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65화-크로니클 인베이젼(1)
섀넌은 그날 라지 사이즈 피자 2판과 콜라 한 페트를 먹어 치우고도 모자라 치즈 케이크 4조각을 먹어 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위에 블랙홀이 달렸나’
기껏해야 한판을 먹어 치우는 나와는 먹는 폼의 레벨이 달랐는데 다른 크로니클의 멤버들 중 드마코 형이나 버크 아저씨, 빅터 교관 그리고 요크는 6~7조각 혹은 한판 정도를 먹은 반면 코엘 누나와 에디나 누나의 경우는 드마코 형에게 따로 부탁해서 고기를 추가하여 섀넌과 함께 각자 2판씩 먹어 치웠다.
“돼지들이야. 아주 돼지들.”
버크 아저씨가 미간을 찌푸리며 내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대신 해줬다.
세 여자는 간식 먹는 배는 따로 있다면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내게 특별한 디저트를 요구해왔다. 나는 인벤토리에 따로 챙겨뒀던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를 각자 2조각씩이 아니라 2판을 꺼내주고서야 그녀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에디나 단원은 추가적으로 저와 함께 훈련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남자 단원들끼리 모여서 3년을 숙성 시켜서 만든 V.S 등급의 꼬냑을 마시고 있는데 빅터 교관이 에디나 누나가 먹는 양을 보면서 한마디를 내뱉었다.
실제로 에디나 누나는 한동안 먹는 걸로 시장직의 스트레스를 모두 풀었는지 다른 멤버들과 다르게 살이 좀 쪄 있었는데 빅터 교관은 그걸 가만히 두고볼 사람이 아니었다.
빅터 교관의 말을 들었을 리가 없었음에도 에디나 누나가 옆에서 이상하게 냉기가 도는 것 같다며 움찔하고 주변을 둘러보자 코엘 누나는 우리들이 나누는 대화를 살짝 들었는지 에디나 누나를 쳐다보고 난 뒤 우리를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정후 사장, 황제파와 귀족파의 알력이 점점 커지는 모양인 것 같더군. 저번에 찾아온 에드워드가 날 만나고자 했던 이유도 내게 황제파로 복귀해서 힘을 실어줄 순 없느냐는 이야기였어. 과거의 전쟁 영웅이 돌아오면 관망하면서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 중도파 귀족들이나 귀족파의 귀족들을 황제파로 끌고 올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말이지.”
“어지간해선 그런 행사에 올 리가 없는 에드워드 백작이 왔길래 의아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그 아저씨는 여전하더만. 수련을 멈추지 않았는지 몸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더라고. 엑스퍼트 최상급을 뚫고 올라가지는 못했는지 얼굴은 예전이랑 비교하면 약간 나이 들어 보였지만.”
빅터와 드마코 형도 에드워드 백작이란 사람을 잘 아는지 버크 아저씨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뭐라고 이야기하셨어요?”
“뭐라고 하긴. 이미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이 있는데다 이미 제국에는 공식적으로 죽은 걸로 알려진 내가 돌아 가봐야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면서 제안은 고맙지만 사양한다고 했지. 대신 꼬냑과 하몽을 주면서 주변의 아는 귀족들한테 홍보 좀 잘 해달라고 부탁했네.”
“황제파와 귀족파의 알력이 이제 슬슬 가시화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빅터 교관은 내가 잘 모르고 있는 제국의 귀족들 간의 대립에 대해서 설명해줬는데 귀족파의 경우 상단을 운영하는 귀족들이라든가 광산을 운영하는 귀족들이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했다.
“연합국의 귀족들은 노예제 폐지에 반대하는 이들이 모였다고 했는데 굳이 귀족파의 귀족들이 제국에 합류해서 노예제 폐지를 위해 싸웠던 이유가 뭐죠?”
사실 노예제 폐지에 합류했던 귀족파들의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뭐긴. 자기들 이익을 쫓아서 어느 쪽이 더 큰 이익이 될지 판단해서 제국의 전쟁에 동참했던 거지.”
드마코 형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귀족들에 대한 반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 인간들은 전쟁을 해서 무기도 많이 파는 것이 좋은 인간들이라 전쟁 중에 물자를 대서 상단의 물건 재고를 소모하기에 좋은 쪽을 선택했던 거야. 노예를 운용해서 농업에 종사하는 연합국 귀족들과 다르게 제국에 투신한 귀족들은 이쪽 저쪽 오가면서 물건을 파는 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았으니까.”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이득이라고 판단했던 그들은 전쟁이 끝났을 때엔 발 빠르게 자신들의 투자금을 더 많은 영지를 차지하는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맞네, 한때는 제국의 힘으로 도움이 되었던 귀족들의 사병양성도 문제지만 대농장을 차지한 지방의 귀족파들로 인해 제국의 세수가 잘 안 걷히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하더군.”
