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화 〉27화-엘프 여왕과의 핑크빛 로맨스? (27/239)



〈 27화 〉27화-엘프 여왕과의 핑크빛 로맨스?

엘븐하임에서 온 공문을 입구의 양쪽 나무 옆에  있는 경계병 엘프 중의 한명에게 보여주고 들어  엘븐하임의 첫인상은 노을이 지고 어두워져 있어 전반적으로 그렇게 밝은 느낌은 아니었다. 다만 오밀조밀하게 나무들이 모여 있는 것은 아니라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달빛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의 밤거리처럼 밝지도 않았다. 그래도 반딧불들을 넣어놓은 등이 여기저기서 빛나는 것은 여전히 몽환적이긴 했다.

 날 엘븐하임으로 들어선 난 그동안의 피로가 쌓여서인지 너무 피곤해서 씻자마자 누나와 아저씨와 함께 라면만 2팩을 뜯어 먹고 자버렸다.

“난 잠시 성에 다녀올게. 혹시라도 정후가 일어나면 알아서 잘 대응해 봐.”
“딱히 일어나진 않을 것 같더군.”
“일부러 그러라고 혹사하듯 몰아붙인 거니까”
“다음엔 통하지 않을 것 같네. 워낙 승마에 빨리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라서”
“그건 그래. 아무튼 신탁과 관련해서 이번 임무동안 우리가 얻은 정보에 대해 보고하고 올게.”


“야야, 얼굴 엄청 불은 것 봐. 여왕님 만나러 가야 되는데 이거 괜찮으려나?”
어제 라면 먹고 잤다고 팅팅 불은 얼굴로 나타난 코엘 누나는 뜬금없이 우리가 여왕님을 만난다는 소리를 꺼냈다.
“코엘? 여기 와서 여왕과 만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그게! 보고만 한다면서! 어제 그런 이야기는 없었잖아!}
“그랬나? 난 내가 이야기한 줄 알았는데?”
{어제 결정됐어. 어제. 갔다 오니까  취해서 자고 있더만}
{그거야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기다리고 있으니 심심해서 한잔 했지.}
{한잔? 한잔? 정후가 갔다 준 일품뭐시기를 몇 병이나 까잡수고선 한잔?}
볼따구를 문지르며 붓기를 내리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코엘 누나는 여왕님의 강력 요청 아래 엘븐하임에 오게 된 것임을 알려줬다. 알현까지 4시간을 남겨 놓고.

“아니! 그런  있으면 미리 말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야 준비를 하지!”
“뭘 준비를 해. 그냥 엘븐하임에 있는 옷가게 아무데나 들어가서 최대한 깔끔한 옷으로 사 입으면 되지. 우리가 돈이 없어?”
“이 엘프가! 니 앞에 있는 게 누구야? 이 몸이 바로 버크 샤이어야 버크 샤이어. 여왕이랑 처음 보는 사이도 아니고 그래도 어떻게 보면 드워프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내가 아무 옷이나 입고 갈 수가 있겠어?”
“엘븐 하임에서 파는 엘프 옷이  아무 옷이야? 엘프왕국에선 가장 세련되고 트렌디함을 갖춘 최신 유행이 담긴 정수인데!”
“그건 지들 엘프들한테나 그렇지. 내가 그걸 입어 봐라. 비쩍 마른 엘프들이나 입는 옷을 나같은 몸을 가진 분이 입으면 그게 어울리겠냐고. 드워프에겐 드워프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 있는 법인데!”
“어, 그건 그렇네. 미안하다.”

갑작스레 터진 폭탄같은 뉴스에 버크 아저씨는 미리 이야기를 해줬으면 자기도 준비할 수 있지 않았냐고 투덜거리기 시작했고 난 뭘 입고 가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엘리스의 코디를 따라 난 검은색의 턱시도를 입고 가죽으로  구두를 신었다. 나의 패션이 드워프인 아저씨의 심미안을 자극했는지 버크 아저씨는  번이나 내 주변을 빙 둘러 보면서 숨기지 않고 관심을 표했다.
“그 옷 굉장히 마음에 들어. 그거 나중에 나도 따로 구해줄  있나? 나중에 드워프 학회에 참가할 때 입고 가고 싶네.”
버크 아저씨만 관심을 표현한  아니라 코엘 누나까지 옆에  붙어서 옷의 재질을 만져보고 기껏 광낸 구두를 손으로 만지면서 흥분했다.
“야야야야!!!! 이런  있었으면 진작 보여줬어야지. 처음 보는 양식인데도 시선이 확 빨려 들어간다고나 할까. 돈 줄 테니까  것도. 내것도!”

