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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화 〉54화-잠자는 용의 대지(4) (54/239)



〈 54화 〉54화-잠자는 용의 대지(4)

섀넌은 얼마  이정후 사장이 보여준 벌집 모양의 도시 배치도가 떠올랐다.
“해변의 도시 버크, 강철의 도시 요크, 목화와 쌀의 도시 드마코, 목축의 도시 에디나, 자연의 도시 코엘, 환희의 도시 빅터. 이렇게 6개의 도시들을 중심도시 크로니클을 기준으로 해서 육각형 모양으로 세울 겁니다.”
“환희의 도시는 지금 베가스 마을 위치네?”
“맞아요, 외부로부터 찾아오는 이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자신들의 돈을 쓰게 될 겁니다.”
“이 도시들은 잇고 있는 두꺼운 선은 뭡니까?”
“도로와 함께 철도라는  만들어 도시를 유기적으로 연결할 거예요. 서로가 생산하는 원료를 물건으로 만들어 쉽게 교류를 할  있는 구조를 만듦으로써 상호보완적 구조를 갖도록 할 겁니다.”

크로니클의 단원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딴 크로니클의 도시가 세상을 바꿀 7개의 핵核이 될 것이라는 것이 주는 감상에 빠져들었다.
세상에는 이런 기준으로 도시를 만든 역사가 없었다. 한 가지에 특화한 도시 7개를 묶는다는 발상은 너무나도 신기했다.

이정후는 실제로 자신의 발상에 맞게 그 뒤 해변의 도시로 이어지는 철도와 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해변의 도시는 바다에서 소금을 생산하여 세상에 퍼뜨리는 시작점이자 아름다운 풍광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놀러오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 보죠.”

철도가 이어지는 동안 해변의 도시 버크의 바닷가에는 ‘염전鹽田’이라는 곳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소금을 만드는 밭이라는 게 정확히 무슨 의미지? 잘 이해되지 않네”
“아! 그동안 대륙인들은 암염을 먹었죠?”
“소금은 산에서 캐는 게 상식이지 않나?”
“아니요, 소금은 바닷물에서 나는 게 상식입니다. 그곳에서 소금을 캘  있었던 것은 거기가 예전에 바다였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세상이 달라서인지 소금이 어디서 나는 것인지에 대한 상식조차 달랐다. 일반적으로 암염을 먹을 일이 없어 정제염 혹은 천일염만 먹어본 나에게 소금은 바다에서 나는 것이 상식이었으니까.

“정후 군, 정말 바다의 그 짜디짠 물이 진짜 소금물이었단 의미인가?”
“네, 우리는 태양빛의 힘으로 그 바닷물을 말려 소금을 만들어 낼 거예요.”
“믿을 수가 없네!”
“말도 안되는 소리같아요. 아무리 짜다고 해도 그걸 말린다고 소금이 되나요?”
“네, 됩니다.”

섀넌은 이정후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소금을 알라야히마 산맥 중 ‘하얀 산’이 아니라 바다에서 만들어 낸다니 다크엘프들이 들으면 놀랄 이야기였다. 섀넌의 표정을 읽은 정후는 눈으로 보게 되면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 직접 눈으로 보세요. 거짓말이 아닙니다.”

천일염은 크게 토판염과 장판염으로 나뉘는데 토판염의 경우는 흙바닥에서, 장판염은 친환경 PVC나 타일 등을 깔아 매끈한 바닥에서 만드는 소금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자염(煮鹽)이라고 해서 장작불에 끓여서 소금을 생산해냈지만 이 자염의 경우 천일염보다 상품적으로 뛰어난 가치를 가진 소금이긴 해도 끓이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장작이 필요하여 환경오염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생산단가도 치솟아 오르는 단점이 존재했다. 반면에 천일염은 생산단가가 낮고 자연의 힘을 빌리는 것이므로 자염보다 대량생산을 하는데 적합했다.

