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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화 〉71화-도망치는 곳에 천국은 없다(2) (71/239)



〈 71화 〉71화-도망치는 곳에 천국은 없다(2)

풀과 의형제들은 포시아라는 오트나 상단의 상인과 계약했던 장소로 찾아가 몇 번의 거래를 계속했다.
“지겹다. 지겨워. 굳이 약속장소를 매번 이렇게 먼 곳에 잡을 필요가 있나? 마을 가까운 곳으로 옮기면 편하잖아. 그럼 매번 왔다갔다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막내, 니 말이 맞긴 한데 말이야. 마누라랑 즐거운 시간 보내기도 부족한데 말이지.”
“형님은 좋겠수. 노총각 주제에 결혼도 하고.”
“그동안 밀린 행운이 이제야 밀려드는 거지. 니들도 나처럼 열심히 살면 다 이런 때가  거니까 열심히들 하라고!”

계속되는 거래로 마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은 풀은 그게 시작이 되어 촌장의 딸과 사귀게 되어 마침내 결혼까지 할  있었다. 다른 녀석들도 꽤나 힘 좀 쓰는 위치에 올라 풀의 패거리는 이젠 마을의 실력자로 급부상하여 전쟁터를 떠도는 도망 용병의 처지와는 이전과 달라졌다.
그렇게 교역을 책임지는 담당자가  폴은 제일 먼저 눈에 거슬리던 와이즈부터 교역 팀 밖으로 밀어냈다.
“진작부터 쳐냈어야 했는데 말이야.”
“어차피 교역을 오가는 도중엔 상단의 말단 직원의 의견 따위 중요하지도 않았어. 물건만 갖다주고 돈만 챙겨서 필요한 물건들만 구입해서 돌아오면 되는 일이 뭐가 그리 복잡하다고.”

마을에서 나오면 마치 귀족이 된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폴의 패거리에게 교역을 함께하는 마을 주민들은 불만이 있긴 했지만 무시못할 성과가 있었기에 이들이 거들먹거리는 걸 가지고 마을사람들에게 이야기해봐야 잘나가는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는 몹쓸 사람 취급이나 안 받으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더구나 교역이라는 이유로 마을 밖에 나와 콧바람이라도 쐬고 따로 챙겨온 물건을 몰래 팔아 추가 수입까지 얻을 수 있는 교역단에 참가하려는 이들이 넘치고 있었다.

“아니! 저저번부터 매번 이렇게 늦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포시아! 우리가 늦으려고 늦은 게 아니라 오는 길에 나무가 길을 막고 쓰러져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걸 치워야 해서 시간이 걸렸던 거라네. 어쩔 수 없는 건 이해해줘야지!”
“저번에도 저저번에도 매번 무슨 이유가 있어서 늦으셨잖습니까?”

교역의 책임자로서 마을의 장정들을 데리고 일을 하는 자신에게 사람들 앞에서 포시아가 너무 면박을 주는  같아 풀은 기분이 나빠졌다.
“전전의 경우에는 오다가 교역하는 인부들이 배탈이 나서 어쩔 수가 없었고, 저번의 경우도 급작스런 폭우로 인해서 길이 진창이 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었는가?”
사실은 미리 출발해서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술에 진탕 취해서 느리적거리는 바람에 여유시간을 모두 날려버리면서 도착시간이 늦어졌던 거였지만 풀은 지각하는 게 뭐가 대수인가 하면서 남자들끼리 거래를 하면서 그 정도는 이해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교역일엔 어떤 일이 있어도 늦지 말고 오셔야 한다고.”
“거참, 내가  번을 더 이야기해야 하나?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자네 너무 하는군. 짜증나게.”

목소리가 너무 커서였을까 오트나 상단의 짐마차에 물건을 옮기던 마을 주민들과 오트나 상단의 인부들의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게 느껴졌다.
풀은 용병대장들이나 기사들을 이끄는 영주들은 이럴 때 더욱 강하게 나가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내가 뭘 어떻게 해주면 되겠나! 그래, 자네 입으로 직접 이야기해보게! 우리 상단을 책임지는 교역의 책임자인 내가 어떻게 사과를 해주길 바라는지 자네 입으로 듣고 싶군.”

