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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화 〉74화-분노의 역류(2) (74/239)



〈 74화 〉74화-분노의 역류(2)

“보석같은 것만 챙겨.”
“어휴, 이것들 다 아까워서 어떻게 해.”
“서둘러. 시간 없어. 이대로 미적거리다간 도망도 못 간다고! 살아야 의미가 있지. 그깟 드레스같은 것들은 나중에 사줄게.”
제국의 최동부 지역의 귀족의 성 안에선 귀족의 하녀들과 집사 그리고 하인들은 챙길 수 있을만한 물건들을 챙겨서 떠나는 준비를 하느라 한창이었다.

동쪽의 절반이 초토화되었을 때쯤 제국으로 번진 불길은 쉬지 않고 타올랐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며 안일하게 생각했던 귀족들도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근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사건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땐 그동안 모아둔 식량들조차도 가져갈  없게 상황이 바뀌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창고에 식량들을 모으는 게 아니었는데...”
“빌어먹을, 황제는 뭘 하고 있는 거야!”

크로니클에서 사람들이 와서 최소 50m 이상의 폭을 가진 방화선을 짜고서 최대한 제국의 변두리에서 불길을 막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봤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다. 정보를 전달받았을  중앙귀족들과 지방귀족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덜어서 방화선을 짰다면 좋았으련만 귀족들은 식량과 무기를 모았을 뿐이었다.

“이게 다 중앙귀족들이 게으른 탓이다.”
“아니, 어째서 이게 우리들의 탓이란 말인가! 1차적으로 제국의 외부로부터 다가오는 위험을 막아야 할 책임들은 그대들 지방귀족들이 가진 것이고 그 때문에 중앙에 납부해야할 세금도 감면해주고 있었던 것인데. 미리 이야기를 해줬는데도 대비를 하지 않은 그대들의 탓이지.”
“그 큰불을 어찌 지방귀족들끼리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중앙 놈들이 도와주지 않은 탓일 수밖에.”
“뭣이라! 너희들이 그렇게 막고 있는 동안 시간을 벌어야 중앙에서도 지원을 해줄 시간이 생길  아닌가!”
“그걸 어떻게 믿고 막고 있으란 것인가! 음흉한 중앙 놈들이  타버리고 나서 뒤늦게 올 줄 누가 알고.”

황제가 있는 궁에서 벌어지고 있는 귀족들 간의 다툼은 서로 니탓이오만 외치는 중이라 딱히 대책에 대한 논의같은 것은 없었다. 오로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고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아귀다툼만 계속 되었을 뿐.
이러한 행태가 계속되는 도중에도 불은 계속 번져 나가며 사람들의 터전을 한순간에 불태워버리고 있었다.

터전을 잃고 도망친 유민들의 분노가 각국의 귀족들을 향해 번지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평소엔 잘났다고 설치는 귀족 놈들은  어디 갔지?”
“일찍부터 도망쳤다고 하더라고!”
“지역민들의 안전을 위해 힘 쓴다면서 세금을 뜯어갔던 건 역시 말뿐인 허울이었어.”
“내가 듣기로는 이 자식들을 잡아 족쳐야 신들의 용서를 받고 불이 꺼진다고 하더군.”
“일리가 있어!”
“귀족들을 잡아 죽이자! 잡아 죽여서 신들에게 비를 내려달라고 제사를 지내자.”
이성을 잃고 분노한 유민들은 각자 도망치면서 챙겨온 날붙이들이나 농기구들을 들고 귀족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저기다! 저기 귀족 놈들이 있다!”
“잡아라!”
“저녀석들을 잡아서 처형대에 올려 목을 자르자. 그래야만 신들의 용서를 구할 수 있을테니.”
워낙 모여드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사방팔방 몰려드는 농민들에 둘러싸인 귀족 일가들이 붙잡혀 포박을 당하고 처형대 근처로 끌려가는 것을 보는 것은 대륙의 각 지역에서 그리 어렵지 않은 풍경이었다.

