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화 〉28화-삶의 이유(1) (28/239)



〈 28화 〉28화-삶의 이유(1)

“정후야, 듣고 있어? 내 말 듣고 있냐구”
“예이예이”
“정후군, 저 엘프의 말은 안 들어도 되네.”
“그만하시구요. 두 사람이 그렇게 떠들어 봐야 제 수준으로는 두 분 누가 더 강한지 알 수도 없어요.”
“쩝...”
“쩝...”

더 길어질  같은 그들의 말을 선제적으로 차단해야겠다 싶어 화제를 돌렸다.
“요즘 고민이 하나 있어요.”
“뭐? 승마? 괜찮아 괜찮아. 내가 가르치는 대로만  따라하면 돼. 걱정하지 마.”
“그거 말구요. 갑자기 변화하고 있는 제 삶이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겨서요.”

당장   뒤의 월세 걱정에 알바를 구해야할 정도로 갑갑했던 내 인생이 1달 만에 이렇게 뒤바뀌어 버렸다. 나에게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취직해서 신입사원이 되고 경력을 쌓고 업계의 인정받는 그런 날들을 경험하며 소개팅이나 회사생활을 하며 알게 된 인연으로 연인을 만나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사는 인생을 꿈꾸던 때가 있었다. 물론 평범하게 산다는 것조차 쉽게 허락받기 어려웠지만

막상 인생이 바뀌고 내가 예상한 적 없는 큰돈이 단기간에 들어오게 되자  갑자기 틀어진  인생계획을 어떻게 수정해야 좋을지 고민스러웠다. 갑자기 생긴  행운을 이용하여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청소년기에나 했어야 할 자아실현에 대한 고민이 뒤늦게 싹트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회사원이 어릴 적부터 키워온 인생의 꿈이었던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진 부는 내가 노력해서 얻은 부가 아니기에 언젠가 갑자기 이능력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란 놈은 아무런 능력도 없이 ‘돈만 많이 가진 졸부가 되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명이나 혹은 유명하지 않은 연예인들이 갑자기 얻은 인기에 취해 있다가 이 인기가 언제 사라질지 몰라 초조해한다는 것처럼 내가 그랬다.

행복에 겨운 소리하고 있다면서 스스로를 ‘돈이라도 많으면 된 거지.’ 하면서 합리화를 해보려고 했는데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남은 삶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스트리밍 영상 서비스를 보기 위해 정액제를 끊어놓고선 정작 뭘 선택하고 볼지 선택은 하지 못하고 한참을 뒤적거리던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돈만 많으면 되는 것이 정후군의 꿈은 아니란 거지?”
“좋은 게 좋은 거 아니야? 인간들 중엔 1골드에 목숨을 걸고 타인의 목숨을 갈취하거나 빼앗으려 하기도 하고 그런 행위를 수단으로 해서 직업을 유지하고 명성을 얻는 자들도 있어.”
“누군가에겐 돈을 버는 것 자체가 너무나 소중한 꿈일 수도 있지만 이젠 저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대답을 들은 버크 아저씨가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정후 군, 내가 대장군을 그만둔 직후의 이야기를 해주면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

아저씨는 해방전쟁을 이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장군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쇠를 만지고 쇠를 두드리며 하나하나의 창작물을 만들던 동굴 속의 ‘드워프’는 이미 50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마모되어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사라진 뒤였고 의도치 않게 얻은 대장군이라는 직업도 자신이 꿈꾸는 길이라는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처음엔 그저고통받는 드워프들을 노예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싸웠네. 내가 싸우는 동안 내 편을 말하던 인간들이 내 뒤에서 나의 싸움을 통해 나라를 세우고 제국을 건설했지. 그렇게 관성에 밀려서 전쟁터를 전전하고 있자니 과연 내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인지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어. 그렇게 대륙의 4분의 1을 차지한 제국의 기틀을 만드는데 이바지했지만솔직히 더 이상 변화가 없는 정체의 시기가 길어지면서 회의감은 계속 커져만 가고 있었다네.”

