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66화-크로니클 인베이젼(2)
빅터에게 말했던 내가 떠올린 방법이란 건 엄청 대단한 건 아니었다. 세력을 부풀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금이었고 귀족들의 주머니의 자금을 줄인다면 최소 서로 간의 부딪히는 시간을 좀 더 뒤로 지연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귀족들 사이에서 요즘 시나브로 건축으로 자신들의 저택을 리모델링해달라는 의뢰 요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짓고 있는 호텔 양 옆의 건물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았습니다. 일부 귀족들은 옆에서 공사를 짓고 있는데도 호텔 안에 있으면 딱히 소음이 들리지 않는 게 마음에 든다며 자신들의 저택들도 그렇게 만들어 달라는 이들도 있습니다.”
“영애들 사이에서 호텔 직원들이 입고 돌아다니는 유니폼을 선망하는 이들이 늘면서 젊은 귀족 남자들 사이에서 호텔 직원들이 입는 유니폼이랑 비슷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이들이 늘었답니다.”
“로로 시스터즈의 공연 예약이 1년 치가 끝났습니다. 장기적 공연을 위해선 두 사람의 목과 건강관리가 중요하다고 판단되어서 하루 2회 공연을 1회 공연으로 줄였더니 오히려 경쟁이 붙어서 암표를 구매하려는 귀족들 사이에서 로로 시스터즈 공연 티켓 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두 사람에 대한 귀족 남성들의 구애가 끈질겨서 공연 팀이 어찌하면 좋을지에 대해 시나브로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시 외곽의 지금 짓고 있는 건물이 시나브로 사 社의 건물인 것을 눈치 챈 일부 귀족들이 주변의 땅을 구매하려고 토지의 소유자를 찾아다닌답니다.”
“호텔 커피숍에 들어오고 싶은 손님들은 많은데 호텔이 1층이 들어오고 싶은 손님 숫자에 비해 너무 좁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기회의를 위해 기획실에 모인 각 부서의 장들은 시나브로와 관련된 안건들을 쏟아냈다.
“우선 리모델링 건은 상하수도 시설을 먼저 제국에 요청해야 합니다. 지금 호텔의 부지라든가 다른 지역의 부지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사이즈라 우리들이 자체적으로 상하수도 시설을 만들어서 처리가 가능하지만 귀족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여 대단위로 사용하기 위해선 제국의 수도 자체를 밑바닥부터 바꿀 필요가 있어요. 앞으로 리모델링 요구가 들어오면 고객들에게 도시의 상하수도 체계를 바꿀 공사가 먼저 있어야 가능하다면서 여론을 형성하세요.”
귀족들의 힘을 빼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대규모 공사를 떠올렸다. 버크 아저씨를 통해 황제에게 메시지를 보내놨으니 그쪽에서도 우리의 움직임에 맞게 적극 호응해주리라.
“방음시설 설치는 어려운 일이 아니니 자택에 방음시설 설치를 원하는 이들은 건설팀에서 받아서 진행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신축하는 건물 주변의 토지 구매에 대해선 어떻게 할까요?”
“더 좋은 가격으로 사겠다는 사람들에게 판매하세요. 이왕이면 구매를 원하는 이들을 서로 경쟁시키는 쪽으로 해서. 경매 방식도 좋고 물 밑 경쟁도 좋아요. 유니폼과 비슷한 옷을 구매하는 이들은 일단 그대로 두세요. 외곽에 생기는 의류 전문점이 생기고 나면 가치를 알아본 이들이 그쪽으로 달려들 겁니다.”
이곳엔 스웨터, 가디건, 순면속옷이라든가 하는 옷들도 없었고 여성들을 위한 전문적인 제품들은 당연히 현대의 물건들과 비교하면 미비한 수준이었다.
