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14화-오빠 나랑 얘기 좀 해요
“이 부분부터 내가 얘기해 주고 싶은데?”
버크 아저씨 앞에 타서 반건조 오징어를 물어 뜯고 있던 요크는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당시 상황을 경험한 자기가 직접 말해주는 게 좋겠다고 했다.
“함리스 상단이 5년에 걸쳐서 얍삽한 수작을 벌인 게 내 생각보다 훨씬 잘 먹혔어.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기에 익숙해져 버린 멍청한 드워프들이 그냥 바로 넘어가더라고. 물론 상황이 상황인지라 늘어나는 물자에 많은 드워프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은 정말 환영할 일이긴 했지만 독이 든 포션같은 거였지. 내 동생 험프도 그 멍청한 드워프들 중 한명이었고 이미 드워프 대부분이 다 넘어간 상황에서 내가 뭐라고 해봤자 드워프들 사이에서 약간 입장이 ‘미묘했던’ 나의 말이 제대로 먹힐 거란 기대는 하기 어려웠어.”
'무슨 상황이라 입장이 미묘한 거지?'
“그래서 버크 오빠를 찾아갔지. 버크 오빠는 내게 지은 ‘죄’가 좀 있었으니까. 세상에 셋 밖에 안 남은 가족인데 10년이 지나도 동생들 얼굴 한번 안 찾으러 오기에 뭐하고 있나 궁금하기도 했고”
‘버크 아저씨가 요크한테 무슨 죄를 지었다고? 오래 알고 지낸 것은 아니지만아저씨가 무슨 잘못을 저지를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처음에 요크가 버크를 찾아갔을 때 버크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돌연변이 드워프였던 버크는 요크를 구해주기 전에 빅터가 와처를 통해 알려준첩보 덕분에 요크와 험프가 자신의 동생이란 걸 알고 구해준 것이었지만 요크나 험프에게 자신의 정체를 직접 이야기해준 적도 없었다.
“그땐 내 정체를 알리는 것이 요크나 험프가 드워프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방해나 상처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지.”
이름을 말해준 적도 없이 동생과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저 자신을 ‘붉은 수염’이라고 말해주고 10년 전에 헤어진 것이 전부라서 자신 앞에 등장한 요크를 봤을 땐 아저씨는 자기가 뭘 잘못 봤나 싶었다고 했다.
“요크를 험프와 함께 그 동굴에 데려다주고 나서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코엘이 찾아왔고 드마코가 합류해서 활동을 시작한 우리 크로니클은 빅터까지 합류한 뒤로 점차 모험가들 사이에서 명성이 커지고 있는 상태이긴 했지. 처음엔 그 명성을 듣고 찾아온 드워프인가 싶었지.”
“나나 버크나 이전의 ‘이름’은 버리고 모습도 바꿔서 크로니클의 팀원들 외에는 우리의 정체가 누구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 없었는데 요크가 어쩐 일인지 버크 앞에 나타난 거야.”
“더구나 버크 부단장님은 자신의 정체가 혹여 남아 있을 ‘탑의 후예’로 인해서 ‘샤이어’가의 동생들이 피해 받을 것을 우려해서 일부러 숨기셨던 상황이었습니다.”
‘저한테는 지금 말해줘도 돼요?’
그런 상황이니 자신 앞에 나타난 요크가 버크 아저씨의 정체가 ‘버크 샤이어’ 즉, 자신의 오빠인 걸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버크 오빠? 나랑 얘기 좀 해요.”
요크는 버크 앞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자 당시 옆에 있던 코엘 누나가 박장대소를 하고 넘어갔다고 드마코 형이 내 등 뒤에서 이야기해줬다.
“요크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코엘이 미친 듯이 웃어 재끼는데 난 그날 내가 음식 만들 때 이상한 걸 넣었나 싶어서 들어간 재료들을 생각 중이었어.”
“코엘 누나는 왜 그게 웃겼던 거예요?”