드워프였던 아저씨는 대장군의 직위에 올라서게 되고 회의감을 느낀 뒤로 점차 처음의 자신이 의도했던 드워프를 구하기 위한 해방운동보다는 제국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본인이 야욕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자각이 생겼다고 했다.
“나의 삶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조종당하는  같았네. 그때서야 깨달았지. 내가 그들의 손 위에서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다는 걸. 그들에겐 드워프를 노예로부터 구하는 ‘버크 샤이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때 내가 있어야  자리에 대장군의 역할을  사람 누군가가 있으면 되는 것이었지.”

아저씨는 자신의 인생은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만의 것인데 자신의 한번뿐인 삶의 소중한 시간들이 타인에 의해 조작당한다고 생각이 들고 나선아저씨는 그 날로 대장군의 자리를 내놓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붉은 수염’이 떠난다는 의미로 두 개의 도끼를 두고 황제에게 떠나겠다고 하자 이제 겨우 대륙의 4분의 1밖에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야심이 점차 커진 황제는 탐탁치 않아했다. 그래서 황제가 아저씨의 마음을 되돌려 보려고 많은 수를 써서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마음이 떠난 아저씨의 마음을 잡을 순 없었다.

“붉은 수염 대장군. 아니, 나의 동지(同志) 버크여, 그대가 떠나기 전 마지막 소원이 있는가?”
“나의 오랜 동지이자 황제가 된 가이우스여,내가 제국에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다시는 이 땅에 노예가 존재하지 않길 바라는 것이오.”
“그것이면 되는가?”
“그것이면 되오.”
아름다운 이별이 언젠가 대장군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는 포석이 될 것이라고 여긴 황제 가이우스는 대장군의 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제국을 만든 그대의 공로를 인정하여 그대의 마지막 소원을 제국의 법에 명시하도록 하겠다.”
“고맙다. 나의 작은 친구 아우구스”

“그럼, 그렇게 황궁에서 나와서  했어요?”
“막상 나오고 나니까 예전의 동굴 밖으로 도망쳐 나왔던 때와 별 다를 바가 없더군. 전투가 지겨워서 나왔지만 되돌아보니 딱히 내가 주체적으로  해본 적이 없었어. 동굴에선 그저 남들이 하니까 어느 순간 나도 그들처럼 쇠를 만지고 있었고, 나름 그게 재밌기도 해서 거기에 푹 빠져서 지냈지.”
“그저 흐름에 휘말려 사는 삶이었다 이거네?”
‘나도 남들 학교 가니까 학교 가고 남들이 대학 가니까 대학 가고 취업할 때 돼서 취업하려고 했다는 점에선 아저씨랑 비슷하네’

‘시끄러.’

아저씨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전쟁터만 떠돌아다니던 그런 촉박하고 단순한 방식이 아니라 세상을 자유롭고 편하게 돌아다니는 여행을 해보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언젠가 노예였던 시절 노예들끼리 있을 때 귀족들은 여행이란 걸 다니면 이곳 저곳의 음식들을 먹으며 즐겁게 사는 것이 부럽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고서.

“그때부터 여행을 시작했네. 그러나 여행을 다니려고 해도 귀족들과 다르게 평민에 속하는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여유가 넘치지 않았지. 난 때로 길거리에서 도적을 만나기도 하고 때론 민가의 헛간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도 했지. 모든 마을에 여관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네. 그리고 귀족들의 여행이 좋았었단 노예들의 말은 귀족들끼리 다른 귀족을 만나고 벌이는 연회나 만찬을 의미하는 것이었더군.”
“그럼 뭘 했어요?”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른 현실의 여행을 계속 하자니 회의감이 들려고 하던 차에 우연히 눈에 띈 전단을 보고선 모험가 길드를 찾아갔어.”
“무슨 내용이었죠?”
“세상을 떠돌며 모험을 원하는 자들이여 오라! 부와 명예가 이곳에 있다!는 내용이 담긴 전단지였지.”
“큭크큭. 나도 그거 보고 갔었는데. 사람 생각하는  다 비슷해, 그치?.”
“너랑 비슷하다고? 흠, 다시 생각해보니 아닌 것 같기도...”
“야!”

