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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화 〉51화-잠자는 용의 대지(1) (51/239)



〈 51화 〉51화-잠자는 용의 대지(1)

마을을 건설하려고 생각했을 때 식량자급도가 차후에 도시를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지킬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내가 일으킨 사업들이 이 세상의 기득권들의 이권을 건드리면 아무리 뛰어난 물건을 만들더라도 마을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 오면 어쩔 수 없이 값싸게 넘겨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쌀은 좁은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밀보다 많은 생산량을 생산하기에 좋은 작물이거든요. 더구나 여기는 수량도 풍부해서 ‘모내기 농법’을 시행하는 데에도 유리하구요.”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쌀을 생산하는 지역과 밀을생산하는 지역의 인구밀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있었다.
쌀농사는 이앙법(移秧法)이라고도 하는 모내기 농법을 사용하면 건답직파(乾畓直播)라고 해서 그냥 맨땅에 씨앗을 뿌려 얻는 것보다 더 높은 소출을 얻을 수가 있고 심지어 훨씬 적은 노동력을 투입해서 대량의 쌀을 생산할 수 있어 생산량을 훨씬 높일 수가 있었다.
조선시대 상품경제를 도입할 수 있는 계기일수도 있었던 농법이 바로 이 모내기 농법이기도 하다. 모종의 이유로 갑자기 정조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중상주의重商主義가 꽃피울 수도 있었겠지만 역사엔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야 사람들이 뭘 사든 팔든 하니까요.”
“그거야 그렇지.”

정후의 설명을 들은 모두는 정후가 그리는 그림이 자신들의 생각보다 더 거대한 것 같다는 느낌이 단순히 느낌에 그치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정후야, 니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이 무슨 의미로 들릴 거라고 생각해?”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을 보고 오해한 나는 이해를 돕기 위해 내 꿈의 일부를 풀어서 설명해야할 필요가 있다 싶었다.
“이번 일은 단순히 소작농을 구제하기 위해서만 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험가잖아요. 새로운 걸 찾아서 떠나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원하는 크로니클이란 모험가. 새로운 방식의 모험을 이 세상에 전파하고 싶어요.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를 경험하는 모든 이들을 모험가로 만들고 싶습니다.”

모험가 집단의 크로니클 단원들은 내가 하는 일이 어쩌면 새로운 형태의 모험일  있다는 발상에 놀라워했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들을 경험한 이들의 삶은 이전과 다른 식으로 빠르게 바뀔 것입니다. 모험가들이 참여하는 영역이 ‘프리’ 길드장이 만든 모험가 길드에 의해서 넓어졌던 것처럼 우리는 모험에 대해 정의를 한번 바꿔보죠.”
“새로운 것을 시도하여 모험가들이 아닌 이들에게도 모험을 하는 경험을 준다?”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이란 제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던 것처럼 나도 앞선 지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선지자(先知者)가 될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선 날 뽑아주는 기업이 없었지. 그렇다고 딱히 특이한 발상도, IT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자본도 없던 나는 스타트업을 할 수도 없었어. 그러나 지금은 달라. 그저  좋게 차원 이동능력을 얻은 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뒤바꾼 기업가 이정후로  세상에 이름을 남기겠어.’

“그러기 위해선 도시의 근본부터 새롭게 구상되어야  필요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귀족들이 지배하는 성의 구조로는 제가 구상하는 기업을 만들 수도 없고 만들더라도 그저 상단의 다른 형태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정후가 그리는 밑그림이 어떤 식인지 설명을 듣고 꿈을 엿본 단원들은 정후의 말에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들뜨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한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평범한 개인들이 모여 직접 도시를 만들고 ‘나라’를 만드는 일에 대해서는 그저 귀족들의 일이라고만 여겼다.

“범죄를 저질러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혀서 자신의 이익을 사사로이 탐하는 자들이 아니라면 종족과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모두에게 열린 도시로 만들 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저 혼자선 불가능에 가깝겠죠. 그래서 여러분들의 도움이절실해요.”
“7명의 크로니클이 벌이는 두 번째 모험이 사실은 소작농의 구제로 그치는 수준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한 도시 건설이었군요.”
‘어쩌면 나라일 수도 있는’
“이거야말로 레전드급 모험가 단체인 크로니클에 걸맞은 수준 아니에요?”
“누군가 주는 임무만 받기에는 우리 수준이 높긴 하지. 자잘한  밑의 모험가 집단들에게 넘겨주자. 정후의 말처럼 우리가 세상 모든 사람들을 모험가로 만들어 보자.”