몸을 움츠리고 자신의 말에 겁을 먹은 것만 같던 포시아는 자신과 눈이 마주치더니 주변을 둘러봤다.
‘훗, 그럼 그렇지. 상인놈들따위 겁박으로 눌러놓으면 지들이 어쩔 거야?’

“하아, 그래도 한번은 더 참아줄까 했는데 말이야.”
항상 굽신거리던 포시아의 눈빛이 바뀌어 있었다. 아니 눈빛뿐만 아니라 그동안은  살펴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움츠리고 있던 자세도 확 펴져서 어느새 자신보다 덩치가 큰 것 같았다.
“야, 이 새끼랑 저번에 계약한 계약서 좀 가져와 봐.”
“자, 자네?”
“자네? 내가 니 부하야? 지랄하네.”

포시아의 차갑고도 소름 돋는 목소리에 인부들을 관리하던 관리자가 다가와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 포시아에게 공손하게 바쳤다.
“여기, 뭐라고 써있는지 보이나?”
“아니, 자네 왜 이러는가?”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하고 싶은 거야? 또 자네라고?”

처음에 만나 자신에게 살갑게 비위를 맞춰주던 남자는 어디로 가고 포시아를 닮은 누군가가 껍데기만 뒤집어 쓰고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잘 들어. 저번에 우리가 갱신한 계약서를 보면 말이야. 계약을 1회 어길 때마다 너희들은 우리에게 4배  많은 곡식을 가져와야 해. 그런데 지금 3번째 어긴거지? 그럼 너희들이 우리에게 빚진 건 얼마치일까? 어지간하면 봐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우리 상단주께서도 뭐라고 하는 걸 내가 막아줬는데 굳이 막아줄 필요가 있나 싶어지는걸?”
‘X됐다.’
“잘못했네. 한번만 한번만 봐주게.”
“집어쳐. 한, 두 번이면 모를까 매번 이러는 새끼를 내가 뭘 믿고 거래를 하나? 거래는 신용이 전부야! 계약서대로 해주지. 보라고!”

포시아가 내민 계약서에는 작은 글씨로 분명 운송기한을 지키지 못하거나 다음 거래를 위한 대금을 준비하지 못할시 계약을 위반한 쪽은 위약금으로 4배를 지불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위약금은 계약불이행시마다 4배로 누적되는데 한번 어기면 4배 2번 어기면 4배의 4배인 16배 이런 식으로 증가하는 식이었다.
“이건 무효야! 무효라고! 이런 계약서는 인정할 수 없어. 난 이런 계약서따위 본 적 없다고!”
“여기 밑에 뭐라고 써 있지?”

포시아라는 남자가 보여주는 종이 하단에는 노자마 마을 대표로 자신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고 자신의 지장이 찍혀 있었다.
“봤지? 계약 불이행이 3번이니까, 몇배야 젠장.”
“4배의 4배의 4배니까 64배입니다. 대장님.”
“그렇다는군. 그래, 어떻게 갚을텐가?”

풀의 머릿속으로 와이즈가 신규계약과 계약갱신은 몇 번을 검토하면서 신중하게 해야 한다며 계약서를  보여달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런 계약서는 사기다. 얘들아!”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의동생들과 마을의 주민들은 일제히 챙기고 다니던 무기들이나 쇠꼬챙이같은 것들을 꺼내서 들었다.
“내가 기대한 대답은 그게 아니야. 그리고 말이지. 우리쪽의 인원이  많은 것 같은데 아닌가?”
“맞습니다. 형님.”

