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62화-Camino de crónica(3) (62/239)



〈 62화 〉62화-Camino de crónica(3)

삶의 방식과 재능은 모두 제각기 다르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의 재능에 적합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살지는 못한다.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게임의 상태창처럼 객관적인 정보로 확인할 수는 없으니까.

운 좋게 태어난 집안이 부잣집 혹은 이곳에서 흔히들 말하는 귀족계층이라면 가진 바 재능이 적거나 부족해도 살아가는 데 크게 지장이 없을 수도 있고 집안의 가정환경에 의해서 교육을 받아 부족한 재능을 채워 풍족한 삶을 영위할 수도 있다.

그렇지 못한 쪽에 속한 이들의 삶의 방향을 급격히 바꿀 수 있는 인자가 무엇이겠는가? 대한민국의 성장배경의 하나로 꼽히는 것, 바로 교육이다.
가나보다 가난했던 최빈국 대한민국이 고작 수십년 만에 세계 랭킹 10위권에 뛰어올랐다. 한국에서만 살아본 사람이라거나 경제사에 대해서 공부해보지 않은 자라면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거나 국뽕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토록 높게 성장한 것을 표현하기에 70년이란 기간은 ‘고작’ 수십년으로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짧은 기간이다.

그리고 난 우리나라를 성장시켰던 교육의 중요성을 이곳에서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잠재된 재능이 있는 자들에게 부여된 교육의 기회가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말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길을 가다 우연히 들리는 리듬에 이끌려 들어간 곳에서 나뭇가지로 나무로  그릇을 두드리는 아이가 있었다.
옷은 넝마수준으로 먹을 것은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지 앙상한 뼈가 살가죽 밖으로 보이고 배만 볼록 튀어 나와 보이는 더러운 아이가 멍한 표정으로 두드리는 타격감에는 분명 우리세계에서 말하는 ‘리듬감’이라는 게 존재했다. 난 그게신기해서 아이게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꼬마야, 너 이름이 뭐니?”
꼬마는 내가 물어보는 말에도 생기 없는 눈빛으로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거,브론즈라도 집어 던져주고 물어보든가 아니면 먹을 거라도 주고서 물어 보시구랴. 뒤에 따라오는 수행원들이나 걸친 옷을 보니 귀족 나으리나 돈 꽤나 있는  같은데”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오지랖 넓은 아저씨가 한마디 조언 아닌 조언을 해줬다.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못한 영양실조 상태의 인간에겐 많은 음식이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세상의 인간들은 육체적으로 지구의 인간보다 생존력이 강한 편이라 빵과 우유 정도면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저씨와 엘리스의 말을 듣고난 뒤 아이에게 주려고 인벤토리에 있는 크림빵 봉지와 쵸코 우유를 품에서 꺼냈다.

그러면서 조언을 해준 아저씨를 찾아봤을 땐 아저씨는 뭐가 그리 바쁜지 휘적휘적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얘, 이거  먹어볼래?”
아이에게  봉지와 우유팩을 건네줬지만 처음 보는 형식이라 아이는 이게 무엇인지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자, 이렇게 까서 먹는 거야.”
 봉지를 뜯고 우유 팩 주둥이를 열어서 아이에게 같이 먹는 시늉을 해 보이자 아이는 조심스레 빵과 초코우유의 냄새를 맡더니 우유를 먼저  모금 마셨다.

“달...다...”
초코우유의 단맛이 아이의 몸에 깊숙이 스며드는지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 이내 먹는 속도가 빨라지다가 갑자기 줄어들었다.
“왜 다 안 먹어?”
허겁지겁 반쯤 먹던 아이는 조심히 우유팩 주둥이를 닫고 빵 봉지를 접어 입구를 막았다.
“집에 동생이 있어서요.”

먹을 것을 줘서 어느 정도 경계심이 옅어진 아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자 아이의 입에서 몇가지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의 부모는 과거에 나름 지역에서는 자작농으로 먹고 살만한 위치였으나 점차 귀족들의 수탈이 심해지고 자작농에서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 같자 재산을 정리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수도로 옮겨 장사를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면서 산적들을 만난 나의 경우처럼 계속 이어지는 산적들의 공격에 신뢰도가 높다는 말에 큰돈을 지불하고 고용한 용병들이 하나둘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반절쯤 동료들을 잃은 용병단은 수도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결국 상황의 특수성을 근거로 하여 계약을 파기하고 도망쳤다고 했다.
그런 아이의 가족의 상황은 이주를 위해 준비했던 마차는 진작 부서졌고 말들은 산적들의 공격 도중에 사라진지 오래였다.

