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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화 〉45화-대제의 아들(2) (45/239)



〈 45화 〉45화-대제의 아들(2)

"정말 대단하고 잘나신 집념이네. 그 정성의 일부분만 사람들한테 써주지.“
”그러게 말이야.“
에디나가 비아냥거리자 이에 동의한 드마코는 그 귀족이 찾아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귀족이 찾아낸 여자는 말라야히마 산맥 아래에 위치한 북부의 거대한 침염수림 안쪽에 자리 잡고 사는 회색빛이 감도는 피부를 가진 다크 엘프 마리아 그림우드였어. 귀족의 부하가 마리아 그림우드를 발견한 곳은 노예를 사고파는 어느 노예시장이었는데 노예상인으로부터 특별히 관리 받고 있는 특급노예였대. 특급노예 다크엘프 마리아 그림우드를 사기 위해서 귀족은 부하의 보고를 받고나서 눈으로 직접 확인한 뒤에 황후의 그림과 똑닮은 마리아 그림우드를 구매하기 위해 자신의 남은 재산의 절반을 들이밀었고 마침내 노예상으로부터 그녀를 자신의 수양딸로 데려올  있었지.”
“그럼 빅터의 어머니께서 그 다크엘프셨다는 거구나.”
에디나는 빅터의 성이 마리아 그림우드의 성과 같은 것을 통해 그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다.
“맞아, 그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해줄게. 마리아가 얼마간 궁중예법에 맞도록 귀족으로서의 소양을 배우게 한 그 귀족은 기회를 봐서 기다렸다가 타이밍 좋게 황후의 생전 습관을 완벽히 익힌 마리아를 대제의 탄생기념 연회에서 대제에게 보여줬어.”
“대제가 놀랐겠는데...”
“죽은 걸로 여기고 마음을 닫았던 대제의 앞에 황후가 다시 젊어져서 돌아온 것만 같은 외모를 가진 마리아 그림우드가 나타났으니 어땠겠어? 상상이 가?”
“그 많은 귀족들이 모인 곳에서 눈물을 흘린 대제의 이야기도 유명하잖아. 그게 이 이야기였구나. 어떤 여자의 미모에 감탄해서 황제가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미친 황제도 감동한 외모의 소유자가 바로 빅터의 어머니셨다니!”
“대제는 넋이 나갈 정도로 감정에 북받혀서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마리아 그림우드를 데려온 귀족에게 감사를 표하고 이내 마리아 그림우드를 8번째 처로 맞이했어.”
‘빅터의 아버지도 정상은 아니시네. 8번째 결혼이라니. ’

“둘이 결혼하는 날 대제보다  속으로 기뻐했던 것은 마리아를 노예시장으로부터 사온 귀족이었고 귀족은 드디어 자신의 집념이 일군 결과에 전율하며 황제의 외할아버지가 될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고 해.”
“반대하는 사람들은 없었어?”
“있었지. 아이반 대제와 황후 사이에서 낳은  하나가 아직 살아 있었잖아. 대귀족이 죽으면서 배후를 잃고 힘을 잃은 3황자도 살아 있었고. 2황자이자 황태자였던 차레비치 그로니지는 대제가 마리아 그림우드를 황후로 맞이하겠다고 하니까 누구보다도 가장 반발했다고 했다고 하지.”
“하지만 황태자도 자신의 어머니와 닮은 사람이어서 대제처럼 돌아가신 어머니를 뵙는 느낌은 아니었을까?”
“황후가 남긴 아들 차레비치는 실제로 일기장에 너무나 어머니를 닮은 그녀를 보고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많은 생각들을 했다고 기록을 남겼어. 차레비치는 대제의 앞에선 자신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서 고이 영면에 들었다며 고인이 된 어머니를 욕되게 하지 말 것을 아버지께 간곡히 청했지. 하지만 아들보다도 더 크게 오랫동안 황후를 그리워했던 대제에게 황태자의 말 따윈 들리지 않았나봐. 오히려 마리아 그림우드를 되살아온 자신의 부인이자 황태자의 어머니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런 소리를 자신의 황후이자 어미인 마리아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할  있냐고 황태자에게 벼락같은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고함을 치고 앞으로 마리아에게 어머니를 대하듯 진심으로 예의를 다할 수 있도록 마음을 갖추라고 근신을 할 것을 명했거든.”
“혹시 자신의 황태자 자리가 흔들릴 거라고 황제 자리를 탐한다고 착각했던 거야?”
“그 부분에 대해선 당시 귀족들이 남긴 기록마다 의견이 조금씩 달라. 아무튼 빅터가 어머니의 일기장에서 본 걸 살짝 이야기해줬는데 마리아 그림우드는 자신을 향해 열정적인 사랑을 표하는 걸 본 뒤로 노예로 사로잡혀 온 자신에게  애정과 정성을 다하는 대제에게 마음을 열었고 엘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다크엘프의 방식이 그러하듯 영혼의 맹세를 하고 대제를 향한 사랑을 다짐했다고 해.”
‘나중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일기를 읽을 때 빅터의 마음은 어땠을까?’

