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40화-탐욕의 대가
“성공하면 어떤 식으로 수익을 챙기죠?”
“모험가 길드에서 성공보수로 처음에 의뢰인이 제시한 총금액의 55%를 모험가 집단에게 우선 지불하고 나중에 임무를 의뢰한 의뢰자에게 일정기간 이내에 납부할 것을 청구하지.”
“간단하게 모험가 길드는 수수료로 의뢰인 측과 모험가 집단 양쪽에게서 15%씩 받아서 전체 의뢰비용의 30%를 챙겨간다 이거구나?”
“서로 간의 중개를 한 대가로 30%를 가져가는 거지. 30%면 서로에게 손해일 수도 있겠지만 양쪽 다 완벽히는 아니어도 모험가 길드가 신뢰의 중재자로 개입을 한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상태가 된 거야.”
의뢰자가 고의로 징표를 건네주지 않고 실패처리를 해서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잔금을 떼먹으려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어 물어봤다.
“모험가 길드도 바보는 아니야. 실패했다고 결재를 내리기 전에 징표를 받지 못한 모험가 집단이 의뢰자가 주장하는 실패에 대해 이의가 있는지 물어본 뒤 모험가 집단이 이의를 제기하면 진상조사팀이 출동하고 의뢰에 관련된 자들로부터 자료들을 수집하지. 그 결과, 의뢰자들의 주장한대로 실패가 맞다는 것이 입증되는 경우에만 실패처리를 하는 거야.”
“모험가 집단이 성공했음에도 의뢰자가 고의로 징표를 건네주지 않았다는 정황이 포착되면 모험가 길드는 모험가 길드의 이름으로 의뢰를 건 자의 신상정보를 제국의 도시마다 존재하는 모험가 길드의 게시판에 공표하고 나머지 비용을 강제로 추심해버립니다.”
‘사채업자가 할 법한 강제추심이 더 무섭지 않나?’
인터넷이 있는 세상도 아니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이름과 신상을 알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망신주기가 무슨 효과가 있나요? 망신주기보다 어떻게든 비용을 받아내고 마는 강제추심이 더 무서울 것 같은데.”
“의뢰하는 이들은 대체로 각종 길드나 협회에 속한 전문가들 아니면 귀족들입니다. 모험가 길드로부터 돈을 떼먹었다는 이야기가 돌면 마법사나 정령사들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소속된 집단으로부터 퇴출당하는 불명예를 당하게 되거나 자격이 일시적으로 정지되고 귀족들은 모험가 길드장이 속한 ‘제국의 원로원’의 권위에 의해 불명예를 회복하기 전까진 ‘연회’에 참석할 수 있는 초대장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강제추심보다 업계에 속한 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신상공개가 더 치욕적이고 무섭지.”
“불명예스러운 치욕을 당하기 싫으면 정당하게 대가를 치러야하고 혹시라도 모험가 집단의 주장과 다르게 의뢰자가 진심으로 의뢰가 실패했다고 생각해서 의뢰금을 철회한 것이라면 모험가들이 의뢰자에게 준 결과보고서를 의뢰인이 속한 길드나 협회 혹은 원로원에 제출하여 이에 대해 확인절차를 밟으면 돼”
모험가 길드의 등장 이후 재능 있는 많은 모험가들이 등장했고 모험가에 대해 의뢰하는 임무들의 종류와 양도 엄청난 확장이 일어났다고 했다.
“지금 용병들이 하는 업무가 대부분 전쟁이나 전투와 같이 특수적인 상황으로 한정되고 그 외의 영역들은 모험가들이 다 대체된 배경이 여기에 있는 거지.”
“모험가 길드는 임무완료를 할 때마다 금액이나 업적에 따라 포인트를 산정하여 모험가 집단에 부여합니다. 모험가 집단이 축적한 포인트가 일정 포인트를 넘기면 길드는 승급을 시켜주고 6개월에 한번씩 이를 제국의 모든 모험가 길드의 게시판에 공시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설명이 끝나는 것 같자 언제 온 것인지 코엘 누나가 나타나서 높은 콧대를 치켜세우며 의기양양했다.
“우리가 그 모험가 집단들 사이에서도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크로니클’이란 거야. 정후 넌 우리 팀에 들어온 것을 자랑스러워 해야 해..”
“크로니클은 모험가 단체 내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모임입니다.”
“이번 임무 완성의 업적으로 우리와 2위 모험가 팀과는 그 격차가 더 벌어졌다네.”
