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3화 〉73화-분노의 역류(1) (73/239)



〈 73화 〉73화-분노의 역류(1)

무슨 이유에서인지 동쪽의 열대우림에서 붙은 불은 시간이 지나도 꺼질 줄을 모르고 마치 모든 것을 불태울 것처럼 불길의 영역을 넓혀갔다. 계절도 가을이라 대륙 곳곳엔 타기 좋은 잘 마른 밀밭들과 나무들로 가득한 상태였다.

“많이 심각한가요?”
“불길이 잡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필이면 추수기간인데.”

단 한 번의 천재지변으로 인해 대륙 전역에서 농작물이 크게 줄어들 것이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큰일이야. 터전을 잃고 도망친 이들이 거대한 집단을 이루고 그저 불길이 퍼지지 않은 서쪽으로 계속 도망치고 있다고 하더군.”
<방화선을 짜는 것이 중요한  같습니다. 불길이 번지는 속도를 미리 감안하여 불길이 이어질만한 곳들에 있는 숲이나 나무들을 모두 베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최소 50m 이상의 폭이 필요합니다. 만약 이것이 어렵다면 번지기 전에 물이라도 미리 뿌려서 시간을 늦출 필요가 있습니다. >
엘리스의 조언을 들은 정후가 급작스럽게 모인 크로니클의 멤버들에게 방화선에 대해 설명을 했다.

“우선은 연합국의 귀족들에게 이 방법부터 전해야 할 것 같아.”
“글쎄, 제국을 통해서든, 와처를 통해서든 그들이 우리들의 의견을 순수하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네. ”
“그래도 일단   있는 것은 다 해봐야지.”
“제국 내에서도 미리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자신들의 재산이 날아가게 생긴 일이니까 그저 내버려 두지는 않겠지.”

크로니클의 단원들은 긴급회의를 마치고 대화재를 막기 위해 움직이기로 했다. 나는 그동안 모인 세븐시티의 산물들 중 환금성이 높은 물건들만 골라 인벤토리에 챙겨서 한국으로 넘어왔다.

“휴, 여기로 넘어 왔으니 시간은 벌었는데, 인벤토리에 있는 물건들을 팔아서 뭘 구하는 게 좋을까?”
<산불감시원들이 사용하는 16L 정도의 물이 들어가는 등짐펌프와 분말소화기 그리고 불길을 잡을 인원들이 입을 방화복을 구매하는 것을 권합니다.>

이외에도 엘리스가 제안한 물건들을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대량구매를 통해 물건 단가를 낮춰서 임대한 공장의 창고로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구매한 물건들이 속속들이 공장의 창고로 배달되어 오기 시작했다.

“형, 그쪽에서 있다가 혹시라도 어렵겠다 싶으면 최대한 피해서 도망쳐 있다가 넘어와.”
계속 옮겨지는 물건을 인벤토리에 채워 넣는 모습을 본 동생이 걱정스러운 눈치로 말했다.
“지후야, 그렇게 위험한 상황은 오지 않을 거야. 세븐시티 주변에는 이미 방화선을 짜고 세븐시티를 기준점으로 해서 이어지는 성벽을 추가로 세우기로 했어.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 세븐시티는 안전하다는 거야.”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어올 수도 있잖아.”
“세븐시티의 각 도시들은 수원화성을 기반으로 해서 성곽을 쌓고 해자가 파져 있어. 심지어 도시 내에 여기저기엔 우물도 많아서 준비된 식량을 활용하면 고립된 상태로 10년도 넘게 버틸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말대로 진짜 위험하다 싶으면 이쪽으로 넘어올게.”

공장으로 찾아와 배송되는 물건들의 양을 보고 걱정하는 지후를 다독이고 인벤토리에서 꺼내놓은 각종 귀금속들을 인계했다.
“급하게 넘어 오느라 환금성이 높겠다 싶은 물건들 위주로만 챙겨왔거든? 이거 처분 좀 해줘. 덕분에 내 개인 잔고가 텅텅 비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해놨던 명품 브랜드 ‘드워브스’는 친구들의 합류 덕분에 Dwarves의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시계들과 보석들은 한국의 장인들을 모셔와 명품을 만드는 K-명품으로 소문이 났다. 이제는 외국에서도 셀럽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서 판매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 물건을 가져오는 족족 돈이 되고 있었다.