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통일신라 말기 호족의 융성이 고려를 어떻게 좀 먹었는지 떠올랐다.
“제국의 중앙을 책임지고 있는 귀족들과 제국의 지방을 쥐고 있는 귀족들 간의 알력이 커질수록 농민들의 삶만 어려워지겠네요. 우리가 수도에 오면서 봤던 것처럼 산적들이 난립한 이유도 그 때문이겠죠.”
“에드워드도 그 점을 걱정하고 있었어. 크로니클이 만든 트리니티 상단을 통해 이전보다 더 좋은 품질의 무구가 제국 각지에 풀려나면서 지방 군벌들의 군사력도 점차 강해지는 추세라고 하더군. 요크에겐 이 점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말아주게. 자책할지도 모르니까.”
우리들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여자들 쪽도 나름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섀넌, 정후 뒷바라지 하는 건 어때? 정후가 좀 무른 구석이 있는데”
“아니요, 정후 사장님을 옆에서 도우면서 제가 부족한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정후 사장님은 제가 생각하지 못한 쪽으로 많은 아이디어를 내놓을 뿐만 아니라 약자들에 대해서도 항상 배려하려고 노력하시더군요.”
“정후가 그런 부분이 있었나?”
“언니들이 몰라서 그렇지. 정후가 직원들을 얼마나 잘 챙기는데. 같이 일해본 사람들은 알지. 나랑 제철소에서 기계들 만들 때도 목욕탕 만들고 직원들한테도 굳이 비싸게 안 받고 비누나 면직물들 저렴한 가격에 보급하고 그랬거든.”
“정후랑 뭘 해본 기억은 빅터한테 교육받을 때뿐이라서.”
“그렇겠지. 정후에게 관심이 갈 여유가 있었을 리가 없었겠지.”
“코엘, 무슨 의미야?”
“아니야~”
코엘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에디나의 말에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함께 앉아 있는 네명 모두 무슨 의미인지 확실히 이해했다.
“맞네. 우리가 그걸 몰랐네. 정후가 눈에 들어왔겠어?”
“확실히 그랬겠네요.”
“니들 무슨 이야기하는지 난 이해가 안 된다?”
에디나가 얼굴이 빨개져서 당황해할 때쯤 이쪽에선 빅터가 이야기를꺼냈다.
“정후, 이전에 계획했던 의상점과 음식점도 곧 여는 겁니까?”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호텔 양쪽 부지를 미리 확보해 놨어요. 먹고 자고 입고가 인간의 기본적인 3대 욕구잖아요. 편한 옷, 편한 잠자리, 맛있는 음식을 경험해본 사람들에게 똑같은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주머니 사정에 여유가 있는 귀족들은 누구라도 돈을 지불할 테니까요. 상대적으로 풍족한 편에 속하는 수도의 제국민들도 이런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수도 외곽에 음식점과 의상점 그리고 숙박업소를건설할 예정입니다.”
“수도 외곽에 생기는 음식점은 그거지?”
드마코 형은 자신과 이야기한 적이 있는 체인화된 음식점 이야기가 나오자 눈이 반짝 거렸다. 맛있는 걸 대하는 사람들의 입맛이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지역별로 선호하는 입맛이 다르기에 세계적으로 균일화된 음식을 판매하는 글로벌 기업들조차도 어느 정도의 커스터마이징을 거쳐 현지화를 한다.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불고기 버거가 우리가 접할 수 있는로컬라이징의 대표적인 예시기도 하고.
“그게 뭔데?”
“햄버거요. 기억 나시죠?”
어지간해선 음식 욕심을 내지 않는 빅터조차도 햄버거 이야기에 침을 꿀떡 삼킨다.
“처음 먹는 맛이었습니다. 가끔 일이 많아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할 때 커피론 잠은 쫓을 수 있어도 허기를 채우기엔 많이 부족한 감이 있는데 그때 햄버거라는 게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햄버거라는 건 지극히 미국적인 음식으로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음식이지만 세계의 이민자가 미국으로 몰려들어 샌드위치의 형식을 통해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도록 정찬(正餐)을 압축해 개발한 배경이 있는 음식이다. 산업화를 경험하면서 기존의 긴 점심시간동안 다이닝을 즐기던 이들의 아쉬움을 담아 줄어든 점심시간에 맞춰 개발된 상품이 바로 햄버거였다.
더구나 맥트럼프 형제에 의해 최초의 맥트럼프 가게에서 분업과 전문화 과정이 도입되면서 기존의 20분 이상씩 걸리던 음식점들과 다르게 몇분 이내로 짧은 시간만 기다리면 나오는 극도로 발전된 효율성을 보이는 형태로 진화되었다.
요즘에는 다시 이를 과거로 돌리고 수제버거의 형태로 변주되는 형태이긴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레이 크로커다일이 세계에 퍼트린 맥트럼프 형제의 햄버거가 패스트푸드의 대명사가 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수도의 외곽에 한적한 부지를 구매해서 햄버거와 셰이크를 먹을 수있는 식당을 지금 짓고 있는 중이에요.”
