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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화 〉31화-겁쟁이 (31/239)



〈 31화 〉31화-겁쟁이

“야, 니 지갑에 구석구석 쑤셔 박아 놓은 돈도 많던데 친구끼리 그거 좀 가져간 거 가지고 되게 지랄하고 있다?”
“그러게, 이정후 이 새끼. 학생이 돈도 많아. 지갑에 30만원씩 넣어 갖고 다니면서 친구들이 거기서 좀 빼서 나눠 쓴 걸 가지고 불만이냐? 나중에 갚으면 될 거 아니야.”
“나눠 써? 지랄을 해? 니들이 내 친구라고? 허락도 없이 가져가 놓고 나중에 갚는다고?”

내 지갑에 들어있던 돈 나에겐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여름방학동안 아버지의 공장에서 2주간 일하고 받은 돈의 일부와 너무나 작은 소기업인지라 사장이었음에도 직접 공장 일을 하셔야 했던 아버지가 자기 몸을 깎아 번 돈을 합한 결정체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지갑에 넣어 오게 된 이유도 아버지의 낡은 지갑을 바꿔 드리고 싶어서 이전에 점찍어 둔 지갑을 사려고 오랫동안 준비를 하고 며칠 전부터 시간이 되겠다 싶은 날이 오늘이었기 때문이었다.

“니가 훔쳐간 돈은 그렇게 쉽게 가져가도 되는 돈이 아니야. 니들이 평소에 쓰는 것처럼 기껏해야 노래방이나 가고 놀면서 낭비할 돈은 더더욱 아니고. ”
“이 새끼, 말하는 거 봐라. 우리가 훔쳐? 낭비를 해?”
“이정후! 너 우리가 누군지 몰라? 그동안 봐줬더니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내가 뭐 그런 거까지 알아야 되냐? 봐주긴 뭘 봐줬다고. 너희같은 도둑놈의 새끼들 사정이 뭐라고. 경찰서에 갈래? 아니면 그냥 주고 끝낼래.”
“야, 넌 좀 맞아야겠다.”

나는 그날 3대1로 싸워야 했고 그 뒤로도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 한 학기를 싸워야 했다. 누군가는 차라리 주말 아르바이트를 해서 30만원 다시 버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때 나도 무엇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빼앗긴 돈을 돌려 받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신념이나 가치를 지킬 것인가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기에 버텼고 결국 받아냈다. 이자도 모자람도 없이 딱 30만원.

동생의 말에 갑자기 잊고 지냈던 순간이 떠올랐다.
“형은 한 학기 내내 싸웠잖아. 30만원 때문에. 그리고 근방에서 결국 유명해졌지. 돈에 환장한 전귀(錢鬼) 이정후는 건드려 봐야 손해라고. 뭐, 나야,  이후로 형 동생인 게 알려져서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누가 날 건드린 적이 없었지만 형은 그때 무척 힘들어했던 거 기억 나거든.”
“알고 있었냐?”
“학교에서 뭔가 힘든 일이 있었던  알았지만 진짜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나중에 알게 되었지. 근데 알고 나니까 난 그때 형이 무척 멋있더라구. 형이  싸웠는지 짐작이 가니까.”
“또 다시 뺏기지 않으려면 내게 물어뜯을 수 있는 이빨이 있다는 걸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 지금이라면 그렇게 안할 거야. 까짓거 적선했다 치고 주말 알바를 뛰었겠지. 미련한 짓이었어.”
“지금이랑 비교하면 차라리 그때의 형이  나은  같아. 난 절대 그게 미련하다고 생각도 안 하고.”
“인마, 그때  때문에 엄마가 흘리는 눈물을 봤잖아, 이젠 그럴 나이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되고.”
“아니, 내가 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 형이 겁이 많아진  같다는 거야.”
“뭐?”

