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6화-샌드위치 전투 (6/239)



〈 6화 〉6화-샌드위치 전투

 사람이 날 지켜보는 가운데, 화목난로 안에 마른 나뭇가지들을 쌓고  아래 공간을 살짝 만들어 부싯깃을 넣었다. 그 다음은 고형연료에 길게 주둥이가 난 터보 라이터로 불을 붙여 안으로 밀어 넣었다.

화르륵!

고생이필요 없이 금세 불이 붙었다.

“그… 그건 또 뭐지? 그 조그만 장치에서 강한 화력이 느껴지는데, 정후군?”
“점화석이랑은 전혀 느낌이 다르네? 훨씬 간단해 보여! 그거 뭐야!”
“아? 이거 터보라이터라는 거예요. 일직선으로 화력이 집중되어 불 붙일  좋더라구요. 괜찮죠?”

 생각없이 내뱉은 말은 내가 의도한 것보다 더 강한 리액션으로 돌아왔다.

“그건 얼마면 되나? 얼마면  수 있나?”
“나도 살래. 나도!”

무섭게 다가와서 터보라이터를 건네받아  번 불을 켜보는 일행들. 아저씨나 누나들이나 이것도 팔라고 한다. 기분은 좋지만 조금 무섭다.

‘이러다 입고 있는 팬티도 팔라고 할 것 같은데?’

 아까 발동했던 용산의 상술을 다시 발동했다.

“얼마까지 생각하고 계십니까?”
“이건 LED 랜턴이라는 물건보다  유용할 것 같네. 랜턴은 어두운 곳에서만 쓸 수 있지만, 이건 언제 어디서나 불을 피울 수 있는 물건이니까. 용도의 다양성 측면에선 비교가 안되는 물건이야."
“부엌에서 불을 관리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이것저것 따지면 훨씬 값어치가 나가겠는걸.”

 터보 라이터 하나가 그 정도 가치라니. 이 세상이 얼마나 낙후된 수준인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 정후군. 그냥은 내가 이런 귀한 것을 쉽게 받을 수 없지. 여기 2 플래티넘 정도면 값어치가 되겠나?”
“난 지금 그 정도 돈은 없는데, 더 싸게는 안 팔아?”
“쪼잔한 드워프 새끼, 니가 에디나 것도 사줘.”
“2플래티넘도 충분할 수도 있지 않나!”
“4개 줘. 니가 플래티넘 2개만 주면 베이스캠프에 돌아가서, 애들한테  불어버릴 거야. 물건 값도 제대로 안 치르고 값을 후려쳐서 사온 드워프라고.”
“젠장, 어쩔  없군. 정후 군. 내 동료들에게 비밀로 하는 조건으로 4 플래티넘을 주겠네.”
“네?”

물건을 가진 사람은 한마디도 안 한 상황에서 자기들끼리 네고가 오갔다. 그러더니 어느새 4플래티넘으로 값이 불었다.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버크 아저씨가 4 플래티넘을 끝내 쥐어줬다.

“좋아! 이건 이제 나와 에디나 걸세. 나중에 다른 말 하면 안되네. 자 여기 4플래티넘.”

‘엘리스, 나 돌아가면 부자가 될 것 같아’


혼자 그렇게 4플래티넘을 깨물어 보기도 하고 짤랑거리며 좋아하고 있을 때였다. 터보 라이터와 LED 랜턴을 들고 신나하는 일행들을 뒤로 하고, 코엘 누나가 자기 배를 톡톡 두드려보았다. 음식이 언제 되냐는 무언의 압박이다.

“아! 방금 불 붙였으니까 좀 사그라들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제가 가져온 샌드위치들 맛 좀 보실래요?”

플래티넘은 혹시 몰라서 여유가 생긴 인벤토리에 잘 챙겨서 넣었다. 그 다음에는 소스를 조금씩 달리해서 주문한 채식주의자용 샌드위치들 6개와, 버크 아저씨가 좋아할 법한 풀드포크 샌드위치를 2개를 꺼냈다. 각각의 샌드위치의 맛이나 들어 있는 재료가 어떤 것인지 설명해줬다.

