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3화-차원이동 능력 각성
이곳에서 잘 것인지 일행들은 배낭에서 여러 가지 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질문을 했다.
“버크 아저씨, 혹시 여기도 무슨 몬스터나 그런 것들이 튀어나오나요?”
이세계의 환경이 내가 읽었던 소설 속의 공간들처럼 몬스터가 나오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은 아닐까. 의문과 공포가 생겼다. 버크 아저씨가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그런 건 전설이나 민담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정후 군의 마을에도 그런 이야기가 존재하는가?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무엇보다 여기 에디나가 드루이드니까 야생동물이 오지 않게 미리 준비해두면 숲의 짐승들도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딱히 내가 있건 말건 코엘이랑 버크가 있으니까 뭐 바다에서 어떤 동물이 튀어나와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렇긴 하지. 곰도 다독이는(?)수준인데.’
대답을 들으니 오랜만에 여행 온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몬스터같은 것들이 없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좋은 풍광을 즐기며 그렇게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이들과, 고기도 좀 구워먹고 술도 더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까진 곰에 쫓기던 상황이 꿈만 같다.’
그러나 대화하면서 찜찜했던 부분이 있었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집으로 갔다 올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때마침 [동기화중]이라고 떠 있던 홀로그램이 [동기화 완료]라고 바뀌었다.
‘바뀌었어? 나 이제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건가?’
머릿속으로 집을 떠올리는 순간, 난 내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어? 어?”
잠시 꿈을 꾼 것인가 싶었다. 그렇지만 [동기화 완료.]라고 깜빡 거리는 홀로그램이 내 눈 앞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거기다 방금 전 내가 백사장에 앉아, 이계의 사람들과 이야기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모래도 묻어있었다. 바지와 발에 묻은 그것들은 까끌까끌하고 선명했다.
“돌아왔다! 근데 아까 그곳으로 다시 또 돌아갈 수 있으려나?”
자취방으로 돌아오자 크게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 다시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마음에 방을 한 바퀴 빙 둘러 보는데, 어디선가 처음 듣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능력자의 1회 능력 사용으로 능력이 인증되었습니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집 안을 이리저리 둘러봐도, 딱히 맥주를 사러 가기 전과 달라진 부분이 없었다.잘못 들은 건가 하는데 다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공지능 ‘엘리스’가 사용자의 이용편의를 위한 정보를 제공해 드립니다. 지원체 샤이여프가 사용자의 뇌에 직접적으로 결합하여 다차원 여행자의 원활한 여행지원을 돕습니다. 또한 사용자가 능력을 사용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인공지능 엘리스가 가진 요타플롭스급 수행능력을 통해 사용자 이정후의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돕겠습니다.>
‘인공지능? A.I?’
처음 듣는 소리에 어안이 벙벙했다. 엘리스라는 인공지능은 현재 내가 각성한 능력이라며 ‘상태창’을 띄워 보여줬다.
[사용자 이정후]
차원이동능력자 Lv1
-의사소통능력 passive
-육체활성화 능력 passive.
-인벤토리능력 5톤 active.
엘리스라는 인공지능이 보여준 상태창에는, 어째서 그들과 대화가 자유롭게 통했는지를 알려주듯 의사소통에 관한 능력이 있었다.
‘그럼아까 우리가 한국어로 대화한 게 아니었구나.’
엘리스라는 인공지능이 보여준 상태창을 다 읽고 나자 머릿속으로 정보들이 들어왔다. 생전 처음 보는 정보들이었다.
1.최초 능력 각성 시점에 이동 가능한 세계는 무작위로 선택.
2.차원이동능력을 각성하면 1레벨은 15일을 주기로 차원 이동 가능.
3.인체보호를 통해 이동간 인체에 가해지는 부담으로부터 완벽한 보호되나 이동 후 해제.
4.사용 이후 이동한 곳에서 15일을 보내고 나면 다시 떠난 시점으로 복귀 가능.