포시아에게 계약서를 가져다  남자가 옆에서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얘들아, 우리도 준비하자.”
짐마차 여기저기에서 무기를 꺼내는 오트나 상단의 인부들의 무기는 마을 주민들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관리되어 있었다.
“피를 보는 것도 너희들의 선택이고, 피를 보지 않는 것도 너희들의 선택이다. 우리 주인님은 정당한 거래를 좋아하시지. 나도 그렇고.”

매번 교역때마다 접대를 받느라 술에 취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인부들이라고 온 남자들에게선 전쟁터를 경험하거나 피를 본 자들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살기 어린 눈빛이 느껴졌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동생들과 눈빛을 교환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수가 없기는 의동생들도 마찬가지인  같았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어.’
“나...나눠서 주겠다. 우리들에겐 한번에 그걸  줄 방법같은 건 없으니까.”
“내가 너희들의  믿고 너희들과 몇 번이나  거래를 해줘야 하지? 거래 기한을 못 맞춘 대가만 거래액의 64배고 그동안 그걸 유예해준 대가로 이자가  붙었는데 말이야. 이 금액을 나눠서 갚겠다고?”

풀은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외쳤다.
“처음부터 우리들을 속인건가?”
“우리는 하나도 속이지 않았어. 줘야할 돈은 전부 지불했고. 주의사항도 기일을  지켜야 한다고 내가 계약할 때 옆에서 신신당부하면서 부탁을 했는데 잊었나보군.”
‘배탈이 나거나 나무가 쓰러진 거나 너희들이 술에 취했던 것은 우리들이 손을 쓰긴 했지만 말이야.’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지?”
“그건 옳은 질문이 아니야. (도망병 풀과 그 잔당들 나으리)”

포시아는 뒷말을 자신의 귀에 속삭이듯 건넸다.
“그걸 어떻게?”
“세상엔 돈이면 어떤 것도 가능하다는 걸 말해주고 싶군. 마을 사람들도 너희들이 정체가 뭔지 아는 건가 궁금해.”
“그것만은 말하지 말아주시오.”
“주시오?”
“말해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맨 앞에서 대응을 하던 풀이 무기를 집어넣고 포시아의 앞에 무릎을 꿇자 마을 사람들과 의형제들은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따라 무릎을 꿇었다.
“자, 우리 상단의 토지 전문가가 방문해서 너희들의 마을과 마을이 가진 토지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고 마을의 땅으로 받지 못한 금액을 처분하도록 하겠다.”
“말도 안돼!”
“이 사기꾼!”
“우리가 어떻게 가꿔온 땅인데!”
“오늘 가져온 것들은 즉석에서 처리하고 모자란 금액은 너희들의 땅으로 간 뒤에 계산하도록 하지.”
“이럴 순 없어!”
“계약을 어긴 것은 너희들이야. 우리가 아니고. 누가 계약을 어기라고 했어, 뭐해? 물건도 옮기고 저녀석들 묶어서 돌아가려면 시간이 없다.”

포시아가 손짓을 하자 부하들이 익숙한 듯 각자 임무에 맞게 움직였다. 마을 사람들 일부가 뒤늦게 반항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을 죽여 본 경험이 있는 이들에겐 그렇게 의외의 반격도 아니었는지 구타만 당하고 쉽게 제압당했다.
“내....내 탓인가?”
“아니, 모두의 탓이지. 한명이라도 이 계약서를 제대로 읽고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제대로 계약만 이행했다면 크게 문제는 없었을 거야. 오히려 너희들만 이득을 보고 우리는 손해만 보고 끝이 날 수도 있었겠지.”
‘세상이 그렇게 쉽게만 돌아간다면 말이지.’

