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42화-Industrial Revolution(1) (42/239)



〈 42화 〉42화-Industrial Revolution(1)

빅터 교관이 알아온 정보를 모두 듣고 나서 다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경제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 소작농 건은 와처가 직접적으로 무력을 통해 개입할  있는 ‘노예’의 문제라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어려웠고, 단순히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움직이는 귀족 영주들을 갑작스럽게 우리의 논리로 무작정 범죄자라고 몰아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를 밤늦게까지 화로대 앞에 앉아 각자 떠오르는 생각들을 말해 봤지만 팀원 모두의 의견들은 하나같이 실효성이 없거나, 정의롭지 못하거나 아니면 너무 과격한 것들이 대부분이라 다른 팀원들에 의해 기각되었다.
당장 해답을 내놓기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코엘 누나의 말에 뒷정리를 했다. 우리 모두는 텐트의 야전침대 위에 각자 자리 잡고 누웠지만 다들 쉽게 잠들지 못했다.
“휴우...”
텐트 여기저기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풀면 좋을까?’

‘정답을 알려주진 않겠다는 거지?’

엘리스의 말은 내게 나이만 어른이 아닌 진짜 어른이 되라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나에겐 능력이 있었다. 남들의 순간을 수십 년까지도 늘릴 수 있는 능력이.


동생은 넘어갈 때 봤던 똑같은 자세로 거실 쇼파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얘는 자기 방에서 자지.  거실에서 이러고 자고 있어? 휴, 엘리스, 경제사(經濟史)로 한정해서 과거 귀족들의 대농장의 확대에 관련된 자료들만 모아줘.”

누가 시간을 정해놓지도 않은데 마음이 급해져서 오자마자 자료를 찾아서 국내역사부터 찾아봤다.
삼국시대 파트는 딱히 대농장의 확대에 대해 다루는 자료들이 많지 않았으나 통일신라부터 관련 자료들의 양이 서서히 늘어나더니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쪽은 자료가 넘쳐났다.
“대체로 백성들이 봉기하는 이유가  중 하나인  같네. 먹고 살기 어렵거나 귀족이나 관리들의 학정에 지쳤거나. 임꺽정은 실존인물이었군?”

내가 그렇게 패드에 자료들을 띄워 보고 있자니 동생이 10시쯤 돼서 일어났다.
“뭘 그렇게 열시미 봐? 어우..지금 몇시야?”

“고마워요, 엘리스 씨. 어제 너무 늦게 자서 그런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질 못하겠네.”
“규칙적으로 생활하렴, 동생아. 니가 그나마 군대에서 배운  안되는 좋은 습관이 규칙적인 생활이란다.”
“네, 제대하고 1달간 게임에만 미쳐 살았던 어느 예비군님.”
“하하하, 내 동생이 그새 형과의 힘의 차이를 까먹었나 보구나.”
“아! 씻으러 가야겠다~ 음, 배도 좀 비우고~”
화기애애한 형제의 담소를 잠시 나눈 동생은 급한 일부터 처리하겠다며 도망치듯 쇼파에서 일어나서 화장실로 씻으러 갔다.

“고려시대에 문제가 되었던 토지 문제가 결국 다시 조선시대에 또 문제가 되네? 완전 도돌이표가 따로 없구만.”

엘리스는 내가 조선시대  자료들을 얼추 다 읽은 것 같아 보였는지 패드를 조작하여 뉴스앱을 띄워서 최근에 핫한 부동산 이슈들과 관련된 뉴스 기사들을 보여줬다.
“예전엔 돈이 없어서 부동산 투자는 남의 이야기인줄로만 생각해서 관심이 없었는데, 장난 아니구나.”
엘리스가 보여주는 자료에는 부동산을 소유한 자, 소유하지 못한 자, 정치인, 학자 등 많은 이들이 모두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토지소유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토해내고 있었다.

“이게 이제 더스크 행성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문제라 이거지?”

“왜 그렇지?”

