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7화 〉67화-크로니클 인베이전(3) (67/239)



〈 67화 〉67화-크로니클 인베이전(3)

로빈이 주관해서 시작한 굿즈 사업은 시작하자마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고공행진하기 시작했다.
로빈에게 ‘팬클럽’과 ‘멤버십’에 대한 아이디어를 알려 줬는데 로빈은 이를 받아들여 로로 시스터즈의 팬클럽을 창단하고 가입자에게 가입비용을 받고서 가입자에 한해서만 특별한 상품을 판매하겠다며 로로 시스터즈의 일상을 담은 그림첩과 로로 시스터즈가 어떻게 음악을 배웠는지를 담은 음악교육서를 발간했다.

이로 인해 호텔 앞에 귀족 영애들이 직접 멤버십에 가입하고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한동안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줄을 선 이들 전부는 아니지만 호텔 앞에서 대기하는 이들을 위해 호텔 앞에 좌석을 배치하고 대기표를 부여한  커피와 디저트를 판매하기시작했다.
문제는 이 영애들과 어떻게 잘해보고 싶은 귀족가의 남자들이 몰려들면서 오히려 호텔 영업에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장님, 호텔 앞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작 호텔에 들어와야 하는 손님들이 들어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호텔 건너편 건물을 매입해서 내부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임시로 잡화점을 먼저 설치하죠.”

드워프 장인팀이대거 투입되어 3일간의 야근을 마치고 나자 호텔 건너편 건물은 2층짜리긴 하지만 잡화점으로서 그렇게 나쁘지 않은 건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기존에 부족하다고 했던 커피숍 공간을 외부로 확장하여 유럽에서 일반적으로 보기 쉬운 상점 앞에 앉아 노천카페 느낌으로 컨셉을 잡고서 1층의 나머지 공간과 2층 공간에 로로 시스터즈에 관련된 축음기와 레코드, 그리고 로빈이 기획한 상품들로 가득 채웠다.

“휴, 이제 좀 호텔이 한산해진 것 같습니다. 호텔 앞이 조금 시끄러워진 것 같긴 하지만 말이죠.”

제국의 수도 내에 있는 귀족 영애들의 상품 구매 러쉬가 끝이 나면 호텔을 찾아오는 손님들의 숫자도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내부에 있었다.
‘그럴 리가 있나. 팬클럽은 1기가 있으면 2기도 있는 법인데.’

우리 세상의 팬덤 문화를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불이 붙어서 기세를 받은 아이돌의 팬클럽은 성장하면 성장했지. 결코 줄어들  없는 문화현상이라는  모를 수가 없었다.

영애들뿐 아니라 영애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영식들까지 전부 300명을 채운 1기 팬클럽 가입자들에 의해 호텔의 6달 전체 수입과 맞먹을 정도의 매출이 발생했다.
처음에 로빈을 무시했던 재무팀장 같은 경우 아이돌 산업이 가져오는 매출의 효과를 경험하고 나선 면박을 줬던 로빈을 피해 다닌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로빈은 나중에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공로로 문화 상품팀을 총괄하는 총괄팀장으로 승진했다.

“로빈 팀장, 일은 할 만한가요?”
“예, 섀넌 비서실장님이 많이 도와주시기도 하고, 사장님이 주신 아이디어들이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미숙한 사회 초년생의 모습을 보이던 서기 로빈은 1달간의 폭풍야근을 통해 많이 성장했는지 피로에 찌들고 일에 익숙해진 직장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잡화점을 찾아오는 손님들의 숫자도 줄어든 것 같은데 문화 상품팀도 돌아가면서 휴가 다녀오도록 하세요. 문화 상품팀 직원 모두에게 특별상여금과 5일간 휴가를 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나자 모두 이를 듣고 있었는지 직원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드디어! 집에 가서   있다!”
“하아, 커피 향기가 이젠 지겨워지고 있었는데”

커피를 물처럼 마시면서 버티던 직원들의 환호 소리를 뒤로 하고 시나브로의 다른 부서로 이동하고 있는데 섀넌이 옆에서 말을 걸어 왔다.
“사장님, 직원들에게 앞으로  길고 센 업무폭풍이 다가올 거라는 이야기는 왜 안 해주신 건가요?”
“적어도  때만큼은 편히 쉬어야죠.”
‘팬클럽은 1기보다 2기가, 2기보다 3기가 강력한 법이지.’

내 예상대로 1기로 가입한 팬클럽 인원들은 1회성 구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잡화점의 커피숍에 주기적으로 모여 모임을 자주 가지기 시작했고 이 모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제국 전역의 귀족들에게 로로 시스터즈란 ‘아이돌’의 탄생을 알리는 시발점이 되었다.