아저씨가 처음 모험가 길드 건물에 들어가서 길드원으로 가입을 하니 그때 아저씨는 이제 첫 임무를 받는 초짜라서 남들은 잘 하지 않는 의뢰들. 예를 들면 돈이 너무 적거나 사람들이 기피하는 의뢰 중에 하나를 골라야 했다.
대장군이었던 아저씨는 들고 나온 보석들이나 돈이 많았던 상황이라 돈이 궁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돈을 많이 주는 위험한 의뢰보다는 성공보수가 그렇게 높지 않고 예상 성공률은 ‘매우 낮음’으로 분류된 임무를 골랐다.
대륙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산맥 알라야히마(Alayahima)의 어딘가에 나무도  없는 높은 지역으로 올라가면 존재한다는 ‘환상의 나무’를 찾아 달라는 의뢰였다. 그 나무의 줄기나 가지로 향을 만들면 사람의 정신을 정화시키는 강력한 효능이 있다는 옛 유적에서 나온 문서의 내용확인을 하고 싶으니 나뭇가지를 구해 달라는 어느 마법사의 의뢰였다.

그때 그렇게 뭣도 모르고 모험가 길드에 들어가 가입하고 선택한 첫 모험이 아저씨의 삶을 바꿔놨다고 하셨다.


“막상 올라간 그 산은 무척이나 높아서 점차 올라갈수록  쉬는 것도 쉽지는 않았었지.”
‘그거 고산병 증세 아닌가?’

“아저씨가 올라간곳이 그렇게 많이 높았어요?”
“높은 곳에 올라가면 추워진다는 걸 그때 처음 경험했네.”

‘그거 백두산보다 높은 위치 아니야?’


“그곳에선 하루 종일 추웠고 공기가 부족한 것처럼  쉬기도 쉽지 않았네. 그 추위는 마치 처음 동굴 밖으로 나왔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지. 낮게 자라는 풀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는 위치로 올라가자 오로지 있는 것은 눈발 섞인 바람뿐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는  같지 않았어,”
“대륙의 중심에 있는 우뚝 솟아 있는 알라야히마 산맥은 엄청 높지. 다크엘프들 일부가 사람들을 피해 산맥 중간 어딘가에 모여 산다는 이야기는 들은  같아. 거기서 갈라져 내려온 이들이 침엽수림을 차지하고 살고 있고.”
“맞네, 한참을 떠돌다가 그들과 만나서 잠시 같이 지내기도 했네. 처음엔 만나면 무뚝뚝한 표정인데 행동은 무척이나 친절해서 사람들을 피해서 온 게 맞는지 의아했을 정도로 사람들은 좋았네. 나중엔 무척 친해져서 친구가 되었지. 그때 친구들은 지금도  지내나 모르겠군. 그쪽으로 가는 임무가 최근엔 없어서  일이 없어서 말이야.”
“아마, 그들이랑 쉽게 니가 친해진 이유가 너에게서 쇠 냄새랑 흙냄새가 나서 그랬을지도?”
“킁킁...나한테서 무슨 냄새가 나나?”
“인간과는 다른 드워프들에게서만 나는 특유의 냄새 있어. 그들은 니가 드워프란 걸 아마 알아봤을 거야. 듣기로 세상에 다크엘프와 드워프가 탄생한 EO부터 다크엘프랑 드워프는 사이가 좋았다고 하더라고.”
“그래? 난 몰랐군. 아무튼 그들과도 잠시 같이 있는 동안에도 잠잘 곳을 제공받고 더 높은 곳을 헤매고 다녔었지. 그러다가 보게 됐어.”
“임무로 찾아야 했던 환상의 나무요?”
“아니, 한 마리의 거미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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