드마코는 에디나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걸 기다려주고 에디나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계속 설명해줬다.
“대제의 사랑은 마치 대제가 처음 아나스타샤를 만났던 때처럼, 아니, 그동안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보상하기라도 하듯 그보다  열렬하고 깊었나 봐. 그 모습을 보고 근신의 기간이 풀려 나온 황태자 차레비치는 참으려고 하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서 결국 미친 사람같이 보이는 대제에게 울면서 애원했어.”
“어머니의 기일도 챙기지 않고 그딴 여자와 함께 그렇게 행복한 모습을 하실 수 있으십니까?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아버지! 미칠 거면 차라리 곱게 미치십시오. 아들인 제가 아버지께 원망이나 분노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동정이라도 할  있게.”

“그 부분은 나도 알아. 드루이드 마을 어르신들 중 일부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 아버지한테 어쩜 그렇게 버르장머리 없이 말할 수 있냐고 욕을 했거든.”
“어르신들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으려나... 아무튼 아들의 말을 들고 머리 꼭대기까지 분노에 가득 찬 대제는 황태자를 귀족들을 쓸어 낼 때처럼 독이 오른 눈빛으로 노려보면서 두들겨 팼어. 분노에 눈이 멀어 황태자를 때리던 대제의 손에는 어느새 황궁을 장식하는 금으로 된 촛대 하나가 쥐어 있었고 그 촛대에는 피가 범벅이 되어 있었지.”
“설마?”
“니가 생각하는 게 맞아. 자신의 아들을 향해 촛대를 들고 쉴 새 없이 때린 덕분에 유혈이 낭자하게 사방으로 튀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던 대제의 얼굴에 마침내 핏방울들이 튀고 나서야 대제는 겨우 정신을 차렸어.”
“아버지에게 맞아 죽은 황태자의 심정이 어땠을까...”
“모르겠다. 우리 아버진 그런 분이 아니셨거든.”
한동안 둘 사이에 대화가 끊기고 숲길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각종 동물들과 풀벌레 소리들로 가득했다.

“휴우...아직 빅터는 안 태어난 거지?”
“이제 조금 있으면 나와. 자신과 황후 아나스타샤 사이에서 나온 이세상에 남은 유일한 황태자가 쓰러진 것을 보고 궁정치료사를 불렀지만 이미 때가 늦어 황태자는 죽은 지 오래였어. 황후를 그리워하다 만난 마리아 그림우드의 모습에 대제가 잠시 빠지긴 했지만 왕국을 제국의 반석에 올린 대제는 자신과 황후의 유일한 자식인 황태자를 죽이고서야 미몽에서 깨어났어. 그 이후로 뒤늦게 정신을 차린 대제는 마리아를 관찰하기 시작했고 마리아 그림우드란 여자가 그저 황후의 외모만을 닮은 껍데기임을 깨닫게 되었지.”
“하지만 빅터의 엄마인 마리아가  잘못한 것은 없었잖아. 대제가 원해서 사랑했고 마리아는 그저 그녀에 대한 사랑을 받아들이고 대제에 대한 사랑을 맹세했을 뿐인데”
에디나는 사랑이 항상 쉽게 변해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혼을 하라는 부모님의 성화를 못 참고 도망치듯 마을을 나왔다.

“흠...니가 알지는 모르겠지만 황제에겐 실수나 잘못이 존재해선 안 돼.”
“사람인 이상 누구나  실수나 잘못은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황제는 오류가 없는 완벽한 존재여야 하거든.”
“하지만 황제는 자신의 아들을 때려 죽였잖아. 그건 엄청난 잘못 아니야?”
“그래, 근데 말이지. 황제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만들려면 그 방법이란 건 간단해. 황제의 실수를 아는 자들의 입을 모두 틀어막으면 되는 거야. 죽이든, 유배를 보내버리든, 혀를 잘라버리든, 눈을 뽑아버리든.”
너무나 잔혹한 귀족과 황제의 삶이 에디나에겐 무섭게만 들렸다.
‘빅터는 그런 곳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대제는 자신을 미혹해 황태자를 죽음에 이르게  책임이 있다는 죄로 마리아를 노예시장에서 데려와 수양딸로 삼은 귀족과 그의 일가친척과 친구들은 처형시켰지만 도저히 황후를 닮은 외모를 가진 마리아 그림우드만은 처형시킬  없었나봐. 대신 대제는 마리아 그림우드의 황후지위만 박탈한 뒤 왕국이 제국이 되면서 황궁으로 증축하기 전 있었던 오래된 왕국시절의 궁에 마리아 그림우드를 유폐시켰어. 영원히 그곳에서 다시 나오지  것을 명령하면서.”
“너무하다. 그게 감옥에 갇힌 것과 뭐가 달라! 살아도  게 아니잖아.”
“대제의 자비라는 거지.”
“빅터는?”
"마리아 그림우드가 궁에 유폐되었을 땐 그녀의 뱃속에는 한 생명이 이미 자리한 상태였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녀에게선 남자아이가 태어났어."
"그 아이가 빅터야?“

