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6화 〉56화-문호 개방(2) (56/239)



〈 56화 〉56화-문호 개방(2)

동생을 훈련시켜 주고 싶은 내 애정 어린 마음과 다르게 동생은 내가 맡겨놓은 일들 때문에 바빴다. 얼마나 바쁜지 대화 중간중간에도 전화를 받고 일을 처리해야 했다.

“저번에 챙겨준 윤활유는 갑자기 왜 구해달라고 그런 거야?”
“아, 그거? 이거 때문이지.”

동생의 질문에 내 오른쪽 손목을 들어 보이자 동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계? 오토매틱? 엄청 고급져 보이는데?”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법들을 계속 알려 줬더니 드워프 노장인들이 또 새로운 거 없냐고 찾더라고.”
“그래서 시계 제작도를 보여줬어? 저번에 가져다  보석들 세공 수준도 이젠 지구보다 높은  같아 졌던데? 엄마한테 형이 챙겨준 거라고 목걸이랑 반지 세트 챙겨 드렸더니 좋아하시더라.”
“그랬어? 분명히 엄마한테 따로 챙겨 드리라고  걸로 드린 거지?”
“형이 꼭 엄마한테 주라고  보석들은 안 팔고 따로 빼놨지. 아무튼 시계 이야기나  해봐.”
“전자식 시계는 설계도를 보여줘 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기계식 시계들 디자인이랑 설계도를 출력해서 보여줬더니 눈이 뒤집어지더라.”

노장인 드워프들에게 시계 디자인과 견본품을 보여줬을 때 반응은 플레이트 아머의 개념과 디자인 그리고 설계도들을 보여 줬을 때 반응 이상이었다.

“정후 사장,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 꺼내놓지 그랬나?”
‘그동안은 보여 드리려고 해도 개발해야 되는 물건들이 많았으니까 여유가 없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보여 드렸잖아요.”
“스톤 이 복잡한 설계도를 봐봐. 이 추가 움직이면서 동력을 발생시키는 방식인 것 같은데?”
“흥미롭군, 근데 당장 우리가 처음부터 만들기에는 이 태엽식 방식이 더 좋을 것 같아.”

흥분한 상태의 드워프 노장인들은 견본품과 디자인 그리고 설계도들을 챙겨서 자기들의 공동공방에 틀어박혔고 노장인들은 제대로 씻지도 않으며 한달이 넘게 나오지 않았다.

“정후 사장, 이 정도면 드워프가 만든 물건이라고 소개해도 어디 가서 보여줘도 꿀리지 않을 거야.”
“정후 사장이 가져온 것보다 훨씬 아름답지 않나?”

드워프들이 가져온 시계는 어떻게 한 것인지 금과 각종 금속들이 한데 어우러져 미적으로도 충분히 사치품으로 지구에서 팔아도 괜찮을 것처럼 느껴졌다.

‘엘리스, 이 제품 어때?’

‘그럼 팔기에는 좀 그런가?’


엘리스의 설명을 들은 난 드워프들에게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크로니클의 새로운 주력상품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암, 우리가 누군데?”
“누구긴 매번 정후 사장한테 넘어가서 박박 구르는 호구들이지.”
“골드 아저씨...”
“신경 쓰지 말게, 골드가 저러는  하루 이틀인가?”
아저씨들은 바람처럼 왔다가  가지 피드백을 받고 업그레이드는 나중에 하겠다고 한 뒤 맥주나 마시러 가야겠다면서 자리를 떠났다.

“이건 그때 피드백을 받고 몇 단계 업그레이드 된 거야. 앞으로  시계들이랑 저번에 보석류랑 같이 브랜드는 ‘Dwarves'로 네이밍해서 팔자.”
“말이 팔자지. 팔아 아니야?”
“뭐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지? 니가 팔라고 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께 한번 이야기 드려봐. 아버지도 이제 일개 보석상 점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보석을 파는 기업의 사장님 자리를 맡아보실 때도 됐지.”
“일단 내가 하라는  아니지?”
동생은 아버지가 할 일이라면서 자신이 또 뭘 맡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다.

