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17화-감시자들은 누가 감시하는가?(3)
“그건 빅터 단장님께서 밤의 사냥꾼인 올빼미처럼 어두운 곳을 암약하는 이들을 뿌리 뽑아야 하며 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올빼미를 상징으로 삼아 처음에 그 뜻을 잊지 않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혹시 자신의 몸이 다쳐 피로 온 몸이 적셔질지라도 그 의미를 잊어선 안된다는 이유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붉은 올빼미를 조각하여 저곳에 걸어 두셨죠.”
“멜킨, 와처가 있음에도 내가 왜 굳이 검은 올빼미들을 따로 운용하는지는 알고 있는가?”
“혹시라도 와처가 변질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해 최악의 순간을 막기 위함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잘 기억하고 있군. 그대들은 최고위 책임자로서 와처라는 집단을 움직일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그 자리는 동시에 세상 그 누구보다 무거운 의무를 짊어져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대들은 권한만 누리고 의무는 잊은 게 아닌가 싶군. 그대들이 의무를 다시 기억하도록 세 개의 선택권을 주겠다. 하나는 명예로운 퇴직을 원한다면 와처의 말단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약지를 자르고 얼굴을 가리고 이름을 지운 채로 검은 올빼미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귀향’이다. 무얼 선택해도 그간 그대들이 쌓은 공을 생각해 따로 처벌하지 않고 받아들이겠다.”
“그...그건”
3가지의 선택권을 들은 감사팀장과 인사팀장이 둘을 대신해서 반대하려 했지만 멜킨과 막심은 후한 처분에 감사하다며 막심도 차고 있던 검집을 풀어 검은 올빼미 요원에게 건네주고 검지에 끼고 있던 단장의 상징인 붉은 올빼미 반지를 벗어 빅터에게 돌려줬다.
#
“그런 거대한 단체의 책임자라면 한번 반항해볼 법도 한데 반항하지 않았던 건가요? 그 정도로 막대한 힘을 휘두른 사람들치곤 너무 순순히 받아들인 것 같은데.”
“글쎄, 거기 앉아 있던 나와 빅터, 버크 부단장 그리고 코엘 단장을 아는 두 사람이라면 감히 그럴 용기를 못 품었을 것 같지 싶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드마코 형의 등 뒤에서 이야기했지만 그 정도로 강한 사람들인가 싶어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관대한 처분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귀향하겠습니다.”
“저도 단장님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책임을 지기 위해 함께 귀향을 선택하겠습니다.”
깊게 고개를 한번 숙인 둘은 빅터의 호령을 듣고 단장실 안으로 들어온 검은 올빼미 두명과 함께 자리를 빠져나갔다.
지켜보고 있던 인사팀장은 와처의 요원으로 활동을 하며 자신이 직접 훈련을 시켰고 누구보다도 빅터를 따랐던 둘에 대해 한치의 칼도 안 들어갈 것 같은 비정한 처사를 내리는 장면을 보고 침을 삼켰다.
“귀향이 근데 뭐에요? 그냥 집에 가는 거?”
‘제대 같은 건가? 불명예제대하고 집에 가는 게 좀 심한 처벌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치곤 그렇게 비정하단 느낌까진 들지 않는데.’
내가 이야기를 듣다가 궁금해서 내 등 뒤에 탄 드마코 형에게 묻자 드마코 형은 기억을 잠시 더듬는 듯하더니 이내 설명해줬다.
