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8화 〉68화-언브레이커블 (68/239)



〈 68화 〉68화-언브레이커블

아직 정체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은 시나브로를 대신하여 크로니클의 이름으로 풀려난 많은 상품들은 제국을 현혹시켰다.
이제 수도의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크로니클의 커피와 빵으로 아침식사를 했고 크로니클의 휴대용 턴테이블을 작동시켜 음악을 들으며 업무를 하고 하루의 일과를 마치는 저녁시간이 되면 크로니클의 햄버거나 치킨 혹은 스테이크와 같은 세븐시티의 도시민들이 즐기는 음식들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크로니클의 문화와 음식이 제국의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어두운 제국의 수도의 저녁과 다르게 시나브로의 건물들이 있는 장소는 찬란하게 빛이 나서 마치 불빛으로 불나방들을 이끌 듯 젊은 귀족들을 유혹했고 젊은 귀족들이 몰리자 그 주변엔 시나브로의 상점들을 찾아오는 고객들 중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손님들을 자신들의 가게로 이끄는 이들이 나타나면서 상가지구가 성장했다.

제국의 귀족들이 수도에서 시나브로가 만든 상품들을 즐기는 동안 많은 돈들이 빨려 들어왔고 이는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추가동력을 제공했다.

“이 정도 자금이면 세븐시티를  더 확장해도 될 것 같죠?”
“사장님, 도시민들을 더 늘릴 생각입니까?”
“감당할  있는 수준에서 인구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도시들의 경제력도 강해질뿐만 아니라 도시들의 힘이 증가하게 됩니다. 그건 다시 말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지금 즐기는 삶의 방식을 전파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수도로 상점을  때부터 세븐시티 내에 지어진 학교나 연구기관을 좀 더 성장시켜 대학급 이상의 학문 수양기관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고 완공이 머지않은 상태였다.

“한번 이벤트를 해볼까요?”

이제는 시나브로의 외부정보팀으로 바뀐 와처에게 한가지 소문을 퍼트리도록 했다.

“소식 들었어?”
“아,  빅터라는 도시 한 가운데 있다는 거대한 검은 쇳덩이 이야기하는 거지?”
“맞아, 그걸 열수 있는 자가 있으면  안에 있는 금화와 보물들을 누가 가져가든 상관없다고 하던데?”
“이미 많은 용병들과 모험가들이 그곳을 찾아 떠나기 시작한 것 같더라고.”
“나도 애들만 없었으면 한번 가볼텐데 말야.”
“늦었어. 그거 해보겠다고 달려든 사람들이 몇인데? 우리가 도착할 때쯤이면 진작 열렸겠지.”
“그렇지?”

이런 대화는 제국의 곳곳에서 있었고 한탕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이 있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승부욕을 일으켰다.

“자자, 줄 서세요.”

엑스칼리버와 아서왕의 이야기를 떠올려서 만든 이번 이벤트는 엑스칼리버라는 검 대신에 엑스칼리버라고 이름붙인 대형 금고로 대체했다.
“시나브로 사社에서 만든 이번 대형 금고 안에는 최소 200플래티넘(=한화 200억원) 정도의 가치의 보물들이 있다고 하더군.”
“아직까지 저 문을 딴 사람이 없다지?”
“저 문을 따면 200플래티넘의 가치를 가진 사람이 되는 거라고!”

광장 한 가운데 길게 늘어선 양쪽의 사람들 옆에는 노천 커피숍이나 노천 맥주가게에 앉은 모험가들이 도전자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번 시도할  1팀당 1실버의 참가비를 받고 있는데 1실버로 200플래티넘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벌써 여기에 쓴 돈이 20실버인가?”
“그것만 계산하면 안 돼. 우리가 여기서 먹고 마시고 자면서 쓰는 돈도 생각해보라고.”

베가스를 모방하여 건설한 도시 빅터는 한번 들어온 사람들이라면 쾌적하고 안락하고 즐거운 도시인지라 돈만 있다면 영원히 지내고 싶은 도시이기도 했다.
“난 그만 포기할래. 될 것 같지가 않군. 저것보단 이 도시 자체가 더 매력적인 것 같아.”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나?

