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16화-감시자들은 누가 감시하는가?(2)
“막심, 멜킨.”
“예!”
“예!”
빅터가 크로니클의 멤버들인 버크, 코엘, 드마코와 함께 단장실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막심과 멜킨은 앉을 의자가 단장실 안에 충분히 있음에도 앉지 않고 앉아 있는 빅터 앞에 나란히 차렷 자세로 정면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내가 왜 이곳에왔는지 혹시 이유를 알고 있나?”
빅터의 질문에 막심과 멜킨이 서로를 잠깐 보았지만 둘 다 짐작 가는 바가 없었는지 대답하지 못하고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향하고서 차렷 자세를 유지했다.
“와처의 단장과 호위대장이란 자가 전 단장의 동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나? 난 당연히 나를 살펴보는 인원 정도는 파견해 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3일전 한 드워프 소녀와 만나셨다는 이야기는 첩보부를 통해 보고 받긴 했습니다.”
“그래도 단장이라고 호위대장보다는 조금 났군.”
배가 나와서인지 오랜만에 부동자세를 유지하면서 차렷 자세를 하느라 힘이 들었는지 아니면 빅터의 말에 공포감을 느꼈는지 멜킨의 이마 옆으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유에 대해서 짐작하는 바라도 있나?”
“와처에 찾아오신 것과 첩보를 종합하면 드워프와 관련되어 저희가 움직여 마땅한 ‘피해자’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멜킨 호위대장이 이번엔 자기가 점수를 따겠다는 듯이 막심이 채 입을 열기도 전에 대답하자 막심의 미간이 잠시 찌푸려졌다.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추측이 아니라 그 피해자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나?”
둘 다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타이밍 좋게 단장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도 좋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은 빅터가 올라오기 전에 얘기했던 자료들을 정리해서 챙겨서 온 감사팀장, 인사팀장이었고 그 뒤를 따라 요크가 들어왔다.
문이 닫히기 전 단장실 앞에는 블랙 아울스 20명이 크로니클 팀을 맞이했던 접수부 팀원들을 향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눈에서 마치 불꽃이 뿜어질 것만 같은기세로 눈으로 욕을 하면서 마치 학의 날개처럼 호를 그리며 감싸고 있었다.
문이 닫히고 무언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겁을 집어먹은 듯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지만 단장실 안에 있는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들어왔으면 자리에 앉아도 좋다. 인사팀장, 감사팀장. 아, 요크님도 여기 빈자리에앉으시죠.”
세 사람을 대하는 너무나도 명백하고 다른 온도차에 나머지 크로니클 팀원들은 잠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괜찮습니다!”
“이대로가 좋습니다!”
전 단장과 전 호위대장이 차렷 자세로 서 있는데 자기들만 앉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감사팀장과 인사팀장도 그 옆에 똑같은 자세로 서류만 들고 자리를 잡았다.
“물어본 질문에 아직 대답하지 않았다. 막심, 멜킨.”
“드워프 소녀의 이름은 요크 샤이어로 드워프 마을의 동굴에서 나와 주점에서 암어를 말하고 암어에 해당하는 긴급 절차에 따라 저희 와처의 요원과 접선 후 ‘붉은 수염’의 위치를 전달받아 요원의 안내를 받아 빅터 초대단장님과 접촉하였습니다.”
멜킨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던 빅터는 고함을 쳤다.
“난 동선을 물은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가 발생했고 왜 우리가 방문을 해야 했는지 와처가 과연 내가 있을 때처럼 언제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멜킨! 아직도 모르는 건가!”
“아, 아닙니다!”
빅터의 고함에 살이 쪄서 멜킨의 흔들리는 몸이 더욱 잘 보여서 이때 드마코 형은 상황이 너무 진지한데 웃음을 참느라 허벅지를 꼬집어야 했다고 했다.
“몇 년 만에 와처가 이토록 망가진 게 너무 느껴져서 단장으로 삼을 사람을 내가 잘못 본 것인지 아니면 아직 준비가 덜된 상태의 자네들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손을 놓은 것인지 고민이 되는군.”
“아...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인사팀장과 감사팀장도 이내 신병으로 돌아간 듯 맥심, 멜킨과 함께 큰 소리로 대답했다.
“통일성 없이 대답도 따로 놀 거면 차라리 하지 마라. 듣기 거슬린다. 그리고 인사팀장은 접수부 인원들의 인명부를 가져오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나? 혹시 미리 문제에 대해 인지를 하고 있었다면 인사팀장의 권한을 사용하여 최대한 원칙대로 절차를 준수를 했을 경우에 한하여 변론을 허락하겠다.”
“접수부의 인원들은 이전에 와처에서 활동을 하고 이제는 원로원으로 넘어간 이들의 추천을 받아 입단한 요원들입니다. 입단하는 과정에서 저를 비롯한 인사부 전체의 반대가 있었지만 원로원과 호위대장의 강력한 지지와 막심 단장의 승낙 하에 이들의 입단이 수락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빅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인사팀장은 가져온 접수부의 인명부를 가져와라. 확인할 것이 있다.”
“여기 있습니다.”
가져온 서류들을 건네 준 인사팀장은 곧바로 제자리로 돌아가 처음과 같이 차렷 자세를 취했다.
서류들을 천천히 모두 읽은 빅터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상황을 정리했다.
“인사팀장, 접수부의 인원들이 원로원이라는 곳에 속한 이들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나?”
