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48화-이상과 현실(2)
제철소에 오자마자 나와 요크는 제철소의 인원들을 따로 빼서 목욕탕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제철소인지라 태워서 열을 내는 로(爐)가 항상 가열되고 있는 상태였다. 덕분에 땔감은 넘쳐나서 로마의 ‘하이퍼 코스트’ 방식을 응용한 목욕탕에 쓸 열탕을 만드는 것은 엘리스에겐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일부러 제철소 근방에 사는 주민들도 와서 같이 씻을 수 있게 목욕탕을 필요한 사이즈보다 일부러 더 거대하게 만들었는데 500명이 한 번에 들어가서 씻어도 괜찮을 정도로 크게 만들었더니 목욕탕을 만들 때도 노장인들은 설계도부터 물어봤다.
턱턱 숨이 막히는 상황에서도 최대한 업무상 미소를 유지하며 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했는데 그것은 나중에 그리는 큰그림의 일부로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공밀레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겠어.’
그렇게 목욕탕을 만들고 우리 세상에서 구매한 타일들을 안에 깔고 향기가 나는 비누를 가져다 놓았다. 이미 청결함에 중독된 요크는 자신의 권력으로 제철소 사람들에게 의무적으로 일을 마치고 집에 가기 전에 목욕을 하고 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 씻지 않은 사람들은 제철소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지키지 않을 거라면 그만두세요!”
제철소 직원들이 미리 목욕탕에서 일할 준비를 끝낸 트리니티 상단원들의 도움을 받아 목욕을 마치고 나왔을 때 나는 값싼 싸구려 면티, 반바지. 슬리퍼, 속옷을 세트로 해서 사이즈에 맞게 목욕을 마친 이들에게 나눠주도록 했다. 경험해본 자들만이 느끼는 편안함이 있는 법이니까
“요크 상단주께서 처음에 강제로 목욕하라고 해서 정말 싫었거든? 킁킁, 근데 목욕을 하고 나니까 내 몸에서 향기가 나!”
“내 몸에서도!”
“난 그것보다 이 속옷과 겉옷들 그리고 슬리퍼라는 게 너무 편한데? 그냥 우리 이것만 입고 집에 갈까?”
“너도 그렇게 생각했어? 하루 종일 일하느라 땀에 절었던 냄새나는 옷을 다시 입고 가려고 보니까 내 옷에서 썩은 내가 나고 있어!”
“우리가 그동안 이런 옷을 입고 다녔던 건가?”
목욕을 마치고 나온 제철소의 직원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목욕탕 문화와 함께 내가 가져온 티셔츠와 속옷들을 입어 보고서 문화충격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
“근데 말이지. 아까 썼던 비누라는 거 판매도 하는 건가?”
“내가 나오다 봤는데 빨래용이랑 목욕용으로 두가지 용도가 있더라고.”
“비싸?”
“얼마 안 해 개당 10브론즈? 3개씩 파는 건 세트라고 해서 25브론즈에 팔더라.”
“사서 가자. 마누라랑 애들도 앞으론 비누로 씻으라고 해야겠어.”
“역시 그렇지?”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사람들한테서 나는 냄새를 맡아 보라고. 우리 가족들의 몸에서도 저런 냄새가 날 거 아니야?”
더스크의 세상에 로마의 목욕문화가 최초로 전파되는 순간이었다.
일부 직원들은 내가 예상한대로 자신들의 가족들도 와서 씻을수 없냐고 물었다.
“저기...저희 가족들도 이곳에 와서 씻으면 안될까요? 목욕탕에서 씻는 이 경험을 저희 가족들도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되지요~ 원하시면 얼마든지 오셔서 다들 씻으셔도 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상단 직원들을 통해서 들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미리 교육받은 상단의 직원들은 목욕탕 이용에 대한 질문을 하는제철소 직원들을 상대로 목욕탕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운영되며 하루에 1인당 50브론즈, 10회권을 구매하면 1실버를 할인해서 4실버만 내면 된다고 알려줬다.