겨우 다섯 가족이 많은 역경을 경험하면서 마침내 조심조심 수도에 도착했을 땐 처분했던 재산은 오는 도중에 식량 값과 약값으로 써버려 얼마 남지 않았고 평소에도 몸이 약했던 아이들의 어머니는 수도에 도착하고 긴장이 풀렸는지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수도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돈을 벌면서 나름 최선을 다해 분전을 해봤지만 끝내 어머니는 그대로 세상을 떠났고 막냇동생은 어린 나이에 약한 면역력이 문제가 되었는지 당시 수도에 돌았던 감기 때문에 허무하게 고열로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아빠는?”
빵과 우유를 먹어 잠시 기운을 차린 아이는 내 말에  이상 설명하지 못하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 빵하고 우유는 동생하고 나눠먹으려고  먹은 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와 함께 집으로 가보자고 해서 간 그곳은 집이라고 하기가 뭐한 움막보다 못한 곳이었고 악취가 진동했다.
“언니야?”
‘여자애였어?’

거적데기같은  걷어 올리면서 움막 비스무리한 형체의 무언가에서 꾀죄죄한 아이가 나왔다.
“언니, 나 배고파.”
“이거 먹어.”
아이는 내가 자신에게 해줬던 것처럼 빵과 우유를 동생에게 줬고 아이는 이내 허겁지겁 먹어치우다 아이의 언니가 준 빵의 3분의 1정도 남았을 때 언니에게 먹으라며 줬다.
“언니, 이거 진짜 맛있다. 언니도 먹어. 난 배불러.”
“아냐,  많이 먹었어. 니가 다 먹어도 돼.”
아이는 여전히 허기져 보였지만 동생에게  먹으라고 넘겨줬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이런 곳에서 여태까지 살아남았는지 신기했다.
“아저씨랑 같이 가면 앞으로 매일 배불리 먹게 해줄게. 같이 갈래?”
10세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는 잠시 고민하는  같더니 나와 섀넌 그리고 호위 목적으로 데리고 다니는 용병단 일부를 보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데리고 임시 숙소로 사용하는 저택으로 데려오자 지저분한 머리 사이로 보이는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저씨, 혹시 귀족이에요?”

자기 언니의 손을 꼭 쥐고서 보따리를 품에  껴안은 아이는 겁을 먹은 것만 같으면서도우와를 연신 외치며 고개를 둘러 보느라 바빴다.
“아니, 귀족은 아니고 기업가야.”
“그게 뭐에요?”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냐면...얘들한테 날 뭐라고 설명하는  좋을까요, 섀넌?”

섀넌은 내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느 메모를 읽으며 저택을 관리하는 이들에게 아이를 맡기고 다음 일정을 하러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사장님, 아이들을 배려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오늘 사장님께서 해야 할 일정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일단 이곳의 사용인들에게 맡겨 놓고 일하러 가시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무표정한 표정의 섀넌은 휴머니즘 같은 것이 없는지 일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알았어요. 그럼  아이들 깨끗이 씻게 해주고 일단은 따끈한 수프부터 해주세요. 갑작스레 기름진 음식이나 소화하기 어려운 음식을 먹으면 체하거나 상태가 나빠질 수도 있으니까”
“지시해 놓겠습니다.”

섀넌의 독촉 때문에 난 이상하게 떠나기 어려운 발길을 돌려 공사장으로 움직여야 했다.

“사장님이 뭐야, 언니?”
“나도 처음 듣는 단어라서 사장님이 뭔지 잘 모르겠어. 근데 귀족이랑 비슷한 단어인가봐.”

로터스란 소녀는 이 집 곳곳에서 나는 향기도 신기했고, 이전에 자신의 집이 잘 살 때도 경험하지 못했던  부드럽고 하얗던 크림이 들은 빵이란 것과 초코 우유라는 것도 신기했다.

“아저씨, 착해 보인다. 그치?”
“그래.”

솔직히 이곳에 오기 전에는 더 험한 상황을 상상했다. 귀족들의 악행이나 탐욕에 대해선 들은 바가 많았으니까. 그러나 더 이상 먹을 것을 구하지 못했다면 자신보다 동생이 먼저 굶어 죽을 수도 있었다.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소녀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로터스가 자꾸 방 여기저기 돌아다니려는 동생의 손을 살며시 쥐고 앞으로 벌어질지 모르는 날들에 대해서 차분히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안으로 저택을 관리하는 것으로 보이는 복장을 입은 두명의 중년 여성이 들어왔다.
“너희들이 사장님이 데려 온 아이들이구나? 흠, 일단 씻어야겠다. 어후, 냄새가 참...사장님은 냄새나는 건 싫어하시는데...”
“아이고, 때가 꼬질꼬질하네. 가자.”