“셰이크는 진짜 달콤하고 시원해서 제국민들이라면 누구라도 맛보고 싶을 걸.”
“난 셰이크보다 살짝 짭조롬한 맛이 나는 감자튀김이 좋았네. 맥주랑 먹어도 좋더군.”
드마코 형의 감수를 받아 이곳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음식으로 현지화화는 과정에서 드마코 형은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한동안 햄버거와 셰이크 그리고 감자튀김을 마음껏 즐기면서 푹 빠져 살았다. 먹어도 먹어도 살이 잘 찌지 않는 것을 보며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몸이 그때처럼 부러운 적이 없었다.
‘워낙에 활동대사량이 높은 마스터들은 조금만 거칠게 훈련해줘도 먹은 에너지를 소비하는데 큰 지장이 없으니까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 가장 적합한 인류의 형태 아닐까?’
내가 잠시 그렇게 잡생각을 하고 있는데 버크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그럼이 옆의 음식점은 뭔가?”
“귀족들이 하인들에게 시켜서 그걸 사다 먹을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본인들이 직접 가서 줄을 서고 손에 햄버거 소스를 묻혀 가면서 감자튀김을 손으로 집어 먹을 리가 없다는 시나브로 직원들의 말이 있어서 햄버거 가게와 다르게 철저히 코스요리를 파는 예약제 레스토랑이죠.”
17세기 프랑스 대혁명이란 역사적 사건을 통해 탄생한 프랑스 코스요리는 기존의 프랑스 만찬에 이탈리아 요리와 러시아의 요리코스가 결합되어 만들어졌다.
당연히 현재 제국의 수도에서 귀족들이 먹고 마시는 만찬이라는 것도 17세기 이전의 프랑스 만찬이 그렇듯 한 번에 테이블 위에 모든 음식을 깔아놓고 먹는 잔칫상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난 그거 먹고 기다려야 하고 먹고 기다려야 해서 별로더구만.”
버크 아저씨는 맛은 있지만 별로 음식은 나오지도 않고 한번에 찔끔 찔금 나오는 걸 계속 기다려야 하는 코스 요리를 드마코 형이 해줘서 먹을 때마다 불만이 많았다.
“그건 니가 음식맛을 음미하면서 먹을 줄 모르니까 그렇지.”
여자들만의 이야기가 끝이 났는지 네 여자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지금 음미라는 표현을 쓴 사람이 잔반처리 전담인 코엘 맞나?”
언제나 크로니클단원들끼리 먹고 마시는 파티가 진행되면 음식 남기면 벌 받는다고 모든 걸 먹어치우는 코엘 누나의 크로니클 내의 별명은 ‘잔반처리반’이었다. 웃긴 건 요즘은 누군가의 등장으로 그나마도 경쟁이 붙어 버렸다.
“환경을 생각하라고! 이 무식한 드워프 같으니라고.”
“어! 그런 종족차별적 발언은 용납할 수 없어요. 드워프라고 다 싫어하는 게 아니라구요. 난 코스 요리 좋아해요. 천천히 맛을 느끼면서 그때그때 나오는 따뜻한 음식을 즐기는 게 얼마나 좋은데요.”
우리 세상에 부먹과 찍먹의 논쟁이 있다면 크로니클 내에선 코스냐 만찬이냐는 해묵은 논쟁거리였다.
“자고로 파티의 정도(正道)라 함은 한번에 모든 걸 쫘악 깔아놓고 먹고 마시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이야.”
“오빠, 한 번에 모두 놓고 먹으면 나중엔 다 식어 버리잖아요.”
“음식을 왜 식어버리게 냅둬? 식기 전에 다 먹으면 되지.”
“그러다 돼지 되지. 돼지 같은 드워프.”
코엘 누나와 버크 아저씨, 요크와 섀넌 그리고 에디나 누나까지 참여한 무엇이 진정한 파티의 정도인지에 대한 논쟁이 불이 붙을 때쯤 빅터가 날 따로 불렀다.
“앞으로 물자를 오가는 상단은 용병들이 아니라 도시 방어군들로 교체하였으면 합니다.”
“네? 그럼 용병들은요?”
“제 도시로 불러 들여서 도시민으로 변화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버크 부단장님과 만났던 에드워드 백작의 말로는 제국의 수도에서 최근 연회가 늘어난 이유가 황제파와 귀족파간의 세력포섭 과정이라더군요. 수도와 세븐시티를 오가는 상단의 호위대를 방어군으로 바꿔서 혹시라도 있을 상황을 대비해서 군사적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서로 간의 세력 부풀리기는 제가 지연시켜 볼게요.”
“가능하겠습니까?”
"맡겨 주세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도시 방어군으로 교체하는 작업도 병행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