“저번에 가져온 것보다 품질 수준이 많이 오른  같은데?”
“이곳의 자료들을 가져다 줬더니 드워프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를 하더라. 이젠 파테크 필립스라든가 하는 세계 최고의 시계 브랜드에도 뒤지지 않는 물건들이 생산되기 시작하더라고.”
“이건 최상위 프리미엄 상품으로 해서 한정판으로 팔아야겠네.”
“그래, 부탁  하자. 내

친구들하고 잘 팔아 봐.”

[사용자 이정후]
차원이동능력 Lv9
-의사소통 능력 passive
-육체활성화 능력 passive
-인벤토리 능력 500톤
-학습효율 증가+100%
-75kg 미만의 생명체 1구운반 가능.
그동안 꾸준히 육체의 단련과 검술 훈련에 매진한 결과 익스퍼트 상급 직전에 다다르자 차원이동능력은 3레벨의 상승이 있었고 10레벨까지 1업만 둔 9레벨에 올라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인벤토리 능력은 500톤을 채우더니 더 이상 상승하지 않았다. 대신 생명체를 운반하는 능력이 증가했는데 아직 사람으로 시험은 못 해보고 있었다. 그러나 돼지라든가 소라든가 하는 동물들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고옮겨진 동물들도 건강하게 자라 후손을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동물을 옮길 때도 해프닝이 꽤나 있었는데 섣불리 내가 축산물을 더스트로 옮기려고 하자 엘리스가 제지를 해왔다.

<지구 내에서도 동물들을 국가별로 이동할 때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는데 하물며 외국도 아닌 곳으로 데려갈 시에는 전염병 문제가 발생하여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 세상도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하도 오랫동안 더스트 행성에 머물렀더니 이를 인지하지조차 못하고 있어 전염병에 대해 잠시 까먹었던 것이었다.
이 때문에 적절한 방법이 뭐가 없을지 강구해야 했는데 엘리스가 예전에 승인해둔 공금 사용 건이 기억나는지를 물어보면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톡톡히 도움이 되었다.

“어떻게 제약회사에 투자할 생각을 다 했지?”
<복제약만 생산하는 한국의 제약산업은 외국의 거대 제약기업들과 다르게 상대적으로 작아서 이전의 일시적인 주가 급락 때 쉽게 매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같은 경우도 그렇고 아직 더스트 행성의 사람들은 예방접종이 되지 않아 나중에  부분이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해서 이에 대해 필요한 약품들을 생산을 하도록 지시를 내려둔 상태였습니다.>
“고마워.”

난 이때 엘리스가 하는 말들 중에 담긴 제약회사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엘리스가 투자한 것은 엘리스의 것이니까 그저 돼지라든가 소들을 이계로 데려가 키울 수 있게 되었으니  되었다고만 생각했을 뿐.

“이거 등짐펌프라는 물건 설계도인데 여기에 물을 담아서 뿌릴 수가 있어. 엄청난 도움은 안되더라도 불씨 정도는 제거할  있을 거야. 강철도시에서 최대한 빨리 나무를 벨 수 있는 도끼랑 같이 추가적으로 생산하게 해.”

요크에게 설계도를 건네주고 빅터 교관에겐 와처에서 시나브로로 넘어온 직원들에게 입힐 수 있는 방화복들과 분말형 소화기를 보여줬다.
“흠, 이걸 입으면 불길에도 안전할  있습니까?”
“완벽히는 안 되고 어느 정도까지만 버틸 수 있는 물건이라 큰 화재에서 일시적으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장비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창고에 가져온 모든 물건을 옮겨 놓도록 할테니 방화선 앞에서 불길을 막을 때 사용할 수 있게 해주세요.”
“음, 이런 물건이 있으면 아무래도 불길 앞에서도 안전하긴 하겠군. 쌀이랑 목화 비축해놓은 것들은 입구도시 빅터로 옮겨놓고 있는 중이야.”
“다행이네요. 앞으로  불길이 얼마나 번져갈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힘을 합쳐 막아보도록 하죠.”