제국의 귀족들은 수시로 연회를 자주 열고 있었는데 여기에 함께 참여한 어린 귀족들은 따로 자기들끼리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동안은 딱히 놀거리도 없고 먹는 것도 평소에 자기들 집에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이라 따분하고 지루하며 재미가 없어서 10대의 귀족들은 부모님을 따라 연회에 참석하고 싶어 하지 않아하는 경향들이 강했다.

“에일리,  이거 들어봤어?”
“그게 뭔데?”
“한번 듣고 나면 다신 빠져나오기 어려울 수 있어. 근데 이걸 듣고 나면 인생이 바뀔 거야.”
부모님이 연회에 가자고 하는 데도 강력하게 거부했다가 체벌로 한동안 밖으로의 외출을 아예 금지당했던 캐스퍼는 친하게 지내는 에일리가 보여준 물건이 뭔지 알  없었다.

“선택을 잘 해야 해. 니가 이전에 알고 있던 세상에 머무르고 싶다면굳이 권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이걸 듣는 것을 선택하고 나면 이후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도 있어.”
에일리가 말을 빙빙 돌리는  같자 캐스퍼는 답답해져서 빨리 뭔지 알려 달라고 했다.
“뭔데!  돌리지 말고 제대로 설명 좀 해 봐!”
“이건 이번에 시나브로에서 최근 나온 신상품인 휴대용 레코드라는 건데 사려는 대기자가 많아서 나도 겨우 구한 거야. 자, 한번 들어봐.”

연회의 한 귀퉁이에서 로로 시스터즈가 부른 ‘넬라 판타지아’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캐스퍼는 음악을 듣자 전속 하녀가 요즘에 수도에서 유행 중이라고 이야기해줬던 ‘그것’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다.

“나, 이거 빌려주면 안 돼?”
“아직 외출금지 안 풀렸지?”
“응. 집안에 갇혀서 매일 예절교육만 받고 춤 교육만 받는 것도 지쳤어.”
“그럼, 이거랑 내가 이 노래들을 부른 로로 시스터즈의 책들도 같이 챙겨줄테니까 가지고 가서 읽어봐. 깨끗하게 쓰고 돌려주기만 하면 돼.”
“고마워.”
“뭘, 너랑 나 사이에 이런  가지고.”

둘의 대화는 주변의 10대 귀족들에게 들리지 않았지만 음악소리는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저게 뭐지?”
“요즘 유행한다는 로로 시스터즈 노래 같은데?”
“살롱에 가야만 들을  있는 거 아니었어?”
“살롱에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당장은 공연에 가고 싶어도 표를 구할 수가 없다던데.”
“그나저나 너무 듣기 좋다.”

감히 공작과 후작 영애들의 사이에 끼지 못하는 백작 미만의 귀족들의 영애들은 선망의 대상격인 두 영애 근처를 서성이다 음악소리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연회에 참여할 때마다 로로 시스터즈의 팬클럽 회원들에 의해 영업당한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들은 다시 지역의 귀족들과의 연회에서자기들도 모르게 최근 수도에서 유행하는 문화 상품을 전파하는 세일즈맨이 되어 지역의 귀족들의 자식들에게 시나브로의 물건들을 홍보했다.
300명의 팬클럽 회원들은 무보수 비공식 홍보팀이 되어 자기들과 같은 즐거움을 공유하는 이들을 점차 넓혀갔고 이는 시나브로에 팬클럽 2기 멤버십 요구로 이어졌다.

“밀려드는 팬레터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에요. 휴대용 레코드의 판매량도 늘려주시고 팬클럽 2기 멤버십을 빨리 가입시켜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그 정도인가요?”
“기존의 로로 시스터즈를 향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요.”

제국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인 영향력은 적국이었던 연합국이나 이전에 존재했던 제국이나 소국의 문화를 이어받아 소비하던 이들에게 크로니클이 만든 시나브로 발發 문화침략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 했다. 과거 비틀즈가 미국으로 진출했을 때처럼 열광적인 분위기였다.


보거농 자작은 최근 딸이 방 안에만 틀어박혀 뭘 하고 지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딸의 방 안에선 때때로 무슨 소리같은 것이 들리기도 했고 때때론 무슨 향기가 나기도 했다.
“내 딸이지만 요즘은 뭘하고 지내는지 알 수가 없군.”
“당신, 이제  년 뒤엔 테스도 시집 갈텐데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딸하고 대화를 나눠 봐요.”

에드워드 백작덕분에 알게  꼬냑이란걸 즐기던 보거농 자작은 술기운을 빌어 딸과 대화가 하고 싶어졌다.