풀은 상인출신이라 그런지 쓸데없이 욕심만 많은 놈이라고 사람들 앞에서 낙인을 찍고 마을 사람들과 욕을 하며 마을 사람들의 똥을 치우는 업무를 맡게 된 와이즈의 뒷모습이 떠올랐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지금 데려가는 마을 주민들은 담보다. 토지 전문가와 함께 가서 토지에 대한 평가를 모두 마치고 대가를 지불하면 되돌려 줄거야.”
“정말이냐?”
“물론!우리는  많이 가는 사람 장사같은 건 안 해. 뒤처리도 번거롭고 와처 몰래 팔아 치우려면 여기저기에 기름칠해야 하고 들어가는 수고에 비해 수익이 적다고, 우리 주인님은 그런 걸 싫어하시니까.”
“너 혼자 먼저 돌아가. 마을 사람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알릴 사람은 있어야겠지? 그래도 교역의 책임자님이신데  정도 아량은 들어주도록 하지. 뭐, 재주껏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쳐 보든가.”
“우리가 있는 곳을 알고 있는 거였나?”
“돈을 주고 물건 받을 곳을 확인하는 건 상인으로서 기본이야. 몰랐나?”
포시아는 말을 마치고 차갑게웃었다.

포시아가 사람들과  물건들 모두와 짐말까지 데려간 뒤 풀은 쉬지도 않고 정신없이 계속 뛰어서 해가 질 무렵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기, 교역책임자님 아니야?”
“누구? 풀 대장?”

마을의 경비를 서고 있던 마을 주민들이 풀을 알아보고 안쪽으로 신호했다.
“왜 혼자시지? 무슨 일을 당한 건가?”

어두워진 마을 입구에 불이 켜지고 촌장이 풀의 앞으로 다가왔다.
“풀, 왜 혼자 돌아온 건가? 다른 사람들은 어디로 가고? 도대체 그 꼴은 뭔가?”
쉬지도 않고 뛰어온 풀은 마을을 떠나갈 때의 깨끗한 옷과 잘 관리된 스타일은 어디로 사라지고 도시의 빈민처럼 옷은 찢어지고 발은 맨발에, 땀이 잔뜩 났는지 하얀 소금기가 옷에 맺혀 있었다.
“그...그게.”

헐떡거리고 지쳐보이는 풀의 모습을 본 촌장의 딸 비셔스는 사람을 시켜 물을 떠오게 한 뒤 지저분한 풀의 행색이 싫었는지 직접하진 않고 촌장네 집에서 일을 해주는 인부를 통해 물을 주도록 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빨리 이야기해주게.”
촌장은 직감적으로 심각한 일이 발생했음을 깨달았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마을에 빨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이 탈영하던 그 때처럼 뛰어온 풀은 어떻게 설명을 하면 좋을지 막막해졌다.

"그게..."
풀이 머뭇거리는 것이 답답했는지 아내 비셔스가 팔짱을 끼며 소리를 질렀다.
“빨리 말해봐요!”

아내의 윽박에 자기도 모르게 이야기를 꾸밀 여유도 없이 모든  털어놔 버렸다. 자신들이 탈영병 출신이라는 것만 빼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잡혀가고 마을에 소식을 전할 대표로 자네만 풀려왔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풀과 함께 들어온 마을의 경계 업무를 서는 이들 일부가 이야기를 듣다가 빠져나가 이미 마을 주민들에게 이야기를 해버렸는지 풀과 함께 나간 마을 주민들의 가족들이 촌장의 집 앞으로 찾아 왔다.
“나도 이걸 숨겨줄 수는 없어. 너의 잘못을 덮어 주려다간 나와 내 딸의 목숨까지도 위험할 수 있어.”
공대를 해주던 촌장의 말투는 살짝 바뀌어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와이즈와 같은 꼴 아니 더 심한 꼴을 당할 것 같아 두려워졌다.
“장...장인어른!”
“장인이라니! 장인이라니! 당신은 공적인 업무를 맡고서 마을 밖으로 나갔던 거야. 왜 사적인 친분을 강조하는 건가! 촌장으로서 난 분명히 말하겠네. 이번 일에 대해선 공정하게 마을 사람들과 협의 후에 결정하는 걸로.”

마을 사람들이 촌장의 집을 열고 들이닥치는 걸 풀이 보지 못하고 촌장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부탁을 하려고 하자 촌장이 먼저 선수를 쳤다.

“마을 사람들을 모아주게. 긴급회의를 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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