제국의 수도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는 도시 빅터의 풍광에 빠진 이들은 새롭게 지어진 주거지구에 자리를 잡는 이들이 많았다. 걔 중엔 제국의 학자들도 있었고, 그들을 따라  하인들도 있었다.
“이곳의 문물들은 너무나 신기하군. 한번도 이 세상에서 본 적이 없는 물건들인데도 학문적 깊이가 느껴져.”
“시계라는 물건을 설계한 것이 시나브로의 제이 사장이라고 하더군.”
“시계뿐인가? 지금 우리가 켜고 있는 환한 저 라이트라는 물건도 그 사람의  아래에서 탄생한 물건이라던데.”
“그것보단 난 화장지와 비누,치약,칫솔 그리고 부드러운 타월이 있는 화장실이 너무 마음에 들어. 마음 같아선 나오고 싶지 않을 정도야!”
“하루를 마치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몰랐지.”
“제국의 수도에서 일부 귀족들의 집에는 이런 시설들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때는 그저 돈 많은 것들의 헛짓인줄 알았어.”
“존, 네이선, 데이비드. 가장 중요한 발명품에 대해선 왜 이야기하지 않는 건가?
“그건 너무 당연하잖아.”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손마다 만년필과 편하게 쓸 수 있는 노트 그리고 그 앞의 테이블엔 커피와 함께 책들이 쌓여 있었다.
“이 책들이 단돈 2실버라는 게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군.”
“사람이 썼다고 보기엔 책마다 다 똑같은 필체로 되어 있고 똑같은 그림들이 들어 있어.”
“그것뿐인가? 도서관이라는 곳은 도시를 방문한 이들 모두에게 열려 있어서 방문자로 오면서 등록한 카드라는 물건만 들고 오면 5권까지 1주일을 빌려준다고 했을  난 이곳이 고대에나 존재했다는 꿈의 도시인줄 알았어.”
“멍청한 모험가들이나 용병들은  거무튀튀한 쇳덩이를 열어보겠다고 난리지만 진짜 보물들은 도처에 널려 있어.”
“이미 난 내가 아는 상단주에게 이곳의 상황을 담아 편지라는 것을 써서 부쳤네.”

제국의 수도를 오가는 트리니티로 위장된 시나브로의 상단은 매일 정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기에 편지라거나 소포들을 부치기에 좋은 망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곳의 물건들을 구해다 제국에 가져다 팔기만 해도 부자가 될 거야.”

시나브로의 상단이 용병으로 위장한 도시 방어군과 매일 수도를 오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제국의 전역으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라 제국의 지방까지 수도처럼 물건들이 풀린 상황은 아니었다.

“상단 등록이라는 것만 하고 통행세만 내면 얼마든지 와서 물건을 사가도 따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니 이곳의 영주는 미친 게 아닐까?”
“들어보니 이곳의 주민들은 물건을 소비할 때 30%만 세금으로 내면 기타 추가적으로 내야하는 세금이 없다더군.”
“아무래도 가족들을 이곳에 불러 들여야겠어.”
“조금만 그 시간을 늦추게.”
“왜?”
“도서관의 사서로부터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조만간 제이라는 도시에 아카데미라는 것이 설립된다고 하더군. 펑펑 돈을 쓰면서 살기에 이곳이 정말 좋은 도시이긴 하지만 듣자하니 제이라는 도시는 여기보다  사람들이 살기에 좋은 도시라고 하더라고. 가려면 그쪽으로 가서 자리 잡는 건 어떨까 싶네.”
“내일 도서관 사서에게 가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군.”


단테는 주인님 가족을 따라 도시 빅터에 들어올 때 만든 방문자 카드라는 걸 가지게 되었을 때를 떠올리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20대를 앞두고 그동안 이 세상에 자기가 살아왔다는 어떤 증거도 남길  없는 두려움에 잠 못 드는 날들이 늘어났다.
자신의 자식도 자신의 부모님들과 자신 그리고 형제들처럼 하인으로서의 소양을 교육받고 주인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말로는 설명할  없으나 심장을 쿡 찍어 누르는 것만 같아 답답했지만 가족들 누구도 이런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자신을 나무랐다.

“단테! 또 잡생각이냐? 주인님께서 호텔 앞 커피와 케이크가 드시고 싶다고 하신다. 가서 사와.”
“알았어요, 아버지.”
“쯧쯧, 저 놈 하나만 유일하게 속을 썩이는군. 다른 녀석들은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알아서 열심히 일하는데 말야.”

자신을 타박하는 아버지의 말을 뒤로 하고 아버지로부터 받은 돈을 챙겨서 호텔 밖으로 나왔다. 호텔 앞 상가들 중 주인님이 유독 좋아하셨던 커피숍을 찾아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소녀가 노천 테이블에 앉아 음료를 시키고 뭔가를 보고 있었다.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감히 물어볼 생각도 못 했을텐데 이 도시의 분위기에 취해버렸던 것인지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가 질문을 했다.

“그게 뭐죠?”
“아, 이번에 처음 이곳에 오신 관광객들 중 한분이신가 봐요.”
“예, 뭐...”

