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7화-입 벌려라, 쌈 들어간다
화목 난로 옆에 화로대를 꺼내 세팅을 마치고, 난로에서 숯으로 변한 숯덩이들을 옮겨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철판을 깔고 고기를 올려서 굽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타오르던 불이 잦아들고 은은한 열기가 느껴질 때가 좋다. 고기를 태우지 않고 그을음 없이 맛있게 구울 수 있는 타이밍 말이다. 격자형태의 기름이 빠지기 좋은 석쇠 위에 목살을 올렸다.
치이익
그 위에 소금과 후추를 살짝 뿌렸다. 다 구워질 동안에는 고기와 함께 싸먹을 청양고추, 쌈무, 모듬쌈, 깻잎, 고추장, 쌈장 등을 꺼내서 세팅을 빠르게 맞췄다. 고기를 얼른 뒤집는 것도 잊지 않았다.
“쌀인가? 죽이 아니라 이렇게 만드는 것도 처음이군.”
고기만 먹으면 섭섭하다. 인벤토리에 담아둔 수돗물을 코펠에 담고, 햇반을 3개 넣어서 팔팔 끓였다. 버크 아저씨는 또 한 번 탐구영역 시간을 가졌다.
“아주 쇠가 얇은데도 성형을 잘했어. 망치로 두드려선 이런 모양이 쉽게 나오진 않았을 거야. 게다가 모양새는, 이렇게 그릇들을 차곡차곡 안으로넣는 방법은 하기가 어렵지. 부피 줄이기에 좋겠어. 나도 한 번 연구해봐야겠군.”
이번에는 판매가 아니라 도전을 한다고 한다. 드워프의 솜씨는 어떨까. 그러나 버너는 능력 밖인지, 결국 또 흥정을 시도했다. 나는 밥을 먹고 이야기하자고 다독였다.
고기가 다 익고 먹기 좋은 상태가 되었다. 먹기 편하게 하려고 가위를 꺼내 자르니, 이번에는 괴이쩍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가위로 고기를? 칼로 썰어야 잘 썰리잖아.”
“식재료용 가위에요. 편하게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자르기 좋죠.”
“괜히 도구 숫자만 늘지 않을까. 으음…….”
“칼로 하면 저렇게 깔끔하게는 못 자르지. 발상의 전환이 대단한 거야.”
정도는 덜하지만 이번에도 놀라는 모습이다. 나는 내심 주모를 부르고 싶어진다.
‘너튜버 여러분, 여러분들이 국뽕 영상을 만들 거라면 꿈의 출연자들이 이곳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찍은 영상들을 잘 편집하면, 금방 구독자가 확보되지 않을까? 영상 제목은 ‘입 벌려라 쌈 들어간다.’로 해보자.
‘…는 개뿔. 적당히 하자.’
한국식 쌈을 전수하려다 관뒀다. 고추는 너무 맵겠지. 그냥 상추쌈을 싸서 한입씩 챙겨서 넣어줬다. 그들은 약간 망설이며 먹다가 맛을 음미했다.
“음, 음. 그래! 이 맛이지.”
“고기도 고기지만 채소를 깨끗이 먹기도 오랜만이야..”
“소스도 괜찮네. 고기를 부르는 맛인걸. 진짜로 채식 고집하는 장로님들도 이거맛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엄청 충격이네.”
“샐러맨더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그럼 마구마구 먹을 텐데.”
한명 한명이 먹방 너튜버로서의 넘치는 자질을 보여주었다. 과장되면서도 원하는반응은 쏙쏙 보여주는. 카메라 쪽을 본 나는 카메라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다 찍고 나면 보물이 되겠네.
‘다 좋은데… 나는 언제 먹지?’
그러나 무조건 좋지는 않았다. 알아서 먹게 뒀더니,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로 고기를 먹어댔다. 나는 세 사람의 먹부림을 위해 굽자마자 나르기 바빴다.
“크! 이번 모험은 망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사람 인생은 모르는 건가봐.”
“그때 내가 정후의 비명을 들은 덕분이지. 나한테 감사해라, 키다리 드워프!”
