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22화-연쇄작용
요크는 자신이 목표한 바를 성취했던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애초에 내가 처음 동굴에서 나온 이유는 하나였어. 그냥 우리 드워프들을 속이거나 이용해 먹으려고 들지 말고 드워프들이 세상에서 편하게 살게 냅두라는 거.
우리들이 원할 때 팔고 우리들이 원할 때 맥주랑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움직인 게 결과적으로 잘 먹혀 들어갔던 거 같아. 적어도 빅터 씨가 배후에 있는 와처가 배신할 가능성 자체가 적기도 했고, 와처와 연계해서 트리니티 상단을 설립하면서 실질적인 상단주가 된 내가 있는 한 드워프들이 다시 이용당할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 셈인거니까.”
“제가 원했던 것은 와처와 단체 올빼미의 재정자립과 함께 부패한 자들의 처벌 2가지였습니다. 쪼그라든 와처의 재정상태를 튼튼하게 하고 함리스 상단을 파산시키면서 부정을 저지른 원로원과 그 밖에 와처에 들어온 자들 중 관련된 자들 모두 원칙에 따라 처벌할 수 있었으니 제 입장에서도 고마운 제안이 되었죠.”
“하하. 우리가 서로 원하는 게 딱 맞아 떨어졌지. 그 와중에 투자가 대박 나서 내 용돈 주머니는 더욱 커졌고 우리 모두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러게 말이야. 에바 모르와 그 일당들이 남았잖아.’
“함리스 상단은 어떻게 되었죠?”
단순히 그렇게 상처만 입혔다고 그들이 무너질 거라고 생각되진 않았지만 막상 현실은 크로니클이 치명상을 입히는 것만으로 함리스 상단은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상태를 넘어서게 되었다.
함리스 상단을 지원한 反와처 연합이라는 것도 애초에 처음부터 큰 뜻을 품고 모인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익을 위해 모였던 에바 모르의 협잡의 결과였고, 그렇게 모인 세력들은 에바 모르가 이끄는 함리스 상단이 크로니클이 만든 트리니티 상단에 의해 파산에 이를 것 같자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에바 모르에게 운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서둘러 들이닥쳐 자신들이 투자했던 투자금을 황급히 회수했다.
그렇게 함리스 상단은 출혈경쟁을 하며 말라버린 현금 흐름의 압박에 이어 동업자들의 발빠른 배신으로 인해 이전과 같은 막대한 금력을 동원할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함리스의 힘에 눌렸던 많은 상단들도 기세가 죽은 함리스 상단의 상태를 눈치챈 뒤로는 함리스 상단의 목을 물어 뜯기 위해 중소규모의 상단들이 그동안 당해왔던 자신들의 방법으로 되돌려 준 결과 함리스 상단은 그동안 누렸던 권세와 비교해서 너무나도 허무하게 도산하고 말았다.
“쪽쪽, 상처를 입고 피 흘리는 늙은 사자의 곁에는 항상 피냄새를 맡은 하이에나들이 몰려드는 법이지.”
에디나 누나가 막걸리를 시원하게 들이키곤 내가 챙겨온 총각김치를 손가락으로 집어 먹더니 손으로 쪽쪽 빨며 이야기했다.
“그 뒤에 에바 모르와 일당들도 잡아서 죽였나요?”
“에바 모르가 어떤 범죄를 지었다면 모를까 그저 상단의 방법이 우리가 느끼기에 치졸했다고 하여 기분 나쁘다고 죽일 수는 없는 법이지.”
“붉은 수염을 따른 와처가 자신들을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상대방의 목을 쉽게 벨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그들은 어떻게 되었죠?”
“사라졌어. 어느 날 갑자기 에바 모르가 에바 롬으로 둔갑해서 등장했던 그때처럼.”
빅터는 와처와 올빼미들이 이들이 어디로 숨었는지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금까지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제국 바깥으로 도망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대적으로 제국 밖에 뻗어있는 눈들이 트리니티 상단이 커지면서 합류한 덕분에 제국 밖에서 일어나는 굵직한 정보들은 여전히 수집되곤 있지만 자잘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예전같지 않은 상태거든요.”
“그렇게 해서 저희 크로니클은 대륙에 양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여 사람들의 식량 생산량을 급격히 증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레전드급 모험가 집단으로 확실하게 승급하게 된 겁니다.”
“아...그래서 사람들이 요크가 모험가 단체 크로니클의 급을 플래티넘 급에서 유일한 레전드급으로 올린 핵심적인 존재였다고 말한 거였구나?”
내가 감탄하며 요크를 쳐다보자 요크가 자기 턱을 치켜세웠다.