동생이 하는 내가 겁이 많아졌다는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 돈도 잘 벌게 되었고 검술과 체력훈련을 하면서 자신감도 생긴 나를 못 봐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준비를 철저히 해서 하는 건 좋아. 좋은데. 하기도 전부터  그렇게 쫄아있어? 무모해보일지 몰라도. 형, 우리 20대야. 실패해도 재기再起할 수 있는 나이 20대. 더구나 형은 능력도 생겼잖아. 이 세상엔 누구도 갖고 있지 못한 능력. 근데  그렇게 겁내는 거야? 형  대로면 돈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는 거 아니야? 난 그게 부러워. 이제 형은 얼마든지 실패해도 괜찮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의미니까. 내가 돈 많은  아이들이 부러웠던 건 쟤들은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설 기회를 집에서 보증해주겠구나 하는 거였거든.”
“그렇게도  수 있으려나.”
난 어른이 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쉽게 포기해버리는 겁쟁이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생의 말이 머리로는 이해되었지만 어쩐지 가슴에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 짜식이. 어디 형 보고 겁쟁이래? 인마. 너 겁쟁이랑 한번 그라운드로 붙어볼래?”
“어허, 대한민국 육군의 따끈따끈한 만기 제대자를 너무 우습게 보는데?”

장난스레 시작한 동생과의 약간의 그래플링 이후 동생에게 거친 숨소리로 말했다.
“이제 형과의 격차가 느껴지냐?”
“허억...허억...허억...거기 나도 데려가라. 허억. 너만 이렇게 강해지는 꼴은 못 보겠다. 허억. 돈 잘 버는 것보다 강해지는 것이 부럽구나. 나도, 나도! 마스터 빅터를 뵙고 싶다.”

동생은 거실바닥에 드러누워선 형이 이세계에서 돈 잘 버는 것보다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더 부럽다며 세상 행복할 일만 있는 사람이 뭘 그렇게 신경 쓰고 고민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음, 그곳에서 얻은 수익을  대신 중간상으로서 귀금속상을 해줄 사람이 필요해. 내가 매번 금은방을 전전하면서 거기서 얻은 귀금속을 팔고 다닐  없어. 계좌에 흔적이 남는 것도 남는 것이지만 점점 거래량이 늘어날수록 내가 취급할 수 있는 귀금속의 양도 늘어 날거야.”
내가 처음 아무 생각 없이 보따리상처럼 물건을 모아서 저쪽으로 넘기면 거기서 높은 마진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들떠 있다가 엘리스의 지적에 깨닫게 된 사실이었다.


“꿀통인줄 알았는데 벌도 있었다 이거지?”
“중간상으로 귀금속을 시중의 가격보다 약간 저렴한 가격으로 팔아 줘. 한동안만 해주면 돼.”
“형, 근데 꼭 거기서 귀금속을 가져올 생각만 하지 말고 다른 생각은  해봤어?”
“다른 생각이면 어떤 생각?”
“그쪽에서 물건을 만들어서 여기서 파는 거지. 들어보니까 그쪽은 인건비도 여기보다 저렴할  같은데? 개성공단이 그런 거잖아. 한국 사장이 가까운 지역에 공장 만들어서 한국 시장과 세계의 시장에 물건을 판매하려는 전략.”
“단순한 환전상이 아니라 물건을 제조해서 가지고 와서 판매를 하라고?”
“그래! 그럼 굳이 환전할 필요도 없이 그냥 한국 돈을 벌 수 있는 거니까. 해외에 판로를 개척해서 수출까지 하면 외화벌이도 하는 거고.”

우리의 이야기가 길었는지 어느새 오후 5시가 넘었고 아침 일찍 나가신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이고, 힘들다~. 오늘도 고생했어.”
“힘들기는 운전하느라 자기가 고생했지.  옆에서 그냥 졸기만 했는데.”
“다녀오셨어요?”
“엄마, 아버지. 저 왔어요.”

