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4화 〉64화-Camino de crónica(5) (64/239)



〈 64화 〉64화-Camino de crónica(5)

시나브로 호텔의 그랜드 오픈이 성공리에 끝나고 귀족들은 새로운 문화를 접하자 기대 이상으로 열광했다.

태어난  100년도 되지 않은 제국의 귀족들에겐 딱히 제국의 전통이라거나 제국의 문화라고 자랑할 만한 고유의 것이 없다가 옆의 연합국에서 유행한다는 티타임 문화가몇 년 전에 들어와 귀족들에서 퍼진 것이 다였다.
시나브로의 호텔을 다녀온 이들은 커피와 함께 먹는 달콤한 디저트에 푹 빠져 버렸고 몇몇 귀족들은 하루에 500골드가 넘는 가격에도 프리미엄을 얹어서 지불하고 누구보다 먼저 호텔에서 숙박을 경험하려고 하는 이들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환상적인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로터스와 로즈 모스 자매의 공연도 있었는데 천상의 소리라는 이름의 공연을 듣기 위해서 살롱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티켓구매의 경쟁은 불이 붙었고 매일 오후와 저녁 2회의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그 표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오는 인사들의 면면은 하나같이 제국에서 최상위 귀족들인 상황이라 이들과의 연줄을 이어 나가고 싶은 귀족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살롱의 입장 티켓을 구매하려고 들었다.

유리창으로 외부에 노출되는 호텔 1층 커피숍은 제국의 유행을 선도하는 이들이라면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 곳이 되었고 커피를 마시면서 달콤한 케이크를 금으로 된 포크로 잘라 먹는 것은 유행을 아는 이들의 상징이 되어가기까지 했다.
“마리 백작 부인, 시나브로에서 마시는 커피 정말 좋지 않아요?”
“캐서린 후작 부인, 커피라는 게 뭐죠?”
“어머, 아직  가보셨구나. 그럼 천사같은 두 소녀가 연주하는 ‘천상의 소리’도 들어본 적 없으시겠네요?”

에드워드 백작의 부인인 마리는 한동안 챙겨야할 영지의 일이 있어 에드워드 백작을 대신하여 갔다가 오늘 모이기로 한 티타임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 저녁에 도착해서인지 티타임에 참여한 귀족부인들이 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 여자가 또 뭘 어디서 보고 와서 감히 누구 앞에서 이렇게 아는 척을 하는 거야. 그리고 사람들은 도대체 뭔 소리들을 하고 있는 거지.’

제국의 백작이라면 제국에서도 3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위치인지라 어지간해선 티타임을 해도 자신이 항상 최고의 위치였는데 황제파의 일원으로 국경을 책임지는 제임스 변경백(邊境伯)의 부인인 캐서린 후작 부인이  달 전 수도에 와 있는 상태라 약간은 신경이 쓰였다.

“잠시 제가 바쁜 동안 재미있는 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캐서린은 어쩌다 한번씩 상경하는 자신과 다르게 제국의 수도에서 상주하면서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던 것들을 제국의 최신 유행이라면서 자랑하던 마리에게 이번 일을 통해서 한방 먹인 게 너무 통쾌했다.

“아, 어쩌다 제국의 최신유행을 선도하는 마리 부인께서 이런 일을 다 모를 수가 있죠? 이전에 하얀 장막으로 높게 둘러쳐져서 말이 많았던 곳 기억하시나요?”
“네, 에드워드가 그것 때문에 정확히 드워프들이 그곳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황제에게 부탁받아서 갔다 와서 기억해요. 트리니티 상단의 호텔이 지어지는 곳이었다는 내용을 에드워드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캐서린은 설명해주려고 하는데도 그 와중에 자신의 남편과의 사이를 자랑하듯 남편의 이름을 말하며 황제와 백작의 친한 사이를 어필하는 마리가 약간 거슬렸지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ᄁᆞ 커피라는  일종의 차 같은 거군요?”
설명을 모두 들은 마리는 유행의 최선두 주자인 자신이 없을 때 하필이면 호텔이 오픈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럴  알았으면 에드워드의 부탁으로 영지에 다녀오는 걸 조금 미루는 거였는데. 쳇’
“호호, 저도 시나브로 호텔에 한번 가봐야겠네요.”
“호호호, 마리 백작 부인. 거길  보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랍니다.”