 그래도 두 사람의 반응처럼 이거 맞춤 제작할 때도 내가 옷을 맞추러 간 테일러 샵의 디자이너 분들이 뛰쳐나와서 일이 좀 있었다.
“손님,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몸이신 것 같아요.”
“이 팔뚝 봐. 장난 아니다. 무슨 운동하세요?”
“팔뚝도 팔뚝인데  태가 와~ 그림같아요.”
“손님 저희  입고 사진 좀 찍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옷   값은 무료로 드릴테니 사진으로 남겨서 홍보용으로 가게 앞에 걸어두고 싶네요.”
“손님께 저희 옷을 입혀 드리고 찍으면 지나가던 사람들도 저희 가게의 옷의 가치를 알아보고 관심을 표현할 것 같습니다.”
3명의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혼이 팔린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고 두벌 값을 빼주는 조건으로 종류별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야 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 나중에 버크 아저씨와 코엘 누나뿐 아니라 팀원들의 맞춤정장을 턱시도, 투버튼, 원버튼 종류별로 하나씩 뽑으려고 엘리스가 알려준 수치를 적어서 건네주러 갔을 땐 1층에만 매장이 있던 가게가 확장해서 2층까지 다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 장사 잘되나 보다. 장사 잘되는 집은 돈을 갈퀴로 긁어모은다던데 여기도 그런가?”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땐 이전과 다르게 매장 내에 손님도 꽤 늘어나 있었는데 가게에서 잘 맞는지 테스팅을 할 때 처음 갔을 때처럼 똑같이 영상으로 남기길 간곡히 원하기에 이들이 너무 정중하기도 하고 해서 그냥 그러자고 했다.
“영상 하나만 찍고 싶은데 손님에게 최대한 귀찮지 않게 찍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들이 아는 구두 장인이 있는데 손님 발본을 저희들이 떠서 직접 구두도 2켤레 맞춰 댁 로 보내 드릴테니 허락해주시면 안될까요?”

근데 나중에 듣자하니 그 영상이 또 대박이 났다고 했다. 영상 업로드 이후 전국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다고.
그 이후로 3번째로 가게에 찾아가서 팀원들 옷을 제작하러 갔을 때는 내가 들어가자마자 알아본 직원의 안내를 받고 나온 디자이너들 일동이 너무 감사드린다며 손님 덕분에 이렇게 장사가 잘된다고 해서 마음이 뿌듯하긴 했다.

아무튼  사람에게 내가 입은 것과 비슷한 스타일로 옷을 맞춰주겠다고 하는 약간의 소란이 있고 나서 우리는 엘프여왕을 만날 수 있었다. 여왕을 만나러 가는 내내 엘프들은 내가 입은 옷에 대해 신기해하며 자꾸 다가오려고 해서 코엘 누나가 눈을 부라리며 여왕님 만나 뵈러 가는 길이니  비키라고 쳐냈다.

“엘븐하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모험가 크로니클의 여러분들. 미냐르의 딸 이드릴입니다.”
“놀도르의  코엘이 여왕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이드릴.”
미리 언지도 안주고선 갑자기 자기들만 아는 방식으로 인사를 하길래 난 어떻게 인사를 해야 좋을지 몰라서 멈칫하고 있는데 20대 후반쯤 된 것 같은 미모의 금발의 엘프 여왕이 내게 몸무게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뿐사뿐하게 다가왔다.
“이 분이 이번 여행에서 만난 여행자 이정후 라는 분이군요.”
“예, 여행자 이정후입니다. 이번에 크로니클 팀원으로 새로 합류했습니다.”

대충 코엘 누나가 내가 여행자라고 소개를 했나싶어 거기에 맞춰서 대답하자 여왕은 어딘가 모르게 촉촉해보이는 눈으로 날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사진’이라는 것이 포함된 이번 여행 보고서를 읽어 봤습니다.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생생한 그림이었죠. 여행자 이정후의 물건으로 만든 결과라고 들었습니다.”
‘저번에 기록용으로 쓴다던 사진을 보고서에 쓴 거야? 그러니 이러지.’
내가 혼자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여왕의 말에 코엘 누나가 평소와 다르게 세상 우아한 말투로 대응을 했다.
“이정후가 가져온 여러 가지 신기한 물건들 중 하나입니다. 앞으로 이정후가 가져다 준 물건들이 엘프들의 생활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우리 엘프들이 언제나 그랬듯 천천히 지켜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습니다. 너무 빠른 변화는 우리의 삶을 뒤흔들어 놓기도 하니까요.”

