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3화 〉33화-저랑 함께 일하실래요? (33/239)



〈 33화 〉33화-저랑 함께 일하실래요?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커피를 타주기로 한 동생은 어찌된 일인지 커피는 가져오지 않고 이미 나갈 준비를 모두 마친 뒤 쇼파에 앉아 있었다.
“커피를 타려고 생각해보니까 이왕이면 이제는 분위기 있게 형제가 커피 전문점에서 만든 커피를 마시는 것이 우리 형님을 더 만족스럽게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게 니가 원한 한가지 소망이라 이거지? 커피라...흐음, 생각보다 저렴한 소망이군. 그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들어 주도록 하지.”
장난기가 돌아서 툭하고 건드리니 동생은 납작 엎드렸다.
“바라옵건대 형님의 아우는 큰 것을 바라지 않사옵니다!”
엎드린 동생을 살짝 보고선 방으로 들어가 1인 2역의 광해군으로 연기한 변사마처럼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답하며 인벤토리에 넣어뒀던 옷을 꺼내 갈아입었다.
“아우님이 원하는 물건이 어떤 것인지 이 형은 알 수가 없구나. 어디 한번 고해 보거라!”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쇼파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올라앉자 동생은 냉큼 엎드린 채로 내가 앉은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아우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최고급 사양의 그래픽 작업이 가능한 PC이옵니다.”
“아우가 원하는 것이 그것인가? 어디 니놈이 장바구니에 챙겨 놓았던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내게 한번 보여 보거라.”

동생은 무릎걸음으로  옆으로 오더니 쇼파 위에 걸터앉았다. 동생은 VIP 고객을 대하듯 명품관의 점원처럼 자신이 원하는 물건의 가격구성이 어찌해서 이렇게 되었는지를 세세히 설명했다.
“엣헴...자리로 돌아가 보거라.  잠시 생각해 볼 것이 있은즉”
있지도 않은 수염을 만지듯 턱을 매만지며 두 눈을 감고 있다가 살짝 오른쪽 눈을 떴다. 동생을 쳐다보니 동생은 엎드린 채로 고개만 살짝 내 쪽으로 들어  쳐다봤다.
‘엘리스, 저거  카드로 주문해줘. 배송지는 여기로.’

“아우의 소원이 이루어질  있겠사옵니까? 형님.”
“니 소원은 이미 이루어졌다. 며칠 뒤에 너의 소망이 담긴 물건을 들고 기사님이 방문할 것이니라. 그때를  기다리고 있거라.”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고 베란다 쪽으로 움직이자 동생은 냉큼 무릎을 툭툭 털고선 이제 밖에 나가서 커피나 마시러 나가자고 했다.
“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자세가 빨리 변해. 아직 반품 버튼 누를 수도 있어.”
“형님~ 왜 이러십니까? 아우가 커피를 사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이제 갓 전역한 니가 무슨 돈이 있어. 치워.
“훗, 나라에서 만들어주는 카드에 차곡차곡 돈 모아놨거든? 가자.”
“됐다. 치워라. 벼룩의 간을 빼먹지. 이제 갓 제대한 말년이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우리 둘은 나와서 집 앞의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각자의 취향에 따라 디저트와 커피를 주문하였다.
“쪼옵, 근데 돈은 얼마나 모아서 나왔냐?”
“한 330?”
동생이 군대에서 모은 돈이 내가 이세계로 떠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잔액과 비슷해서 마시고 있던 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뱉을 뻔했다.
“뭐? 군인 통장에 왜 그리 돈이 많아? 훔쳤냐?”
“훔치긴 뭘 훔쳐, 사병들 월급 오른 지가 언젠데 그런 소리야?”
“요즘 병장 월급이 얼, 얼만데?”
“월 54만 900원.”
“나 때랑 몇배 차이야. 세상 군대 많이 좋아졌다.”
“그래도 아직도 부족하지. 20대에서 가장 밝고 빛나는 청춘을 바친 대가로 최저시급 수준도 안되는 돈인데...”
“그거야  맞긴 해. 아무리 징병제라고 해도 미군들에 비하면 아직 한참 부족하긴 하니까.”
“사병 월급도 좀 현실화해줘야 한다고 봐. 어차피 군대에서 다치거나 죽으면 정작 취급은 개죽음이고 니네 자식인데...사람답게 월급이라도 최저시급은 맞춰서 줘야지. 징병으로 끌고 가놓고 외국인 노동자만도 못한 수준으로 임금착취를 하는 것이 21세기의 대한민국 군대로서 가당키나 하냐고.”
“동의.”

그나저나 몇 년 만에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나 때는 병장 월급으로 17만1400원 받았는데’
“갑자기 괜히 사준 것 같아. 너한테 털린 기분이야.”
조각 케이크를 두 개나 먹어치운 동생은 만족스러워했다.
“잘 먹었어. 형이 사준 케이크라서 그런지 아주 입에 쫙쫙 달라붙네.”