고상한 척 웃는 캐서린의 말이 거슬려서라도 빨리 남편과 갔다 와야겠다고 마리는 마음먹었다.
‘수녀원에 있을 땐 매일 잠만 자고 졸던 게 후작 남편이랑 만났다고 고상한 척은’
‘동기들하고 몰려다니면서 여왕벌 행세나 하던 게 에드워드 백작을 속여서 꼬득여놓곤.’

내심 마음에 품고 있던 기사의 표본이라고 할 만한 에드워드 백작과 마리의 약혼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캐서린은 마리의 표정 뒤편에 숨겨진 아니꼬움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에드워드가 트리니티 상단에 아는 친한 고위 임원이 있어서요.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같네요. 호호호”

이런 신경전은 귀족부인들 사이에서만 있는  아니었다. 남편들도 마찬가지였다.

“보거농 자작, 자네 시나브로 꼬냑이라는 술 마셔봤는가?”
“하하, 그게 뭡니까?”
“비트레이 후작 수발만 열심히 드느라고 제국의 유행도 못 쫓아가고 있구만, 자네.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자네가 꼬냑도 모르고 있다니!”

귀족파를 이끄는 비트레이 후작의 개라는 평가를 듣는 보거농 자작은 툭하면 자신의 속을 긁어대는 황제파의 에드워드 백작과 만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지만 오늘도 재수 없는 에드워드 백작은 자신의 앞에 와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이 꼬냑이라는  내가 트리니티 상단의 친한 이가 있어서 구할 수가 없는 것인데도 선물 받았단 말이지. 그런데 이 술의 색과 향이 정말 매력적이라네. 기존의 포도주들로는 깊이라든가 묵직함 측면에서 맛을 감히 상대할 수 없을 정도야.”
“그 정도입니까?”
“선물 받은 꼬냑 한잔 정도는 줄 수 있네. 워낙 독한 술이라 훈련을 많이 한 기사들이 아니라면 포도주처럼 마시다간 훅 취할수도 있어서 말야. 아무래도 기사가 아닌 자네로서는 한잔 정도가 적당할 걸세.”

에드워드 백작은 항상 자신을 호위하기 위해 따라다니는 베너렛 기사인 존슨에게 잔을 들어 마시는 행동을 하면서 최근에 맛을 들인 꼬냑과 하몽을 가져달라고 했다.

존슨이 다른 부하기사에게서 꼬냑을 가져와 생전 처음 보는 유리잔에 평소 마시는 포도주의 반도 안되는 양만 담아서 주자 보거농은 덩치는 산만한 놈이 속은 빈대같이작다면서 속으로 욕을 했다.
“이게 그 꼬냑이라는 거군요.”
“지금은 돈 주고도 구하기가 어려운 물건이지. 한번 마셔보게.”

‘술 맛도 모르고 그저 취하려고 마시는 무식한 기사 놈이 어딜 감히.’
보거농 자작은 무식한 기사들과 다르게 포도주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었고 귀족들 사이에서도 보거농과는 술에 대해서 함부로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술에 정통한 귀족으로 유명했다. 비트레이 후작의 측근 세력으로 들어가는 데에 있어서도 보거농이 구해온 포도주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정도였으니 보거농은 자신의 앞에서 꼬냑이라는 처음 보는 술을 들이밀면서 술에 대해 아는 척하는 에드워드가 가소로웠다.

하지만  생각은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다.

“흐음~”
“어떤가? 술하면 보거농, 보거농하면 술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데 자네의 입에서 나올 평가가 궁금하구만.”

