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4화-님들 마법주머니 없어요? (4/239)



〈 4화 〉4화-님들 마법주머니 없어요?

“오오, 진짜 신기하네.”

해변으로 돌아온 것에 놀랐다. 그러나 그보다 버크 아저씨 일행이 더 놀랐다.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던 그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내게 다가 왔다.

“옷이 바뀌었어? 정후야! 너 마법사였어?”
“코엘, 마법사도 저렇게 옷을 바꾸는 마법은 없어.”
“정후  갑자기 옷을 어떻게 바꿔 입은 건가?”

일행들은 마법을 입에 담았다. 이들의 입장에선 내가 차원을 넘어갔다 온 것이 아니라, 옷을 바꿔 입는 마법을 사용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마법이 있나요? 여기에 정령같은 것도 있어요?”

버크 아저씨와 코엘 누나는 내 질문에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이 사람들 입장에선 오늘 만난 건데도 고마웠다.

“우리 세계의 마법사들은 그렇게 강력하지 못하네. 예전의 초고대문명 시절에 누렸던 수준은 꿈도  꾸지. 기껏해야 빛을 띄우거나 불을 붙이거나 바람을 일으키는 수준이야. 정령을 사용하는 정령사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어.”
“우리같은 엘프나 드워프들은 정령을 부를 수 있어. 아주 간단한 도움을 받는 수준이라면. 불의 정령은 온도를 높인다거나 불을 붙여야 할 때, 물의 정령은 여행 다닐  식수나 씻을만한 물같은 도움을 조금 받을 수 있고. 뭐 그런 식이야.”
“근데 자네는 어떻게 옷을 바꿔 입은 건가?”

설명이 끝나자 화제는 다시 내 옷차림으로 넘어왔다. 반팔 차림이었다가 등산복장으로 바뀌었으니 놀랄 수밖에. 나는 어떻게 설명할지 고심했다.

‘이거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하네. 이런 대화는 생각 안 해놨는데’

걱정이 되었다. 해가 지면서 바닷바람이 불고 서늘해졌는데도, 긴장감에 등 뒤로 땀이 맺힌다.

“제가 가진 능력입니다.”

나는 대충 뭉떵그려 표현했다. 더 이상 말하고 싶어 하지 않다는 의지를 팍팍 담았다. 버크 아저씨 일행은 날 존중해서 그런 건지,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두분도 슬슬 배고프지 않아요?”
“너 만나고 계속놀라니까  배가 고픈 같다. 여기까지 오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배는 고프지만 일단 잠잘 자리부터 확보해야하네. 밥은 그 다음이지.”
“난 숲에다 던져두고 온 내 짐부터 좀 챙겨와야겠다.”
“버크 말대로 텐트부터 쳐야겠어. 정후는 어떻게 잘 생각이야? 마법같은 걸로 막 막 이렇게 저렇게 하면 집이 생기고 그래?”
“아뇨, 그런 능력은 없어요.”

만화에서 볼 법한 능력을 기대하는 코엘 누나. 나는 거기에 부응하진 못하지만, 나름대로 노력하기로 했다.
그래. 일단 숙식부터 준비하자. 나도 백패킹을 즐기는데, 간만에 들떠서 깜빡했다. 박지[1]부터 확보하고 나서 먹을 것을 챙기는 것이 맞지. 나는 백팩커로서 몇 년을 돌아다닌경험을 자랑할 겸, 인벤토리에 있는 내 텐트 세트를 꺼냈다.

“와우! 이거 뭐야? 전설로 내려져 오는 아공간이나 뭐 그런 건가? 버크! 에디나! 이거 봐봐.”
“정후군 방금  물건들 어디서 꺼낸 건가? 딱히 무슨 주머니도 없었지 않은가?”
“난 그것보다 쟤가 꺼낸 게 뭔지가 더 궁금하다.”

몇몇을빼곤 텐트장비보다 인벤토리 기능에 놀라는 것 같았다. 내심 좋은 장비들을 자랑하고 싶은 백패커의 마음에 금이 갔다. 그래도 에디나 누나가 알아봐줘서 다행이라고 할까.
서로간의 장비를 보여주며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 하는 캠퍼들이라면, 내 마음에 어느 정도 공감할 것이다.

‘근데 이세계면 보통 이런  정도는 다 들어가는마법주머니같은  가지고 다니지 않나?’

"여러분들은 마법주머니 같은 거 없어요?"