엘리스의 말에 엘리스가 보여준 자료들뿐 아니라 유럽쪽 파트까지 훑어보고 있는데 동생이 다 씻었는지 화장실에서 느지막이 나왔다.
“학교 다닐 때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형을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부모님이  모습을 보시면 참 좋아하실텐데. 부모님한테 한 장 찍어서 보내드려야겠다. ‘공부하는 아들.jpg.’”
“동생, 폰 내려. 그리고 나도 할 땐 했거든?”
“몰라, 게임할 때 말고는 딱히 본 적이 없다니깐. 커피 마실래?”

동생의 권유에 난 카페인을 보충해서 뇌를 각성시킬 목적으로 한잔 부탁했다.

위잉

“근데 갑자기 공부는 뭐하러? 이세계에 가니까 공부할 일이 생겼어?”
동생이 커피머신에 캡슐을 넣고 돌리는 틈에 말을 걸어왔다.
“저쪽에 무슨 문제가 생겼거든.”
“동생님에게 좀 털어놔봐. 상담료는 싸게 쳐줄게.”
“니가 여기 있는 월세로 나는 얼마나 받아야 되는 걸까? 계산을 한번 해봐야 하는데...”
“에헤이, 우리 형님을 걱정하는 동생의 갸륵한 우애 정도로 넘어가야지. 거기서 또 현실을 끌고 들어오면 어쩌자는 거야.”
동생과 말장난을 치는 사이 커피머신에서 커피가 준비되었다.
“형. 여기, 커피.”
“스읍...원래 빈속에 마시면 속 쓰려서 빈속에는 커피 잘 안 마시려고 하는데 어쩔 수가 없네.”
“그래서 형을 생각하는 갸륵한 동생님께서 이렇게 친히 우유를 데워서 카페라떼로  줬잖아. 까탈스럽긴. 자, 문제가 뭐야?”
드루와를 말하면서 손동작을 하는 동생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자 동생은 귀족의 아래로 들어간 소작농을 개개인의 노동자로 바꾸는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냈다.
“그러니까 니 말은 나보고 도시를 만들고 산업혁명을 일으키란 거지, 지금?”
“소작농의 비율이 늘어날수록 국가의 재정은 더욱 피폐해지겠지. 그럴수록 각종 세금의 종류는 더욱 다양해질거고 그나마 남아 있는 자작농은 소작농이 되도록 더욱 강한 압박을 받게  거야.”
“거기에 산업혁명이 끼어든다면?”
“붐!”

어떤 걸로 산업혁명을 일으켜야 하나 싶어서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당시의 상황과 한국의 경제발전사와 관련된 자료들을 골라서 찾아봤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자본주의가 점차 발전했지만 당시 공장을 운영하던 기업가들의 과도한 노동자 착취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낳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어휴...이게 무조건 산업 발전한다고 전부 좋은 건 아니네. 어느 정도 움직이는 방향을 알고 있으니까 단점들을 제거하거나 방향은 틀 수 있겠지만...”
이제 중세시대 분위기를 풍기는 더스트 행성에서 내가 산업혁명을 일으키면 된다는 결론을 얻게 되자 막상 실행에 옮길 생각에 부담감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형, 거창하게 처음부터 형이 산업혁명을 다 하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볍게 시작해. 가볍게. 작은 것부터 하다보면 산업혁명의 흐름은 알아서 굴러갈거야. 우리 세상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 내가 전부 다  필요는 없겠지?”
“대신 형이 그 흐름을 손에 쥐면 좋겠지.”