5.1레벨 능력자의 인벤토리는 5톤으로 제한되며 레벨이 상승함에 따라 배수로 상승
ex)5>10>20>40>80
6.목숨이 위협되는 상황일 경우 능력 즉시 발동. 이에 대한 패널티로 한달간 이동불가.
*최초 1회 사용시 충전기간 없이 바로 이동 가능.
능력에 대한 안내를 보고 등허리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우, 저 6번 조항이 없었으면 큰일날 뻔했네. 내가 어디 핵전쟁 터진 세계로 가면 바로 사망하는 거였나.”
<그럴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위급 상황 시 차원이동자의 능력은 사용자의 요구보다 먼저 상황에 맞게 위기상황임을 감지하는 것과 동시에 즉각적으로 발동합니다.>
“엘리스?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만들어진 제품이라고?”
<맞습니다.>
‘능력을 각성 안했으면, 니가 부딪힌 순간 난 어떻게 되는 거였지?’
<능력 미각성시의 사용자 이정후는 사망의 가능성이 존재했습니다. 그렇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을 거란 엘리스의 말에서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사망의 가능성이존재했다는 부분에 집중했다.
‘뭐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개복치 될 뻔했다는 거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마음속으로만 떠올린 생각인데, 엘리스는 그대로 대답했다.
“너 내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거야?”
<표층에 떠오른 마음이나 의지는 읽을 수 있으나, 사용자 이정후의 심층 혹은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읽어낼 수 없습니다.>
“그건 다행이네. 그럼 제일 중요한 질문. 누가 왜 널 나에게 보낸 거야?”
<사용자의 레벨이 상승하면, 레벨 상승 정도에 맞춰 공개되는 부분입니다. 현 시점에서 사용자 이정후에게 해당 정보의 공개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알려줄 수 없다니까 그건 좀 찜찜한데··· 흠. 뭐 알았어,”
당장 고민해도 해결될 부분이 아니었다. 무슨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으니, 그냥 머리 한구석으로 치워놓기로 마음먹었다. 그보다는 빨리 돌아가고 싶어졌다. 다시 돌아올 수도 있으니, 돈 안 드는 해외여행을 한다고 치지.
생명의 위협을 받을 걱정이 없다는 부분도 가장 마음에 들고.
다만 한번 넘어가면 15일 동안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 그래서 한번 넘어가기 전에 챙겨할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식량과 식수, 그리고 숙박이 가능한 장비들과, 혹시 내가 거기서 팔았을 때 돈이 될 법한 물건들. 얼마나 있으려나?”
혼잣말을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자취생활을 하며 나도 모르게 생긴 습관이었다. 헌데 앨리스가그걸 듣고 대답해왔다.
<사용자 이정후의 현재 잔고는 343만 2587원입니다.>
“너, 내 잔고를 어떻게 알아?”
<사용자 이정후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제겐 언제든 접속하여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혹시 무슨 사고 일으키고 그러진 않을 거지? 선진국들 첩보단체나 뭐 그런 곳에 막 멋대로 접속해서.”
<인공지능 엘리스는 철저히 인간을 위해 탄생한 존재. 사용자 이정후가 존재한 세상에서, 법적으로 금지된 방식으로 능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용자 이정후의 명령 없이 해가 될 수 있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근데 그럼 내 스마트폰에 허락도 없이 접속한 것은?”
<사용자 이정후의 스마트폰에 접속하여 정보를 습득한 것은, 사용자 이정후의 편리성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정보를 악용하여 해를 미치기 위함이 아니죠. 이 부분에 대해선 사용자 이정후의 보호가 동기화된 인공지능 엘리스의 최우선 원칙입니다. 사용자는 절 신뢰하셔도좋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나타났을까?”
방금 전까지 걱정하다가 이제 와선 복덩이라니. 나도 참 사람이 얄팍하다 싶었지만, 길에서 갑자기 큰 돈을 주워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혹시 내가 생각한 물품들도 니가 주문 할 수 있어?”
