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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화 〉49화-이상과 현실(3) (49/239)



〈 49화 〉49화-이상과 현실(3)

빅터는 이어 그동안 와처의 지원을 받고 지낸 이들에게 자립의 기회를  겸 목화농장 마을로 이주하여 건설할 것을 명했다.
“반발이 클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까지 와처가 그들을 먹여 살릴 수는 없다. 이젠 자립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원망이 클 겁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원망받을 것이 두려워 자식에게 자립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시간이 흘렀을  자식이 어떤 것을  원망할 것 같은가? 우리는 심지어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앞으로 먹고  방도까지 주겠다는 것이다.”
“농부로 살고 싶지 않은 이들도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농부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들에 한해선 공장 직원으로 채용할 예정이니 그것도 함께 명시하도록. 조용히 움직여라. 귀족들이 자기 땅에서 소작농들이 빠져나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리가 없다.”


빅터가 농지를 조성하고 예비 농부들과 공장직원들을 모으기 시작했을 때 버크와 코엘은 엘븐하임에 있었다.

“신탁에서 말한 변혁의 때가 찾아왔습니다. 이드릴.”
“흐음. 이번에 가져오신 ‘커피잔’이라는 물건과 ‘홍차’라는 물건이 참 마음에 들어요.”
예전에 봤을  엘프들의 차 ‘엘론드’가 담긴 찻잔이 여왕의 것이라기엔 너무 수준이 낮은  같았던 정후가 최고급 커피잔 세트를 구해 엘프 여왕을 만나러 가는 코엘과 버크를 통해 선물로 지참해서 보냈다.
“이 물건들도 전부 새로운 단원이라는 이정후라는 사람이 가져온 거구요?”
“맞소, 엘프여왕, 앞으로 인간들의 삶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속도로 더 빠르게 변화될 것입니다.”
“여왕님, 이정후가 이번에 가져온 변화는 기존의 변화와는 다를 겁니다. 신탁에서도 이미 예지한 변혁의 때가 온 것 아닙니까?”
버크에게 있어 코엘과는 다르게 엘프들의 빙빙 도는 듯한 화법은 드워프들의 성질과는 잘 맞지 않았다.

“아시겠지만 우리 엘프들은 너무 빠른 변화를 원하지 않아요. 너무나 세찬 변화에 엘프들이 본성을 잃고 휘말릴까봐 걱정됩니다. 인간과 사랑에 빠져 결국 백발의 마녀로 변했던 저 놀도르의 딸 코엘의 경우처럼 말이죠.”
이드릴도 알고 있었다. 신께서 이야기하셨던 그 순간이 찾아왔다는 것을. 그러나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여왕님, 그건...과거의 일입니다.”
“코엘은 이제 예전의 백발마녀가 아니오. 그리고 앞으로 정후 군이 가져올 변화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엘프와 드워프들의 자리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소.”
“그렇게까지 생각하세요? 인간들의 세상에서 대장군까지 올랐던 이의 눈으로 보기에도?”
버크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버크는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님을 온몸으로 내뿜던 정후가 가져다 준 문명의 이기를 경험해 보면 볼수록 이런 물건들이 세상에 퍼지는 가운데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동굴 속 지하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드워프나 엘프들이 인간들의 발전보다 도태되어 결국 사라지는 순간들이 찾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잘 생각해 보시오. 앞으로 인간들이 우리가 쓰고 있는 찻잔을 만들 수 있게 되고 저번에 판매했던 물품들을 비롯하여 엘프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만드는 세상이 왔을  엘프들이 혼자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지!”

엘프 여왕도 엘프들의 은인인 버크 샤이어가 말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짐작은 갔다. LED 랜턴이라는 물건은 이제 엘프 왕족들 사이에선 없어서 못 구하는 물건이었고, 트리니티 상단에서 판매하는 ‘화장지’라는 물건이 주는 만족감도  높았으니까. 저번에 트리니티 상단에서 판매한 육류를 먹었을 때는 입에  달라붙는 것이 이 세상의 고기가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장로들과 깊게 한번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젊은 엘프들의 대표들도 모아서요. 이렇게 와서 이야기해주신 점 감사드려요. 붉은 수염 그리고 놀도르의 딸.”
“이왕이면 엘프들이 좋은 선택을 했으면 좋겠네요.”
“붉은 수염이라...그 이름은 이제 잊어 주시오. 나에겐 잊고 싶은 이름이니까”
“엘프는 은혜도 원한도 쉽게 잊지 않아요. 곧게 서서 몇천년을 유지하는 우리들의 나무처럼 우리는 은혜도 깊게 마음에 새긴답니다. 붉은 수염과 백발마녀가 구해준 엘프들을 생각해서라도 엘프여왕인 제가 고마운 이름들을 잊을 수는 없는 법이지요.”
초록 눈빛의 여왕은 찻잔을 내려놓고 저번의 여행자 이정후가 입었던 ‘정장’과 비슷한 옷을 차려 입은 두 사람을 쳐다봤다.
“두 사람이 입은 옷과 신발만 봐도 벌써부터 변화의 물결이 느껴집니다.”
근육질의 몸이 드러나는 갈색 수트를 입은 버크와 강렬한 붉은 색의 수트를 차려 입은 코엘은 자신들의 옷을 훑어보고 빙긋 웃었다.
“여왕님도 원하신다면   챙겨 드릴까요?”
“잘 모르겠군요.”
선뜻 긍정의 말을 내뱉진 않았지만 여왕의 눈길에서 변화에 대한 옅은 갈망을 느낄 수 있었던 코엘은 한마디 했다.
“인간들의 숫자는 엘프나 드워프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엘프와 드워프보다 많은 숫자의 인간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선 인간들보다 우위에 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기술이오, 여왕. 적은 수로도 다수의 인간을 상대하려면 이 숲에 안주하기만 해선 불가능하오.”
“적극적으로 장로들을 설득해야 할 것 같군요.”
눈앞의 여왕이 자신들의 설득에 넘어왔다고 생각한 코엘과 버크는 만족스러웠다.