두명의 중년 여성을 따라  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하얀 공간에 물이 가득  있는 곳이 있었다.
“목욕탕에 몸을 담그기 전에 먼저 비누로 박박 씻어야 해.”

일을 마치고 저택으로 들어왔을  저녁이 늦어 아이들은 자고 있다고 했다.
“자요?”
“예, 따뜻한 물에 씻고 나서 스프를 적당히 줬더니 먹고나선 꾸벅꾸벅 졸려고 해서 양치질을 겨우 시키고 침대에 눕혔다네요.”

섀넌은 어느새 따로 준비했는지 저녁으로 서로 라면을 끓여 먹고 있는데 아까 듣지 못한 아이들의 뒷사정이 적힌 문서를 건네줬다.

아이의 아빠는 어린 아들과 부인을 잃게 되자 자신이 선택한 이주가 잘못된 결정이었다면서 혼자 되뇌이고 분노와 원망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일용직으로 버는 돈으론 세 식구가 어떻게라도 먹고  수는 있었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그때 친해진 일용직 동료의 꼬드김에 한탕을 노려보기로 마음먹고 도박장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후 몇 달 전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도박장에 있는 건가요?”
“주변인들 말로는 지방의 ‘무제한 숙식노동자’로 팔렸거나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높을 거라네요. 첫째인 로터스는 자신의 아빠가 죽은 걸로 알고 있고 동생은 멀리 일하기 위해 떠났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제한 숙식노동자요?”
“노예가 제국에서 금지되고  이후로 최근 고리대금업자들이 편법으로 대금을 받기 위해 지역 영주들에게 팔아치운 이들을 부르는 표현입니다.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을  주고 죽을 때까지 무제한으로 일을 시킨다고 해서 무제한 숙식노동자라고 한다고 하더군요.”

라면에 찬밥을 말아 먹고선 후식으로 코코아를 섀넌에게 타주자 코코아 잔을 두손으로 꼭 부여잡고 마시면서 섀넌은 문서엔 적히지않은 부분을 세세하게 이야기해줬다.
추가적으로 챙겨야할 업무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워서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고민하다 잠에 들었다.

“잘 잤어?”
씻고 옷을 갈아입힌 아이들은 마르긴 했어도 귀여운 외모를 가진 아이들이었다.
“네, 덕분에요.”
치마를 입은 첫째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저씨, 아저씨. 사장님이 귀족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야? 여기 아줌마들이 아저씨는 이 세상에 나타난 하늘의 구원자라고 하던데.”

천진난만한 둘째 로즈모스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사용인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 그건 아닌데. 딱히 구원자도 아니고.”
“아무튼  아저씨 덕분에 어제 저녁도 배불리 먹고 잘 잤어.”
“로모! 사장님께는 존댓말을 써야지.”
“알았어, 언니. 사장님. 저희는 잘 잤어요.”
동생에게 나직하게 첫째 로터스가 이야기하자 동생 로즈모스도 바로 받아들였다.

“제이 사장님, 저희가 앞으로 뭘 하면 좋을까요?
굳건해 보이는 로터스는 이곳에서 살고 싶은 것인지 내게 일을 시켜달라고 했다.
“음, 그 점은 나도 생각해 봤는데. 일을 시키기엔 너희들이 너무 어려서 말이야.”
“저희들은 어리지 않아요.”
쓸모가 없어서 자신들을 쫓아내겠다는 말로 오해한 것인지 로터스가 무릎을 꿇자 옆에서 맑은 미소를 짓고 있던 표정을 굳히고 로즈모스도 자기언니를 따라 똑같이 두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 그런 의미는 아니니까. 일단은 나한테 음악 교육 좀 받아볼래?”
우리나라의 아이들이었다면 평범하게 초등학교를 다녔을 법한 나이의 아이들에겐 교육이 필요했다. 음악교육이라는 말이 생소했는지  아이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쳐다봤다.
“그게 뭐죠?”
“음, 일단은 피아노랑 기타부터 배워보자.”


혹시나 싶어서 인벤토리에 준비해둔 피아노와 나중에 크로니클 단원들과 파티할  보여주려고 연습중인 기타가 드디어 쓸모를 찾았지 싶었다.

엘리스를 통해 음악을 위한 기초교육법을 다운로드받아 매일 출근 전 두시간  그리고 퇴근 후 30분간 로터스와 로즈 모스에게 음악교육을 시켰으나 로즈 모스는 악기보단 노래에 더 흥미를 보였다.
“잘하네?”
‘이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아이돌이라고 나오는 사람들 어릴 적 수준보다 나은 거 아니야?’
<음악교육이란 걸 제대로 받아본 적이 그다지 많지 않은 아이들이라는  감안하면 재능은 더 뛰어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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