서로 눈빛이 오가고 우리의 심장이 웅장해지기 시작했다.

몰려드는 사람들은 바로 크로니클 마을로 들어올 수 없었다.

크로니클 마을에서 50km 정도 떨어진 지역에 출입관리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시마을을 건설하였다.

엘리스의 도움을 받아 지문날인이 가능한 스캐너를 만들고 이주를 원하는 자들의 신상에 대한 임시 신분증을 제작했다.
이에 대한 데이터를 사람들은 모르게 인트라넷을 만들어 업로드를 하도록 하게 만들었다.

“제이크 18세 ‘와처 마을’에서 이주, 맞습니까?”
“내가 왜 그런 것까지 말해야 하지?”
“이곳에 입주하는 자들 중 불순한 이들의 이주를 막고 마을로 들어오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본인이 이주를 원하지 않는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니, 꼭 이주를 원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고.”
제이크가 괜히 뻗대면서 툴툴거리자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마을 주민들이 한마디씩 했다.
“제이크, 잡소리하지 말고 빨리 물어보는 대로 대답해. 어차피 이곳으로 이주하고 싶어서 와놓고 왜 이제와서 그러는 거야!  때문에 우리 줄만 밀리고 있잖아!”
“알았어, 알았어. 말하면  거 아니야. 맞아. 됐어?”
“여기 구체를  손가락을 펼쳐서 잡으시오.”
“이..이렇게 하면 되나?”

제이크가 구체에 손을 얹고 몇초가 지나자 구체에 초록빛이 떠올랐다.
“임시 거주 대상자, 제이크 18세. 한가지 조언을 해드리자면 마을 내에서 업무를 보는 이들에 우호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마을에 악영향을 미치는 행동이 계속될 경우 마을의 법에 의해 판정하여 정도에 따라 벌점이 주어지고 벌점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마을에서 영원히 추방당할 수 있습니다.”
“거참 더럽게 빡빡하게 구네.”

제이크는 출입관리를 맡은 이가 건네주는 임시신분증을 받으려고 했지만 관리는 바로 주지 않고 잠시  잡고선 귀에 대고 속삭였따.
“자유를 찾아 왔으면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세부터 보여라, 애송이.  일생에 다시 없을 행운이 찾아왔으니까. 평생을 후회로 보내고 후손들에게 대대로 원망받기 싫으면 여기선 조심하는  좋을 거야.”

방금 전까지 웃으면서 대하던 남자에게서 뿜어진 차가운 기운에 제이크는 순간 얼어버렸다.
‘뭐, 뭐야!’
“제이크! 신분증 받았으면 비켜!”
하지만 뒤에 줄을 선 촌장에게 밀려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아....알았어요.”
“죄송합니다. 저 녀석이 워낙 천지분간을 못하는 녀석이라...”
“본인의 삶은 본인이 책임져야지요. 역사를 시작하는 시작의 땅 크로니클에서의 풍족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맞습니다. 준비해두라고 해둔 신상명세서라는 거 여기 있습니다.”

20개는 되는 출입관리소 라인의 창구 하나를 맡고 있는 브래드는 나이든 남자가 주는 신상명세서를 받아 이번에 특별히 만들어졌다는 마법 태블릿이라는 것에 올려놓고 버튼을 눌렀다.
“닉, 48세. 흠, 와처 마을의 촌장이셨습니까?”
“그렇습ㄴ이다. 제이크는 사고치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겠습니다.”
“구체에 손을 올려주십시오.”
출입관리소 직원은 방금 전의 일은 이미 잊어버렸는지 담담한 목소리로 개의치 않는 자신이 전달해야 할 내용들만 전달했다.

닉은 몇 시간을 기다리다 마침내 받은 얇은 쇠로 된 판에 새겨진 자신의 임시신분증이라는 걸 만지며 곳곳에 배치된 직원들의 안내를 받고 출입관리소를 나올 수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신분증이라는 것이 주는 감회란 한 집단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만 같아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와...”

귀족들이 사는 황성이 이런 모습일까. 닉은 깔끔하게 펼쳐진 도로의 양쪽에 세워진 처음 보는 양식의 건물들을 보면서 앞의 사람들을 따라 이동했다.