크로니클 팀원들의 Flex 타임이 지나가고 나서도 난 메달 제도를 둘러싼 시스템이 너무 합리적이라 이 제도를 만든 이들이 혹시 이계에서 환생한 현대인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엄청 합리적이네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제도가 아닙니다.”
“‘프리’길드장님이 이 제도를 만들려고 얼마나 힘을 많이 쓰셨는데? 의뢰비용으로 의뢰자와 모험가 양쪽에서 얻게 된 30%의 커미션 대부분이 오로지 모험가를 위해 사용된다는 점에서 우리 모험가들은 남녀노소, 인종의 구분 없이 누구나 모험가 길드의 판단을 존중하고 신뢰해.”
로만 피델리의 영지에 도착한 우리는 12시마을로 복귀하기 전에 정신적인 피로를 풀고 임무성공을 자축할 겸 이틀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코엘 누나는 어쩐 일인지 밥을 먹는 시간에도 유적지에서 찍어온 사진 자료들을 출력해준 프린트물을 내려놓지 않고 먹는 둥 마는 둥하면서 계속 해석하고 있었다.
“뭐 재밌는 내용이라도 있어? 엄청 열심히 보네?”
“초고대문명의 대마법사들이 무슨 시도를 했는지 알아냈어.”
코엘 누나에게 엠제이 누나가 말을 걸어 코엘 누나의 해석이 끝났다는 걸을 알게 되자 팀원들을 불러 모았고 우리들은 하나둘 테이블로 모여 들었다.
“무슨 시도였습니까?”
“자료에 적힌 바에 따르면 이들은 멀어지는 ‘달’을 붙잡아서 행성 더스트에서 이전의 거리보다 더 안쪽으로 당겨서 붙잡아 두려고 했던 것 같아.”
"미친 발상이군"
“뭐하러?”
“저번에 코엘 언니가 유적지에서 말해줬던 거 기억 안나요? 에디나 언니.”
“그때 정신없어서 잘 못 들었어. 다시 설명해 줘.”
‘빅터 교관이랑 이상하긴 했지.’
코엘 누나는 한번 말 할 때 안 듣고 뭐했냐고 에디나 누나에게 핀잔을 주더니 처음부터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달이 멀어지면서 점차 마력이 줄어드는 것이 확인이 되자 이로 인해 앞으로 대마법사나 그랜드 마스터의 숫자가 급감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한 대마법사들은 달이 이전보다 가까워진다면 마력을 강화시켜 자신들이 쌓아올린 문명을 더 강대하고 길게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봐."
“그럼 그때 말한 ‘마지막 시도’가 바로?”
“맞았어. 자연의 섭리에 의해 떠나려는 ‘달’을 붙잡으려고 했던 거야. 그때 삽화에 달 한 개만 그려져 있어서 우리끼리 ‘잘못 그린 거 아니냐, 상징적인 의미인 거 아니냐‘ 하면서 이상하다고 말했던 거 기억 나?”
“그건 기억 나!”
“그때 그려진 그림은 결코 상징적인 것이나 틀린 것이 아니었어.”
“그럼?”
“대마법사들의 시도가 절반의 성공이자 절반의 실패로 끝이 났거든.”
“좀 자세하게 이야기해봐.”
“있는 그대로 읽어줄게. 들어 봐.”
[대마법사들은 지금까지 남아 있었던 ‘홍수 전설’이 단순히 전설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과거임을 밝혀냈다. 홍수 전설에 따르면 흙먼지밖에 없던 더스트가 지금처럼 비옥한 행성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이 드워프와 엘프 그리고 인간을 만드신 위대한 삼신(三神)과 함께 ‘커맨더’라는 칭호를 가진 신에 비견될 능력을 가진 대마법사의 협력에 의해 어디선가 이 행성에 존재하지 않았던 ‘생명수’를 대거 풀어 놓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이야기에 대해선 더스트 행성에서 태어난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당시의 그들은 하나밖에 없던 ‘달’의 마력을 이용해서 생명수를 만들어 냈지만 신의 힘이 너무나 강력한 덕분인지 너무 많은 생명수가 나타나는 바람에 더스트 행성에는 대홍수가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행성에 생명수가 스며들고 시간이 흐르자 더스트 행성은 먼지만 가득한 땅에서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비옥한 땅이 되었다. 우리는 삼신(三神)과 ‘커맨더’라는 초인(超人)이 만든 업적이 단순한 신화가 아닌 과거의 역사임을 알기에 이를 바탕으로 달의 마력을 끌어들이는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메테오’라는 마법을 탄생시켰다. 우리가 만든 메테오 마법을 이용한다면 달을 끌어들이는데 필요한 ‘초거대마법진’을 설치해야만 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초거대마법진의 수식을 계산하는 마법사 중 하나가 계산에 미세한 오차를 냈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동참했던 마법사들 중에 어느 누구도 당시에 이를 미리 파악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초거대마법을 실현했을 때 그 작디 작은 오차 하나가 결국 마력의 방향을 크게 뒤틀어 버렸다. 이를 뒤늦게 왜 실험이 실패했는지를 따져보는 도중에 알게 된 것이 비통하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메테오 마법이 원래 계산했던 달의 위치를 당기는 것에서 그친 게 아니라 엉뚱한 유성을 불러오는 바람에 달과 부딪혔대. 덕분에 일부는 쪼개져서 우리가 사는 더스트로 추락하거나 우주로 흩어지고 날아온 유성과 달의 파편만 남게 된 거야.”