감히 자신의 앞에서 술에 대해서 함부로 왈가왈부하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에드워드 백작이 얄미웠지만 술의  자체는 깊고 진했다.

“이 술 어디서 구하셨다고 하셨지요? 술도 술이지만 이 술을 담은 투명한 잔이 술의 맛과 향을 한층 더 끌어 올리고 있군요.”
“역시 보거농이야. 다른 이들은 술맛에 빠져서 몰라 보기도 하는데 바로 잔의 진가를 알아봤군.  ‘유리잔’은 ‘글랜캐런’이라는 건데 말야. 손잡이가 길쭉해서 다리만 빼짝 마른 자네와 어울릴 법한 리델 잔이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술을 위해 탄생한 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마치 기사들의 단단함과 묵직함을 표현한 것만 같은 잔이라고 할까?”

보거농 자작은 이 무식한 에드워드 백작과 술에 대해서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곤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기존의 청동 잔과 다르게 글랜캐런이라는 유리잔은 술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입에 닿는 쇠로  질감 특유의 거슬림이 없다는 것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자, 여기 안주로 나온 하몽도  먹어보게.”

꼬냑이라는 술도 포도주의 반보다 적게 따라주더니 나뭇조각을 얇게 썰어놓은  같은  얇고 작은 나무꼬챙이에 찍어서 주길래 어이가 없었지만 꼬냑의 맛과 유리잔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참지 못하고 하몽이라는 걸 집어 입에 넣었다.

충격적이었다.

꼬냑이 입에 남기고  술의 잔향과 어울려 짭짤한 맛과 함께 느껴지는 하몽 조각의 풍미는 나뭇조각같은 외견과 다르게 진한 육향이 느껴졌다.
“이건 무슨 고기입니까?”
“돼지의 뒷다리를 2년 정도 소금에 절여서 시나브로만의 비법으로 숙성시킨 거라더군. 어떤가?”
기존에 먹어본 냄새나는 돼지고기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더구나 그 비싼 소금에 절여서 만들었다니 꼬냑도 꼬냑이지만 이 하몽이라는  또한 귀족들이 즐기기에 최상의 음식이었다.

“요즘 귀족들 사이에선 꼬냑과 하몽을 함께 경험해보지 못한 귀족은 진정한 귀족이 아니다란 말까지 돌고 있지. 으하하하하.”
“제가 요즘 일이 바빠 제국의 유행에서 뒤쳐졌었군요.”
“일이 바빴는가?”
자신도 모르게 털어놓은 말 한마디에 달라지는 에드워드의 표정을 보고 실수를 했다싶은 보거농은 서둘러 마음을 다잡으며 말을 돌렸다.
“아, 별거 아닙니다.  꼬냑과 하몽이라는 걸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비트레이 후작님께 갖다 주려고 그러는가?”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하하”

에드워드는 자신의 예상대로 귀족파가 움직이고 있음을 이 남자의 말을 통해서 알  있었다.
‘비트레이 후작의 옆에 항상 붙어서 쫓아다니는 똥개가 굳이 그 자리를 비우고 어딘가를 떠났을  주인의 명령이 있었던 거겠지.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어.’
“내가 이걸 구할  있는 트리니티 상단의 관계자에게 보여줄 추천장을 하나  주지. 그동안 내게 좋은 포도주를 대접해 준 보거농 자작의 얼굴을 봐서 그 정도 해줄  없겠는가?”

보거농 자작은 평소에 혹시 몰라서 반대파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먹여놓은 포도주가 이제야 제값을 하는  같았다.
반면에 에드워드는 버크 대장군님과 대화를 나누고 부탁받은 꼬냑과 하몽의 홍보 또한 해결할 수 있어서 한결 짐을 내려놓을 수 있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버크 대장군님과 빅터 상단주에게  말이 생겼군.’

백작은 기분이 좋았다. 한 번에 귀족파의 동향파악뿐 아니라 제품 홍보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가 마리 부인으로부터 한 소리를 듣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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