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39화-그랜드 마스터 버크
내가 꿈꿔왔던 모험과 다른 위험한 현실에 나는 현자타임이 왔지만 팀원들은 나를 존중해주는 것인지 자기들끼리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쉬고 움직이고를 반복했다.
난 간혹 농담 따먹기까지 할 정도로 여유가 있어 보이는 그들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마치 이제 갓 자대에 전입한 신병처럼 빅터 교관이 시키는 대로 오라면 오고 밟으라면 밟고 뛰라면 뛰고를 2일간 반복해야 했다.
진짜로 혼자 왔으면 이전에 쓸려 나갔던 조사단의 인원들처럼 초반에 인생 리타이어할 수밖에 없는 각이었다.
그렇게 크로니클의 탐사가 시작되고서 2일이 지나고 나서부턴 딱히 위험한 구조물들은 없었고 다행히 중간 중간 존재하는 쉼터같은 공간이 있었다.
“이상한데? 그렇게 위협적인 것 초입에나 있고 거기 지나서 오니까 트랩이 없어.”
“그치? 대마법사의 던전이라기엔 너무 수수한 느낌?”
“던전이라기보단 연구소같은 느낌같기도 하고.”
“연구소?”
“왜 연구소는 입구에서는 함부로 사람들 못 들어오게 하고 그러는데 정작 들어오고 나면 크게 상관없고 그러잖아.”
“그것도 그렇긴 하네.”
주변의 위험요소만 확인하곤 수면을 취하려고 자리를 잡고 나서도 이야기를 나누던 다른 팀원들과 다르게 정신적인 피로감에 지쳤던 나는 단원들의 대화에 끼기엔 너무 졸려서 침낭을 꺼내서 죽은 듯이 잠에 빠졌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2일을 더 가서야 마침내 돌로 된 거대한 문 앞에 도달했다.
“마법에 의해서 작동하는 문 같은데 현재는 시간이 많이 흘렀는지 당시에 걸었던 마법주문이 소멸한 것 같아. 딱히 작동하는 것 같지는 않네. 빅터! 니가 보기엔 어때?”
코엘 누나가 문 주변을 샅샅이 둘러보던 버크 아저씨와 요크에게 물어봤다.
“이 문에 딱히 기관장치가 달려있지는 않군.”
“오면서 마법 주문에 의해 작동하는 트랩들은 멈춰 있고 기관에 의한 트랩들만 작동했어요. 그나마도 어떤 건 작동을 해야 되는데 삭았는지 반응도 없었고.”
“기관들도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위력도 반감되었고 말야.”
“아무래도 이건 기관이 오래되면서 적용되었던 마법이 날아가서 힘으로 열어 젖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모두들 비켜 보겠나? 이젠 내가 힘을 써야 할 것 같군.”
버크 아저씨가 문으로부터 10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서 시미터같이 생긴 큰 도를 등의 도집에서 꺼냈다. 이윽고 아저씨가 가볍게 기합을 주자 커다란 칼 끝에서 LED 랜턴보다 환한 빛으로 된 구체가 나타났다.
‘LED 랜턴에서 나오는 인공적인 빛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력적인 빛이야.’
“정후 단원, 구슬 형태로 응축된 저것은 그랜드 마스터들만이 만들 수 있는 비기 중의 비기 로 평생 살면서도 한번 볼까 말까할 정도로 진귀한 경험입니다. 검을 쓰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귀중한 경험이니 눈을 똑바로 크게 뜨고 보십시오.”
빅터 교관의 말에 난 나중에 다시 볼 작정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모드로 녹화를 시작했다.
버크 아저씨의 시미터에 맺힌 구체가 아주 작은 점으로 응축되더니 아저씨가 시미터로 배트를 휘두르는 것처럼 앞으로 뿌리는 듯한 동작을 하자 밝게 빛나는 구체가 날아가 거대한 문과 부딪혔고, 작게 압축된 구체는 문과 함께 흔적도 없이 순식간에 소멸해버렸다.
‘와...’
에디나 누나도 입이 떡 벌어진 걸 보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이게 그랜드 마스터의 힘인 거구나”
“이 정도는 그랜드 마스터 정도 되면 다 하는 거야.”
코엘 누나는 이 정도는 나도 한다면서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사람이 저런 걸 만들어서 뿌릴 수 있다고?’
문 안쪽은 ‘대마법사’의 유적이라는 말과는 다르게 어떤 마법적인 무구들이나 장비들이 있는 게 아니라 어딜 돌아봐도 꽤나 오래되어 보이는 책들만 놓여 있었다.