“우리가 보는 스포보와 모스다는 그럼 그때 시도의 결과로 두 개의 달이 된 거군”
코엘 누나의 설명에 맞춰 엘리스는 내 시신경 위로 당시의 상황을 추정한 시뮬레이션을 당구경기 중계 해주듯 보여줬다. 엘리스의 시뮬레이션을 보고 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대륙에 떨어진 파편들이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나요?”
“내가 절반의 성공이자 절반의 실패라고 이야기한 첫 번째 이유가 그거야. 달이 2개로 늘어나면서 마력의 계절을 이전에 생각했던 기간보다는 더 늘릴 순 있었는데 우주로 날아간 파편은 큰 문제가 안 되었지만 대륙에 떨어진 파편 중 덩어리 몇개가 화를 불러 일으켰다고 하거든.”
팀원 모두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과거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래서 덩어리가 떨어져서 일으킨 화가 어떤 거야?”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서 최초에 존재했던 것처럼 ‘다시’ 한 번 대홍수가 더스트에 발생했고 행성 대부분이 그로 인해 물에 잠기고 세상은 뿌연 먼지로 가득차서 햇빛을 보기 어려워 한동안 생명체가 살기 힘든 행성이 되었대. 그 이후론 자신들이 저지른 탐욕과 실수의 대가가 너무 커서 후회스럽다는 내용들이 가득 적혀 있어. 그리고 더스트 행성의 사람들에게 삼신(三神)과 커맨더가 했던 신의 업적을 감히 자신들이 넘본 것이 화가 되었다면서 죄를 짓게 되어 더스트 행성 사람들 모두에게 죄송하다는 기록과 함께 멸망의 순간에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대마법사들에 의해 살아남은 이들이 다시는 자신들과 같은 잘못된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후에 찾아올 대마법사들의 후예들이 이 연구결과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구소를 봉인했대.”
“섭리를 거스른 대가가 너무나도 컸군.”
“어릴 적에 읽은 엘프들의 기록서에도 첫 번째 홍수가 일어나고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세상의 흐름이 이상해지더니 다시 한번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 세상을 집어 삼켰다는 내용이 있어. 그 당시 엘프들은 지금처럼 높은 나무에 살지 않아서 많은 엘프들이 쓸려 나갔고 당시의 하이엘프들 중 살아남은 일부가 그때 이후로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높은 나무를 만들어 거주하기 시작했다더라고.”
“그럼 지금도 하이엘프가 있어요?”
“어, 그때 하이엘프의 후예들이 지금의 엘프왕족이야. 그러니까 엘프 왕족이 곧 하이엘프인 셈이지.”
이야기를 다 듣고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의문이 들었다.
“실패한 첫 번째 이유면 두 번째 이유도 있나요?”
“성공했다면 지금까지 강대한 마력이 유지되어야 했겠지. 이들이 끌어들여 만든 두 개의 달도 그때 이후 마법이 해제되면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 덕분에 지금처럼 강한 힘을 가진 이들의 숫자가 줄어들거나 마력을 이용하는 이들의 힘이 아주 미약해진 걸테니까”
“안 함만 못한 시도였군. 차라리 시도하지 않았다면 초고대문명이 일으킨 문명이 남아 있어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을 수도 있는데...”
“대홍수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그건 어렵지 않을까? 인간의 탐욕은 생각보다 더 크거든. 힘을 쥔 자들은 언젠가 사용하고 싶어지는 법이잖아.”
드마코 형의 말에 지구의 역사들을 떠올려보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듣고 어딘가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지는 마음에 여관 밖으로 나오니 하늘엔 두 개의 달이 작게 떠서 은은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