먹고 싶은 걸로 가져가라고 했더니, 코엘 누나는 풀드포크 샌드위치 2개를 냉큼 가져갔다. 뭔가 생각했던 그림과 다르다. 오랜만에 먹는 돼지고기라며 좋아하는 모습이 어색했다.

“에, 엘프들이 고기 먹어요? 돼지고기를? 채식주의자 아니었어요?”

내가 가진 엘프에 대한 고정관념을 너무도 과감하고 손쉽게 파괴당했다. 놀라서 코엘 누나에게 물어보자. 누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시크하게 대답했다.

“너 우리 엘프들이 뭐 먹는지 한번이라도 봤어?”

…할 말이 없어졌다.
설명해주지도 않았는데 포장을 다 까버리고,  손으로 흘러내리는 소스는 가볍게 무시한 채 샌드위치를 씹어 먹는 코엘 누나. 그 모습은 뭐든지 씹어 먹을  있을 것처럼 야성미가 넘쳤다.

“우리도 고기는 없어서 못 먹어. 산에 있는 동물들 먹고 싶은 대로 다 잡아먹으면 숲의 거대한 흐름이 망가질 수도 있으니까. 어쩌다가 날 잡고 먹는 거라고. 그렇다고 고기 먹으려고 산이나 숲에 동물들을 많이 키우면, 나무랑 풀들  뜯어먹어서 산이나  망가진다고 원로들이 잔소리하거든.”
“아하.”
“그래서 평소엔 맨날 과일 쪼가리나 뜯어먹고 버티는 거지. 얼마나 아쉬운지 알아? 고기 맛을 모르면 모르겠는데, 아니까 미치는 거야. 오죽하면 외부하고 교역할 때, 엘프들이 원하는 수입물자 1순위에 육류가 들어가겠어?”

누나는 샌드위치를 씹어 삼키면서도 친절하게 엘프들의 섭생에 대해서 설명해줬다. 왠지 구구절절한 사연이 묻어나오는 느낌은 착각일까.



설명을 들으며 옆을 보았다. 고기를 좋아하는 육식주의 엘프의 옆에, 채식주의자용 샌드위치 하나를 다 먹고 2개째를 먹는 버크 아저씨가 보였다.

‘이거 뭐 한치도 예상이 들어맞질 않냐.’

“야채들을 참 좋아하시네요?”
“예전에 드워프 마을에 있을 땐 고기를 참 많이 먹었는데 세상 밖으로 나와서 채소를 먹으니까 그렇게 내 입에 잘 맞을 수가 없었네. 그 뒤론 이렇게 싱싱한 녹색채소를, 먹을 기회가 될 때마다 잘 챙겨 먹고 있지.”

뭔가 레퍼토리가 코엘 누나랑 비슷하다. 신기하네.

“지하동굴에서 사는 드워프들이 채소를 먹어봐야 얼마나 먹어 봤겠나. 이 신선함은 농경지가 없으면 먹을 수가 없는 거니까 말이지."

'이쪽은  선택적 채식주의 드워프 뭐 이런 건가?'

"내가  세상에 나와서 먹은 것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게  과일과 야채들이었어. 근데 이렇게 야채랑 과일들을 잘라서 넣어 먹는 음식도 있었군. 이거 참 기발하군. 앞으로도 종종 기회가 되면 이렇게 먹어야겠어.”
“그치? 고기랑 빵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건지  오늘처음 알았어. 빵도 되게 고소하고 소스는 뭘로 만들었는지 진짜 맛있다.”
“난 이 하얀 소스가 정말 좋은데? 뭔가 개운하면서도 풍부한 맛이야.”

중년의 드워프와 여성 드루이드가, 아이처럼 손에 묻은 랜치 소스를핥아 먹으며 좋아했다.

‘탄수화물과 지방 그리고 단백질은 한번에 먹게 되었을 때 그 맛이 더 좋긴 하지.’

나도 배가 고파서 샌드위치 하나를 절반쯤 먹었다. 에디나 누나는 두 개째를 먹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자기 몫을  먹고 소스가 묻은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먹었다. 그러더니 내 쪽을 보는 게 아닌가.

"드, 드실래요?"