에디나 누나가 자기도 모르게 다가가 책을 만지려고 하자 빅터 교관이 손을 부드럽게 잡아채며 막았다.
“혹시나 남아 있는 마법이 발동하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에디나 단원.”
‘어라? 에디나 누나 얼굴은 왜 빨개지는 건데’
“미...미안!”
다른 팀원들이 다른 곳을 둘러보는 중에 드라마에서 볼 법한 자세로 손을 잡고 서 있던 둘은 이내 멀찍이 떨어져서 다른 쪽을 쳐다봤다.
‘뭐야? 뭐야? 둘이 썸 타?’
“이리들 와봐!”
평소와 다른 둘의 기류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들려온 목소리에 그쪽으로 움직여야 했다.
“뭣 좀 발견했습니까?”
코엘 누나는 아주 두꺼워 보이는 책 한권을 들어 보였다.
“여기 이 책을 얼추 읽어보니까 여기는 초고대문명 시대의 기록물들을 저장해놓는 곳이었던 것 같아.”
“무슨 종류의 연구였던 것 같아요?”
책을 펼치고 있는 코엘 누나의 손 밑에서 요크가 책의 재질을 확인하면서 말을 걸었다.
“흐음, 아무래도 이 책은 초고대문명의 말기쯤에 해당하는 연구기록으로 보여.”
코엘 누나의 말을 들은 버크 아저씨가 이런 고문서 해석은 자기 전문이 아니라면서 코엘 누나에게 해석을 부탁했다.
“우선 여기 적힌 내용 일부만 해석해보면...”
코엘 누나가 읽어준 책에는 마나의 계절이 저물고 있어 이를 되돌리기 위해 많은 대체방안을 강구해봤지만 자신들의 강대했던 문명의 시간도 다 한 것 같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덕분에 앞으론 지금처럼 대마법사들의 숫자가 많지도 않을 것이며 그랜드 마스터들의 숫자도 급감하여 아주 찾아보기 어려운 존재들로 남을 것 같다는 전망이 적혀 있었다. 뒷부분에는 마나의 농도가 줄어들고 있는지에 대해 원인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향후 자신들의 '도전'이 실패할 경우 비관적인 전망이 예상된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고 했다.
“그럼 여기 있는 자료들이 전부?”
“ ‘마나의 계절’ 마지막 시기에 해결방안을 찾는 과정을 기록한 기록물이 아닌가 싶어.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 원인이 뭐죠?”
“여기에 적힌 바로는 ‘달’이 멀어지는 것이라는데?”
“어젯밤에도 뜬 그 두 개의 달이요?”
“이때는 지금보다 달의 위치가 훨씬 가까웠던 것 같아. 여기 그림도 그려져 있어.”
이상한 점은 코엘 누나가 보여준 책에는 지금과 다르게 더스트 행성으로 보이는 행성을 회전하는 ‘달’이 하나만 그려져 있었다.
“어라? 여긴 달이 한 개밖에 안 그려져 있는데?”
“그러게. 뭘 잘못 알았던 건가?”
“그냥 상징적으로 ‘달’을 표현하기 위해 그려 놓은 그림 아닐까?”
“단지 그것뿐이라기엔 구체적으로 달과의 거리를 계산한 수식같은 것들도 옆에 써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징적인 그림은 아닌 것 같군.”
코엘이 지금과 다르게 하나의 ‘달’만 그려진 연구서를 뒤적거려 봤지만 딱히 더스크에 현재 존재하는 두 개의 달 '스포보’와 ‘모스다’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일단 우리가 부여받은 임무는 초과성공인 것 같군.”
“자세한 내용은 조사단이 들어와서 여기 있는 자료들을 통해 연구를 해서 밝혀내겠지. 연구소장이란 마법사가 기록한 일부만 보고 전부를 알 순 없어.”
“정후 단원, 가능한 한 많은 책들을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기록해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빅터 교관의 요청대로 나와 요크는 코엘 누나의 지시에 따라 중요하다 싶은 제목이 있다는 책들만 골라 사진으로 찍어서 데이터화 해 두었다.
“고생하셨어요. 조심히 나가기만 하면 되겠어요.”
“아, 힘들다. 정후야 우리 나가서 시원하게 맥주 한캔씩 하자?”
“난 막걸리로 주게.”
“소주가 싱거운 게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
단원들과 서로 악수를 나누고 포옹을 하면서 개인취향에 따라 나가서 뭘 마시고 싶은지를 이야기하자 그제서야 날아다니는 쇠붙이들로 긴장했던 몸이 풀리고 작은 성취감이 느껴졌다.