문제는 최근 지구의 바다가 오염됨에 따라 천일염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해양이 전설로 남겨졌을 정도로 해양의 활용도가 아직까지 전무하다시피한 상황이라 바다가 태초의 바다처럼 깨끗했다.
또 처음 이 세계에 나왔을 때 2주간 있었던 해변을 관찰해본 결과 이곳은 지중해성 기후였고 해변의 일부는 모래성분이 많은 갯벌이라 ‘게랑드 천일염’을 만드는 곳과 비슷한 환경이 준비되어 있었다.
풍부한 일조량,건조한 날씨, 적당한 바람의 삼박자까지 맞아 떨어지는 그곳은 지구에서 만들어지는 게랑드 천일염과 비슷한 소금을 생산해내기에 딱 맞아 떨어지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미네랄과 마그네슘까지 풍부한 천일염을 만들어 나중에 한국으로 가져간다면 팔아도 괜찮은 상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아니지.’

동양에선 소금素金, 흰색의 금으로 불렸고 서양에선 로마시대부터 월급으로 제공한 salarium(소금)에서 유래하여 샐러리맨(salary man)이 월급쟁이를 의미하게 한 인간의 생존필수품.
이곳에선 소금이 충분히  정도의 힘을 지닐 수 있었다.


“이게 그 바닷물에서 만든 소금인가요?”
“지금 당장 먹을 순 없고 창고에서 2년 정도 숙성을 시켜줘야 합니다.”
2년간 간수를 뽑아 마대에 넣고 바람이 통하는 틀 위에 올려놓고 한번 더 간수를 뽑아주면 염도는 83% 정도로 그렇게 짜지 않으면서 단맛이 나는 소금을 얻을 수 있다.

“소금을 숙성시킨다구요?”
섀넌이 듣기에는 소금을 숙성시킨다니 짠맛이 나는 것이 분명 소금이라고 우긴다면 우길  있을지 몰라도 이 물건은 소금이라고 팔기엔 쓴맛이 나서 틀렸다고 생각했다.
‘억지를 부리는군. 이렇게 맛없는 건 소금이라고 할 수도 없어.’
“2년 뒤에 맛보면 지금하고 생각이 달라질 걸요?”

섀넌은 자신의 생각이 저 남자에게 읽힌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인간이 만든 지혜와 시간의 마법이 만났을 때 어떤 효과를 일으킬지 기대해도 좋아요.”
“자신만만한 걸 보니 기대해 봐도 괜찮겠군요.”

그렇게 해변의 도시 버크에서 염전을 만든 나는 이곳에서 일할 노동자의 임금은 기존에 크로니클이 정한 최저임금보다  높게 주고 하루에 일정 시간 이상 과도하게 노동을 시킬  없도록 금지했다.
“많이 일을 시켜서 소금을 많이 만들수록 돈을 더  수 있지 않나요? 제이 사장.”
“만드는 사람이 불행한 물건은 만들면 안 됩니다.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이걸 사는 사람도 행복하게  수 있어요.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물건을 쓰면서 편하고 행복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섀넌은 이 남자의 말이 너무나 신기하게 들렸다. 돈을 벌기 위해 염전이란 걸 만들어 냈으면서 만드는 이가 불행해선  된다는 말은 이율배반적으로 들렸다.
“돈을  벌고 싶어서 이렇게 염전을 만든  아닌가요?”
“제가 돈만 벌고 싶은 거라면 굳이 염전 말고도 벌 방법은 많아요. 소금은 생명체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상품입니다. 난 그걸 저렴한 가격으로 더스트 사람들 모두에게 공급하고 싶어요. 소금을 파는 걸로 돈을 버는 건 그냥 부수적인 겁니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면서 쉬는 날 공장에 데려가서 공장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을 보여주며 강조하신 것이 있었다.
“좋은 물건을 만들고 싶다면 만드는 사람이 착취당해선  돼. 돈만 보면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된단다. 돈은  벌어도 돼. 사업을 할 거라면 사람을 남겨라.”

아버지의 사업이 강자의 횡포에 의해 부득이하게 폐업신고를 했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도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아버지에게 종종 연락하면서 술자리도 하고 같이 놀러도 다니면서 지내셨던 걸 보면 아버지의 사업은 사람을 남겼던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의 자식인 제가 듣고 본 것이 있는데 사람들이 피눈물을 쏟는 걸 보면서 돈을 벌  없습니다.”
‘이 남자가 꿈꾸는 세상이란 건 도대체 뭐지?’