홀에서 이동하여 마치 테라스처럼 만들어진 응접실로 가서 엘프들의 차 ‘엘론드’를 마시며 바닷가에서의 탐사에 대해 담소를 나눴다.
엘프들이 이동을 하더라도 큰 문제없이 이주할 수 있을  같다는 코엘 누나의 결론을 전해 받은 이드릴 여왕은 차분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어딘가 투박해 보이는 찻잔을 내려놓고선 크로니클의 수고에 감사드린다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엘프 여왕의 감사가 흔한 것은 아닌지 코엘 누나가 처음 보는 다소곳한 모습으로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고 버크 아저씨는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그렇게 담소를 더 나누고 우리가 밖으로 나오는데 묘한 시선이 느껴져서 뒤를 돌아보니 여왕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살짝 숙이자 여왕은 미소를 머금고 나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아냐,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생각해봐. 혼자 외로이 여왕의 자리에서 고고하게 지내던 어느 날 나타난 흑발의 그 남자. 어딘가 내가 아는 엘프 남자와는 다른 인간 남자의 느낌. 설마, 첫눈에 날 보고 반한 건가? 결혼하면 여왕의 남편은 뭐라고 부르지? 우리 애는 하프엘프인건가? 애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 우리 애들은 잘생기고 이쁘겠지? 몇을 낳으면 좋을까?’‘
혼자 급발진을 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도중 여왕이 등을 돌려 누군가를 불렀고 이내 문은 소리를 내면서 닫혔다.

“뭘 이상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어? 따라와 12시 마을로 돌아가는 동안 이 누나가 친절하게  훈련시켜서 말타기에 대해선 적어도 어디가도 꿀리지 않게 만들어 줄게.”
“엑, 바로 가요?”
“왜 여기서  또 할 거 있어?”
“아니 그런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 왔는데 구경도 하고 싶고 그런데...”
“에이,나중에 또 오면 돼. 그리고 넌 당장 배울 게 많아. 배울 게 한 두가지인줄 알아? 그리고 사실 내가 엘프긴 하지만 엘븐하임은 그닥 볼 거리가 없어. 심심해. 엘프들은 사는  다 거기서 거기거든.”
“그래요?”
“정후 군, 돌아가는 길의 승마 교관은 나에게 맡겨주는  어떻겠나? 말 타는 걸 두려워하던 드워프가 지금의 내가 되었네. 가르칠 승마 교관을 선택한다면 아무 것도 모르던 입장을 아는 내가 더 좋을 걸세.”
“또또또 끼어든다? 이 누나가 알아서 잘 가르치고 있는데 말이야.”
“또또또 똑바로 가르칠 능력도 없으면서 오지랖 부리는  아닐까 생각했으면 하는데.”
“뜨라흐지 므라.”
나이를 먹으면 애가 되는 것인지 이를 악물고서 조카들처럼 투닥거리는 두분을 모시고 궁 밖으로 나왔다.
“나비 넥타이도 넥타이라고 불편하네.”
 딴에는 예를 갖추느라  넥타이를 푸르고 목을 조이는 단추도 풀었다.

궁에서의 일을 마치고 다시 말을 타고 갈 생각을 하자 아직도 빨갛게 부은 채로 남아 있는 사타구니의 통증 때문에 벌써부터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하...돌아갈 때는 좀 천천히 갔으면 좋겠는데...아직도 사타구니가 얼얼해.’
나도 모르게 사타구니로 가려는 손을 의식적으로  부여잡았다.


엘븐하임의 깊은 성역에선 여왕과 왕녀가 엘븐 갓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있었다.

“엘븐 갓이시여, 그를 돕는 것이 진정 엘프들의 번영을 불러오는 것이 맞습니까?”

“신이시여, 그래도 불안합니다. 그가 가져올 변화가 엘프들을 엘프들이 아니게 할 것만 같습니다. 여기 놀도르의 딸이 가져온 LED 랜턴이라는 것만 봐도 어떻게 빛을 내는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불경하구나. 섀넌!”
아까까지만 해도 온화해 보이던 엘프 여왕의 표정에 서릿발 같은 냉기가 가득 찼다.

구체에서 흘러나오는 신의 음성에 섀넌은 당황스러웠다. 태어나고 자란 엘븐하임을 떠나서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사람을 따라 가는 것이 과연 좋은 선택인지.

섀넌이 두려워서 선택하지 못하는 것 같자 여왕이 왕녀를 다독거리며 말했다.
“미냐르의 딸 코엘이 널 지켜줄거야. 내가 코엘에게 전하는 전언을 미리 보내 놓을테니 준비를 마치는 대로 크로니클에 합류하여 그의 옆에서 직접 지켜보렴.”
“여왕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신의 말을 따라 느닷없이 정후와 합류하게 된 섀넌의 눈동자는 두려움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가 뒤섞여 하염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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