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57화-문호개방(3)
지하주차장에 내려가 짐을 싣고 푸드코트를 갈까 하다가 백화점 가까운 곳에 있는 패스트푸드를 먹으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생각해보니 패스트푸드야 말로 자본주의적 상품의 마스코트 아닌가? 엘리스. 버거왕하고 맥트럼프 시가총액이 어떻게 돼?’
엘리스가 알려준 정보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맥트럼프의 시가총액은 약 176조원이었고 버거왕의 경우는 약 19조원이었다. 커피사업의 마스코트 격인 별다방의 경우는 105조원이었다.
트러플버섯버거 세트를 먹으면서 난 엘리스를 통해 그 찰나에 패스트푸드 산업의 형태에 대해서 공부했다.
‘그러니까 맥트럼프의 경우 패스트푸드라는 것에 걸맞게 빨리 음식이 나오는 시스템을 짠 것도 주효했지만 부동산업을 바탕으로 해서 프랜차이즈를 한 게 맥트럼프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주요인이었단 거지?’
<맞습니다. 땅을 매입하고 그 위에 지점을 세운 뒤 점주에게 땅을 임대하는 것이 맥트럼프의 조건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로 인해 맥트럼프가 점주에 대한 통제권을 지니게 되었고 부동산을 쥔 맥트럼프는 은행의 자본까지 끌어 들일 수 있었습니다.>
‘별다방의 사업방식도 같은 거구나.’
엘리스가 시신경으로 띄워서 보여주는 자료들을 보고 있자니 크로니클로 할 수 있는 사업의 영역이 정말 무궁무진하게 많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크로니클의 경우, 5년 전 크로니클의 도시들 내에서 사용하기 위해 전용 화폐를 만드는 주조소를 만들긴 했지만 은행 사업은 아직 도입하지 않고 있었다.
은행을 만들어서 저축을 유도하려고 해도 그동안 사람들은 주택융자금과 세금을 내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 살고 얼마가 남는 정도였을 뿐이니까.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노동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들에 비해 적은 세금을 내고 지갑이 두둑해진 상태였고 각자가 가진 돈으로 어느 정도 소비를 하도록 상점을 만들어서 소비를 유도하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크로니클의 화폐를 소모하려고 하기보다는 집에 저금하려고 하는 성향이 매우 강했다.
‘돈은 돌아야 그 힘을 크게 쓸 수 있어. 이제크로니클에도 은행이 필요할 때야.’
햄버거를 먹다가 크로니클에서 은행사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될 줄이야. 6개월 전의 취준생이었던 나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햄버거를 두 개나 먹었는데도 생각이 많아서 제대로 음미도 못하고 배만 채우듯이 먹어버렸네.”
버거를 다 먹고 콜라를 쭉쭉 빨면서 나온 나는 차로 이동하면서도 생각을 이어갔다.
‘금 세공업자가 사람들이 저금해둔 금을 다른 곳에 빌려줘서 은행의 개념을 만든 것처럼 더스트 행성에도 은행의 개념을 우리가 대신 해야겠어. 사람들의 자본을 끌어들여 그 사람들의 돈으로 사업을 가속화 해야겠다.’
중앙은행의 지급준비율을 이용하면 일정 부분만 은행에 남기고 나머지 자본을 투자하여 사업을 했을 때 실패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사람들에게 줄 이자율만 맞출 수 있어도 남는 장사가 될 것이었다.
<지급준비율의 가장 큰 장점은 금융정책의 수단으로서 사용가능하단 점입니다. 중앙은행을 세워 중앙은행을 통해 지급준비율을 조정할 경우 지급준비율을 높이고 낮추는 과정에서 시중 자금 수위를 조절할 수 있으니까요.>
‘지급준비율을 높이면 시중의 자금을 빨아들이게 되고 지급준비율을 낮추면 은행들은 시중에 자금을 풀게 돼서 물가 조절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거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친구들을 만나기 직전까지 준비를 하면서도 내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더스트에 중앙은행을 만들고 은행들을 만들어서 내 손에 쥘 수 있을까를 엘리스와 대화를 나누며 조율해갔다.
“아, 애들 만나는 동안은 잠깐 잊어야겠어. 너무 머리가 뜨겁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엘리스는 지구에서 벌어들인 자금의 일부 가지고 자체적으로 투자를 하고 싶다고 했지?”
