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70화-도망치는 곳에 천국은 없다(1)
제국의 귀족들이 시나브로의 신문물에 취해 흥청망청 돈을 쓰고 있는 동안 제국의 국민들은 병들어 갔다. 많은 소작농들이 영주의 사치를 위해 끊임없이 부역에 끌려가야 했고 힘겹게 벌어들인 소출의 70%를 여러 가지 종류의 세금을 강요당해야 했다.
이들은 일부는 엘프들이 사는 숲인 서남쪽으로 일부는 동남쪽에 위치한 제국과 연합국 그리고 각종 소국들이 아직 손대지 않은 열대우림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서남쪽으로 온 이들은 산적생활을 하다 우리들과 만나 시나브로의 협력 직원이 되었다.
물자를 수송하거나 중간 기착지에 마을을 건설하고 외부로부터 오는 이들을 대상으로 숙박업을 함으로써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한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윤택한 삶을 살게 되었을뿐 아니라 미래를 꿈꾸면서 누군가는 세븐시티에 자리를 잡고 사는 희망을 누군가는 돈을 많이 모아 은퇴하고 해변의 도시 버크에 별장을 짓고 살고 싶어 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모두가 이 같은 행운을 붙잡은 것은 아니었다.
동남쪽의 열대우림으로 도망친 이들은 산적이 되어 누군가를 해치고 빼앗을 생각들이 없는 사람들이었고 가진 게 별로 없이 아무런 기반이 없는 상태로 숲으로 들어가 먹고 살아야 했기에 가장 간단한 방법인 화전(火田)으로 먹고 사는 법 이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유기물이 많이 쌓여 있던 열대우림의 숲은 불을 질러 밭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많은 수확량을 거둘 수 있었다.
여기서 나온 소출로 먹고 사는 것은 크게 문제없었던 이들은 농사를 짓고 수확을 하기 전까진 굶주림에 힘들어하긴 했으나 이내 수확을 하고 난 뒤로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포만감에 행복해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자 열대우림의 숲에는 거대한 마을이 형성되었고 사람들은 먹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기에 옷감을 구하고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가축들을 구하거나 다른 필요물자들을 구하기 위해 마을의 인원들 중 대표를 뽑아 일부러 숲에서 멀리 있는 성으로 가서 수확물을 판매하고자 했다.
하지만 상인들의 시선에 이들은 매우 이상해 보였다. 그렇게 많은 밀을 판매하기에는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너무 후줄근해 보였기에.
그리고 그 상인들 중에서도 농민들을 대상으로 봄에 곡식을 대출해주고 거기에 이자를 50% 얹어 가을에 반드시 어떻게든 돌려받는 업자로 유명한 크카이 로쉬ckylosh 에게는 그들에게서 돈 냄새가 솔솔 나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 좀 붙여서 저 거지같은 녀석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 봐. 돈 냄새가 난다. 아주 지독한 돈 냄새가.”
“알겠습니다. 주인님.”
크카이 로쉬의 예견대로 이들의 뒤에는 어떤 영주도 상단도 없었다.
“노자마nozama 열대우림으로 사람들이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이상하다 싶어 이들을 몰래 따라 가봤더니 거대한 마을이 있더군요. 넓은 숲과 함께.”
“우리 말고 냄새 맡은 다른 놈들은 없었나?”
“다 해치워 버렸습니다.”
“좋아 좋아! 내가 이래서 자네를 가장 좋아하는 거야. 굳이 내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딱딱 내 입안의 혀처럼 구니까. 그래, 이제 그놈들의 위치와 그놈들의 뒤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아는 것은 우리뿐이다 이거지?”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몇 번 더 찾아와야 판매가 가능할 정도로 넓은 농지였습니다.”
“또 올 거란 말인가? 그렇다면...우리가 먹어치우도록 하지.”
사치에 눈이 멀기 시작한 영주들로부터 소출을 뜯기는 소작농들을 상대로 하는 크카이 로쉬의 대출업은 찾아오는 고객들의 숫자는 점차 증가하고 있었으나 불량고객들이 늘어나면서 수익을 회수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소작농들의 가족들을 빌려간 곡식들 대신 받아 몰래 팔아 치우는 것은 이득을 창출하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렸고 노예라면 눈을 켜고 달려드는 와처와 검은 올빼미들을 피해 움직여야 했기에 들어가는 부수적인 비용도 커 기대했던 것보다 수익이 적어 인신매매업 자체를 크카이 로쉬는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
“진행시킵니까?”