동생과 함께 부모님이 아침에 싸 갔던 도시락이 든 쇼핑백과 짐을 받아 들었다.
“오늘도 도시락 싸서 나가셨네. 밥이라도 사 드시라고 저번에 돈도 보내드렸는데.... 하루 밥값 아껴봐야 얼마나 아낀다고.”
아들은 돈이 생겨서 먹고 살만해져서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이렇게 힘들게 살고 계신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정후야, 밖에 나가면 코로나 때문에 요즘 어디 식당 들어가기도 마땅치가 않아. 마음 놓고 편하게 밥이라도 먹을 수 있어야 하는데  아버지는 급성 폐렴을  번이나 앓았잖니. 돈도 돈이지만 쓸데없이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어.”
“아들, 물건 실어주고 내려주고 하다보면 딱딱  때 맞추기도 어렵다. 길 가다가가 갑자기 식당 보고 들어가기가 말처럼 쉬운  아냐?”
“차라리 이렇게 도시락을 싸서 나가면 얼마나 편하고 좋은데? 소풍 갔다 생각하면 젊을 때  다녀본 여행 이제서 이렇게 다니는 것 같고 그래.”
“내 말이! 역시 마누라뿐이야!”
부모님께서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나에겐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밥을 싸 가지고 가서 불편하게 차 안에서 먹는 것이 그렇게 좋은 리가 없다는 것을. 부모님은 식당에 들어가서  먹을 식비를 줄여 절약하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엄마가 아버지께 먼저 씻으라고 하자 아버지는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셨고 엄마는 가방들에 들은 물병들과 도시락통을 하나하나 꺼내서 싱크대에 옮겨 넣으셨다.
“근데 여긴 니가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웬일이긴. 큰아들이 부모님 얼굴도 본 지도 오래된 것 같고 저번에 알바해서 벌고 남은 돈으로 맛있는 음식이라도 사드릴  해서 왔지.”
“무슨 외식이야? 집에서 먹어.집에서. 가만 있자 집에 먹을만 한~~게 있나?”
어머니는 방금 집에 돌아오셔서 아들에게 저녁 맛있게 차려 주시겠다면서 뭐가 있나 냉장고를 뒤적거리시다 금방 내가 마트에서 사 온 물건들을 보셨다.
“어휴, 뭘 이렇게 많이도 사왔어. 냉장고  차면 그거 다 전기세야.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면 그게 다 낭비고. 이거 다 사 오려면 돈도 많이 들었겠는데 이렇게 사 왔으니까 굳이 나가지 말고 오늘 저녁은 사온 걸로 집에서 그냥 해먹자.”
“엄마, 아들이 밖에서 사드린다니까.”
“아들 마음은 알겠는데 엄마도 엄마가 편한 대로 하자.”

내가 집에 장을 사올 때 생각했던 것은 이런 그림이 아니었는데 어느새 생각 없이 엄마에게 저녁밥을 만들게 만드는 그림이 되어버렸다.
“형, 엄마도 이해해 줘.”
“알지. 아는데...”

저녁 맛있게 먹자며 부산히 움직이는 어머니의 뒷머리는 예전과 다르게 하얗게 눈이 쌓여 엄마의 나이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염색부터 하시라고 해야겠네. 내일은 엄마 모시고 미용실부터 다녀오든가 해야지.”

어머니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샤워하고 나온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선 아들 덕분에 맛있는 저녁을 먹는다며 기분도 좋은데 소주도 한 병 까서 마시자고 하셨다.
“내일 또 일감 있지 않아요? 새벽부터 나가려면  마시는 게 좋지 싶은데.”
“있긴 있는데 또 이렇게 소주 반병 마시면 하루 피로도 풀리고 그래. 아들한테 한 잔 받아보자.”
고된 장거리 운전의 고통을 아버지는 알코올의 힘에 기대어 버티고 계셨다. 간만에 네명이 다 모여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나서 엄마에겐 설거지랑 뒤처리는 아들들이 할 테 급하게 저녁준비를 하느라고 못하신 샤워나 하고 편하게 계시라고 했다.