“어어, 그래그래. 왜 그렇게 쓸데없이 뾰족한가 했는데 처음으로 제 역할을 하네.”
“흥! 너네 드워프들은 원래 키도 작고 귀도 잘 안 들리니까, 이런 경험을 할 일이 없지. 우리 같은 엘프나 가능한 일이야.”
“내 키가 너보다 크다.”
“넌 돌연변이니까 그렇지. 작달만한 드워프에도 없는 변종 주제에.”
코엘 누나와버크 아저씨는 끊임없이 고기쌈을 먹으면서도, 순식간에 앙숙처럼 다투기 시작했다. 에디나 누나는 일상을 즐기듯 고기에만 열중했다. 뭔가 참 화기애애함과 살벌함을 오가네.
‘친한 거야, 사이가 나쁜 거야.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네.’
“드워프들은 보통 귀가 안 좋나요?”
“생각해 봐. 맨날 땅 속에 처박혀서 쇳덩어리만 두들기는데 귀가 좋을 리가 없지. 그런 곳에 오래 있으면 좋던 귀도 망가져버려. 그래서 드워프들은 지들끼리 말할 때 다 소리 지른다고. 나도 거기에 맞춰서, 목이 아픈 걸 참고 소리 지르는 거야. 알겠니?”
내 물음에 코엘 누나가 떠벌이듯 말했다. 그럴 듯해서 수긍하려는데, 버크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라고 했다.
“코엘 말은 전부 믿지 말게나. 난 인간 세상에 있던 시간이 꽤 길어서 청력을 회복했어. 지금도 잘 듣고 대답하지 않나? 원래 그냥 코엘 말하는 습관이 저래. 지 성깔을 못 부려서 저런 거지. 근데 고기 더 없나?”
“맞아, 맞아. 너 고기 맛있게 잘 굽네. 고기 또 있어?”
셋이 합하니 완전히 걸신인데, 이거.
‘셋 다 비슷하면서도 참 차이가 나네. 에디나 누나는 모르겠는데, 둘이 근데 무슨 사이지? 그냥 팀 동료인가? 투닥거리면서도 계속 붙어 있는 게, 커플같기도 하고. 으음… 감이 잘 안 오네’
이제 목살은 지겹지 싶어서 고기를 바꿔 삼겹살을 꺼내서 구웠다. 그러면서 넌지시 질문을 던져봤다.
“혹시 둘이 결혼했어요? 아니면 커플이신가?”
그리고 마치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둘은 길길이 날뛰었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고! 내가 말이야, 아무리 외롭다고 해도 이런 드워프랑은 그러고 싶지 않아! 으으, 기분 나빠!”
“정후 군. 좋은 물건과 맛있는 음식은 고맙지만, 이 드워프를 모독하는 발언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군. 다 늙은 엘프랑 엮어서 앞날 창창한 드워프의 앞날을 막을 셈인가?”
…앞으로 사귀냐는 소리는, 농담으로라도 않아야겠다.
“잠깐만 버크. 너, 오늘 쫌 말이 심하다? 다 늙어? 송장이랑 같이 다니느라 힘드냐? 아예 관을 짜주지 그러냐? 아니다. 이미 짜놓은 거 아니야?”
“아까 준 샌드위치란 것도 맛있었지만, 이 고기쌈도 걸물이야. 지하에 있을 때는고기도 대충 먹어야 했는데.”
“말 돌리지 마라. 앙?”
내가 이야기를 잘못 꺼낸 것 같아서 억지로 만류했다. 일단 미안하다고 하고선, 더 싸우면 고기를 그만 굽겠다고 파업을 선언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눈으로만 싸우게 되었다. 입으로는 내가 물려준 쌈을 열심히 먹으면서.
“고기 맛도 좋네. 숲이나 인간들의 왕국에서 먹은 고기랑은 차원이 다른데?”
‘차원이 다른 맛이긴 하죠. 진짜 넘어왔으니까.’
“우리들이 먹는 돼지고기랑은 맛이 정말 달라. 냄새도 없고.”
“맞아요. 우리 쪽 전문가들이 수십 년이 넘게 꾸준히 개량했거든요.”
