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화 〉13화-side:모르는 사람이 준 호의의 대가 (13/239)



〈 13화 〉13화-side:모르는 사람이 준 호의의 대가

그저 많고 많은 별거 아닌 중소상단이었던 ‘함리스’는 노예해방전쟁 이전 동굴에서 끌려나와 노예들이었던 드워프들이 인간세상에서 만들었던 물건들의 가치가 더 올랐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입단한 지 얼마되지 않은 한 ‘신입’의 강력한 주장에 의한 결과였다.

“제 말을 한 번만 믿어 보십시오. 함리스 상단의 이름이 이 대륙을 뒤흔들게  것입니다.”

신입은 가치가 높은 드워프제 물건들을 다시 드워프들로부터 구해서 팔 수만 있다면 자신들은 그걸 가지고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어떻게 해서 드워프들에게 접근하고 물건을 건네받을 수 있을까였다.
현재 대륙을 지배하는 제국과 연합국, 신성제국의 3강 체제 아래 대륙의 반 가까이를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제국에는 아직도 이를 감시하는 기구 예전의 고대어의 이름을 딴 ‘와처Watcher'가 남아 혹시라도 있을 노예들의 구제뿐 아니라 관련자들의 색출과 처벌을 계속하는 상황이었다. 제국의 영토 내에서 감히 그들의 시선을 피해 드워프들을 잡아서 노예화를 하는 비슷한 행동은 할 수 없었다.

‘신입’은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면 된다는 말을 꺼냈다.

“저희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기록에 따르면 과거 수백 년   드워프와 어떻게 해서 친구가 되었는지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신입의 계획을 듣고 승산이 있다고 본 상단의 임원들은 이대로 상단 문을 닫을 때까지 중소상단으로만 머물기보다 한번 도전을 해보자는 생각에 장기간에 걸쳐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드워프를 물들이는 전략 ‘가랑비’를 발동했다.
‘와처Watcher’의 대외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지켜보던 상단은 자신들이 만든 ‘가랑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와처에겐 드워프들에게 해를 입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와처의 초대 단장이었던 마스터 빅터가 자리에서 물러나고 새로 단장이  2대 막심 단장과 멜킨 부단장은 이전의 마스터 빅터와 다르게 경영적인 두뇌는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러나 와처엔 초대 단장인 빅터가 쌓아 놓은 자산 덕분에 반영구적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은 자금력을 지니고 있었다.

함리스 상단은 와처의 자금력부터 소모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함리스 상단의 신입 직원은 자기가 직접 움직여서 와처의 자금력을 소모시키도록 유도하겠다고 했다.
어떻게 한 것인지 마침내 신입 직원의 작전은 성공적으로 작용했고 이윽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와처의 자금력이 급속도로 약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함리스는 드워프들에 대한 접근책도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진행했는데 처음에 드워프들에게 함리스 상단의 사람들이 드워프들을 위한 ‘선물’을 가져다줬을 때 드워프들은 그냥 가지고 돌아가라고 했었다.
이전에 ‘맥주 대량살포’건으로 인해 노예가 되었던 기억이 남아 있는 드워프들이 대부분 살아 있으므로 드워프들은 경험적으로 인간들이 주는 것을 함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정도의 상식은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함리스는 5년에 걸쳐 꾸준히 드워프의 마을에 ‘호의’를 계속 보냈다.  전에 인간들이 벌인 일에 대해 같은 인간으로서 보내는 ‘사과’의 의미라면서.
예전의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드워프들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진정성을 보이는 인간들이라면  호의를 받아줘도 괜찮겠다고 판단했고 드워프들은 인간들에게 교류의 문을 개방했다.

처음에 드워프 마을로 들어오는 각종 물자들같은 ‘선물’들에 대해 드워프들은 나중에 녹여서 다시 물건을 만드는데 쓰려고 했던 재활용 대상품들에 속한 방어구, 무기, 장신구들 정도만 줘도 인간의 호의에 과분한 대우를 해준다고 생각했다.
함리스 상단도 역시 이 대우에 대해 만족해하며 드워프들이 만드는 물건은 과연 다르다며 인정해주는 방식으로 드워프들의 자긍심을 만족시켰다.
인간들이 보는 눈이 있다고 기분이 좋아진 드워프들은 앞으로 주는 ‘선물’은 계속 받아주겠다며 선물을 두고 가면 자신들도 인간들의 ‘선물’에 맞게 거래가 아닌 ‘호의’를 보이겠다고 응답했다.