드마코는 에디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혼의 맹세를 할 정도로 사랑했던 남자가 자기를 버렸다는 것에 충격받았던 마리아 그림우드는 빅터를 낳기 전부터 정신이 오락가락했어. 빅터를 낳은 뒤에 대제에 대한 분노로 존재를 알리지 않고서 빅터에게 자신의 성을 붙여주고 키웠지. 마리아는 어쩔 때는 누구보다 애정 어린 자세로 빅터를 대하다가도 정신이 나가면 자신을 버린 남자를 닮은 빅터에게서 대제를 떠올리며 빅터를 향해 모진 학대와 구박을 했지. 태어나면 안 되는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말았다면서.”
“빅터가 너무 불쌍해...”
에디나는 태어나자마자 저주를 받고 아버지의 인정도 없이 어머니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랐을 아이 빅터를 생각하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빅터는 마리아가 피폐해져 죽기 전인 10살까지 마리아로부터 모진 학대를 받기도 했지만 애정을 보일 때를 떠올리며 하나뿐인 가족이자 어머니인 그녀의 곁을 떠나 감히 도망칠 생각을 하진 못했대.”
숲 속에서 사는 에디나도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날 어머니와 크게 싸우는 날이면 동생들을 이끌고 도망갈 곳이 있었는데, 대제의 아들로 태어난  잘난 운명에도 불구하고 빅터는 도망갈 곳도, 끌어 안아줄 이도 없이 묵묵히 어머니의 옆에서 그 분노를 다 받아들이면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문제는 밖에서 노예해방전쟁이 터지고 제국의 심장부까지 그 전쟁의 불꽃이 번져버렸던 거야. 마리아를 유폐시키고 이전보다 더 무서운 폭군이 되어버린 대제 아니 ‘뇌제’의 압제에 지쳐있던 제국민들에게 노예해방전쟁은 폭군을 제국에서 밀어낼 기회이기도 했지. 내 형들도 뒤틀린 제국을 참지 못하고 참전했던 전쟁이었으니까.
“너도 형들이 있어?”
“있었지...”

드마코는 자신의 형을 떠올리는 것 같다가 에디나가 물어볼 것 같은지 바로 말을 이어 갔다.
“이내 제국은 노예해방전쟁을 계기로 기다렸다는 것처럼 각자의 이유로 뜻을 세운 귀족들을 따라 여러 갈래로 찢어졌어.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그림우드 모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 버크가 붉은 수염으로 활동하면서 노예해방전쟁의 최전선에서 힘을 쓴 결과 마침내 제국의 궁궐까지 점령할 수 있었고 궁궐에서 다시 다른 지역에서 해방전쟁을 이어나가기 위한 군자금 마련을 위해 황궁 안에 돈이 될 만한 것을 모두 회수하는 과정에서 붉은 수염 부대는 외따로 떨어진 궁궐에 유폐되었던 굶어 죽은 마리아 그림우드와 죽은 그녀를 안고 멍한 표정으로 울고 있는 비쩍 마른  아이를 발견했어.”
“그 아이가 그럼?”
아이러니했다. 대제의 아들로 태어난 황자의 어머니는 굶어 죽고 황자는 고아가 되다니.
“조금만 일찍 왔어도 마리아 그림우드가 굶어죽진 않았겠지만 자신이 황제라고 떠들던 귀족이 끝까지 버티다 끝내 해방군에 의해 목이 베였을  전투가 길어졌던 탓에 이미 시기를 놓쳐버린 뒤였지.”
“마음 아프네.”
“빅터가 그렇게 발견되고 난 뒷부분은 버크 부단장으로부터 들었어. 자초지종을 알게  붉은 수염 버크는 아이가 상처받은 것은 전쟁을 일으킨 자신의 잘못이라며 이 아이를 자신이 키우겠다고 하고 한동안 아이에게 애정을 다해서 양육하는데 전념했어.”
“그래도 다행이다. 뒤늦게라도 버크 부단장과 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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