“나가기 전까진 긴장을 완벽히 풀지 말고 돌아나갈 때도 혹시 모르니 제 지시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빅터 교관이 경고한 것과 다르게 오는 길은 우리가 지나온 길이었기에 들어갈 때와 달리 큰 사건 없이 2일 만에 되돌아 나올 수 있었다.
한번 도착하기 직전 잠깐 해프닝이 있었는데 긴장이 풀린 에디나 누나가 요크랑 떠들다가 빅터 교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엉뚱한 곳을 밟는 바람에 도끼가 튀어나오는 일이 한번 있었다.
“에디나! 조심!”
“허억...”
에디나 누나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 어느새 앞에 있던 빅터 교관이 에디나 누나 곁으로 움직여서 한손으로 도끼를 잡고 한손으로 엠제이 누나를 감싸 안았다.
‘뭐야, 둘이... 자꾸 영화 찍어?’
나머지 팀원들은 둘 사이에 오가는 이상한 기류를 못 느끼는 것인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빅터 교관은 에디나 누나를 구해 준 뒤에 나중에 나가서 따로 탐색에 대해 대응훈련과 지시불이행에 따른 벌칙을 수행할 각오를 하라며 다그쳤다.
‘흐음’
우리는 나와서도 바로 도시로 이동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의 조사한 결과에 대해 문건을 만들어 제출했어야 했으니까. 그렇게 문건을 만들고 나서 우리가 수거해온 몇 권의 책들도 함께 조사단에게 제출하였는데 우리는 조사단이 보고서를 건네받고 나서도 어찌된 일인지 2일 동안 대기해야 했다.
조사단은 간략하게 검증을 마치고선 우리가 준 보고서의 내용이 맞다는 것을 확인해줬고 조사단원으로부터 코엘 누나는 임무완료의 증표로 반으로 쪼개진 메달을 받아 왔다.
“그 반쪽짜리 그 메달은 뭐죠?”
“이거? 모험가가 처음에 의뢰를 받으면 모험가 길드에서 두 개가 닿아야만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증표’를 의뢰자와 모험가 길드가 나눠 가지는데 의뢰자 쪽에서 임무를 달성했다고 납득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이렇게 임무를 수행한 모험가 팀에게 반쪽짜리 ‘증표’를 넘겨줘”
“그러면 이런 반쪽짜리 메달을 모험가 길드에 가져가서 돌려주지. 모험가 길드는 자신들이 가진 반쪽짜리 메달과 합쳐보고 나서 우리가 임무를 성공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계약금을 제외하고 주지 않았던 잔금을 주고 계약을 종료시키는 거라네.”
요크와 버크 아저씨 그리고 코엘 누나가 이동하기 위해 말을 가지러 간 동안 빅터 교관과 드마코 형은 메달 제도가 생기게 된 이유까지 아직 모험가라는 것에 대해 교육이 필요했던 에디나 누나와 날 불러두고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두 사람의 말에 따르면 메달 제도는 모험가와 의뢰자, 양쪽의 신뢰를 중재한 모험가 길드의 탄생과 관련이 깊은 제도라고 했다.
예전의 모험가 길드에 의뢰한 의뢰인들은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업계의 관행이 이렇다며 수행했다고 치고 대충 넘어가려는 모험가 집단들에게 불만이 많아서 점차 신뢰를 잃고 있었다.
반대로 모험가 집단들은 의뢰를 수행하여 완료했음에도 모험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지 않는 의뢰자들에게 대금을 받아내기가 너무 어려워서 의뢰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로 인해 의뢰자는 의뢰자대로, 모험가 집단은 모험가 집단대로 서로 불만이 커지고 있었는데 당시 모험가로 명망이 높았던 ‘프리’가 이 같은 문제적 상황을 깨부수기 위해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양측을 중재하기 시작했다.
‘프리’가 만든 메달 제도는 의뢰자가 의뢰금의 30%를 모험가 길드에게 계약금으로 지불하면 의뢰에 대한 증표로 ‘반쪽짜리’ 메달을 의뢰자에게 주었다.
모험가 길드는 의뢰를 원하는 모험가 집단을 선택하여 의뢰인으로부터 받은 계약금의 절반. 즉, 임무 완성의 대가 전체 중 15%만 모험가 집단에게 계약금으로 지불했다
모험가 집단이 의뢰를 마치고 나서 의뢰자로부터 성공했다는 징표를 받아오지 못하면 길드의 내부 절차를 거치고 나서 임무 실패 처리가 된다.
이때 의뢰인은 전체 지불해야할 금액 중 30%의 리스크만 지는 걸로 끝이 난다. 반대로 최악의 상황에서도 모험가 집단은 전체 금액 중 15%는 회수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