“진행시켜.”
굶은 사자의 앞에 허약해빠진 먹잇감이 알아서 굴러 들어왔는데 가만히 있는 것은 로쉬 집안의 남자에겐 수치였다.
“먹어 치워야지.”
오인 오트나oin otna의 일당이 정당한 계약을 깨고 수작을 부려 자신을 이곳을 도망치게 만들면서 생긴 오른쪽 눈의 상처가 따끔거렸다.
언제까지 이런 푼돈만 벌어 가지곤 수상 도시 아이제네브Aizenev로 돌아가그들에게 복수할 날은 요원하기만 했다.
습관처럼 검은 안대를 살짝 쓰다듬던 크카이 로쉬는 아직 닭고기가 조금 남아 있는 상태의 먹던 닭뼈를 집어 자신의 옆의 가만히 앉아 있던 애완견 룩에게 던져주고 명령을 기다리며 대기 중인 충직한 부하 필에게 명령을 내렸다.
“로쉬 가문의 후계자로서 억지로 일을 진행시킬 수는 없는 법이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던져 주고 계약을 하는 걸로 하자고. 정당하게.”
“평소처럼 ‘정당하게’ 말입니까?”
“그래, 평소처럼.”
필은 크카이의 명을 받고 또 다시 열대우림의 주민들이 찾아올 때를 기다렸다가 성으로 들어오기 하루 전의 위치에서 부하들과 상인으로 위장해 접근하였다.
“이렇게 많은 양을 파시는 겁니까? 정말 부럽습니다.”
“하하,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번의 거래로 어느 정도 풍족해지긴 했지만 노자마 마을의 대표는 당시 거래를 할 때 후줄근한 옷 때문에 처음에 상인들로부터 무시당했던 기억에 이번엔 좋은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고 부자 상단처럼 위장한 상태였다.
“이렇게 많은 밀을 구매할 수 있는 상단은 운이 정말 좋은 것이겠군요. 저희 상단도 마침 안 그래도 밀을 구매하고 싶던 차였는데.”
“그렇습니까? 좋은 값에 판매할 수만 있다면 저희 입장에서 무슨 상단인들 가리겠습니까?”
웃는 모습이 시원해보이는 인상의 남자는 자신들의 곡식을 구매하고 싶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더구나 이전처럼 자신들을 무시하던 상인들과 다르게 매우 친절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럼 굳이 성 안으로 들어가서 영주에게 세금을 바칠 필요 없이 저희들끼리 직접 거래를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너무...갑작스러운 제안이라.”
“저희 오트나 상단은 공정한 거래로 이 근방에서 유명한데 혹시 못 들어보셨습니까? 절대 손해 보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한번 믿어 보시죠.”
노자마 마을의 대표도 오트나 상단의 공정한 거래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포시아라는 남자는 계속 자기 상단의 장점과 거래를 하게 될 시 노자마 마을이 얼마나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야영지에서 술과 진귀한 음식들을 제공하면서 설득했다.
“하하, 이거 역시 오트나 상단은 정말 다르군요. 왜 유명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나 열정적인 상단원들이 있다면 안될 수가 없겠죠.”
“아닙니다. 그럼 저희 오트나 상단과 독점거래 계약을 허락해주시는 겁니까?”
“예, 저희 노자마 생산품의 판매대금만 확실하게 주신다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먼저 대가를 지불하고 다음에 물건만 가져다주면 된다니 이런 거래는 안하는 게 바보겠지요.”
노자마 마을의 풀은 옆에서 잠깐만 따로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 같은 마을 와이즈의 말을 무시하고 오트나 상단의 임원이라고 이야기하는 포시아가 보여준 상단의 표식과 말을 믿고 포시아가 품에서 꺼낸 표준계약서를 대충 읽어보곤 서명을 했다.
“여기 이번 거래 대금과 다음에 가져올 물건에 대한 대금을 미리 드리겠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이번 거래에 다들 만족할 겁니다.”