“그럼 40회권을 구매하면 그 할인이라는 거 더 해주나?”
“네, 40회권은 따로 없고 50회권, 100회권은 있습니다. 50회권은 18실버, 100회권은 34실버입니다.”
“그 가격이 참 특이하게 되어 있네 그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들이 목욕을 저렴한 가격으로 많이 하길 바라는 상부측 의견이 반영된 가격입니다.”
“하하, 역시 트리니티 상단이 인심이 좋아.”
처음 내가 이 같은 할인정책을 이야기했을 때 요크는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왜 할인을 해줘? 이미 운영비를 빼면 목욕탕으로 수익이 거의 없는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게 가격을 책정한 거잖아. 근데 또 빼주라고?”
“요크, 어차피 목욕탕을 아침에 열면 저녁까지 계속 불을 붙여서 온도를 유지해야 해. 그래야 온수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철을 녹이는 로(爐)에 철이 들어가면 계속 온도를 유지해줘야 하듯 목욕탕 물을 데우는 것만으로도 고정비용이 들어가. 근데 사람이 많이 오면 올수록 어떻게되겠어?”
“아, 사람이 많이 오면 올수록 1인당 고정비용은 감소하는거구나.”
“넌 대량생산이 어떤 이점을 가져다주는지 봤잖아.”
“맞아, 나중에 계산해보면 생산하는데 필요한 금액이 줄어들어서 신기했어. 그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거든.”
이미 한차례 대량생산에 의해 장기평균비용이 감소하는 규모의 경제성을 경험해본 적이 있어서인지 요크는 쉽게 이해했다.
“한가지 이점이 더 있어.”
“뭐지?”
“사람이 모여 살면 오염도라는게 증가하는데 청결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전염병이 도는 가능성을 줄일 수 있어.”
“코엘 언니가 말했던 게 맞았던 거야?”
“그건 무슨 소리야?”
“드워프들 사이에서 1년 내내 기침을 하는 환자들이 많은 건 안 씻어서 그런 거라고 했거든.”
“그건...”
‘엘리스, 드워프들이 콜록거리는 건 오랫동안 석탄을 캐던 분들에게서 나타나는 진폐증(塵肺症) 아니야?’
‘치료 방법은?’
엘리스가 말해준 약품이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당장 구하거나 이곳에선 쉽게 제조할 수 없는 약품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다음에 넘어가면 지하에 있는 드워프들에게 줄 수 있는 방진 마스크를 챙겨 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당장 가져다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우선은 그런 것 같다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역시, 노장인들부터 어서 와서 씻으라고 해야겠어.”
요크는 내 말을 듣자마자 목욕탕을 만들 때만 기웃거리고 정작 씻어야 되는 순간에 도망간 노장인들을 잡으러 떠났다.
“목욕탕을 지었으니 이젠 화장실을 지어야겠어. 이들에게 양변기의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지.크크큭”
내가 그렇게 제철소에서 구르고 있는 동안 크로니클의 단원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구르고 있었다.
“소작농들 중에서 우리가 준비해 놓은 농지들로 이주하겠다는 이들이 얼마나 되나?”
“올빼미들의 경우는 이미 이주할 준비가 끝이 나 있습니다만 소작농들은 자작농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면서도 막상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많습니다.”
“빅터 상단주님, 그것도 그거지만 새롭게 마을을 조성하는 것도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내가 전해다 준 설계도에 따라 마을을 건설하는 게 많이 어려운가?”
난 빅터 교관이 떠나기 전에 빅터 교관에게 로마의 도로와 로마의 상하수도 시설을 응용하여 만들 수 있도록 준비해둔 마을의 설계도들을 챙겨 보냈다.
