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1화 〉힘들걸요? (71/72)


  • 〈 71화 〉힘들걸요?

    마왕과 세희는 4인석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막내인 세희는 수저통에서 수저를 언니와 자기 앞에 놓았고, 그뿐만 아니라 각자 옆에도 하나씩 놓았다.


    왠지 모르게 든 불안함에,  마왕에게 물었다.

    “또, 누구 오냐?”

    “그렇네만?”

    “누, 누구?”

    “어머니하고 아버지일세. 아버지께서 자넬 보고 싶어 하신다고 했잖나.”


    딸랑!

    그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출입구에 달린 벨이 울렸다. 거기엔 항상 여신님 같은 자태를 뽐내시는 어머니, 그리고 화상통화로만 봤던 마왕의 아버지가  계셨다.

    “어머, 지헌씨!”

    마왕처럼  은발에 청초한 분위기인 미녀가 날 알아봤다. 그녀도 자기 딸들과 다르지 않게 깔끔한 차림이었다. 발목까지 오는 길고 흰 원피스와 허리에 벨트를 차서 준 패션 포인트. 도저히 대학생
    딸을  유부녀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아가씨 분위기를 풍겼다.

    “지헌아, 이렇게 직접 보는  처음이지?”


    아버님은 저번에 화상통화로 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인처럼 짧은 머리에 상냥한 얼굴. 하지만  아래로는  인상과는 전혀 달랐다. 마치 배우 출신 주지사처럼 매우 건장한 몸집에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네.”


    만남 자체가 어색하기도 했고, 용병 출신 같은 몸매에 당황하면서도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반가워.”


    그는 웃으며 내게 악수하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두 손으로 아버님과 손을 맞잡았다.


    꽈아아악!


    “큭!”

    갑자기 아버지께서 손에 힘주셨다. 그 덩치에 걸맞게 상당한 악력이 내 손을 찌부러뜨렸다. 착즙기에 쥐어 짜이는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하지만 손등에 힘주며 찌그러지는 걸 막았다.

    “그래.”


    한동안  손을 놓지 않으시면 아버지가 힘을 풀었다. 그러더니  인정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꽤 하네?”

    “네?”


    그는 내게 싱긋 웃어 보이고 자기 딸들이 있는 자리로 향했다.

    “여기에 앉으면 될까? 자기야, 여기 앉자.”


    “그럴까요?”


    “가만있어.”


    아버지는 어머니께 서 있게 하고는, 매너 있게 그녀가 앉을 의자를 뒤로 꺼내 주었다.

    “고마워요.”

    “아니야.”

    그리고 그녀가 앉자 테이블 앞까지 밀어줬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볼 수 있는 행동을 끝내고, 아버지는 마왕 옆으로 이동했다. 자기 맏딸 옆에 앉으면서 물었다.


    “소희야, 주문했니?”

    “네, 했어요. 돼지국밥 4개로요.”

    “그래. 잘했어.”


    칭찬하시면서 마왕의 은발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눈까지 가늘게 뜨면서 손길을 즐기다가, 내 눈을 마주치고는 바로 그 손을 피했다.

    “아니, 아빠……!”


    “응?”

    거절당할 줄 몰랐는지 아버지의 준수한 얼굴에 놀란 표정이 만들어졌다. 그러더니 날 바라보고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다시 딸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기 남친 있다고 부끄러워하는 것 봐! 아하하핫!”

    호탕하게 웃는 것까지 마왕을 닮았다. 아니, 마왕이 아버질 닮았다고 해야 맞는 말이지.


    “아, 맞다.”


    웃던 아버지가 뭔가 떠오른 것처럼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보, 지헌이 부모님한테 인사해야지.”

    “그렇네! 소희랑 세희는 인사했지?”


    “네.”


    “그럼요.”

    마왕네 부모님은 자기 딸들이 인사했다고 하자, 내게 고개를 돌렸다.

    “지헌아, 네 부모님은 저기 계시니?”

    “네? 아, 네!”

    “그럼 한 번 뵈러 갈까요?”

    “그럽시다.”


    그들은 우리 엄마, 아빠가 계신 주방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도중 주방에서 나오시던 우리 엄마와 마주쳤다.

    엄마는 마왕과 똑같은 은발인 어머니를 보시고,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챘다.

    “어머! 안녕하세요!”