“정말 살풍경하군.”
“어서 빨리 이걸 와처에 전달해야겠어.”
대륙에 퍼져 있는 와처 요원들은 한발짝 떨어져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고하는 것 이외엔 이성을 잃고 휩쓸린 이들의 폭주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에디나, 이야기 들었어?”
“굶주리고 자신의 터전을 잃은 이들의 폭주가 시작되었다고 보고가 왔던데.”
“이걸 어떻게 다독여야 하는 거지?”

에디나, 코엘 그리고 드마코가 먼저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딱히 그럴듯한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정후랑 버크&요크 남매하고 빅터는 어디 가서 아직도 이렇게 안 와?”
에디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나브로 수뇌부 회의실 문이 활짝 열렸다.
“어, 다들 여기 있었네?”
“야, 넌 어디 가서 이제 오는 거야, 꼬맹이?”
문을 열고 나타난 요크를 보자마자 코엘이 한마디를 했고 요크는 이럴 시간 없다면서 자신을 따라 오라고 했다.
“뭔데, 어디로 가는 건데?”
“예전부터 도시에 화재가 나면 어떻게 할 건지 정후랑 나랑 오빠랑 빅터 님이랑 넷이서 준비해온 프로젝트가 있었어.”
“뭐 대단한 거라도 있어?”
“가서 보면 알아. 깜짝 놀랄걸?”

한국의 도시에는 사람들이 있으면 생겨나는 관공서 중에서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지역에 필수적으로 생기는 두 개의 시설이 있으니 그게 바로 지구대와 소방서다.
지구대의 역할은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치안대에 맡겨 해결하고 있었지만 소방서라고 할 만한 시설을 짓기에는 소방관들의 개념이 이곳에 도입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런 배경을 두고서 소방서라는 기관을 상징하고 절대적인존재라고 할 수 있는 소방차를 더스트 행성에 어떤 형태로 등장시켜야 할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휘발유를 이용하여 작동하는 엔진을 탑재할 경우 석유의 존재유무와 더불어 정제시설이 필요해지고 내가 맑고 깨끗한 더스트의 공기를 지구처럼 더럽히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기에 섣불리 도입하기에 망설여지는 부분이었다. 해서 이 부분에선 엘리스의 도움을 받아 현대의 지구보다 앞선 태양 전지를 활용하여 전력을 발생시켜 움직이는 전기자동차를 베이스로 해서 소방차를 만들기로 했다.

“짜잔!”

기술의 도입은 단순히 설계도만으로는 진행시키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었고 아무리 핵심 소재를 나와 엘리스가 따로 준비를 하더라도 이와 연계되는 장비들의 설계도에 맞게 기술자들이 물건을 찍어내서 시제품을 만들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려 이게 과연 필요한 순간이 오기나 할 것인지 회의적인 상태였다. 적어도 대화재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하지만 필요는 발명과 발전을 요구했다.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를 가속하기 위해 특별히 다른 업무 진행 중이었던 드워프 노장인들을 데려와 태스크 포스를 구성했고 밤낮으로 커피를 먹여가며 연구원들을 갈아낸 결과 시제품이 탄생했다.

“자, 이건 소방차라는 거야.”
빨갛게 칠해진 소방차는 한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판터’를 베이스로 하여 만들어졌고 육중한 크기와 함께 최대 1만리터의 물을 운반하여 고압으로 뿜어낼 수 있는 현대적인 장비였다.
“무슨 무기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앞쪽에 보이는 파이프 2개에서 나오는 물에 맞으면 죽을 수도 있어.”
“그 정도로 강력해?”
“궁금하면 한번 시험해 볼래?”

요크의 미소에서 어딘가 섬뜩함을 느낀 에디나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어딘가 매드 사이언티스트스러운 기색을 보이는 요크의 옆에서 살짝 떨어져서  멤버들에게 차량에 대해 소개를 했다.

“굳이 가까이 가지 않아도 물을 쏴서 불을 끌  있고, 한 번에 실어서 나를 수 있는 물의 양도 많은 데다 정제 시설을 설치해놨기 때문에 더러워진 물을 정화해서 사람들이 먹을 물로 정화해서 많은 이들에게 식수를 제공할 수도 있어요.”
“좋은 장비군.”
“빨리 투입했으면 좋겠는데.”