“인사팀에선 누군가로부터 청탁을 받고 입단을 추천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를 저희 쪽에서 요구해도 전달받을 수가 없어 파악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와처의 요원들은 오직 규정에 따라 발탁되어야 한다. 접수부 인원들의 입단 테스트 점수를 보니 절대 요원이 될 자질이 보이지 않음에도 오로지 높은 추천점수를 받아 당시 예비 올빼미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선 안되는데도 간단하게 승리하여 입단을 했군? 밖의 검은 올빼미 하나는 내가 여기 오기 전에 이야기해 두었던 자료들을 가져와라.”
문 밖에서 누군가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검은 복면을 한 이가 들어와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빅터에게 서류를 건넸다.
서류를 건네는 이의 손에는 검은 올빼미의 얼굴 문양을 한 반지가 보였다.
그리고 차렷 자세로 서 있는 멜킨의 뒤로 가서 마치 감시하듯 똑같이 차렷 자세를 취했다.
“멜킨! 이 종이에는 내가 단장의 자리를 넘긴 이후에 와처 내에서 발생한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있는 모든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주겠다.”
자신의 부정에 대해 정리된 자료가 있고 변호할 기회를 줬음에도 잠시 침음성을 낸 멜킨은 이에 대해 가타부타 언급 없이 모든 걸 포기한 듯 자신이 차고 있던 검집을 풀어 뒤에 서 있는 검은 복장의 인원에게 건넸다.
“잠시만...잠시만 기회를 주십시오. 여기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멜킨 옆에 차렷 자세로 서 있던 막심이 입을 열었다.
“단장님이 떠나신 이후 저와 멜킨이 책임지는 자리에 올라왔을 당시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초대단장님의 의지를 따라야 한다며 해방전쟁 이후 한동안 계속 늘어나는 고아들이나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노약자와 여성들을 도와야 옳지 않은가 하는 의문들이 와처 내에서 돌았습니다.
와처의 재정을 통해 지원을 늘리기 시작했습니다만 처음에 막대한 재정도 계속 늘어만 가는 약자들을 모두 구원하려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감당할 수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계속해라.”
“그런 상황에서 와처에 자금지원을 해주겠다는 함리스 상단의 에바 롬은 입단을 강력히 원하는 자들 중 결격사유가 없는 이들에 한해 특별입단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표했고 원로원은 좋은 의견인 것 같다며 저희들에게 동조할 것을 원했습니다.“
“원로원은 자신들이 추천하는 자들에 대해 특별히 결격사유가 없는 자들로 한하여 가입 부서를 무력이 상관없는 접수부에 한정하고 입단을 허락해준다면 자신들도 와처의 부족한 재정을 돕겠다고 하였습니다. 저 또한 이 제도의 취지와 실행에 동의한다면 더욱 많은 이들이 피해를 받지 않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서 승낙하였습니다. 벌을 주실 것이라면 저도 함께 받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아무런 자기 변론을 하지 않던 멜킨을 대신해 막심이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설명했고 어느 정도 짐작가는 바가 있던 빅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그래도 단장과 호위대장을 영 잘못 뽑진 않았나보군. 그러나 경제적으로 조직이 위축된다고 하여 그렇게 쉽게 움직인 점은 대단히 잘못되었다. 그리고 피해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독단점으로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장 접수부의 인원들은 사명감도 없을뿐더러 이곳을 자신들이 공감하는 와처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들은 자신의 업무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지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했다.”
빅터의 말이 끝나자 막심이 대답했다.
“알아서 아래 직원들이 확인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의 불찰입니다.”
“알아서?”
“애초에 대의를 따르는 이들을 배제하고선 돈을 받고 뽑은 인원들에게 알아서 움직일 거란 기대를 했다고?”
마치 불을 뿜는 것만같은 눈빛으로 막심과 멜킨을 쳐다보는 빅터에게 그들에게 단장과 호위대장의 자리에 임명했던 과거가 잠시 머리에 스쳤다.
“내가 그대들을 단장과 호위대장으로 뽑은 것은 막심이 노예의 아들이었고 멜킨은 노예해방전쟁 중에 부모를 잃은 피해자로서 누구보다 노예해방전쟁의 대의에 공감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섣불리 준 높은 지위가 그대들에게 독이 된 것 같다.”
등을 돌리고 고민을 하던 빅터는 이어 이들에 대해 처분을 결정했다.
“처음 생각한 왼손을 자르고 왼쪽 눈을 뽑고 모든 재산을 몰수한뒤 추방하는 최고형은 내리지 않겠다.”
마치 한파가 불 듯 한기가 느껴지는 목소리에 인사팀장과 감사팀장 그리고 크로니클의 팀원들까지 오한을 느꼈는지 몸을 떨었다.
“부분적으론 사람을 잘못 보고 뽑은 나에게 1차적 책임이 있으며, 막심과 멜킨의 주장에서 와처를 향한 걱정이 있었음을 자료들을 통해 확인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모범을 보여야할 직급에 있는 자들에겐 피 흘리며 죽어갔던 해방전쟁의 전우들이 기대한 정의에 대한 수호, 원칙에 대한 수호 의무도 있기에 이들에 대한 처벌을 모두 면제해줄 순 없다. 아무리 내가 붉은 올빼미 반지의 주인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식으로 와처가 원칙을 저버리고 사사로이 운영되어선 안 된다. 그건 해방전쟁을 지지하며 함께 싸운 이들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빅터는 단장실 정면에 조각되어 있는 ‘붉은 올빼미’ 조각상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막심, 왜 단장실에 다른 동물도 아니고 굳이 붉은 올빼미가 있는지 기억하는가?“
"그...그건."
"대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