섀넌은 귀족들이라든가 엘프들이 기록한 인간들의 역사와 자신들이 보고 경험했던 피해 엘프들의 말과는 다른 이 남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도시 버크를 떠나면서 시나브로의 직원들과 함께 새롭게 만들어지는 철길을 보았지만 이것도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귀한 철을 왜 바닥에 까는 건가요? 이걸로 무기와 전쟁을 할 물자를 만든다면 당신은 제국보다   땅을 차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코엘 사촌동생은 다른 의미로 미쳤네. 돈에 미친 건가 싶었는데 틈만 나면 돈돈 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야심 많은 전쟁광인 건가?’

섀넌이 시험 삼아 던지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오해한 정후는 섀넌의 질문에 차갑게 대답했다.
“피로 일어선 자는 피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과정에서 거대한 제국을 만들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건 제가 만들고 싶은 세상이 아닙니다. 그렇게 일으켜 세워봐야 몇 대도 못가고 무너지겠죠. 하지만 쇠로 무기를 만드는 것보다 이렇게 쓰는 것이 더 많은 이들의 삶을 바꿀 수 있어요.”
“당신이 만들고 싶은 세상은 어떤 모습이죠?”
“자신이 노력한 대가만큼 얻어가는 세상. 누군가가 타인을 착취할 수 없는 세상. 태어난 자들 모두가 미래를 상상하며 꿈을 꾸는 세상.”
“전설에나 나올 법한 꿈만 같은 이야기네요.”
“그걸 만들기 위해 지금 이렇게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이정후와의 대화는 한동안 그걸로 끊겼다. 이정후는 자신에겐 차갑디 차갑게 굴면서 크로니클 단원들과 있을 땐 한없이 밝고 편안해 보였다.
'저렇게 차갑게 구는 남자랑 도대체 어떻게 친해지라는 거야?'

약속한 5년의 시간이 내가 벌였던 많은 일들로 인해 빠르게 지나갔다. 1년에  번 정도 간혹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만 지구로 건너갔고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서 여러 사업과 수련을 하며 바쁘게 보내야 했다.
지구로 넘어가면 이곳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점차 바뀌어 가는 이 곳의 도시의 풍광들을 볼 때면 마음이 들뜨고 더 많은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싶은 열정이 피어 올라서 지구에 가만히 앉아 쉬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해변의 도시 버크에서 만들어진 소금이 드디어 숙성과정을 마치고 판매할  있는 상품이 되어 차곡차곡 쌓여가고 강철의 도시 요크에서 만들어지는 강철들은 철도를 까는데 소모되었다.

목축의 도시에선 인간들의 거주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소, 돼지, 양,   다양한 동물들이 대량으로 구역별로 나눠져서 방목되어 앞으로 필요한 육류의 소비를 감당하기 위한 준비가 끝이 났다.

목화와 쌀의 도시에서 생산되는 쌀은 7개의 도시에 사는 이들의 식량을 책임지고도 몇 년을 먹어도 남을 정도가 매년 생산되기 시작했고 목화는 옷감이 되어 재봉틀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에 의해 판매가치가 있는 상품이 되어 7개의 도시에 뿌려졌다.

환희의 도시 빅터는 외부에서 들어온 이들의 신상을 전부 등록하고 앞으로 이곳을 방문할 귀족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낼 준비를 마쳤다.

자연의 도시에선 포도주와 이를 증류한 꼬냑과 같은 증류주 그리고 향수와 고급비누를 만들어서 쌓아두었다.

그리고 중심도시 크로니클의 이름은 6개의 도시를 잇는 허브로써 5년간 이곳의 삶을 사랑하게  사람들에게 불려온 애칭 ‘제이’로 바뀌었다.

“이건 대한민국의 어느 기업가들도 받지 못한 영예지. 내 이름을 딴 도시라니!”

대신 크로니클은 7개의 도시를 하나로 통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꿈의  크로니클은 그렇게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제이 시장님, 이제 연설하실 시간입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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