드마코 형의 바람과는 다르게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다.
“문제는 장비는 준비가 되어 있는데 이 장비를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당장 저밖에 없어요.”
“교육이 필요하단 건가?”
“예전에 트리니티 상단에서 분업해서 각자 필요한 것만 교육시켰던 적이 있잖아? 이번에도 그렇게 진행하고 있어. 운전자는운전만, 소화를 할 이들은 소화하는 교육만.”
“버틸 수 있을까 모르겠네.”
“선발대로 빅터가 대원들을 이끌고 갔잖아.”
“빅터가 와처 요원들에게 정후가 가져온 등짐펌프와 소화기를 줘서 불을 끄기 위해 출동하긴 했는데 턱도 없이 부족할 거야. 한번 크게  산불은 산에 있는 모든  집어삼키곤 하니까.”

드마코 형의 말에 모두가 숙연해지는  같았다.

“그래도 이런 녀석이 있으면 앞으론 다르겠지?”
“시나브로의 직원들을 교육시키곤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덩치가 커서 기존의 마차랑은 다른 수준이라 속성교육으로 하루 종일 시켜도 최소 1주일 이상은 걸릴 것으로 예상 돼.”
“1주일이라. 어느 선에서 막는 지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미래가 달라지겠네.”

도시 제이에서 이런 준비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빅터가 부하들을 데리고 먼저 도착했다.
“인원을 3개의 조로 나눈다.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조와 방화선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고 옮기는 조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을 끄기 위해 움직일 조다. 어느 조도 안전을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다. 나무를 베서 방화선을 짜는 조는 다시 2개로 나누겠다. 가장 많은 인원이 필요하고 가장 육체적으로 고된 작업이 될 것이니 서로 교대하기 위함이다. 다들 각오들 단단히 하도록.”

빅터의 말에 따라 도끼를 가진 이들은 방화선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서 옮기기 위해 떠났고 확성기를  이들은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움직였다.

“너희들은 나와 같이 불을 끄기 위해 움직인다. 1주일! 1주일만 버티면 세븐시티의 비밀무기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찾아온다. 1주일만 버티자.”

빅터가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에디나 누나는 빅터가 이끄는 이들이 먹을 식량들과 구호물자들이 필요할 것 같다며 자리를 비웠고 버크 아저씨는 궁으로 찾아가 물자를 생산하고 분배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귀족과 황제로부터 조달하기로 했다.
“정 안되면 황제한테라도 뜯어 내오도록 하지. 목숨을 구해준 값이라고 하면 도와주지 않겠나?”

드마코 형은 에디나 누나를 도와 간편식으로 준비해둔 물자들을 보내주겠다고하고 자리를 비웠고 자리엔 나와 코엘 누나, 섀넌 그리고 요크만 남아 있었다.

“엘프들도 이럴 땐 도울 수 있게 나와 섀넌은 여왕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가볼게.”
코엘 누나가 섀넌과 떠나자 요크가 나에게 한마디를 했다.

“한동안 섀넌이 없으면 많이 허전하겠네?”
“응?”
“처음이잖아. 비서가 되고서 떨어지게 된 건.”

굳이 섀넌이 없어도 엘리스가 있기 때문에 딱히 허전할 것 같지 않았지만 엘리스의 존재를 알 리가 없는 요크에게 굳이 내색하기도 뭐해서 그냥 그렇다고 해버렸다.
“역시 그렇겠지?”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티가 나는 법이야.”

요크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소방차의 생산을 계속 하러 가기 위해 떠나고  잠시 요크의 말을 곱씹다 엘리스의 안내에 운전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또 움직여야 했다.

한편 우리들이 이렇게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동안 누군가는 대화재로 촉발되고 있는 상황을 기회로 여겼다.
“모든 것을 잃고 절망을 느끼는 이들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나는 잘 알지.”
“우리 모르 가문이 드디어 움직일 때가 된 거야. 에바.”
“와처 놈들도 지금쯤이면 정신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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