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누구인가? 일어나서 말해보도록.”
황제의 말에 의견을 제시해도 괜찮은지를 물어봤던 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버트 자작, 피델리 남작이 이런 쪽에 전문적인 면이 있던가?)”
“(제가 알기로는 말이나 몰고 전쟁에나 참여하던 에퀴테스 출신이라 잘 모를 겁니다.)”
“(근데 왜 나서! 왜 나서냐고)”
황제파의 일원인 것이 분명한데 에드워드와 길버트가 당황해하는 것 같으니 귀족파의 귀족들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 챘다. 뒤늦게 미소를 짓고 있는 비트레이 후작과 보거농 자작을 보고서 길버트와 에드워드가 표정관리를 해봤지만 한발 늦은 때였다.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난 이를 보고 있느라 길버트와 에드워드의 표정을 제대로 읽지 못했고 어서 이야기해보라며 손짓을 했다.
“로만 피델리 남작입니다. 간단하게 지금 돈이 부족하다고 하셨는데 돈을 늘리면 되는 일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아침에 아침 먹고, 점심에 점심 먹는 그런 소리를 누가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닌데 저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에드워드는 이따가 회의 끝나고 피델리를 불러 예전 에퀴테스 시절을 떠올리게 해줘야겠다고 강하게 다짐하고 있었다.
“하하, 피델리 남작이 긴장했나 봅니다. 제겐 별로 대단하게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이때다 싶어 비트레이 후작이 이죽거리자 에드워드 백작은 이미 때가 늦었다 싶어 오히려 당당하게 나서기로 했다.
“피델리 남작의 말이 너무 비트레이 후작님께는 이해하기 어려우셨던 것 같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할 수 있도록.”
갑자기 지적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 피델리는 내심 긴장되기도 했지만 이번에야말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을 기회라고 여기고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지금 찍을 금과은 그리고 백금이 부족한 것이 돈을 늘리는 데 방해가 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엔 주화를 찍어낼 때 상대적으로 저렴한 구리라든가 주석같은 것들을 섞어서 기존의 주화의 생산량을 늘리면 어떨까하고 떠올려 봤습니다.”
“다른 금속을 섞어서 양을 늘린다?”
황제가 자신의 말에 흥미로워하는 것 같자 피델리는 좀 더 자신이 생겻다.
“예, 지금 당장 부족한 종류의 주화에 한해서 다른 금속을 늘리면 1개의 골드를 만들 양으로 2개나 3개로 늘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하다 싶어 귀족파의 귀족들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지금 있는 걸로도 2배 내지 3배 이상 늘릴 수 있겠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
“화재가 발생하기 전에 한동안 도시 빅터에서 머물 일이 있었는데 그때 지나가는 상인들이 빅터에서 판매하는 주정을 사다가 자신들의 도시로 가져가서 물을 타면 양을 늘릴 수 있어 잘만 타면 주정 한 병으로 술을 몇 병씩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상인들의 교활한 꾀를 우리가 이용해볼 기회라 이건가?”
황제파에 속한 피델리의 의견이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기에 좋은 방법을 내놓았다고 생각한 귀족파의 귀족들은 자신이 먼저 이야기할 걸 하면서 아쉬워했고 따로 호출을 해서 니 기수 위로 내 기수 아래로를 시전하여 간만에 기사들 집합을 걸려고 했던 에드워드 백작은 이를 잊고 크게 좋아했다.
“모두들 이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황제가 물어봤지만 다른 귀족들은 딱히 피델리의 아이디어에 허점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피델리 남작이 이번 일의 진행을 맡아 진행시키도록 하고. 혹시라도 더 좋은 의견이나 다른 의견이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해주시오. 오늘 회의는 이만 마치도록 하지. 피곤하군.”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밖으로 나가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밖으로 나가는 황제에 대한 예우를 보였다.
“로만, 로만, 로만! 너 이녀석! 니가 어쩐 일로 이렇게 기발한 의견을 다 내놓았냐?”
“하하, 별로 대단한 건 아닙니다. 상인들의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일뿐입니다.”
“너, 이번에 다시 봤다. 내 밑에 있는 녀석들은 다 전쟁이나 잘하지. 그런 의견을 내놓은 녀석이 없었는데. 길버트가 생각해도 기발했지?”
“귀족파의 보거농이 아무 말도 못하는 걸 보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법하면서도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좋은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황제파에 속한 귀족들 오늘 모이라고 해. 기분이다. 이런 날 한잔해야지. 피델리는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
황제의 회의실에서 정해진 결과는 공식적으로는 비밀이었지만 자신들의 후원을 해주는 상인들에게만 알려주는 일이라면서 귀족들의 입을 통해 퍼져 나갔고 우리 역시 시간이 조금 지나고 이 정보를 전달받았다.
“미쳤군요.”
화폐에 물타기를 하는 발상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잘 알고 있는 나로썬 앞으로 제국에 발생할 문제가 눈에 훤하게 보였다.
“정후군, 왜 그런가?”
“이거 빨리 못하게 막아야 해요, 안 그럼 큰일 나요, 아저씨.”
에드워드 백작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와서 자신의 휘하에 있던 로만이 한 건 했다면서 좋아하던 버크 아저씨가 의아한 눈초리로 날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