동생과 커피숍에 앉아 있자니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찾아 올 수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은 망했었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중소기업이 사정이 안 좋아지자 어쩔 수 없이 더 손해가 늘어나기 전에 아버지는 서둘러 폐업을 결정해야 했다.
아버지의 사업 종료 이후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살던 집은 몇 년 전에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고 난 그때 쯤 부모님께 짐이 되지 않고 싶은 마음에 앞으론 혼자 살아보겠다면서 자취방을 구해 서울로 올라 왔다.  뒤로 난 학기와 방학 내내 몇 개씩 알바를 하면서 겨우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은 쉽지 않아 이래저래 심적으로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어야 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의 나다.

아무튼 그때 올라와서 자취방을 구하기로 결심하기 전에 아버지가 폐업을 결정하셨을 땐 겁이 났다. 집안이 망한 것보다 아버지께서 그대로 그렇게 무너지셔서 다시는 회복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넘어진 아버지를 지켜보시면서 고통스러워하진 않을까 싶었다. 어쩌면 하루라도 빨리 집을 뛰쳐나오고 싶었던 심정이 들었던 것은 부모님이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도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에 이제 대학에 입학한 동생과 졸업까진 2년이나 남았던 내가 집에 있는다면 부모님에겐 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난 아버지께서 몇 달 동안 괴로워하시다가 혹여나 알코올중독자가 되시는  아닐까 걱정했지만 아버지는 내 예상을 가뿐히 뛰어 넘으셨다. 10년이 넘게 운영했던 공장을 접고 한달이 지났을 때쯤 아버지는 어느 날 아침을 드시며 나와 같이 도서관에 가겠다고 하셨다.
“화물기사가 되어야겠다. 내 나이에 어느 정도 돈을 벌고 살만한 직업이 별로 없는데 이 일은 내가 노력한만큼 벌 수 있겠구나.”

나조차도 가끔 스마트폰을 보면서 딴 짓을 할 때가 있었는데 나와 함께 도서관에 오신 아버지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한번도 쉬지 않고 오전 내내 공부하셨다.
그리고선 나와 같이 도서관 지하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의 여유를 잠시 즐긴 뒤 다시 자리에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또 공부를 하셨다.
보통의 경우 아버지의 연세에 화물기사 자격시험을 보는 분들은 처음 한  번 정도는 탈락의 고배를 마시곤 한다는데 아버지는 당당히 필기와 실기를 단번에 모두 통과하셨다. 그때 아버지 나이가 58세였다. 그리고선 어찌어찌 돈을 끌어 모아 중고 화물 트럭을 사서 아버지께선 본인이 이야기하셨던 화물기사가 되셨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그렇게 노안으로는 스마트폰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돋보기 안경을 쓰고 앱으로 콜을 잡아 하루에도 몇탕씩 뛰면서 결국 제2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셨다.
회사를 때려 치고 나와서 다음 직업을 구하기가 어려워 취준생이 된 젊은 친구들도 오랫동안 백수로 남아 구직활동을 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시대인데 아버지는 고민했고 결정한 뒤 결국 스스로 직업을 만들어서 구하신 것이었다.

나는 그때 15년을 넘게 운영한 기술력 탄탄한 중소기업이 쓰러졌을 때 받았던 충격이 적지 않았을 것임에도 넘어진 사람이 좌절하기보다는 어떻게 다시 일어나야 하는 것인지 실천으로 보여주신 아버지께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앞으로 아버지의 아들이라면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했다.
막상 그런 아버지를 설득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나는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할 것인지 답이 보이지 않았다. 동생에게 물어봤지만 군대에서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가 굳은 탓에 동생도 내 능력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간단하게 해법을 떠올리진 못했다. 더구나 아버지보다 더 크고 단단한 장벽은 사실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셨다.

아버지는 의외로 큰일에는 대범한 편이셨기에 어떻게 잘 설득하면  것도 같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섬세한 분이셨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는 동안 여러 차례 다가오는 위기들을 경험할 때마다 항상 불안과 염려를 안고 사셔야 했기에 내가 취업을  나이가 되었을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셨던 것이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라는 거였다. 말단 공무원도 괜찮으니까 적든 많든 나라에서 주는 월급 받으면서 먹고 사는 걱정 없이 편하게 살라고 하시면서.