“너 근데 연애하냐?”
“응?”
가만히 동생을 유심히 지켜보니 패션과 헤어스타일이 이전과 어딘가 달라진 게 낯선 여자의 개입이 느껴져서 질문하자 동생은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아니, 그게...”

동생이 머뭇거리는 찰나 전화가 걸려왔다.
“뭐해, 받아.”
전화를 받을까 말까 머뭇거리던 동생은 자리를 떠나서 받으려고 했고 난  그렇게 숨길게 있냐면서 그냥 내 앞에서 받아도 된다고 했다.

“형, 지금부터 보여주는 모습은 나의 또 다른 자아같은 거야. 그러니까 너무 이상하게 보지마.”
“뭐래?”
난 동생이 말한 의미가 무엇인지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터져나온 동생의 역한 모습에 단번에 이해했다.
“여봉봉~ 나눈~지금 형이랑 같이 있지요~”
‘엘리스, 지금 쟤랑 통화하는 거 누구야? 내가 아는 사람이야?’

동생의 역겨운 모습에 얼굴을 찌푸리고 통화 상대방을 물어보자 엘리스가 대답해줬다.

‘나도 못하고 있는 연애를? 심지어 사내연애? 것보다 그때  분이랑 잘 된 거라고? 이런!’

“응응,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요~ 자기도 밥  챙겨 먹어요~  이따 봐요~”
“동생아, 정말 보기에 추하다.”
 타박에도 불구하고 안면에 철판을 깐 듯 동생은 꼿꼿하게 대답했다.
“쯧쯧쯧, 형도 연애도 좀 하고 그래라. 우리가 일 하는 이유가 뭐야. 행복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틀린 말은 아닌데 방금 전까지 역한 목소리를 독가스 살포하듯 내뿜던 내 동생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큼큼, 원래 연애는 좀 닭살스럽고 그런 거야. 연애를 제대로 해봤어야 알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난 일 보러 나간다.”

동생은  말을 끝으로 자연스럽게 손가방을 챙기더니 집 밖으로 나갔다.
“저...저...저! 저 자식이! 누군연애 안하고 싶어서 안하나 너무 바빠서  틈이 없어서 그랬지.”

“엘리스?”

“그만해라. 갈비뼈 으스러졌어.”

그같은 팩특 폭격의 헤프닝을 뒤로 하고 간만에 여유를 즐기려고 했다. 하지만 5년간 워커홀릭이자 수련중독자로서 살아온 습관은 놀랍게도 노는 법을 잊게 만들었다.
“게임은 한동안 안했더니 패치가 많이 되어서 알던 거랑 달라져서 뭐가 뭔지 몰라 지루하고 TV는 뭐 무슨 드라마인지 앞부분을 안 봐서 내용 파악이 안되고... 나, 뭐하지?”

얼마 전 오른 차원이동 능력의 결과로 15일이던 쿨타임 기간이 3일이나 줄어 12일로 바뀌었지만 12일간 뭘 하고 놀면 좋을지 막막해졌다.
“8일 뒤에는 크리스마스인데 나 이럴거면 왜 넘어온 거지. 엘리스 뭐하고 노는 게 좋을 것 같아?”

“어?”

엘리스의 질문에 뼈를 맞은  심리적 충격이 느껴졌지만 이내 저번에 만나자고 했는데도 요즘 일이 바빠 안된다고 미뤄뒀던 친구들과의 모임이 생각났고 친구들을 불러서 보기로 마음 먹었다.

“성우야, 어, 난데? 지금 출장 중이야? 눈치 보여서 통화 길게 못해? 어, 알았어. 나중에 통화하자.”
“만두야! 인마, 나야! 무슨 일이냐고? 보험 다 가입했다고? 아니야, 내가 너한테 보험 팔려고 전화했겠냐? 아니, 그럼 결혼하는 거냐고? 뭔 소리야. 만나는 사람도 없는데 무슨 결혼을 해. 알았으니까 이따 퇴근하고 연락하자고? 어어..”