엘리스는 자신이 주체적으로 투자를 하고 싶다고 했고 엘리스의 공으로 많은 이득을 보고 있는 나는 엘리스에게 지구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20%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대신 인류에게 피해가 가거나 불법적인 사업은 안되는 거 잊지 말고.”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믿는다.”
엘리스와의 대화를 마치고 난 친구들과 약속한 소고기집으로 들어갔다.
“이정후, 이 자식 너 요즘 뭐하는데 이렇게 얼굴에 기름이 좔잘 흘러?”
“만두야, 얘 봐라. 얼굴에 살이 쪽 빠져서 엄청 훈남 됐네.”
“너만 뭐 좋은 거 먹냐? 살은 빠졌는데 얼굴 때깔이 달라졌네. 무슨 피부샵이라도 다녀?”
친구들과 만나 인사를 하고 코트를 벗자 친구들은 요즘 뭐하길래 몸까지 이렇게 좋아졌냐고 물어봤다.
“너 요즘 PT라도 받냐? 옷 밖으로 근육이 뚫고 나올라고 그러네.”
“야야, 이런 좋은 가게에 데리고 와서 소고기 살 정도면 돈 잘 번다는 거지.”
“친구들아, 나도 좀 말 좀 하자.”
친구들의 입담에 도착하고 인사를 한 뒤 한마디 제대로 말도 못 꺼냈던 난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반가운 마음을 숨키지 못하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정후야, 후우, 많이 먹었다. 먹느라고 뭐 대화도 서로 못했네. 너 진짜 요즘 뭐하길래 이렇게 바빠?”
“많이 쳐 드셨죠. 이 돼지 새키들.”
“크크크, 이정후가 몇 년 만에 사는 밥인데 친구로서 이 정도는 먹어 줘야지.”
5명이서 소고기 값만 90만원이 넘게 나왔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취업준비생인지라 돈을 못 벌어서 직장을 먼저 구한 친구들은 항상 나를 배려해서 내가 지갑을 꺼낼 때마다 나중에 취업하고 크게 얻어먹겠다며 배려해줬다. 난 또 그게 점점 미안해져서 코로나를 비롯해서 갖가지 이유로 친구들이 부를 때도 나가기가 어려워졌다.
“그동안 얻어 먹은 게 있는데 니들한테 이 정도야 사줄 수 있어. 더 먹지?”
“오올, 쩡우~ 공격적으로 나오는데?”
“쩡우가 이렇게 당당한 게 몇 년만이야?”
“보기 좋다. 정후야.”
“자세한 이야기는 배도 좀 채웠으니까 좀 조용한 바에 가서 이야기하자. 2차 콜?”
전쟁같은 1차를마치고 내가 계산을 하려고 하자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카드를 들이밀었다.
“야, 오늘은 내가 낸다니까.”
“거, 이제 갓 취업했으면 옷 사고 뭐하고 돈도 많이 들텐데 사회 선배님들인 우리가 취업축하로 사 줄게.”
오랜만에 만난 순간에도 나를 배려해주려는 친구들의 대응에 살짝 감동을 받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카드들을 밀쳤다.
“됐거든? 내가 2차 가서 이야기 해줄테니까 카드들 치워. 니들 고기 먹일 돈은 충분하다.”
“성우야, 내가 뭐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쩡우 입에서 지금 이런 소릴 듣는 날이 다 오다니.”
“기우야, 너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카운터에서의 기분 좋은 실랑이를 마치고 승자가 되어 지불한 뒤 2차로 조용한 칵테일 바로 이동했다.
“많이 나왔냐?”
“한 100만원 가까이 나왔을 것 같은데?”
“역시 대기업 원가팀에 다니는 골룸은 달라. 딱 보면 대충 견적이 보이냐?”
“뭐, 대단한 거라고. 우리들 근데 많이 먹긴 했다.”
소고기 집 근처에 있는 칵테일 바로 이동한 우리는 자리를 잡고 각자 취향의 칵테일을 골랐다.
“그래, 정후야. 너 요즘 뭐하는데 이렇게 바빴냐?보니까 돈도 좀 잘 버는 것 같은데.”
“나, 요즘 사업해.”
“사업? 무슨 사업? 너 5개월 전만 해도 무슨 사업한단 이야기 안 했잖아.”
“아버지 사업 다시 시작하셨어?”