이세계라면 당연히 공간을 접어 물건을 담아 다니는 주머니 같은  있지 않을까. 무심코 꺼내는  질문에, 버크 아저씨 일행은 어느 게임사에서 “니들은 폰 없어?”라고 말한 후의 모바일게임 시연회장 분위기를 방불케 하듯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러고 보니 다들 히말라야에서 일하는 셰르파들처럼 등짐을 바리바리 멨다.

"우리 세계에 그런 물건은 전설 속에나 있어. 초고대문명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일부 전해지지만, 아직까진 사실인지 확인되지 않았네."

아련한 표정을 짓는 버크 아저씨. 에디나 누나도 자기도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니고 싶지 않다며 푸념했다.

"나도 제발 그런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거야?"
"부럽다. 부러워."

그들의 대답을 듣고 있자니 양심이 아파왔다. 뭔가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이   같았다.

“유적들에서 지금까지 발굴된유물들을 분석한 결과, 우리 세계에도 공간을 넘나드는 ‘대마법사’들이 있었다고 하네. 그러나 과거에 어떤 사건이 발생했고,  당시의 발전했던 문명은 갑자기 묻혀 버리거나 파괴되어버렸지. 아직도 우리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네. 자료가 너무 부족해.”
“그런 상황에서 네가 갑자기 등장한 거야. 그리고 공간 너머에서 저 물건들을 꺼냈지. 어쩌면 우리 세계와 니가 있던 세계가 교류했던 증거일 수도 있어. 역사에 길이 남을 하루일지도 몰라.”

나는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내 능력에 대한 파악이 전부 끝난 것도 아니고, 이들 말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딱히 인벤토리 기능이 지구와 관련이 있지는 않을 것 같지만, 내가 모른다고 하는 이야기에 다들 둘러댄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들 모호한 표정이다.

잠깐의 대화 후 텐트를 펼치기 시작했다. 버크 아저씨 일행은자신들이 치던 텐트로 가지 않고, 내가 치는 텐트 근처에서 구경을 했다.

내 텐트는 자립식과 비자립식으로 나뉘는 텐트 중에서 자립식에 속한 것이었다. 혼자서 텐트를 쳐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칠 수 있는 방식이어서, 혼자 치는 데 그렇게 어렵지 않은 텐트였다. 그게 이들의 눈에는 굉장히 편리했나보다.

“근데, 니 텐트는 우리 것보다 훨씬 좋아보이네. 니가 아까 준 얇은 쇠로  캔이라는 것도 신기하고, 신기한 것들이 많은 것 같아. 한번 니가 사는 곳에 가 보고 싶다.”
“사라진 우리의 초고대문명처럼 굉장히 발전한 문명을 가진 집단인  같군.  수 있다면 나도 가보고 싶어.”

‘엘리스, 저  사람을 데리고서 지구에 나랑 같이 넘어갈  있어?’

<사용자의 현 레벨에선 불가능합니다. 사용자의 레벨이 상승하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아… 저랑 같이 넘어가는 건 지금은 불가능해요. 나중에 가능해지면 데려가 드릴게요.”
“약속했네. 정후 군?”
“약속했다. 엘프는 은혜도 원한도 잊지 않아.”
“한번 자네가 꺼낸 텐트를 치는 모습을 마저 구경해도 되겠나?”

어쩌다 보니 텐트 설치 시연장이 되어버렸다. 멀리 돌아가긴 했지만, 원하던 대로 내 장비를 자랑할 기회가 왔다. 좋았어.

‘어차피 장비자랑도하고 싶었는데, 얼굴에 철판 깔고 한번 제대로 보여줘야지.’

“이렇게 접혀 있는 쇠로 된 막대는 폴대에요.  폴대들을 텐트의 바깥 쪽에 있는 구멍에 맞춰서 서로 엇갈리게 집어넣은 뒤에, 위로 들어 올려서 고기를 걸어 모양을 만들어주면 돼요. 어렵지 않게 완성할  있죠. 그리고 나서…….”

아직 텐트의 모양만 형성하고 팩도  박았는데, 척척 완성되는 모습이 마음에 드나보다. 다들 ‘take my money'를 외치는 그 짤방처럼 눈빛에 사고 싶은 욕망이 느껴졌다. 금방 질문세례가 날아왔다. 팩이랑 플라이까지는 보여주지도 못했는데.