“아무렴요. 대신 기한 내에 꼭 여기로 물건을 가져다 주시기 바랍니다. 기한이 지날수록 이자로 그 다음에 가져다 주셔야 하는 곡식의 양도 증가하게 되니까요.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필은 크카이가 설계해준 방법에 따라 성공적으로 계약을 마쳤다. 다음날 아침 노자마 마을 사람들은 오트나 상단의 사람들이라는 이들의 짐마차에 자기들이 실어온 물건들을 모두 넘겨주고 성으로 들어가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러 떠났다.
“주인님, 여기 계약서입니다.”
“돈을 받아갔으면 제때에 물건을 가져와야하는 법이지. 불이 나든 오다가 기한을 놓치든 말이야. 기한의 중요성에 대해선 이야기했겠지?”
“예, 분명히 고지했습니다.”
2번의 거래 대금을 미리 받아온 풀은 마을에서 영웅대접을 받았다.
“아니, 어떻게 미리 돈을 받을 수 있었던 건가? 어지간해선 줘야될 돈도 어떻게든 깎아서 주는 것이 상인들인데.”
“제가 떠나기 전에분명 저만 믿어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연히 길에서 만난 오트나 상단의 포시아와의 거래는 너무 성공적이었고 앞으로 꾸준히 물건을 가져다주기만 해도 대금을 받을 수 있으니 마을 사람들의 걱정도 크게 덜 수 있는 일이었기에 풀의 수완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크게 인정받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와이즈가 옆에서 너무 불안한 거래였다며 초를 치는 발언을 하긴 했지만 성 안에 들어가 거래에 대한 세금을 추가로 납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 거래는 남는 장사였다.
“와이즈 자식, 한참이나 나중에 왔어도 마을에 받아준 걸로 감사할 것이지. 꼴에 상단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고 잘난 척은.
“풀 형님, 겨우 말단 직원이었다가 그나마도 상단에서 일하면서 가족들의 양식을 살 돈도 못 받아서 고리대를 쓴 대가로 도망쳐 온 주제에 말만 많은 놈입니다. 무시해버리시죠. 이게 다 형님의 공입니다.”
노예 해방전쟁에 징집되었다가 화살받이로 죽을 뻔하고 몰래 밤에 도망친 탈영병들이었던 자신들은 하류 용병이 되어 귀족들 간의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살아남을 수 있을 쪽으로 변장하여 살아남아 떠도는 것이 전부였다.
“이번엔 자리를 잡아야 해. 언제까지 떠돌면서 살 수 없다.”
“맞습니다.”
“술이 달군. 얘들아. 실컷 마시자. 이제 우리 인생엔 꽃길만 펼쳐지려는 징조인 것 같다.”
풀을 따라 다니는 3명의 놈들도 점차 먹는 나이와 겉보기에만 닳고 닳은 용병으로 보이는 폼세 덕분에 어딜 가든 그럴 듯해 보이긴 했지만 자신들은 딱히 대단한 실력도 없었고 항상 도망치는 것 이외에는 전쟁터를 떠돌며 주워들은 이야기 몇 개 정도나 알 뿐 딱히 세상에 대한 경험도 없었다. 그러나 고리대를 못 버티고 도망친 소작농이나 자작농들이 섞인 화전민들에 불과한 노자마 마을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모습이 산전수전 다 겪은 것처럼 보였는지 꽤나 그럴듯해 보였던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산물을 어떻게 하면 좋은 대가를 받고 팔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가 마을의 외부와의 교역을 자신과 동생들에게 부탁을 했으니까.
“첫 거래는 생각보다크게 수익을 내지 못해서. 기껏 우리들에게 들어온 행운이 날아가는 줄 알고 걱정했는데 말입니다.”
“그땐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내쫓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었는데 말이야. 인생은 정말 알 수가 없어.”
“와이즈 놈이 거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며 이번에 따라오게 될 때만 해도 걱정이 많았지. 결국 인생은 한방인데.”
“그 놈도 결국 우리랑 다를 바 없는 하류인생인거야. 알면 뭘 얼마나 알겠어? 하지만 우리에겐 드디어 인생을 살면 몇 번은 찾아온다는 그 때가 처음으로 찾아온 거 아니겠어?”
“결국 이렇게 해내지 않았느냐 이 말이야!”
“맞아 맞아! 하하하.”
한껏 술에 취한 풀의 의형제들은 살면서 처음으로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인정의 발언을 들은 것에 크게 들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