드워프에게 물건을 납품하는 함리스 상단주는 신입의 아이디어로 자신들이 긴 시간동안 ‘와처’의 눈치를 보며 벌인 장기간의 전략이 통했다는 것에 기뻐했다.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하는 의미로서 기획을 만들어 성공시킨 신입이었던 직원은 상단의 상부에 합류시켜 책임자로 승진했다. 이제 상단의 미래는 탄탄대로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했으니까.
선물이라고 말하고 거래라고 말하는 함리스의 거래 방식은 초기의 우호적인 호의와 다르게 드워프제 물건과의 교류 비율을 점차 자신들의 상단에 유리한 쪽으로 조금씩 천천히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함리스는 그와 함께 자신들만이 드워프의 독점적 창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춘 뒤였다.
그렇게 처음 인간 세상에 드워프제 상품들이 어느 정도 쌓이자 독점 판매를 시작하면서 이익을 얻은 함리스는 귀족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물건이 인간이 만든 무기나 방어구보다 훨씬 강하고 미적으로도  멋있음을 어필했고 이런 전략은 귀족들이나 왕족들을 비롯하여 기사들과 용병에 이르기까지 많은 구매자층의 충성적인 드워프제 물건의 재구매 확보로 이어졌다.
이 같은 소비자들이 점차 증가하면서 함리스는 자신들의 독점적 공급자 위치를 활용하여 다른 품목들의 판매까지 발을 넓혀서 마침내 대상단으로 성장했고 이때부턴 대상단으로서 자신들의 입지를 활용했다.

대상단이 된 그들이 활용한 방법이란 우선 자신들의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외부에 존재를 숨기고 기획실을 설립하였던 것이었다. 함리스의 비밀 기획실은 드워프제 상품들을 취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려는 상단들을 조기에 파악하여 포섭하거나 와해시키거나 흡수, 합병시키는 전략들을 사용하여 드워프들이 모여 사는 동굴로 접근하려는상단들의 모든 시도들을 원천 차단했다.
그 과정에서 이제는 ‘신입’에서 임원이 된 직원은 혹시나 움직일지 모를 와처의 요원들을 ‘뇌물’에 익숙해지도록 포섭에 나서기 시작했다.

자금력의 확보가 시급해진 와처들에게 함리스의 우호적 도움은 매우 큰 역할을 했다. 그 와중에도 계속된 드워프를 대상으로 한 ‘가랑비 프로젝트’로 인해 드워프들도 점차 조금씩 인간들의 물건이 주는 편리성에 물들고 지하에서는 구할 수 없는 육류나 맥주들을 비롯한 각종 물품들을 보급 받으면서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동굴 안의 드워프 숫자의 증가였다.
함리스 상단은 요구되는 물건의 양이 늘어날수록 드워프가 증가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밖에 없었고 이때부턴 마각(馬脚)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금부턴 드워프들을 향해 주는 ‘선물’의 양을 줄이도록 하세요.”

임원이 된 책임자의 명령으로 처음과 달리줄어들기 시작한 양을 감당하기 위해서 드워프들은 자기들에게 선물을 가져다주는 인간들의 성의를 생각한다는 말로 재활용 대상품으로 취급하는 고철들뿐 아니라 어린 드워프들이 처음 만들기 시작해서 연습품 수준의 3급품을 상단에 넘기기 시작했다.
드워프가 3급이라고 취급하는 무기나 방어구조차도 인간들의 기준으로는 상급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함리스의 임원진은 적당히 고삐를 조였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면 드워프들이 꺼내 놓으려고 하지 않는 그 위급의 물건들도 빼낼 수 있다는 임원의 말이 사실임을 직접 확인할  있었다.