아이들이 입고 다니는 옷이라는 것도 귀족조차 어른들의 옷을 대충 접어 입는 형태에 가까웠고 일반적인 도시민들의 옷은 거적데기를 뒤집어 쓰고 다니는 수준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패션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빈약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돈 걱정 없는 귀족들 사이에 존재하는 패션이라고 하는 것도 겨우 어느 누가 옷감을 더 많이 써서 입는지가 주류였으니 자기 몸에 맞춰서 사이즈 별로 옷을 입는 시나브로 호텔 직원들의 유니폼은 이 시대의 멋쟁이들을 끌어들이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굳이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대변되는 패스트 패션 방식으로 제품들을 생산해서 판매할 필요조차도 없이 계절에 맞춰서 각 품목들을 판매하면 될 것 같았다.
“로로 시스터즈에 대한 구애는 방향을 조금만 틀어 봅시다.”
새로운 한류 붐을 일으키는 아이돌 산업은 굿즈 산업의 발달을 통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와 관련된 상품을 소비하기에 적합하도록 변화했다. 처음부터 끝판왕 격에 해당하는 현대 굿즈 산업을 그대로 쏟아 넣기보단 이 시대 수준에 맞춰서 단계별로 진행시킬 필요가 있었다.
“어떤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지...?”
“로로 시스터즈의 목소리를 담은 레코드와 축음기를 판매할 겁니다. 자기 집에서도 로로 시스터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겠죠. 거기에 덧붙여서 로로 시스터즈의 화보집을 발간하겠습니다.”
“오히려 로로 시스터즈를 향해 구애를 하는 이들이 더욱 늘어나지 않을까요?”
“귀족 영애들에겐 로로 시스터즈의 화장법과 패션을 담은 책을 판매하도록 하죠. 만날 수 없는 저 먼 별과 같은 로로 시스터즈보다 자신들 주변에 아름다운 귀족 여성들을 향해 구애하도록.”
아이돌을 향한 팬심은 건강하게만 움직인다면 사회에 긍정적으로 작동할 여지가 충분히 넘쳤다.
“저기...”
구석에 앉아서 타자기로 기록을 하고 있는 서기 업무를 맡고 있는 여성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서기관 로빈 씨죠? 말씀하세요.”
“요즘 젊은 귀족 여성들 사이에선 로로 시스터즈가 부르는 노래에 담긴 생각들에 공감하는 여성들이 많거든요. 평소에 로로 시스터즈가 무슨 일을 하고 지내는지 혹은 로로 시스터즈가 노래하고 연주하는 방법을 담은 책들을 발간하는 건 어떨까요?”
“네?”
2005년 너튜브를 통해서 일상을 다룬 Vlog가 등장했고 이 같은 개념을 활용한 연예인들의 활동이 그 뒤로 한참이나 지나서 이용되었음을 떠올려 보면 이곳에서 시대를 한참 앞선 서기관의 이야기는 기대하지 못했던 의견 제안이었다.
“로빈, 그런 거에 누가 관심을 가지겠나? 서기면 서기답게 기록이나 열심히 하는 건 어때? 사장님, 그것보다 이렇게 인기가 높은데 판매가격을 높이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커피숍은 지점을 늘리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으므로 부지를 확보할 때마다 수도 곳곳에 오픈하는 쪽으로 움직여 주세요.”
도서의 판매가 계획에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곳의 귀족들이 좋아할 법한주제의 소설들로 편중해서 문화상품을 퍼뜨릴 예정이었던 것이 전부였는데 서기 업무를 맡은 로빈이라는 사람의 의견을 듣고 나니 확장해 볼 여지가 충분해 보였다.
각 부서들의 안건이 모두 정리되고 회의를 마치고 나서 서기관인 로빈은 자리에 남아서 회의의 마지막 부분을 정리하여 기록으로 옮기고 있었다.
“로빈 씨, 오늘 낸 로로 시스터즈의 안건에 대한 책 내용 말인데요.”
“죄송합니다. 기록 업무만 충실하게 해도 부족한데 제가 너무 함부로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나가던 재무팀장이 잠시 로빈의 옆에서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느낌상 다른 부서장들과의 대화로 신경 쓰지 못하는동안 따로 질책을 받는 것이었나보다.