“아, 그것도 맞긴 한데 정확히는 조금 달라.”
친구들에게 한잔씩 하자고 한 뒤 난 설명을 시작했다. 귀금속상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사업이 잘 되었고 이제는 장인분들을 모아서 시계까지 영역을 진출해보려고 한다고.
“설마 지금 니가 차고 있는 시계가 그거야?”
“한번 구경 좀 해보자.”
시계를 풀러 친구들에게 보여주자 취업을 하고 번 돈으로 가장 먼저 산 게 시계였을 정도로 시계에 관심이 많은 만두가 그 가치를 가장잘 알아봐 주었다.
“야, 이거 처음 보는 브랜드인데도 때깔이 좋은 게 싸구려가 아니네. 짭도 이 정도면 특 a급인데. 혹시 이거 오토매틱이야?”
“만두야, 그거 좋은 거냐?”
“최상위급 라인은 나도 제대로 구경해본 적 없어서 모르겠는데 이 정도면 못해도 상위급은 될 것 같은데? 이거 어디서 가져오는 거야? 스위스? 일본? 싸구려 오토매틱은 시계 침이 움직이는 소리도 소리고 이렇게 초침이 물 흐르듯이 움직이지도 않거든.”
만두는 시계를 귀에도 가져다 대보고 시계의 초침이 흘러가는 모양을 보기도 하고 각 버튼을 눌러서 기능을 확인해보더니 내게 질문을 해왔다.
만두의 설명을 들은 친구들은 시계를 건네받더니 각자 만두의 설명에 따라 시계에서 소리가 나는지를 확인해 보기도 하고 초침이 움직이는 걸 보기도 했다.
“이걸 팔겠다고? 얼마에 팔 건데? 가격대 설정만 잘하고 마케팅만 잘 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만두의 말에 기분 좋아진 난 준비해온 쇼핑백에서 4개의 상자를 꺼냈다.
“각자들 하나씩 줄 테니까 만약 이걸 팔면 어떻게 팔면 좋을지 한번씩 생각들 좀 해볼래?”
“무슨 의미야?”
“나 좀 도와줘. 이번에 ‘드워브스’라는 브랜드를 이제 만들고 시작하려고 하는데 믿을만한 사람들 하니까 니들이 먼저 떠오르더라고. 나만 잘되는 것보다 너희들도 같이 잘되면 좋잖아. 너희들이 나랑 같이 하겠다고 해주면 내가 마진 많이 안 남기고 거의 원가로 넘겨줄게.”
친구들을 배려해서 도와달라고 표현했지만 친구들은 시계를 만지작거리면서도 선뜻 오케이를 외치진 못했다.
“좋은 제안 같기는 한데 고민된다.”
“바로 여기서 결정해 달라는 건 아니고, 시계도 안 돌려줘도 돼. 어차피 너희들 주려고 챙겨온 거니까.”
“간만에 만났는데 이직 이야기라 너무 이야기가 무겁네.”
“미안 미안.”
10년이 넘게 뭉쳐 다니면서 내가 힘들 때도 함께 해줬던 친구들이라 나도 보답하고 싶었다.
“각자 전문가한테도 물어보고 고민한 뒤에 연락 줘도 돼. 당장 어떻게 대답을 달라는 건 아니니까. 아무튼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니들 사는 이야기도 좀 들어보자.”
이야기를 돌리고 메뉴를 더 추가하고서야 취업한지 이제 2년 정도 되어가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야, 우리들 그때 생각 나냐?펜션 잡아 놓고 놀러가서 실컷 고기 구워먹고 분위기 좀 잡겠다면서 포도주는 사왔는데 정작 오프너가 없어서 그거 먹겠다고 쌩으로 쑈했던 거.”
“아, 그때! 하필이면 펜션 사장님도 어디 가서 오프너 빌릴 곳도 없어가지고 열어보겠다고 젓가락으로 꼽고 별 짓을 다했는데.”
“그때 마신 포도주가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포도주였다니까.”
“마트에서 파는 흔한 싸구려 포도주였거든?”
“고진감래(苦盡甘來) 모르냐 고진감래!. 개고생하고 마시니까 달았다는 거지.”
“그 포도주가 원래 좀 달아.”
“그러냐?”
어느 정도 배가 차고 술에 취한 친구들끼리의 몇 번이나 반복된 추억이야기었지만 우리들 사이에선 웃음꽃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