똑똑똑

보거농은 딸의 방문 앞에 다가가 심호흡을 한차례 하고선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딸의 응답은 들리지 않았다.
“뭘 하고 있는 거지?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걸로 봐서는 지금 자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한번  방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자 약간 술기운이 오른 보거농은 머뭇거리다 문을 벌컥 열었다.
딸은 무언가 동그란 것이 돌아가는 판을 열어놓고 여기저기 책을 늘어놓은 채로 춤을 추고 있었다.

“테스, 뭐하고 있는 게냐?”
“아...아빠!”

테스는 깜짝 놀랐다. 음악 소리에 취해서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시간에 아빠가 방문을 열 줄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었으니까.

“안 주무시고 계셨어요? 근데 무슨 일이세요? 그리고 숙녀의 방을 그렇게 함부로 여시는 건 아니죠!”
노크를 했음에도 대답이 없던 딸이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빗발치듯 쏘아 붙이자 보거농은 어이가 없었다.
“노크를 두 번이나 했는데도 대답이 없더구나. 그리고 아버지가 딸의 방에 찾아오는 데 무슨 일이 있어야 하니?”
비트레이 후작의 일을 대신 처리해주느라 밖으로 도는 일이 많아져서 딸과 대화할 수 없는 시간이 몇 년이 지나자 딸은 어느새 자신만 보면 다가오던 조그마한 소녀가 아니었다.
“그래도  번 더 노크를 크게 하든가 기다리셨어야죠!”

항상 아빠와 사이가 좋았던 테스는 최근에 바빠진 아빠와 대화할 시간이 없어서 멀게만 느껴지는 아빠에게 살짝 짜증도 나고 화도 났지만 이어지는 아빠의 말에  크게 대꾸하지 못했다.
“미안하구나. 테스. 근데 지금 이것들이 다 뭐냐?”
“요즘 유행하는 로로 시스터즈의 화보집이랑 휴대용 레코드에요.”

보거농은 이제야 딸이 방안에서 뭘 하고 지냈는지 알  있을 것 같았다.
“뱅글 뱅글 돌아가는 저기서 나는 음악소리가 이거였구나.”
“네, 정말 좋죠? 아빠도 한번 로로 시스터즈의 음악을 듣고 나면 기존의 연회에서 듣던 음악은 조악하고 조잡하게 느껴질 거예요.”
자작이 로로 시스터즈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같자 테스는 한결 신이 나서 한참을 로로 시스터즈의 책들과 레코드들에 대해서 떠들었다.

“흠. 책 몇권 좀 빌려가도 되겠니?”
딸이 이야기하는걸 듣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드는 보거농은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신 구기거나 더럽히지 말고 그대로 가져다 주셔야 돼요.  많이 들었으니까 레코드도 가져가서 한번 들어보세요.”
테스는 어떻게 조작하는지 휴대용 축음기를 재생하는 법을 보거농 자작에게 가르쳐줬다.
“정말 신기하구나.”

딸과  더 대화를 나누고 돌아온 보거농 자작은 딸에게 배운 대로 휴대용 축음기를 재생시켰다.
축음기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일전에 비트레이 후작과 함께 살롱에서 들었던  음악이었다.
“어떻게  음악을 이 동그란 판에 담은 거지?”

한동안 음악을 듣던 보거농은 딸에게서 빌려온 책을 펼쳐 보았다.
“훨씬 가벼워. 양피지로 된 것 같지는 않고 이 책의 페이지들은 뭘로 만든 것이길래 이렇게 팔랑거리고 얇지? 그리고 이 그림들은 누군가 일일이 이 그림들을 그린 건가? 믿을 수가 없군.”

보거농 자작은 로로 시스터즈와 관련된 책과 레코드 판이라는 처음 보는 것들을 경험하며 돈냄새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모두 읽고 책을 덮을 때쯤 마지막 페이지엔 ‘시나브로 출판사’라는 단어가 멋드러진 필체로 적혀 있었다.

“이 책이라는 것과 레코드 판을 대량으로 생산해낼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생기게 될까?”

보거농 자작의 부인은 자신과 꼬냑을 마시던 남편이 테스의 방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찾아 나섰다 서재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당신, 오늘 너무 멋있는데?”

사색에 잠긴 남편의 모습에 젊은 보거농에게서 매력을 느꼈던 그때가 떠오르자 자작 부인은 서재의 문을 닫기 전에 주변을 살짝 둘러보고는 조용히 문을 닫고 들어왔다.
“부...부인!”
“가만 있어 봐요.”
“아니!”
“어허~ 가만 있으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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