“목화를 재배하기 위해선 고온다습한 지역이 필요한데 생육을 하는 동안엔 비가 좀 와야 되고 성장기가 지나면 건조한 지역이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 염분이 있는 지역에서도 잘 자라니 해안가에서 키우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재배지 확보와 농민들 확보만 하면 되는 겁니까, 정후 단원?”
“목화를 키울 농민들이 지낼 마을은 제가 드릴 설계도에 따라서 지었으면 좋겠는데요.”
빅터 교관에게 전해준 설계도에는 단순히 그림만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어떻게 하여 하수도와 상수도를 만들고 도로를 짜서 마을을 만들지에 대해 세부적이면서도 전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처음은 뭐든 어려운 법이죠.”
빅터 입장에서 정후가 건네준 자료들에 따라 재배지를 정하는 것은 여름에는 고온다습하고 가을부터는 건조해지는 지역을 고르는 것이라 그렇게 어렵지가 않았다. 다만 부하의 말로는 처음부터 마을을 새로운 개념으로 짓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듯 했다.
“사람이 너무 부족합니다. 이런 건축행사는 보통 왕이나 영주가 권위로 강제하는 것이라서 사람들이 건축사업 참여에 대해 가지는 거부감이 너무 큽니다.”
빅터는 정후가 준 자료에 혹시 이주하겠다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따로 정리되어 있는 내용이 떠올랐다.
「...이주하겠다는 자원자가 없다면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이주하는 자들에게 30년 무상임대를 조건으로 하여 농지를 스스로 조성하도록 하여 30년간 농사를 지은 자들에 한해 그 땅의 ‘경작권(사용권)’을 농부들에게 주도록 하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와처의 돈으로 지원받아 생활하는 10대 청소년들을 데려다 기회를 주면 된다. 두가지 방법을 동시에 진행한다면 농지를 조성하고 마을을 만드는 속도를 가속할 수 있다.」
‘정후 단원은 여기까지 예상을 했던 건가?’
“이주하겠다는 자원자가 없다면 이주하는 자들에 한해 무상으로 30년간 땅을 쓸 수 있게 임대해주고 30년이 지나면 그들에게 자기들이 일궈 놓은 땅에 대해 ‘경작권(사용권)’을 주도록 한다는 내용을 함께 알려라.”
“경작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 자본주의의 꽃을 피우기도 전에 토지의 권리를 나눠줄 시 나중에 목화 재배지의 가치가 올라갈 경우 농민들이 토지를 섣불리 팔게 되면 목화 재배의 독점권을 잃게 될 우려가 있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유권은 트리니티 상단과 내가 합작하여 트리니티 지분 50 내 지분 50을 담아 만든 기업 ‘시나브로'에서 갖기로 했다. 다만 소유권을 합작기업에서 가지는 것에 일부 공산주의적 발상이 담겨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나중에 목화재배가 중요하지 않게 도는 시점을 30년 이내로 잡고 산업혁명이 성숙화 과정에 접어들게 되면 경작권을 가진 이들에게 소유권을 이전할 예정이었다.
“경작권이라는 것은 토지에서 농사를 지어온 농부의 권리를 인정하여 그 땅의 경작권에 대해선 다른 이들에게 매매를 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다.”
“소유권과는 뭐가 다른 겁니까?”
“토지를 훼손하거나 방치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들의 경작권을 ‘시나브로’에서 가져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경작권의 권한 인정 기간은 어떻게 되는 거죠?”
“30년 동안 해당 지역에서 농사를 지은 자들에 한해서만 소유권을 이전하도록 할 예정이다.”
빅터의 설명을 들은 트리니티 상단 아니 시나브로 기업의 직원이 된 베르는 신기한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먹고 사는 것이 걱정인 사람들에겐 매력적인 제안이 될 수도 있겠군. 토지에 대한 임대료도 내지 않고 30년만 버티면 내 땅이 생긴다라...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빨리 우리 가족들과 친척들에게도 알려야겠어.’
하지만 트리니티 상단의 직원들 중 ‘베르’만 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