“임시 마을 베가스에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에서 여러분들은 앞으로 살아갈 크로니클 마을에서 지켜야할 원칙들과 기본적인 문서작성을 위한 교육 그리고 ‘위생관념’을 배우게 됩니다.”

천명은 되는 것 같은 인원들을 모아놓은 장소에서 남자는 마법이라도 사용하는 것인지 사방에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게 했다.
“어디서 나는 소리지?”
“저 남자, 목소리가 엄청 큰데?”
“위생관념이라는 건 뭐야?”
“뭘 가르친다고?”

이주자 관리를 맡은 제임스는 연단 위에 ‘마이크’라는 도구로 말을 계속 이어 나가려고 했지만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많아 잠시 멈춰야 했다.
“혹시 궁금하신 부분이 있습니까?”
“위생이라는 게 뭡니까?”
“여러분들도 ‘연수원’에 오면서 보셨겠지만 앞으로 크로니클에서 살기 위해선 함부로 길가에 분뇨를 버린다거나 업무상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냄새나는 상태로 돌아다닐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기서 자신들이 배치된 숙소로 이동하기 전에 모두 같이 ‘목욕탕’으로 이동할 것입니다. 남성은 파란색 간판이 세워진 곳, 여성은 빨간색 간판이 세워진 곳으로 이동하면 그곳에 있는 직원들이 어떻게 해서 씻으면 되는지 배변활동은 어느 장소에서만 해야 되는지에 대해 교육해 드릴 겁니다.”

제임스는 똑같은 말을 셀 수 없이 반복하고 있으려니 질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조차도 내일까지만 하면 이젠 끝이 난다는 사실과 이곳에서 새롭게 제정된 ‘일요일의 휴식’을 기대하며 안내를 받은 사람들을 목욕탕으로 이동하도록 직원들에게 신호를 줬다.
“이제 이주 작업이 드디어 끝이 나는건가?.”
“제임스, 그동안 들어온 사람이 8만명이나 된다는군.”
“엘프들과 드워프들까지 합치면9만명이 넘는다고?”

자신과 같은 관리직을 맡고 있는 베이커가 옆에 와서 말을 걸었다.
“베가스로 오는 길은 이미 폐쇄조치 되었고 5년간 외부에서 이곳으로 와서 접촉할 수 있는 인원들은 오직 시나브로의 직원과 엘프들뿐이야. 앞으론 엘프들과 드루이드들이 합쳐진 ‘레인저’라는 이들이 철저히 봉쇄작업을 펼칠 거라면서 얼마 전에 베가스 마을에서 나갔거든.”
“제국 각지에서 사람들을 몰래 데려오느라 와처의 첩보부들과 검은 올빼미들이 고생이 많았어.”
“이미 뒤늦게 영주들이 빠져나가는 영지인들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빼낼 사람들은 다 빼냈어. 그리고 이젠 시나브로지. 와처는 이제 시나브로에 통합될 예정이니까 미리미리 적응을 해야 하지 않겠나?”
제임스는 와처로 지내온 시간이 길어서인지 시나브로라는 단어가 영 입에 잘 붙지 않는 것 같았다.
‘시나브로...시나브로...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대륙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겠다는 의미라고 했던가?’
“와처가 노예를 없앴던 것처럼 시나브로라는 단체를 만들고 귀족이라는이들이 없는 땅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시민’들만의 자유도시라...가능할까?”
“‘제이’ 사장님을 도와 빅터 단장님과 크로니클의 단원들이 모두 힘을 합친다면 불가능하지 않겠지. 더구나 시나브로의 전 직원들에게 주어진 ‘시계’라는 것만 봐도 이들의 가진 힘 혹은 기술력이라는 것은 이 대륙을 바꿀 잠재력을 느끼게 하지.”

제임스는 베이커의 말에 자신의 손목을 감싼 시계라는 장치를 봤다.
“해를 통해서 시간을 가늠하는 게 아니라 이 장치에 표시된 ‘숫자’라는 걸 통해 모두가 시간을 알게 되었지 않나?”
이 ‘시계’라는 아티팩트에는 직원들 간에 서로 ‘대화’가 가능한 기능까지 들어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에너지로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사용상 주의사항으로 들은 것은 활동 시 햇빛에 잘 보이게 손목에 장착하고 다니라는 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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