상단의 전략은 단순히 양을 줄이기만 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론 좋은 물건들을 줘서 고맙다며 드워프들이 좋아할 법한 고기나 맥주를 일시에 대량으로 갖다 주기도 했다. 그 뒤 한동안은 드워프들이 준 물건이 인간들이 만드는 물건보다 품질이 떨어져서인지 예전보다 잘 팔리지 않는다며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거래량을 줄여버리기도 했다.
이 같은 인간들의 ‘밀당 전략’을 이해하지 못한 드워프들은 한동안 늘어났던 ‘선물’ 기간이 끝나고 나면  줄어버리는 인간들의 ‘호의’가 내심 못마땅했지만 드워프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



#

함리스 상단과의 교역을 시작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노예해방이 끝나고 나서 돌아왔을 때 드워프들의 숫자가 너무 줄어들어 있었던 것이었다.
드워프 치프는 드워프들의 결혼을 적극 응원하고 기존의 2명을 낳아 드워프의 숫자를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관례를 깨고 낳을  있는 이들에 한하여 얼마든지 더 낳아도 좋다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함리스 상단이 접근하기 전에 이런 지원에는 한계가 있었다.

먹는 것이 풍족하면 모를까 노예 해방 이후 한동안 외부로부터 드워프들의 ‘동굴’을 찾는 상단들이 없어서 인간들의 집단인 와쳐의 지원만으로 버텨야 했고 이는 드워프들 입장에서 자존심을 굽히고 인간들에게 더 많은 먹을 것을 요구하는 것은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때마침 시의 적절하게 등장해서 배고픈 드워프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기 시작한 것이 바로 ‘함리스 상단’이었다.
드워프 치프는 처음엔 거절하려고 했으나 드워프 숫자를 늘리기 위해선 풍부한 물자가 필요하다는 드워프 회의의 결과에 따라 자기들이 인간들의 수준에 맞는 답례품을 제공하고 ‘호의’를 제공받기로 했다. 먹을 것이 풍부해지기 시작하자 드워프들의 마을에는 출산 열풍이 왔다. 많은 드워프들이 풍족해진 먹을 것에 맞게 짝을 만나 출산을  덕분에 드워프들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제는 함리스 상단이 보내는 지원이 멈춰선 안되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늘어난 드워프 아이들 숫자에맞춰 식량조달을 유지하기 위해 드워프 대회의에서는 인간들에게 어느 정도 기술이 숙련되기 시작한 드워프 기준 2급품을 보여주고 넘기는 것이 어떻냐는 의견이 나왔다.
드워프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물건을 보게 되면 분명 그 물건들의 가치를 함리스 상단에서 자연히 알아보고 그에 맞게 더 많은 선물들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임원’의 주도 하에 함리스 상단은 이미 드워프들이 자신들의 생각한 대로 그렇게 움직일 거라고 예측하고서 더 좋은 드워프제 물건의 등장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드워프들이 더 좋은 물건이 있다며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지금 드워프들이 보여주는 물건들도 대단한데 그보다 더 뛰어난 물건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없다면서 드워프들의 자부심을 치켜 세워주자 함리스의 이런 심리적인 공작을 이해하지 못한 드워프들은 대부분 쉽게 넘어갔다.

인간들이 자신들에게 아부하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모르는 드워프들은 없었지만 내심 아부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배경은 물건이 좋은 것이니 진심이 없진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기분이 좋아진 드워프들은 마침내 자신들 사이에선 2급품으로 평가하는 물건들을 ‘괜찮은 물건’ 정도로 이야기하며 함리스 상단에게 선물로 제공하기로 했다.

“뭐, 이 정도면 드워프들에겐 그렇게 대단한 물건은 아니지만 인간들에겐 썩 괜찮은 물건일 것이외다!”

함리스 상단은 기대했던 물건보다 더 좋아 보이는 물건들이 나오자 자신들이 드워프들을 제대로 분석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드워프들이 모두 바보는 아니라서 이를 지켜보며 함리스의 의도가 불순하다고 파악하고 있던 한 드워프가 움직였으니  드워프의 이름은 ‘요크 샤이어’. ‘버크 샤이어’의 동생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