“아뇨, 그게 아니라 좋은 의견이어서 더 듣고 싶은데 정리할 기록이 많이 남았나요?”
“다, 거의 다 끝났습니다. 남은 건 따로 정리해도 돼요.”
허겁지겁 하는 일을 마치려고 하는 로빈이 안쓰러웠다.
“하던 거 마저 다 하고 천천히 나오세요. 섀넌이랑 이야기할 게 있어서 그러니까.”
내가 로빈과 이야기를 마치고 회의실 밖으로 나오자 섀넌이 한마디 했다.
“사장님이 천천히 하란다고 천천히 할 수 있는 직원이 몇이나 될까요?”
“그런가요?”
섀넌과의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회의실 안쪽에서 우당탕 소리가 났다.
“맞네요.”
잠시 정리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다, 다했습니다! 사장님.”
“천천히 하고 나오시라고 했는데...”
로빈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보고 나니 내가 실수했구나 싶었다.
“일단은 사장실로 저랑 같이 가죠.”
사장실에 도착해서 난 인벤토리에 있던 시원한 바닐라 라떼를 세 개 꺼내서 각자 하나씩 나눠 가졌다.
“마셔요, 목이 마를 것 같은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로빈이 군기가 잡힌 이등병이라면 저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원샷을 해버린다.
“캬하하. 시원하네요.”
오래 붙잡고 있으면 로빈이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아서 이야기를 빨리 진행시키기로 했다.
“요즘 귀족가의 소녀들 사이에서 로로 시스터즈의 인기가 좋은가 봐요?”
“좋은 정도가 아니에요. 예전엔 음악 선생에 대한 수요가 적었는데 로로 시스터즈가 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면서 영애들이 로로 시스터즈 스타일의 음악을 가르쳐 줄 선생들을 찾고 있을 뿐만 아니라 로로 시스터즈가 사용하는 악기를 구매하고 싶어하는 데 정작 비슷한 악기조차 파는 곳이 없어 구할 곳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분들이 많아요.”
“그럼 사람들 사이에서 로로 시스터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서 아까 그런 아이디어를 꺼냈던 거였군요.”
“귀족 가의 영애라는 소문도 있고 연합국에서 도피한 망명 귀족의 자손들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는데 살롱에 구할 표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보니 음악만 듣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이곳에선 스타와 팬들이 서로 소통할 창구가 너무 부족했다. SNS같은 것도 없는 상황에서 로즈 모스와 로터스 자매같은 경우 매일같이 공연을 하는 것이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쉽지 않아서 쉬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매일 2회 있던 공연을 1회로 줄이고 아주 처음을 제외하곤 살롱에 찾아온 관객들과의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없애버렸다.
“영애들 사이에선 두 자매를 본 이들의 기억을 더듬어서 그림첩도 돌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니만큼 정확하진 않겠군요.”
어렸을 적 문방구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사진을 구매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소녀들이 어떤 마음으로 덕질 중인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로빈 씨는 잠시 서기 업무를 다른 서기들에게 넘기고 새로 팀을 짜서 관련 업무를 진행시켜볼래요?”
“제...제가 감히?”
이왕이면 관심 있고 애정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덕질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이에겐 이 업무를 맡겨도 좋은 성과를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로빈에게 제안을 하자 로빈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제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나브로의 다른 직원들이 당신을 도와줄 것이고 예전에도 당신처럼 아이디어를 낸 사람 중에 부서를 책임지는 부서장으로서 일하면서 해당 사업의 수익의 10%를 매년 받아가는 직원도 있습니다.”
어떻게 로빈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좋을까 싶었는데 섀넌이 로빈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줬다.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실패한다고 해서 시나브로가 무너지진 않으니까요. 본인을 믿을 수 없겠다면 본인에게 업무를 부여한 사장님을 믿고 시나브로의 직원들과 재력을 믿으세요.”
섀넌의 동기부여를 듣고 있자니 자신감이 하늘을 뚫고 오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