“내가 기억하기로 와처는 대륙 각지에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고 은퇴한 요원들 중 일부 자원하는 요원들 혹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여성들 중 원하는 이들에 한해 고아원에 필요한 인력 지원을 받고 있다더라고. 그런데 와처에도 활동했던 요원들 중 전투 혹은 작전에 참여하고 나서의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하게 되거나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요원들을 위하여 특별히 조성된 숨겨진 마을이 있어. 귀향을 한 이들은 후유증을 겪고 있는 전우들을 지키며 죽을 때까지 이들의 안식을 돕고 죽어서야 자신의 이름을 돌려받아 묘비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형벌이라고 했던 것 같아. 어느 정도 고위직인 와처에 한해서 존재하는 형벌이야. 빅터의 지론이 권리와 의무는 언제나 함께였거든. 권리보다 의무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다한 요원들의 가족들은 1대에 한해 먹고 사는 문제가 걱정 없도록 연금을 지급하고 와처의 건물 입구 옆에 그들의 이름을 새겨 대대손손 기억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
상처 입은 자들을 수호하기 위해 와처를 만든 빅터의 마음도 느껴졌지만 이 같은 형벌에 대해 스스로 선택을 하고 감사하다며 수긍하고 단장과 호위대장에서 이름을 박탈당하면서도 막심과 멜킨이 빅터의 결정을 따랐다는 것이 많은 생각들을 불러 일으켰다.
“처벌은 처벌이고, 문제점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 드워프들을 향해 스며드는 함리스 상단의 치밀한 야욕과 와처의 부패문제.”
빅터는 그때 둘이 나가는 모습을 깊게 눈에 새겨 놓으려는 듯 문을 열고 계단으로 내려가서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봤다고 했다.
막심과 멜킨을 호송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2명의 검은 올빼미들을 빼고 남아 있는 18명의 검은 올빼미들은 떠나간 둘에게 최대한의 예우의 자세를 보이며 단장과 부단장을 배웅했지만 빅터는 그 부분에 대해선 딱히 제지를 하진 않았다.
“접수부의 인원들과 관련하여 감사팀은 원로원이 이들을 어떻게 선발했는지 알고 있나?”
둘이 그렇게 나가고 난 뒤 인사팀장과 감사팀장은 처음보다도 더 긴장했다.
“원로원들의 개입 과정에 함리스 상단이 뒤에서 청탁을 한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감사팀장은 단장실 위로 올라오기 전 감사팀 내에 존재하는 기밀자료들 중 드워프 소녀가 요청한 자료들을 찾아줬고 그 과정에서 빅터가 할 것으로 예상되는 질문들을 혼자 정리했다.
“함리스 상단 수뇌부 전체인가?”
“아닙니다. 함리스 상단에서 드워프 물건을 납품받아 중소 상단이었던 함리스 상단을 대륙 제1의 상단의 자리로 끌어 올려 그 능력을 인정받고 부 상단장 자리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 자의 이름이 뭐지?”
“에바 롬 Eba Rom 입니다.”
“밖에 있는 검은 올빼미 단장은 들어와라!”
에바 롬이란 이름을 들은 빅터는 이내 밖에 있던 18명의 검은 올빼미들 중에 단장을 불렀다.
검은 올빼미 단장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들어와 기다렸다는 듯이 한쪽 무릎을 꿇고 ‘에바 롬’에 대한 자료를 빅터에게 준 뒤 고개를 숙이고선 움직이지 않았다.
“난 그때 걔 무릎 부숴지는 줄 알았어. 내가 다 아프더라. 단장실 바닥에 쿵하고 소리가 나는데...어우... 그때 바닥에 금 갔다니까. 요크 너도 기억나지?”
“와....빅터 팀원....그렇게 안 봤는데...진짜 무서운 사람이었구나...”
코엘 누나와 에디나 누나가 빅터 교관을 보며 말하자 빅터 교관은 마치 칭찬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쑥스러워하며 말을 빨리 몰았다.
‘거기서 왜 쑥쓰러워하는데? 쑥스러워할 포인트야?’
“오랜만에 옛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시간이 잘 가는군.”
버크 아저씨가 앞에 가는 빅터 교관을 따뜻하게 쳐다봤다.
#
“인사팀장이 알고 있는 에바 롬은 어떤 사람이지?”
검은 올빼미가 준 자료를 읽으며 인사팀장에게 질문을 하자 에바 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인사팀장이 대답했다.