“신들이 우리에게 내린 신탁의 이유는 우리가 우리 대에서 종말을 맞이하지 않길 바라는 신의 은총이었을 것이오, 여왕.”
“부디 새로운 세상에서 인간들의 옆에 엘프와 드워프가  있을 자리가 남아 있기를.”
 사람은 LED 등을 이용해 만든 전등 아래에서 이정후가 가져다  찻잔으로 차를 마시고 담소를 끝냈다.

정후가 그린 산업혁명의 바퀴가 그렇게 구르고 있었다.


빅터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지원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들은 노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았다.
“갑자기 이렇게 우리가 살아온 땅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라니 아무리 와처라고 해도 우리에게 어떻게 이럴  있습니까?”
“그럼 전쟁이 끝난 지 몇 년인데 와처가 언제까지 당신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겁니까?”

립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전쟁 통에 먹고 살기 힘든 이들을 도와 먹고 살게 해줬으면 이제는 자신들이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빅터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와처는 고맙게도 지금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농사지을 땅까지 챙겨주며 이동하라고 하는 거였다.

“립톤, 흥분하지 마라.”
“조장님, 해도 해도 너무 하지 않습니까? 이제는 자립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면 빨리 비켜줘야 또 다른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도움받을 수 있는데도 저들은 그저 자신들만 와처의 지원을 받고 편히 살면 된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챙겨주길 원한다는 말입니까?”
“상부에도 이런 상황에 대해서 보고가 들어갔다. 무슨 조치가 있을 거야.”
켄 조장도 이들을 이주하기 위한 임무를 하달받고 나서 왔을  사람들의 반발이 이렇게 거세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거보쇼, 내가 말했지 않소? 저들은 게으름 병이 들어 버렸다니까. 상부에 그동안 그렇게 보고를 올렸지만 이제까지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더군.”
현지의 와처 지원 조장이 켄 옆에 와서 비아냥거렸다.

“자기 돈들이 아니니까 펑펑 쓰는 거야. 내 돈이면 저렇게 안 쓰지.”
“상부도 이제 알았으니 상황이 달라질거요.”
“모르겠어. 빅터 단장님이 돌아왔을  큰 기대가 있었는데 빅터 단장님이 트리니티 상단으로 가신 뒤엔 이쪽까진 관심을 갖기엔 너무 바쁘신 것 같더군.”

보고를 받은 빅터도 이 같은 상황에 대해서 인지를 하고 어찌하면 좋을지를 고심 중이었다.
“강제로 내쫓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두고 보면서 시간만 보낼 수도 없는데...”
“빅터, 정후가 준 책자에 이런 상황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없나요?”
“요크 단원, 그가 모든 걸 처리해주길 바래선  됩니다. 심지어 그는 얼마 전에 뽑아낸 시제품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해서 바쁘지 않습니까?”
“그래도 한번 물어볼 수는 있잖아요. 모든  다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 대해서 정후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의견을 묻는 것은 그렇게 과한 요구 같지는 않은데요?”

요크는 방적기, 방직기, 재봉틀의 생산품들을 확인하는 정후와 함께 일을 하다가 원료가 될 목화 생산을 하기 위해 농민들의 이주 상황이 어떤지를 알아봐 달라는 정후의 부탁을 받고 빅터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지부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으니까 한번 같이 가서 물어봐요.”
요크의 설득에 빅터도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일지를 고민하다 일단 정후의 의견을 들어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가죠. 궁금하긴 합니다. 정후 단원이라면 좋은 의견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지원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날로 먹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정작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 이거네요?”
“맞습니다. 정후 사장님”
“빅터 교관으로부터 사장님 소리를 들으니까 이상한데요?”
“이번 일의 지휘자로 단장님과 부단장님이 정후 단원을 정했습니다. 더구나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시나브로’라는 기업이라는  만들고 정후 단원은 사장이 되었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런데...”
“정후 사장님?  생각은 어때?”

정후가 생각하기에 지금 빅터가 가지고 온 것은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생각보다 흔히 있는 ‘사적이익의 극대화’ 문제였다. 모두의 이익인 공적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선택들은 종종 공적 이익의 손실을 일으켰고 모두가 최선의 선택을 했다면 얻을  있는 공적 이익의 극대화를 훼손하는 경우가 발생했는데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자면 공장의 무단 폐수 방류부터 쓰레기 무단 투기 등 사회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사적이익의 극대화로 인한 공적 이익의 극대화의 파괴였다.

빅터와 요크의 말을 들은 내 머릿속으로 엘리스가 첨언을 했다.

“가장 좋은 건 개인들의 알아서 자율적 의사에 맞춰서 하는 거지만 세상엔 그런 경우는 별로 없죠,”
“그래서 고민입니다. 이야기만 꺼내도 지금 반발이 굉장히  상황이라고 하더군요.”
“이건 와처의 잘못이기도 하네요. 일하지도 않은  먹지도 말라면서 이들의 자립심을 같이 키워줬어야 했는데 여태까지 무작정 지원해준 거였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 언젠가 그들도 고마워하면서 다시 와처를 지지하는 뿌리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후가 대학에서 조별과제를 하면서 느꼈던 것은 호의에 호의로 보답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었다.
‘무임승차자들을 조지는 방법이라.’
정후는 조별과제를 날로 먹으려던 프리 라이더들을 바꿨던 방법을 떠올렸다.
“이렇게 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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