“길지도 않은 그 목 뿌러지겠다. 목 뿌러지겠어.”
“아니지. 맨날 땅만 보고 사니까 가끔 저렇게 풀어줘야지. 크크크킄”
엘프와 인간인 코엘 누나와 에디나 누나가 자매일리도 없지만 자매처럼 한 마음이 되어 요크를 놀리고 요크는 또 시작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요크덕분에 시작되어 새롭게 만들어진 신제품들과 트리니티 상단의 수익을 통해 드워프들의 문제, 와처들의 자본 조달 문제, 에바 모르에 대한 간접적 처분까지 해결되었을 때 크로니클의 단원들은 앞으로 그저 자금문제 없이 자기들이 원하는 의뢰만 받을 거라는 생각이 기뻤다고 했다.
하지만 산이 높아지면서 골도 깊어지는 것일까?
“모험을 하다 보면 의외로 이것저것 들어가는 돈이 많아서 처음의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동안 모아놨던 물건들을 팔아도 죽을 때까지 우리가 좋아하는 모험을 계속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조금씩 있었는데 요크 덕분에 돈이 우리의 모험을 좌지우지하지 않게 되었지.”
‘처음에 버크 아저씨와 코엘 누나가 왜 그리 돈이 많은가 했었는데 그게 대량생산으로 물건을 뽑는 시스템을 구축한 결과였구나.’
“근데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자 이번엔 엘프들에게 문제가 발생했지.”
인간들의 농기구가 트리니티 상단에 의해 더 품질이 좋아지고 발전하기 시작하자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식량들의 생산량에도 급격할 정도의 증가가 발생했다고 했다.
“식량이 늘어나면 좋은 거 아닌가요?”
“좋지. 좋아서 드워프들의 경우처럼 사람들의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어났어.
"그럼 더 좋은 거죠."
"그게 5년 정도 지나니까 엘프왕국에도 영향력이 미쳤다는 데 있지.”
“엘프왕국에도 인간들이 엘프들이 만드는 의류들이라거나 가구들 혹은 ‘약품’들을 구매하기 위해 인간들의 상단이 오곤 했어. 예전에 내가 만났던 한 남자도 그런 상단과 함께 찾아왔던 용병이었고.”
“코엘 누나, 인간 용병이랑 만난 적 있었어요?”
코엘 누나같은 성격을 가진 여자를 만났던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워 무척 궁금했다.
“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되는데 나도 한 때는 순수함의 결정체같은 소녀같은 시절이 있었단다.”
“우웩. 순수한 소녀같은 시절이 있었대.”
“야! 꼬맹이. 내가 얼마나 한떨기 고고한 꽃 같았는줄 알기나 해?”
“봤어야 알지. 봤어야. 그리고 본인 입으로 그런 이야기하면 신빙성이 없거든?”
“아냐, 내가 코엘 이야기는 좀 아는데... 코엘도 한때는 지금과 다르게 여리여리했던 시절이 있었어.”
에디나 누나가 뭔가를 좀 아는지 뜬금없이 코엘 누나의 말에 동의해줬다.
"어이, 니들! 적당히 해라. 지금은 뭐, 내가 남자라도 되었어? 우리 오늘 다 같이 한따까리 할까?"
"그렇다네. 본인이 원하지 않으셔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서슬퍼런 코엘 누나의 눈빛에 에디나 누나가 눈치를 본 덕분에 코엘 누나의 과거 이야기는 시작도 못 듣고 끝이 났다.
“엘프 마을에도 갔던 것처럼 우리 드루이드 마을에도 인간들의 상단이 찾아오더라. 먹을 게 많아지니까 세상 밖의 인간들이 먹을 식량들을 감당하고도 남았는지 이전과 다르게 식량을 팔기 위해 오는 상단들이 몇 개씩 오더라니까? 지금도 그렇게 외부에서 상단이 오면 마을엔 없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을 보고 드루이드 마을의 처녀들의 마음에 봄바람이 살랑 살랑~하지.”
크로니클이 굴린 수레바퀴가 드워프 마을을 넘어 엘프 왕국과 드루이드 왕국에도 미쳤다니 앞으로 여기서 뭘 하더라도 미리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늘어난 식량 생산량에 힘입어 엘프 왕국에서도 아기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늘어난 가족구성원에 맞게 새로 주거할 공간들이 대거 필요해졌는데 이미 수천년 전 북부의 침엽수림은 엘프왕국으로부터 분리해서 나간 ‘다크엘프’들의 거주지가 된지 오래였지. 아무래도 서로 껄끄러운 과거가 있어서 우리도 선뜻 그쪽으로 영역을 넓힐 수가 없었고.”