<사용자 이정후의 스마트폰에 내장된 네트워크 접속기능을 활용하여, 사용자 이정후가 구매하는 것과 똑같이 구현 가능합니다.>
우선 필요한 물건이 뭘까 싶어 찬장, 냉장고부터 시작해서 백패킹을 위해 가지고 있는 장비들을 탈탈 털어보았다.
<사용자 이정후가 가진 현재 물품들을 모두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나 필요할 것으로 여겨지는 물건을, 전부 잔액 내에서 구매 완료하였습니다.>
“그럼 물건이 도착할 때까지만 기다리면 되나?”
그로부터 4일 뒤.
물건은 오전에 전부 도착했다.
원래대로면 사흘 뒤인 어제 출발하고 싶었다. 그러나 중간에 영상촬영용으로 짐벌이라거나 삼각대같을 생각했다가, 그것도 추가로 주문해서 하루가 더 들었다. 잔액은 얼마 남지 않게 되었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것도 다 경험인데.’
혹시라도 너튜브에 채널을 만들어 올리진 않더라도, 이세계 여행은 평생 소장해도 될만한 추억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세계로 넘어가서 현대의 산물들을 팔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안된다면 이세계의 풍경을 담아, 너튜브에 올려 수익창출을 하는 방법을 Plan B로 삼고.
그래서 친해지기 위해 돌아가면 먹는 것부터 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친해져야 뭘 하든가 하지.”
집 앞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부터 들렀다. 엘프를 위해 채식주의자들이 좋아한다는 샌드위치를 종류별로 6개 주문했다. 버크 아저씨도 한번 맛보라고 풀드포크 샌드위치 2개를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4명이서 먹을 샌드위치들을사서 계산 완료.
자취방으로 도착해, 엘리스에게 물건들의 장기보관이 가능한지 물어봤다. 엘리스가 대답해줬다.
<인벤토리 물품 보관 시 보관 시점의 온도를 유지하며, 보관하는 물건은 변질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보관 기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보관에 지장이 없다는 말에, 용달기사 일을 하시는 부모님의 얼굴이 잠깐 떠올랐다.
부모님 일을 이 능력으로 도와드리면 어떨까.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을 어쩔지 고민도 해봐야할 것 같고, 설명을 어쩔지도 가늠이 안 되었다. 그냥 나중에 해봐야겠다고만 생각했다. 당장 본가에 가는 건 미루기로 하자. 일단 이세계나 갔다와야지.
그 외에도 많이 챙겼다.
가지고 있던 텐트와 장작.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화로대와 불판과 장작에 불을 붙일 고체연료.
캠핑용 대형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 세트.
그 외에도 에어 매트와 침낭과 이것저것…….
등에 메고 다니지도 못할 양의 장비들을, 인벤토리의 힘을 빌어 전부 넣었다.
'이 정도면 무게가 어느 정도 되는 거지? 거의 한계치까지 밀어넣은 것 같은데'
<사용자 이정후가 구매한 물품들과, 식수로 음용가능한 물과 요리가 가능한 수돗물을 채웠습니다. 용량 5톤을 모두 사용했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다 들고 가려고 했다면, 차가 있어도 어려웠을 것 같다.
초여름 날씨에 집 안에서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였더니 땀이 좀 났다. 그래서 샤워를 하고 가기로 했다. 그 전에 클라우드에 장르별로 모아뒀던 음악 파일들을 싹 긁어서, 샤워하는 동안 공기계에 내려 받도록 해두었다.
‘그래도 내가 당장 지구 대표잖아? 땀을 잔뜩 흘리고서 추레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좀 그렇지. 머리도 좀 말리고서 가자’
가져갈 짐을 하나하나 챙기고 나서 이세계의 해변을 떠올렸다. 이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더니, 눈앞에 인터페이스같은 것이 떠오른다.
“꼭 히어로 영화의 캐릭터가 된 것 같네. 해변으로 출발!”
눈을 감았다 뜨니 머리 뒤에서 라이트가 터졌다.
그리고 나는 4일 전의 그 해변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