그들에게서 생존의 위협을 받은 나는, 자연스럽게 내 몫으로 가져온 샌드위치 중 하나를 그들에게 줬다. 그리고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야, 안 놔? 이번에 바다 찾으러 오면서 오랜만에 밥같은 밥 먹은 것 같은데 너만 입이야?”
“반씩 나눠 먹는 것은 어떤가?”
“하나도 감질난데 반씩 먹자고? 입만 버리지.놔. 셋  때까지 안 놓으면 뒤는 감당 못해. 누나한테 양보해라.”
“이럴 때만 누나인가. 아깐 수염 난 아저씨가 누나라고 부르는 건 싫다며. 어허, 누나가 양보하지?”
“넌 누나라고 부르지 마라. 진짜. 농담 아니야. 하나!”
“뭐이랬다가 저랬다가 아주 지맘대로여. 숫자는 너만 셀 줄 아냐? 둘! 셋! 합!”
“너!!”

둘이서 샌드위치를 네 개의 손으로 잡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샌드위치 속에서 소스가 튀어나와 두 사람 손에 잔뜩 묻었지만, 둘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같았다.
잠시 뒤에 버크 아저씨가 머리를 들이밀며 먼저 샌드위치를 입에 넣었다. 100m 달리기 경주의 선수가 마지막 순간에 가슴팍을 들이밀면서 앞으로 나가듯, 재빠른 행동이었다. 그렇게 샌드위치를 쟁취한 아저씨는 수염에 소스가 가득 묻은 얼굴로 기뻐했다.

“흐흐흐, 뺏어 먹으니까 더 맛나는구만.”
“이이이익, 죽어. 죽어.”

코엘누나는 드러워 죽겠다며 손에 묻은 소스를 아저씨의 옷에 닦았다. 거기에 엉덩이까지 걷어차는 데도, 버크 아저씨는 전혀 흔들림 없이 샌드위치의 맛을 음미했다.

“으음, 맛있군.”

‘점점 조카들 돌보는 느낌인데?’

4명이서 먹자고 8개를 사왔는데도, 샌드위치를 둘러싸고 가히 전투가 벌어졌다. 열렬한 시식이 끝나고나자 불도 어느새 잔잔해졌다. 고기를 굽기  좋은 상태다.
왜 잔잔하게 불을 피우냐고? 불꽃이 넘실거릴 때 고기를 구우면, 분위기는 좋지만 숯검댕이 되곤 한다.

하지만 캠퍼생활  해본 나 같은사람들은, 그렇게 고기를 먹지 않는다.
어느 정도 잘 구워졌다 싶었을 때, 이 사람들 먹는 반응을 찍어야겠다 싶었다. 나중에 편집해서 먹방으로올려야지. 평소에 백패킹을 갈 때 챙기는 DSLR을꺼내 삼각대에 고정시켜 찍어보았다. 나름 중급기 되는 물건이다.

“정후 군, 그건 뭔가?”

버크 아저씨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공돌이이자 얼리어답터, 혹은 덕후기질을 발휘했다. 눈을 반짝이며 카메라 앞으로 다가왔다. 덥수룩한 수염이 왠지 위협적이다.

“이거요? 이건 카메라라고 하는 영상 기록 장치인데 우리들이 하는 행동을 영상으로 기록해서 저장할 수 있어요.”

코엘 누나와 에디나 누나는 여태껏 관심도 없다가, 내가 설명을 하고 나서야 관심을 표했다. 반응은 여태껏 다른 물건보다도 뜨거웠다.

“마법 아티팩트야? 그림도 아니고 움직이는  기록할 수 있다고? 그게 되나? 가능한 거야, 버크?”
“나도 모르지. 하나하나 우리가 움직이는 장면을 찍어서 영상으로 만들 수 있다니. 여태까지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아이디어군.”
“그런가요?
“이건 뭔가 누를 수 있는 것이 많아서 복잡해보이기도 하고, 기능이 많아 보이는데… 우리가 산 물건들하곤 가치가 다를 것 같군.”

전문가적 식견이 꽤나 풍부한 아저씨는, 약간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흥정만으로 팔기 어렵단 판단이 선 것이다.

“좀 많이 비싸죠. 쉽게 구하기가 어려운 물건입니다.”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렵다는 말로, DSLR 카메라의 판매기회는 다음 기회로 미뤘다. 이미  물건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카메라 같은 이쪽에도 고급인 물건을 팔아도 될지 판단이 쉽게 안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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