“아 그래서 바다에?"
"엘프왕국은 수해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지역에 중간 중간 추가로 마을을 건설하면 한동안 늘어나는 엘프들의 숫자를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어.”
“그럼 문제해결이 된 거잖아요. 바다에 온 이유랑 관련 없는 것 같은데”
코엘 누나의 말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천년이란 시간을 사는 엘프들은 무얼 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을 수립하고 싶어 했고, 계속 이런 추세가 유지된다면 혹시 수해가 전부 이용되고 났을 때, 어디로 가야할지에 대한 의문이 떠올랐다고 했다.
몇천년이 걸릴지도 모를 이슈를 미리 걱정하는 엘프들의 걱정을 우리 지구의 사람들도 배워야 하는 건지 아니면 쓸데없이 너무 많은 고민을 끌어안고 사는 기우杞憂인지 잠시 헷갈렸다.
해결책을 고민하던 중 엘프들은 엘프 조상들이 기록한 자료들을 참고한 끝에 수해 너머에 혹시 전설로 내려져 오는 바다라는 곳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찾아냈고 만약 바다라는 것이 실존한다면 엘프들이 바다 옆에서 모여 살아도 괜찮을지 의문이 생겼다.
바다라는 곳에 혹시 다른 존재가 살지는 않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엘프들은 모험가 단체 중에서 실력이 높은 단체를 찾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의문들을 해결하고자 모험가 집단인 크로니클로 의뢰가 온 거군요.”
“이왕이면 바다까지 가는 길도 좀 개척해주고 혹여 가는 길에 있을 위험도 파악해달라는 의뢰가 포함된 조건이었지.”
명목상으로 크로니클에 알려진 이유는 그러했지만 단장과 부단장인 코엘과 버크만 알고 있고 정후에게 말하지 않는 이번 의뢰의 실질적 목적은 따로 있었다.
[바다를 찾아라 그리고 그곳에서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 찾아 온 존재를 맞이하고 보호하라.]
엘프의 신인 엘븐 갓으로부터 신탁을 받은 엘프 여왕의 부탁을 들은 둘도 엘프여왕으로부터 신이 내렸다는 신탁의 내용을 듣고선 호기심이 크게 동했던 것이 의뢰를 받은 진정한 이유였다.
“처음 절 봤을 때 절 보고 원주민 이야기를 한 게 그럼?”
“그래, 한참을 수해(樹海) 속을 이동했는데 이쯤이면 바다가 나오겠지 싶었던 것이 몇 번인지 기억도 안나올 정도로 도무지 바다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거든. 그러다가 지쳐서 베이스 캠프를 정하고 나와 버크만 선발대로 며칠 더 움직이다 포기할 시점이었지.”
“그때 어디선가 인간이 뭐라고 소리치는 소리를 코엘이 들었다며 움직이자고 하더군.”
“그게 우리가 너와 바다를 발견하게 된 계기였어. 니가 없었으면 아마 돌아가기에도 빠듯할 식량 문제도 있어서 의뢰를 포기하고 돌아가야 할 상황이었는데 말이야.”
“덕분에 배고픈 모험이 배부른 관광이 되어버렸지.”
15일간 이들은 내가 사다 준 식량들을 바탕으로 처음 목표했던 초기 탐사를 마쳤다. 난 그동안 빅터 교관으로부터 받은 훈련과 차원여행능력의 시너지로 이전과 다른 몸을 얻을 수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요크가 합류했던 것의 파급효과가 널 만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거지.”
“나도 그래서 합류했던 거고.”
내가 궁금했던 이야기들이 얼추 끝났을 때 다들 먹던 걸 정리하고 2대의 대형텐트에 자리를 잡고 눕기 위해 들어갔다. 이들과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같이 하면서 동료애가 점차 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난 이 세상이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내가 이 세상에 적응하여 물건을 사고팔면서 수익을 얻기 위해선 더스트의 인류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파악이 시급하기도 했다.
다음날 다시 아침을 먹고 이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크로니클의 단원들에게 틈나는 대로 질문을 했다.
“버크 아저씨, 궁금한 게 있는데 아저씨의 세상에는 이를테면 마스터라거나 그랜드 마스터처럼 검으로 바다를 가르고 산을 가르는 강력한 존재들은 없나요?”
판타지 소설 속 인물들처럼 드워프와 엘프가 있다는 걸 알고 나서 혹시 소드 마스터나 그랜드 마스터같은 존재는 없을지 궁금해져서 내가 이 같은 질문을 하자 다른 단원들과 다르게 버크 아저씨와 코엘 누나가 살짝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