“버...버크 크크크크크킄크 표정이 꼭 임신한 여친이 갑자기 나타나서 책임지라는 소리 듣고 기겁을 하면서 놀라는 용병 놈들 표정이랑 비슷했거든....크크크크킄. 속으로 이 드워프는 뭐라고 떠들까 싶어서 상상하니 얼마나 즐거운지.”
난 그때를 떠올렸는지 웃음보가 터져 계속 웃고 있는 코엘 누나를 무시하고 요크에게 물어봤다.
“요크는 그럼 어떻게 정체를 숨긴 버크를 찾아왔어?”
요크는 사실 버크랑 헤어지기 전부터 ‘붉은 수염’이라는 남자가 자신의 오빠인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모른척하고 언제쯤 자신의 이름을 말해줄 지를 기대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버크가 드워프 마을의 입구에서 헤어지는 순간까지 자기가 붉은 수염이라고만 이야기하고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자기 오빠가 참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드워프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요크는 혹시나 싶어서 자신들을 구해서 동굴 앞으로 데려주는 동안 버크와 함께 움직였던 빅터를 찾아가 나중에 자신이 버크를 찾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노예해방전쟁’의 후반부에 붉은 수염과 함께 전쟁터에 참여하여 ‘와처'라는 감시기관을 설립한 빅터는 어디든 주점에 들어가서 ‘붉은 맥주’를 달라고 하면 와처 요원이 요크를 찾아 원하는 도움을 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줬다고 했다.
“그때 요크 팀원은 제게 와서 자기가 버크의 정체를 알고 있단 사실은 꼭 비밀로 해달라고 했습니다.”
“요크가 오기 전까지 빅터가 그 비밀을 지킬 줄은 나도 몰랐어.”
“난 요크가 이미 드워프 명부에서 이름이 지워졌을 것이 뻔했던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네.”
아무튼 그렇게 버크 앞에 나타난 요크는 드워프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버크에게서 이가 갈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버크의 뒤에서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드마코와 코엘은 버크와 함께 함리스 상단을 박살내자고 떠들었고.
그러나 그때 이들을 말린 이가 바로 빅터였다.
“무력으로 함리스를 부숴버리면 사람들은 그저 드워프 마을과 물건을 거래해서 판매하기만 했던 것으로 알고 함리스에 대해 동정적인 여론이 형성될 여지가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짓을 왜 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니까요. 그렇게 되면 모험가 집단 크로니클이 아무 죄도 없고 오히려 드워프들에게 물건을 전달하는 착한 함리스 상단에게 피해를 끼쳤다고 이야기가 돌겁니다. 그게 좋으시면 여러분들이 마음껏 날뛰셔도 좋습니다.”
빅터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하자 버크와 코엘은 그럼 자신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빅터에게 되물었다.
“와처부터 찾아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까지 왜 와처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는지를 알아야 다음 전략을 짤 수 있습니다.”
“만약 와처가 함리스 상단의 드워프 마을 침식에 동참했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와처는 자신들이 어떤 집단인지 깨닫기 위한 계기를 맞이해야겠죠.”
훈련을 시킬 때도 느낀 거였지만 빅터 교관의 철두철미함은 적으로 돌려선 안 될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줬기에 빅터가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말을 듣고서 내가 다 가슴이 철렁하는 기분이 들었다.
“근데 그때는 저기 뒤에서 먹다가 말 위에 늘어져서 자고 있는 에디나 누나는 크로니클에 없었나요?”
자기 이름이 나오니까 뒤에서 잠자던 에디나가 반응했다.
“어...으으응? 벌써 저녁....먹어?”
“아니니까 자던 거 계속 자라.”
‘말에서 자는 것도 신기한데 고삐도 없는 상태에서 말이 알아서 따라오는 것도 신기하다.’
“쟤는 그때 아직 크로니클에 합류하지 않았을 때니까. 이번에 수해임무 하기 전에 엘프 마을에 들렀다가 자기도 껴달라고 해서 크로니클에 합류하게 된 거야.”
“근데 느낌은 크로니클의 창립멤버 같은데요?”
“알잖아.”
모두가 턱짓으로 가리킨 에디나 누나의 친화력은 동물을 가리지 않고 적용되는 것이었다.