귀족으로서 외부에 보여지는 그림은 너무 중요해서 형제들 중 가장 외모가 말끔한 자신은 이곳으로  때 주인님으로부터 멋드러진 하인복을 새로 받았기에 꽤나 깔끔한 상태라 관광객으로 보인 것 같았지만 굳이 소녀의 말을 정정하며 자신이 하인임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저기 도서관 보이시죠? 저기에 가서 방문자 카드를 보여주고 이런 책들을 5권까지 1주일간 빌릴  있어요. 대신 저녁 8시 전까지는 가셔야 돼요. 너무 늦으면 사서들도 퇴근하거든요.”
“그래요?”

하인으로서 필요해서 받았던 기본 교육 중 글자를 읽는 법을 배운 기본교육이 하인 생활 이외에 이렇게 쓸모가 있는 순간이 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언제나 품고 다니는 자신만의 물건인 방문자 카드가 있는 가슴 쪽을 쓰다듬었다.
“방문자 카드, 5권, 1주일. 저녁 8시.”
“따로 돈 안 받으니까 원하면 얼마든지 빌려서 볼 수 있어요. 재밌는 책들도 많거든요.”
“무료...인가요?

원하는 정보를 어느 정도 듣게 되었을 때 카페 안쪽에서 주문한 커피와 케이크가 나왔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인 걸요. 별로 대단한 정보도 아니에요.”
“그렇습니까?”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마치곤 다시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주인님의 저택에선 감히 책이 있는 방에는 하인들은 허락 없이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었는데 이곳에선 누구나 5권을 자유롭게 1주일간 빌릴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무료란다.

주인님께 커피와 케이크를 갖다 드린 단테는 자꾸만 머릿속에서 소녀의 말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도서관...이라는 곳에 한번 가볼까?”

오늘은 주인님 가족 모두 나가는 저녁약속이 있다는 주인님의 말에 따로 저녁을 준비할 필요가 없어 간단하게 저녁을 빵과 우유라는 걸 먹고 나자 마침 시간이 남았다.
“아버지,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뭐? 뭐하려고? 너도 저 쇳덩어리 열어 볼 생각이냐?”
“아니요, 그건 아닌데...”
“쓸데없는 생각할 시간 있으면 차라리 잠이나 자라. 맨날 낮에 멍하니 있지 말고.”
“에이, 당신두 너무 단테한테 뭐라고 하지 말아요. 갖다 와. 단테야.”
“당신은 단테한테 너무 물러.”

아버지를 감싸 안고 뒤로는 손짓을 하는 어머니의 덕분에 밖으로 나온 단테는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단테는 7시 종을 치는 시계종 소리를 듣고는 서둘러 도서관으로 뛰어갔다.

적당히 밝은 빛이 자신을 감싸주는 것만 같아서 단테는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곳이 빅터 도서관?”
“저희 빅터 도서관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하시는 도서는 어느 곳에서나준비되어 있는 테이블에 앉아 편하게 읽으셔도 좋으니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다만 폐관 시간까지 약 50분 정도 남아 있으니 이 점 유념해 주세요.”

사서의 안내를 받은 뒤 책들이 잔뜩 있는 도서관에 있으니 자신도 귀족이 된 것만 같았다.
“뭘 읽어야 하지?”

어리벙벙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아까 커피숍에서 만났던 소녀가 나타났다.
“우리 두 번째 보네요? 우리 아까 통성명도 안 했더라구요. 제 이름은 베아트리체에요.”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단테입니다. 이렇게 또 만나뵙게 될 줄이야.”
“단테 씨도 책 빌리러 오셨나요?”

소녀가 내미는 손을 잡고 악수를 하고선 부드러운 손의 촉감 때문에 멍해져 있는데 베아트리체가 말을 걸어왔다.
“단테 씨?”
“아, 네. 저기 그러니까...뭐부터 빌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럼 제가 추천해 드려도 될까요?”
“부탁드릴게요.”

베아트리체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이 있는 코너로 자신을 데려가며 자신의 부모님이 이곳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아, 그래서 아까.”
“엄마 따라서 도서관을 오가면서 글을 배우고 나니까 재밌는 책들이 많더라구요.”
“책이 재밌어요?”
“한번 보세요. 보시면 알아요. 여기 있다. 웃차, 우선은 오늘  책만 빌려 가보세요. 괜히 5권씩 잔뜩 빌려 가봐야 일주일동안 전부 못 읽고 그대로 가져올 때도 있거든요.”
“예, 감사합니다.”

소녀가  두꺼운 책에는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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