싱크대가 그렇게 넓은 편이 아니라 성인 남자 두명이 서 있기엔 복닥거렸다.
“야, 내가 물로 싸악 헹궈주면 그거 받아서 깔끔하게 물기 닦아 놔라. 물기 제대로 안 닦으면 나중에 얼룩 생겨.”
“설거지 원, 투데이 해보나. 접시에 비누기 안 남게 세제 남은 부분이나 잘 헹궈 줘.”

두 아들이 그렇게 먹고 남은 흔적을 치우고 있자니 아버지가 콧소리를 내면서 다가와 우리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말했다.
“아들들이 이러고 있는 거 보니까 그동안 고생해서 두 아들내미 키운 보람이 있다.”
“들인 밥값이 있는데 이런 거라도 해드려야죠. 나중에 식기세척기 하나 장만해 드릴게요.”
“말은 고맙다만 난 모르겠다. 아들이 열심히  잘 벌어서 그런 것도 사주고 하는 거 난 나쁘지 않은데 너희 엄마가 그걸 좋다고 받아서 쓸지는.”
‘어떻게 해야 내가 돈을 잘 벌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리지?’

일반적인 직업이 아니라 부모님을 납득시키기가 너무 어려울  같았다. 내가 머뭇거리는 걸 알았는지 엘리스가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왔다.

‘절대 안 돼! 이건 내가 해야 되는 부분이야.’

그 날 저녁 이후 야식으로 치킨을 시키고선 캔맥주 하나씩을 더 꺼내서 치맥을 하며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본가에서 잠들었다. 새벽에 약간 부산한 소리가 들렸지만 본가로 오니 마음도 풀리고 해서 긴장도 확 풀렸는지 몸이 무거워서 눈이 잘 안 떠졌다.
“쯧쯧”
이상한 소리에 자리에서 벌컥 일어났다.
“헉”
“화상아. 어젠 나보고 늦잠 잔다고 뭐라 하더니 부모님 나가시는 소리도 못 듣고 잘만 잤네?”
“엄마랑 아버지 벌써 나가셨어?”
“새벽 6시 30분에 이미 아침 챙겨 드시고 도시락까지 싸서 나가셨지.”
“나  깨워주지. 오늘 엄마 모시고 미용실 좀 다녀올까 했는데. 간만에 집에 와서 너무 정신 놓고 잠들었네.”
“엄마가 어디 그럴 분이야? 오랜만에 집에 온 장남 편히 자게 두라고 방문까지 꼭 닫아 주셨는데?”
“몇 시야?”
“응 어제 형이 나한테 구박했던 아침 10시. 아침 먹을 거야?”
“에이, 이제 와서 아점 먹으면 이따가 점심은 또 어떻게 먹냐. 한시간 정도 있다가 먹어야지. 물이나 떠오렴, 동생아”
“엄마는 왜 저런 놈팽이를 그렇게 아들이라고 끼고 도는지 모르겠어. 물에다 콱 침을 뱉어버릴까부다.”

조그맣게 투덜거리면서도 물을 떠주러 가는 동생의 뒤에 정겨운 한마디를 붙여줬다.
“다 들린다. 너부터 마셔보라고 할 거야.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가만 안둘테니까 알아서 판단해.”
“쓸데없이 예전보다 더 세져 가지곤”
동생은 시원한 물을 갖다주고 내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동안 침대에 걸터앉았다.
“형, 내가 어제 생각해 봤거든?”
“꿀꺽 꿀꺽”
“듣고 있지?”
“꺼억. 와 물이 달다.”
내가 듣거나 말거나 동생은 자기가 밤에 누워서 생각해보고 아침에 부모님을 배웅하며 느끼고 생각한 바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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