‘인싸 에디나 누나의 친화력은 세월이 만든 관계도 무시하고 비집고 들어가는구나. 범띤가?’
도대체 무슨 수로 크로니클에 합류한 것이며 드루이드가 엘프 마을에 있어야 했던 이유도 궁금해졌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아무튼 버크, 요크, 코엘, 드마코, 빅터까지 5명의 크로니클은 와처의 본부로 찾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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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처가 망가지게 만든 주범은 역시 함리스의 직원이었어. 날 노예로 만들었던 놈의 후손인 놈이었지.”
버크 아저씨는 먼 과거를 회상하듯 중후한 외모가 어울리게 숲길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하늘을 쳐다봤다.
“야, 폼잡지 마. 약 탄 맥주인지도 모르고 넙죽넙죽 마셔서 잠들어서 노예마차 탔다. 왜 말을 못해.”
“네?”
'억....그런 거였어?'
“저 놈 저거. 겨울에 동굴에서 뛰쳐나와서 눈 맞으며 돌아다니다 생전 처음 경험한 겨울온도에 추워 가지고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던 펍에 들어가선 아무나 주는 맥주를 확인도 안해보고선 고맙다고 벌컥벌컥 마시고서 의식 잃고 드워프 노예로 팔렸던 거야.”
“코엘 언니...그믄 흐시죠? 더 이상 우리 오빠에 대한 중상모략은 들어줄 수 없어요. 남에겐 아픈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버크 아저씨 앞에 앉은 요크가 코엘 누나한테 으르렁거렸다.
“그러다 한 대 치겠다?”
‘코엘 누나가 선 넘은 건 맞지. 아무리 친해도’
“맥주이야기는 또 무슨 이야기죠?”
“이 이야기는 이따가 저녁식사를 할 때 따로 이야기해주겠네.”
“나 없다고 또 날조하지 마. 내가 나중에 정후한테 따로 물어봐서 확인한다.”
남매와 2대 1로 코엘 누나가 투닥거리는 걸 보는 것도 당장 유희거리가 없는 지금 재미있을 것 같겠다 싶기도 했지만 그 직원이란 자와 크로니클을 레전드급으로 올려준 계기가 더 궁금했다.
“함리스의 직원을 찾아가서 바로 족쳤나요?”
“정후 군이 날 어떻게 보는 건지 의문스럽군. 그렇게 난 그렇게 야만스러운 드워프가 아니야.”
“버크 부단장님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제겐...크흠...그때 부단장님이 휘두르던 더블 워엑스하면 전장의...”
“거기까지.”
빅터 교관이 말을 꺼내자마자 버크 아저씨는 평소와 다른 번뜩이는 눈빛으로 빅터 교관을 쳐다봤다.
5명이 와처의 본부에 방문했을 때 접수부의 직원들은 전부 크로니클의 단원들을 심드렁하게 잡상인 대하듯 했다고 했다.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입구에서 접수담당의 직원이 크로니클 팀에게 묻자 뒤에서 조용히 서 있던 빅터 교관이 나섰다.
“와처의 수장님을 뵙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딱 봐도 수장님이랑 친분 같은 건 없으실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면 조금 곤란합니다. 특별한 용건 없다면 가세요.”
모험가 복장을 한 빅터에게 위 아래로 훑어보고 축객령逐客令을 내린 직원은 태도도 문제였지만 직원의 눈빛에서 너희같은 잡것들이 뭐라고 여기 와서 이러냐는 의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어서 함께 움직였던 요크는 살짝 울컥했다고 했다.
“붉은 맥주의 주인이 찾아왔다고 하면 수장님도 알겁니다.”
“네? 맥주를 드시고 싶은 분이라면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손님? 흑맥주는 들어봤어도 붉은 맥주요? 취하셨으면 나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접수처에서부터 느껴지는 대응과 불친절함에 이전과 달라진 와처의 분위기를 느끼고 버크 아저씨는 표정이 굳어졌다고 본부를 함께 방문했던 드마코 형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