나와 동생은 그런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다. 창업을 하고 처음 자금을 구하러 가는 스타트업의 대표가 이런 심정이었을까 모든 것이 막막하게만 여겨졌다.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계속 하기엔 주변에서 혹시 듣고 이상하게 생각할 여지가 있어 집으로 돌아와 식탁에서 부모님이 오시기 전까지 설득할만한 대본을 짰다.
새벽에 나가셨던 부모님은 저녁 6시가 넘어서 도착하셨다. 부모님은 부모님이신 걸까? 아버지는 집에 오셔서 내 얼굴을 슬쩍 본 것만으로 무언가를 직감하셨던 것 같았다.
“너 뭐 할 말 있구나? 일단 씻고 나와서 이야기하자. 당신도 씻고 와.”
괜히 찔리는 심정에 나도 모르게 자백하듯 아버지께 되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얀마, 척하면 척이지. 니 아버지로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뭘. 여보, 아들 보니까 조용한 곳에서 좀 진지하게 고기 좀 썰러 가야 할  같소.”
“아들, 무슨 사고친 건 아니지?”
“에헤이, 일단 씻고 오자니까~간만에 아들 덕분에 외식할 것 같네.”
“아들아. 엄마는 심장 떨릴 일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제 집안도 안정되어서 마음 편해졌는데...”

씻고 나오신  분을 모시고 집에서 나와 예전부터 눈여겨 봐 놓은 집 근처의 음식점으로 모셨다.
“예전부터 취직해서 월급 타면 여기 한번 꼭 모셔오고 싶었어요.”
“엄마, 나중에 난 형보다  좋은 데서  월급턱 쏠게.”
“넌 대학이나 열심히 다녀. 졸업이 먼저야.”
“아니, 사준데도 구박이야 구박이.”
“내가 언제 구박을 했다고 그래?”
“정후야, 무슨 이야긴지 몰라도 먹고 이야기할까? 이왕이면 배부터 채워서 속을 든든히 해야  것 같다. 하하. 나중에 사람 만날 때도 상대방한테 좋은 대답을 듣고 싶으면 배부터 적당히 불려라. 배부른 사람은 설령 거절할 마음이 있어도 나쁘게 대답 못하는 법이니까.”

음식을 다 먹고 조용해지자 아버지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들이 사주는 비싼 밥도 다 받아보고 다 컸구나. 그래, 이렇게까지 분위기 잡고 하려는 이야기가 뭔지 궁금하구나”
‘어우, 아버지는 사업하실 때 이런 분위기셨구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자세를 잡은 아버지의 분위기는 내가 평소에 경험하는 가족으로서의 아버지와는 다른 느낌이셨다.
“아버지, 제가 이번에 도움을 드린 분들과 시작하려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정후야! 너 설마 사업하겠다는 건 아니지? 엄마는 그건 싫다. 지금이라도  늦었으니까 공무원 하자. 엄마 소원이다.”
엄마는 내가 입을 떼자마자 뭔가를 직감한 듯 바로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바뀌셨다.
“우선 애 말 다 끝날 때까지 좀 기다려 봅시다. 듣지도 않고 그렇게 막아버리면 애가 이야기를 못하지.”
“그래도...휴우...그래, 큰아들이 무슨 이야기하고 싶나 들어나 보자.”
아버지가 다행히도 걱정으로 가득 찬 어머니를 다독여 주셨다. 어머니는 찬물이 담긴 컵을 벌컥벌컥 들이키시곤 심호흡을 하고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를 하셨다.

지후와 잠시 눈빛을 주고받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저번에 도와드린 분들이 제 책임감을 보시고선 마진의 30%를 커미션으로 해서 금이나 백금 혹은 보석같은 것들을 그에 대한 대가로 지불하겠다면서 중간상으로 팔아 주길 원하더라구요. 거래량은 점차 신뢰를 쌓아가며 늘리기로 하구요. 아버지랑 어머니도 지금처럼 매일 새벽같이 나가서 장거리 운행을 하는 것보다 제가 받아오는 귀금속들을 소매상들에게 판매하거나 도매와 소매업을 겸해서 귀금속 상점을 열고 편하게 지내시는 건 어떨까 해서요.”
부모님께 곧이곧대로 이능력을 활용하여 이계로 물건을 옮겨 물건을 판매하여 수익을 창출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허무맹랑하게 들릴 여지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 형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부모님을 가장 덜 속이는 속을 덜 썩이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최대한 주의하면서 꺼낸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아버지께선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빠지셨다.
“니가 이렇게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쉽진 않았을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준 것은 고맙구나. 그러나 당장 내가 하던 일이 고되다고 해서 아무리 아들의 말이라고 해도 그렇게 쉽게 말만 듣고 바로 하던 일을 그만둘 수는 없어, 정후야.”
“큰아들, 오해하지 말고 들어. 엄마는 니 이야기가  사기치는 사람 이야기 들은 것처럼 허황되게 들린다.”
"저도 바로 내일부터 그만두시란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리고 사기 아니에요."
지후는 벌써 일이 틀렸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젖혀 천장을 쳐다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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