“잠깐, 잠깐. 아까 맥주캔이라는 것도 얇게 펴진 쇠를 동그랗게 말아서 대단하지만, 폴대라는 것도  안에 잠재된 드워프의본능을 자극하는군. 어떻게 이렇게 쇠막대의 가운데만 동그랗게 비워낼 수가 있지? 심지어 지지하기에 적절한 강도는 유지되어 있고, 적당하게 휘기도 하고. 표면은 어떤 처리가 된 것인지 금속인데 매끄럽군.”

중후한 중년의 멋을 풍기던 버크 아저씨가, 촐싹거리는 느낌을 물씬 풍겼다. 이게 이 아저씨의 본성인데 중후한 척을 하는 걸까. 아니면 상황이 상황이라서 그런 걸까. 감이 잘  잡혔다.

“폴대보다 신기한 게 이 텐트 천이야. 우리가 쓰는 엘프산 천막은 비에 안 젖게 기름을 먹여 놓은 거라 무겁잖아. 이걸 봐! 우리 것처럼 무겁디무거운 텐트 천과는 다르게, 정후가 가져온 텐트는 팔랑팔랑거리고 정말 가볍다고!”
“우리가 이런 텐트만 있었어도 이렇게 무거운 등짐은 안 메고 다녔겠지. 난 마법주머니도 없고 텐트도 무겁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호들갑스런 리액션이다.
장비자랑을 하고 싶던 내 마음에 만족감이 차올랐다. 그래도 일단  일은 해야지.

“저기… 텐트 아직 다  쳤거든요? 배고픈데 일단 마저 치고 이야기할게요. 괜찮죠?”

흥분한 셋을 다독거리고 텐트 설치를 겨우 마무리했다.
와중에도 버크 아저씨는, 팩을 박기 위해 꺼낸 접이식 야전삽을 보고 또 다시 흥분했다.

‘이런 사람이 왜 모험가를 하고 있지? 그냥 대장장이가 천성인 건 같은데?’

첫인상은 정말 멋져 보이던 아저씨였는데, 아저씨에 대한 이미지가 금이 가는  같았다.

“아, 니가 가진 텐트가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가진 텐트는 고물이고 쓰레기야 쓰레기. 버크! 넌 저런 거 못 만들어?”
“맞아, 버크도 저렇게 만들어 주면 안돼? 버크는 우리가 들고 다니는 텐트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거라며.  거랑 비교하니까 완전 낡아빠진 구식이네.”

얇고 가벼운 텐트 천과 플라이를 보던 코엘 누나와 에디나 누나는, 플라이를 쓰다듬으며 용도를 물어봤다. 비에 젖거나 새벽이슬에 텐트가 젖는 걸 막기 위해 텐트 위로 설치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줬더니 다들 놀랐다. 접히는 야전삽을 봤던 버크와 비슷한 상태가 되었다.

“코엘, 에디나. 그럼 내가 한번 물어보자. 니네 엘프나 드루이드들이 정후 군의 텐트 천같이 얇고 가벼운 천을 만들 수 있나?”
“드워프들은 어떻고? 인간이든 엘프든 쇠도 제대로 못 만지는 것들이라며 막말하더니, 너희 드워프가 저런 폴대라는 것처럼 변형되는 천막용 지지대 만들 수 있어?”

흔히 전설의 리그라는 게임에서 자주 접하던, 서로가 서로의 탓을 하는 정치질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왠지 내 잘못인  같아 찜찜했다. 그런데 이들의 대화에서 이상한 점을 캐치했다. 방금 뭐라고?

“드워프요? 누가 드워프에요?”
“여기 드워프처럼 생긴 사람이 누가 있어? 당연히 얘지.”

180cm가 넘는, 나보다 한참 커 보이는 저 중년의 아저씨가 드워프라니. 내가 가진 고정관념과는 많이 다른 모습에 놀랐다. 이들이  장비를 보고 놀랐듯 나도 어안이 벙벙했다.

‘금속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게 그래서 그랬던 거였나? 그럼 대장장이가 맞았던 거야?’

장비에 대해 전문가적 지식을 가지고 인정해줘서, 장비자랑에 대한 욕구가 어느 정도 해소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대화의 주제가 갑자기 서로의 종족에 대한 앙금으로 번졌다. 결국 내 눈 앞에서 말싸움이 신나게 일어났다.
소설로만 보던 엘프와 드워프 사이의 견원지간을, 내 눈으로 확인할  있었다.

“세분  이러지 마시고  분도 잘  있게 텐트 치셔야죠. 제가 그동안 세분도 드실 수 있게 식사 준비해드릴게요.기대해도 좋아요.”

[1] 텐트를 치기에 적합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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