    그녀가 고개 숙여 인사하자, 마왕네 부모님도 고개 숙였다.

    “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소희 세희 부모 되는 사람들입니다.”


    “아, 네! 전 지헌이 엄마예요.”


    “그런가요?”

    “네?”


    “전 지헌이 누나인 줄 알았습니다.”


    “어머나! 오호호호호!”

    칭찬에 엄마가 전형적인 아줌마처럼 웃었다. 한창 웃던 엄마는 정신을 차리고 마왕네 부모님을 살폈다. 자기와 달리 정장 차림인  눈에 밟혔는지 어쩔 줄 몰라 하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오실 줄 알았으면 저도 차려입었을 건데.”

    식당에서 일하는 것답게, 엄마는 일하기 편한 청바지와 늘어난 티셔츠 차림이었다. 하지만 아버님은 되려 웃으며 사과하셨다.


    “아닙니다. 갑자기 찾아온 저희 잘못이지요.”


    “그래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저희 스케줄만 신경 쓰다 보니 연락도 없이 찾아오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어머니.”

    여신님까지 사과하자, 엄마는 어쩔 줄 모르면서도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알았, 알았어요. 그러니까 고개 들어주세요.”

     말에 아버지께서 고개 들며 산뜻한 미소와 함께 말씀하셨다.

    “그러는 게 좋을까요?  그래도 자주 뵙게   같으니까요.”


    “네? 그게 무슨…….”


    “그런  있잖아요. 그런 거.”

    마왕의 어머니께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아버지 또한 그런 웃음을 짓다가, 그녀를 건드리며 엄마한테 말했다.

    “저희는 이제 그만 자리로 가보겠습니다. 일하시는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요! 저희가 더 죄송하죠!”

    “죄송하실 거 없습니다.”


    “맞아요. 국밥 맛있게 만들어주세요.”

    “네! 맛있게 해드릴게요! 자리에 앉아 계시면, 금방 갖다 드릴 게요!”

    “천천히 해주시면 됩니다. 천천히요.”


    “아! 그런데요, 어머니.”


    “네?”


    갑자기 어머니가 날 가리켰다.

    “혹시 지헌과 같이 식사해도 될까요? 우리 그이가 지헌이랑 같이 저녁 먹고 싶다고 했는데, 내일이면 한국을 떠나서요.”


    “그럼요! 그럼요! 혹시 불편하신  있으면 이놈한테 부탁하세요!”

    “불편한 게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 말로 마왕네 부모님은 날 손에 넣으셨다. 그들이 뒷모습을 보이자 엄마가 내 등짝을 때렸다.

    쨕!

    “악! 왜 때려?!”


    “너 뭐해! 어서 따라가!”


    “안 그래도 갈 거였어!”


    투덜거리면서 부모님을 뒤따라갔다. 마왕과 세희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도착하자, 아버지가 주의 빈 테이블에서 의자를 끌어오며 물으셨다.


    “지헌아, 의자 가져와도 되지?”

    “아, 네. 그럼요.”

    “알았어. 고마워.”


    그러면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통로에 의자를 두었다. 난 거기가  자린 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님이 그 자리에 앉으며 마왕 옆을 권했다.

    “소희 옆에 앉아, 지헌아.”

    “거기요?”

    “그래, 거기. 자, 앉아.”


    직접 손으로 가리키면서까지 권하시는데, 안 앉을 수가 없었다. 마왕 옆에 앉으니 그녀가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내 옆구리를 찔렀다.


    “어서 오세요.”


    “응?”


    생각하고 보니, 아까 그녀가 들어올  내가 했던 말이었다.


    그러는 사이 세희는 아버지께 수저를 놓아드렸고, 그렇게 면접이 시작됐다.


    “지헌아.”


    날 부르는 말에 허리를 바짝 펴며 대답했다.


    “예, 아버님!”

    “하핫! 그렇게 긴장 안 해도 돼. 긴장 풀어. 저번에 통화할 땐 긴장 안 하더니, 왜 그래.”


    그때는 이렇게 덩치 있는 분이신  몰랐으니까요.

    물론 그걸 입에 담진 않았다. 그래도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몸에 힘을 뺐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래, 지헌아. 이것만 물어볼게.”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으로 질문했다.

    “넌 소희가 위험에 빠지면, 목숨까지 바치면서 구해줄 수 있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힘들걸요?”

    “미쳤냐!”