동생과 대화를 하고 있자니 예전에 역사나 경제 쪽에 대해선  알지 못하던 동생이 아니었다.
“니가 이런 놈이 아니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역사에 해박하게 된 거야?”
“군대에서 다른 놈들이 남는 시간에 핸드폰으로 인터넷이나 뒤적거리고 너튜브 영상 보면서 개인 정비할 때  역사 블로그나 역사 영상에 관심을 많이 가졌었거든.”
“너, 원래 역사과목  좋아했잖아.”
“사람이 바뀌는 이유가 뭐겠어. 뭔가 충격적인 일을 경험하거나...”
말을 하던 동생은 뒷말은 선뜻 잇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하거나? 동생아 사람이 말을 하다가 말면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아니?”
내가 장난스레 주먹을 들어올리자 동생이 내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넣어 둬 넣어둬. 그게 말이지...이거 막상 이야기하려니 좀 쑥스럽긴 한데.”
“오늘따라 니가 매를 버는구나.”
“에이씨, 더러워서 다음 생엔 형으로 태어나든가 해야지. 말해주면 될 거 아냐.”
말을 끊으며 장난치던 동생은 웃으면서 대학교 1학년 때의 일화를 이야기해줬다.
동생이 입학하고 1학년 때 동생의 과 선배 중에 2살 많은 여자 선배가 있었다고 했다.
‘역시 남자새끼들은 다 똑같은 건가.’
동생은 처음에는 너무 딱딱해 보이는 여자 선배의 첫 인상 때문에  선배와는 그렇게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지켜보게 된 선배는 다른 선배들과 다르게 무슨 일이 있으면 누굴 시키기보다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먼저 열심히 움직이고 자신이 해야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배의 행동 그리고 말투를 듣고 있으면 자기와는 고작 2살 차이인데도 너무 어른스럽고 현명해 보였다고 했다. 어쩌다가 대화를 하게 나눈 그 선배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년밖에 안 지났다고는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 확고한 비전이 있었고 동아리 활동뿐 아니라 학교생활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예뻤냐?”
“아니, 멋있어. 사람 자체가.”
‘예뻤구만.’
동생은 선배와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서 학점을 알게 되었는데 4.5점 만점에 누적평점이 4.3점이 넘었고 남는 시간엔 알바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개인의 용돈을 쓰기도 하고 부모님의 생신이나 특별한 날엔 자신이 번 돈으로 선물을 하는 유니콘 같은 존재였다고 했다.

“그 사람 옆에 내가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봤더니 내가 너무 작고 쳐지더라고. 근데 그 사람, 내가 군대 간 2년동안 유학 갔다 오겠다고 하더라? 겁이 났어. 내가 군대에서 썩는동안 그 사람과의 격차가 너무 커져서 감히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조차 꿈꾸지 못하고 접어야 할까봐.”
언제나 소꿉장난같은 연애만 하던 동생이 성장해서 이런 사랑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그래서 부모님이 하라고 해도 잘 안하던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응, 이번에 복학하면 남자로 다가가고 싶었거든. 군대 있을 때도 sns로 가끔 대화를 나눌 때가 있었는데 유학하는 동안에는 공부하느라 바쁜지 연애는 할 시간도 없었대. 다행이지? 아무튼 그래 가지고 이번에 제대했다는 핑계로 일부러 전화 걸어서 넌지시 떠보니까 그 누나는 그동안 지금 솔로라 이거지.”
그 선배를 떠올리면서 차분한 미소를 짓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 내가 안 보는 곳에서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만 같게 느껴졌다.

“아무튼 그 사람이랑 대화를 하다보면 내가 상식이나 역사 쪽이 부족했던 것 같아서 영상편집에 대해서 후임한테 배우는 동안 짬짬이 최대한 자료들을 찾아봤지.”

“역시 엘리스 님은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시는군요!”
동생과 엘리스가 연애란 무엇인가를 소재로 어떻게 하면 선배를 자신의 짝으로 사로잡을 수 있을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게 웃겼다.
“동생아, 기분이다. 오늘 점심은 시켜 먹자. 형님이 사줄 테니까 니가 원하는 메뉴를 마음껏 골라보렴.”

“저렇게 허세 섞인 모습은 여자들이 싫어한다. 이거죠? 메.모”

나는  사람의 대화를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길게 뻗은 도로로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의 햇볕을 보았다.
둘의 조언을 듣고 생각하고 나니 이제 내가 가야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 알 것만 같다.
"형, 초밥 세트 대짜로 시킨다"
"인마, 여름에 무슨 초밥이야 초밥은! 배탈나면 어떻게 하려고."
"형! 먹고 싶은  시키라면서 고작 몇분 지났다고 태클이야? 엘리스 님, 여자들은 저렇게 한입으로 두말하는 거 싫어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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