세븐시티의 힘만으로 대륙의 동쪽에 퍼져버린 불꽃을 모두 꺼트릴 수는 없었기에 제국의 귀족들을 대상으로 정보를 전달했지만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발생시켰다.
“어떻게 해서든 밀을 모아! 비싸게 팔아치울 수 있는 기회다!”
“뭣들 하고 있는 게야! 계약대로 밀을 팔기로 했다고? 위약금을 물고서라도 물건을 지켜라. 가지고만 있으면 돈이 된다. 두배고 세배고 오를 거야!”
“앞으로 대륙의 밀 값이 오른다. 채울  있는 창고는 어떻게든 돈을 빌려서라도 채워놔!”

귀족들의 탐욕이 또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 같은 행태는 위에서 아래로도 흘러 한푼이라도 재산을 가진 이들은 모두 식량 확보에 전투적으로 달려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밀가루, 포도주, 설탕, 소금. 닥치는 대로 먹는 모든 종류는 가리지 않고 귀족들과 상인들이 사들이고 있습니다.”
“이건 우리가 예상했던 그림이 아닌데...”
“귀족 놈들이나 상인들이 하는 짓이 그럼그렇지.”
“제국의 원로들은 어때요? 자칫하면 이대로 가다간 제국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말에 빅터 교관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원로들이 더 앞장서서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식량만 모아 파는 것으로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전쟁을  생각까지 하고 있는 미치광이들까지 나오는 판이라서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특히나 귀족파의 경우 노예해방전쟁 당시 차지했다 넘겨준 지역들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라면서 전쟁준비 파티를 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빅터의 말은 IMF 시절 부자들이 높아진 은행 금리에 환호하며 술을 마실 때 구호로 “지금 이대로!”를 외치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구호물자는 보내되 우리도 금속류의 상품이나 식량과 관련된 물자들의 외부 유출을 줄여야 할 것 같아.”
“우리도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정후야, 우리의 어깨에는 수십만의 세븐시티의 인구를 책임질 의무가 있어. 대륙인들을 위해 힘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식구들부터 먼저 챙기는 게 맞아. 대륙인에 대한 도의는 그 다음 일이지.”
평소 같았으면 정의를 외칠 것만 같았던 코엘 누나조차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세상을 바꿀 생각으로 시작한 세븐시티의 힘은 아직 많이 부족하군요.”
내가 그동안의 노력이 별 의미가 없는 것만 같아 허무함을 느끼자 버크 아저씨가  어깨를 꽉 잡으며 이야기를 해줬다.
“정후군, 지금 이렇게라도 대응할 수 있고 약 20만 정도의 세븐시티에 속한 인구들이 생명을 보전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 것은 정후 군 덕분에 시작된 거라네. 그렇게 자책할 일이 아니야. 오히려 자랑스러워해도 좋은 일인 것이지. 자네가 없었다면 일과 후에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 삶 따위 우리의 시민들은 즐길 수조차 없었어.”
“정후야, 널 너무 과대평가하는  아니야? 불과 몇 년 만에 이정도의 업적은 제국의 황제조차도 하지 못한 성과야. 일개 개인의 힘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꾼 사람은 제국 이전의 역사들을 포함해도 그렇게 많지 않아.”
“코엘 언니의 말이 맞아. 너무 자책하지마.”

크로니클의 단원들이 모두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응원의 말을 해주자 그동안 내가 한 고생이 확실히 헛수고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번 대화재를 막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뻔하지. 모든 것을 잃은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여기저기서 민란들이 일어날거야. 굶주린 자들이 가질 광기를 귀족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대화재라는 자연재해보다  무서운 것은 그 다음에 찾아올 여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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