내가 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자부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버크는 한 번 더 감탄했다. 잘 발달된 문명에서 왔구나. 정말이지 연거푸 감탄했다.
그러나 나중에 안 일이지만, 버크 아저씨와 다른 둘은 무조건 감탄만 한 게 아니었다. 모험의뢰를 받고 온 그들은, 나와 접근하며 이득을 계산했다고 한다. 물론 이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계속해.)’
‘(알았어.)’
‘(거의 넘어온 것 같군.)’
“그래서 그런가? 후추를 뿌렸다고는 해도 잡내가 별로 안 나고, 기름에서도 고소한 맛이 느껴지더라.”
“후추와 소금도 저렴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맞나? 우리 세상에선 너무 비싸서 조금씩 고기에 뿌려먹거든. 암염을 캘 수 있는 지역이면 그나마 다행이지. 광산에서 먼 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소금도 귀해. 정후 군처럼 고기 위에 뿌려대는 걸 보면 보통사람들은 기겁할 걸세.”
옆에서 끊임없이 먹고즐기는 에디나 누나와, 먹으면서도 분석하는 엘프 누나와 버크 아저씨는 확연히 달랐다. 먹는 것 앞에서 꼴불견 같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내가 풀어놓는 문물에 눈이 멀진 않은 것이다.
‘고기 먹으면서 별 걸 다 알아채는 구나.’
"다른 물건은 지나치게 고급이지만, 소금은 이야기가 다르지. 저렴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으면 우리한테도 도움이 될 거야. 고기 먹기 힘드니 염분도 얻기 어럽다고.”
“우리도 마찬가지야. 불 앞에서 오래 일하는 우리 드워프들은, 땀을 많이 흘려 염분이 부족하거든. 소금을 따로 먹어주지 않으면 쓰러져.”
자기네 사람들은 잘 챙기는 엘프 누나와 드워프 아저씨. 그리고 둘은 또 다시 다투기 시작했다. 이런.
"소금도 소금인데 니네 드워프는 좀 씻어야 돼. 엘프들이 괜히 드워프들 근처에 가기 싫어하는 게 아니야. 너는 그래도 모험하고 그래서 씻는 게 습관이되었지만, 땅 속 드워프들이 있는 마을은 내가 감히 못 들어가잖아.”
“거 참. 갑자기 또 불똥이 튀네.”
버크 아저씨가 입술을 비죽 내밀고 투덜거렸다. 더럽다는데 기분 좋을 사람, 아니, 드워프는 없겠지. 그러나 엘프에겐 소 귀에 경읽기였다.
“불똥이 아니라 당연한 귀결이지. 소금보다 청결용품이라도 좀 사서 보급해봐. 고기 많이 먹고 잘 씻지도 않으니 냄새 얼마나 고약한지 아냐? 니들끼리는 땅속에만 있으니까 잘 모르잖아.”
“이, 이…….”
“우리 역사서에 기록된 니네 냄새 관련된 언급이 몇 차례인지 알면 놀랄 걸. 우리 조상님이 가장 충격적이셨던 게 드워프한테서 나는 냄새셨다고 그러더라."
'엘프랑 드워프가 왜 사이 나쁜지 알겠네. 소설에서 본 것보다 구체적이구나.’
이렇게 안 맞는 종족이 있을 수 있나 모르겠다. 그러나 험악한 와중에도 수확은 있었다. 패드립과 욕이 난무했지만, 거기에 담긴 상대 종족에 대한 지식은 대단했다.
‘아까는 물건 파느라 몰랐는데, 저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구나. 나는 지식이 많지만 저 사람들은 경험이 풍부하네.’
그렇게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그동안 조용히 먹기만 하던 에디나 누나가 말을 꺼냈다. 짜증이 나는지 눈살을 찌푸린 채였다.
“거 밥 먹는데 더러운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해. 크~ 그나저나 술이 아쉽네. 음식은 잘 차려졌는데 술이 없으니까 이상하다.”
고기를 실컷 먹고도 술까지 당긴다니.
위장에 양심이 있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