“인간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는 의미로 드워프 마을에 필요한 물자들을 제공하였고 드워프들로부터 10년간에 걸쳐 호의를 보내며 지원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또한 와처의 재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며 원로원을 통해 의사전달을 한 뒤 와처 산하의 고아원 단체들과 은퇴한 자들을 위한 ‘마을’에 필요한 자금 일부를 방금 전의 ‘무명인(無名人)’ 2명에게 지원한 인물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시 물어보지. 검은 올빼미가 알고 있는 에바 롬은 누구인가?”
자료를 전부 읽은 빅터가 자료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물어보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검은 올빼미 단장은 고개를 들어 빅터를 보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에바 롬은 10년이 넘게 와처를 조금씩 타락시켰고, 드워프 마을에 마수를 뻗쳐 함리스 상단에 천천히 종속작업을 해온 아주 지능적인 인물입니다.”
“두 사람이 보는 에바 롬이 같은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군.”
“에바 롬은 분명히 와처에 재정지원을 해줬고 드워프 마을에도 도움을 줬는데 검은 올빼미가 에바 롬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암수를 뻗은 것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빅터가 더 이야기를 펼쳐 보라며 판을 벌려주자 검은 올빼미 단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에바 롬은 노예매매를 주력으로 삼고 있었던 모르 mor 가문의 인원들 중 당시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어린이들과 범죄에 관여된 증거가 없는 여자들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유일한 남자 후손입니다.”
“아렉 모르 Arec Mor!"
검은 올빼미 단장의 입에서 나오는 가문의 이름을 듣고 단장실 안에 앉아 있던 버크가 소리치며 일어났다.
#
“난 그때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어. 미리 좀 예고라도 하든가."
“아렉 모르가 누군데 버크 아저씨가 그렇게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던 거죠?”
“누구긴 쟤를 맥주 한잔으로 재워서 노예 마차에 태워 영주에게 상납하고 그 대가로 모르 Mor란 성과 함께 남작의 지위에 오른 입지전적인 남자. 대륙엔 ‘아렉 모르’라는 이름 들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어. 맥주 한잔으로 귀족이 된 자로 유명하거든. 그 후손들은 아예 노예매매 쪽으로 유명한 가문이 되었고.”
“산골에 있던 나도 아렉 모르는 알지. 그럼 그럼.”
“지금도 이가 갈리는 것 같네. 그자 때문에 내 삶이 꼬인 것만 생각하면...”
“근데 에바 롬이 그의 후손인 걸 어떻게 알았죠?”
“모르 Mor가의 모든 인원들은 검은 올빼미가 항상 주시하고 있는 요주의 대상들 중 한 집단입니다.”
어느새 가까워진 빅터 교관이 이야기해줬다.
“이미 와처가 처벌을 했는데 또 감시해요? 우리 세상에선 이미 어떤 범죄에 대해 처벌했으면 그 범죄에 대해서 다시 처벌하는 건 이중처벌이라고 해서 금지하는데.”
“아렉 모르가 버크를 팔아버렸고 그 후손들인 모르 가문이 시간이 흐르고 나서 드워프들을 똑같이 맥주로 재워서 동굴로부터 끌어내서 팔아치웠거든.”
“아.....”
“부끄럽지만....나도 그 드워프들 중 하나였기도 하고....”
“그치? 요크도 그렇고 남매가 은근히 하는 짓이 똑같긴 해.”
“그믄해.”
“드워프는 이 악물고 망치질을 해야 해서 이가 튼튼하나? 아무리 드워프라도 그렇게 이 갈면 나중에 늙어서 고생한다.”
코엘 누나는 이때다 싶어 요크의 약을 올렸다.
#
“와처에 의해 처벌받지 않은 여자들도 당시에 명확한 증거가 없었을 뿐 정황상 관여했을 거라는 정보는 와처의 첩보부에 의해 이미 포착이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자료를 공유하여 인지하고 있던 검은 올빼미들은 그 이후로도 살아남은 모든 ‘모르’들에 대해서 언제든 똑같은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판단하여 추적 관리하고 있습니다.”
#
“뒷부분은 그때 귀가 떨어질 것 같았던 여린 엘프가 이야기해줄게.”
“‘백발마녀’가 퍽이나 여리겠다. 대륙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 들으면 코웃음 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