이후로도 몇몇 친구들하고도 연락을 했지만 다들 각자의 사정이 바쁜지 친구들과 갑자기 만날  있는 녀석들이 없었다.

“엘리스...나 친구 없어졌나봐. 어떻게 하지?”
엘리스는 내 말에 5년 만에 처음으로 응답하지 않았다.
“엘리스? 꺼졌나? 바빠?”

잠깐의 해프닝이 지나가고 친구들은 각자 퇴근을 한 뒤 SNS로 연락을 해 왔다.
-만두:난 정후가 너무 바빠서 진작에 친구들을 다 잊어 먹은  알았지.
-성우: 너도? 나도! 뭔 전화를 할 때마다 바쁘다고 나중에 하래. 누군 일이 없나
-골롬: 지만 바쁘냐고? 도대체 어디 취업했는지 말도 안해줘.
-기우: 저번에 우리들이 지 생각해줘서 일부러 지네 동네 가서 놀자고 했는데도 안 나왔잖아. 그때지후가 전화 받았지? 형 농사 지으러 갔다 그랬나? 내가 이야기 듣고 어이가 없어서. 동생한테 그딴 말도 안되는 핑계로 둘러대라고 한 건가 싶을 정도였다니까.
-나: 친구들아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친구들: 우리 단톡방에 끼어든 그쪽은 누구시죠?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나누고 하루동안의 비용은 내가 모두 책임지기로 하고 2일 뒤 주말에 얼굴을 보기로 했다.
“예약은 다 했고, 옷은...아 겨울 옷이 마땅한  없네. 친구들 본다고 여름 정장을 입고 만날 수도 없고.”

한층 업그레이드된 몸에 맞춰 입을 겨울 옷이 없어서 쇼핑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후후후, 개처럼  돈을 한번 정승처럼 써 보러 가볼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5년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잠자는 시간 6시간 빼곤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면서 일했잖아.”

“그건 맞지.”

엘리스와의 대화  차를 끌고 백화점에 가면서 5년간의 기억들에 잠겼다.
“힘든 시간들이었지. 암”

차를 주차하고 올라가자 취업준비생일 적에 용돈이 풍족하지 못해서 3년 전에 사 두었던 겨울옷을 꺼내 입고 나만 시대에 뒤쳐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두둑해진 은행 잔고가 나의 자존감을 지켜 주고 있었다.
“이게 후줄근한 복장을 입고 다니는 건물주의 마음이란 걸까?”


백화점을 들어가면서 나처럼 후줄근한 옷을 입고 찾아온 손님들에게 박대하는 점원들이 있을까 싶어 내심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길게 이어진 전염병 사태가 백화점을 찾아오는 손님들의 숫자를 급감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는지 전반적으로 한산한 백화점 코너들을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옷이 있을 때서 들어갈 때면 점원들은 여지없이 친절하게 응대를 해줬다.

“손님, 취업하셨나 봐요?”
“네?”

점원의 설명에 따르면 취업준비하면서 공부만 하는 청년들 중엔 종종  구매를 미뤄 두었다가 취업에 성공하고 나면 직장생활을 하면서 입을 겸 캐쥬얼한 옷들을 구매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었다.
“뭐 비슷합니다.”
“이런 불경기에 취업을 하시다니 능력이 좋으신가봅니다. 손님같은 경우는 키도 크시고 몸도 늘씬하시니까 이런 스타일의 복장을 입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예상 외로 친절한 점원들의 대응에 들어가는 곳마다 들어간 코너에서 내가 생각하기에도 괜찮아 보이는 옷걸이에 거의 권하는 상품 대부분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구매하게 되었다.
‘너무 과소비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내 생각은 다시 크로니클로 이어졌다.
‘앞으로 지점을 만들 땐 이런 백화점 형식을 도입해서 건물을 짓고 거기에 지금 내가 받은 고객응대 서비스를 도입해야겠어.’

오래간만에 쇼핑은 기분 전환에도 도움되었을 뿐 아니라 크로니클 도시에서 벤치마킹할만한 요소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돌아다녔더니 출출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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