    빠악!

    마왕이 소리치며 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어찌나 세게 쳤는지, 반동으로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크윽……!”


    짱돌로 후려친 듯한 충격에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질문한 아버지께 대답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소희가 저보다 세요.

    ”어?”

    아버지가  대답에 얼빠진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걸 보고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소희도 어쩔 수 없는 위험에 빠졌다면, 제가 도와줘도 역부족이겠죠. 그래도.”

    “야!”


    다시 날 때리려고 든 그녀 손을 막는 겸해서, 감싸 쥐었다.

    “안 될  알면서도 도와줄 겁니다. 목숨은 물론 바치고요.”

    “!”

    내 말에 마왕이 푸른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했다. 그러다 얼굴을 붉히고는 천천히 고개 숙였다. 그녀 가족들은 한동안 벙찐 표정으로 우릴 쳐다보다, 빵 터진 아버지를 시작으로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 아하핫!”

    일분도 안 되는 침묵 끝에, 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렸다.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표정이던 세희와 어머님마저 웃기 시작했다.

    “하하핫! 핫핫핫핫!”


    어찌나 웃으시는지, 웃다가 괴로워서 한숨까지 쉬셨다. 거의 눈물까지 흘리면서 웃던 아버지는 눈가를 훔치며 날 바라봤다.


    “설마 그렇게 대답할 줄은 몰랐네, 몰랐어. 진짜로. 크흠!”

    이제는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는지 목을 가다듬으셨다.


    “말로는 뭘 못 하겠냐마은. 그래도 무조건 지킨다고 말하는 것보다 백배 낫네. 응. 여기, 여기  없니?


    아버님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식당 내부를 살피셨다.  그가  원하는지 눈치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갖다 드릴게요!”

    “아니야, 됐어. 우리 예비 사위를 어떻게 시켜. 내가 갖고 올게.”


    “네?”

    “지헌씨는 가만히 있으세요.”


    어머니께서 상냥한 미소로 날 바라봤다.  옆에 앉은 세희도 웃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어부지리란 사자성어가 떠오르는 웃음이었다.

    쾅!

    갑자기 아버지가 테이블에 소주병 여러 개를 내리치듯이 놓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으면서 내게 말했다.


    “예비 사위! 잔!”

    “자, 잔이요?”

    “그래! 잔!”


    나는 테이블 구석에 미리 세팅해 뒀던 컵으로 손을 뻗었다.


    작은 소주잔을 만지자,

    “으음! 그거 말고.”

    “어, 그럼 이거요?”

    스테인리스로  물컵을 집었다.

    “쓰읍!”

    “……이거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컵보다 훨씬  맥주잔을 잡았다.

    “그래! 그거!”


    “그냥 병으로 마시라고 하시죠?!”

    앗, 너무 당황한 바람에 속마음이 나와버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게 마음에  것 같았다.

    “그래! 그럼 그럴까!”


    까득!


    “받아!”


    “아? 아아, 네.”

    일단은 병을 받았다.

    그때 마침 국밥이 다 됐는지 엄마가 다가왔다. 그런데 빈손으로 온 엄마는 마왕의 아버님을 불렀다.


    “저기, 아버님.”


    “왜 그러십니까, 사돈!”


    “네? 아니, 사, 사돈이요?”


    “예. 갑작스러워서 죄송하지만, 여기 지헌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요! 그래서 우리 딸 예비 사위로 삼으려 합니다!”

    “아니, 그래도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그럼 천천히 이야기하면 돼죠! 그런데 왜 부르셨습니까?”


    “다른 손님도 다 가셨으니까, 저희랑 같이 식사하시는  어떻겠냐고 물어볼 거였는데요……”


    그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봤다. 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들은 어느새 나갔고, 주방에서 칼만 갈던 아빠는 커다란 수육 쟁반을 든 채 엄마가 가리킨 방으로 가고 있었다.

    엄마가 말하면서 가리킨 방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방이었다. 그래서 여러 테이블을 이어서 회식하는 일이 잦았고, 그럴 경우 지금 저렇게 차려야……?!

    국밥 안 내오시고 저걸 차리셨구나! 왠지 너무 안 오시더라!

    나와 같은 광경을  마왕 아버님은 사람 좋게 웃으시며 자리에서 웃었다.


    “핫핫핫! 그럼 저기서 천천히 이야기하면 되겠네요! 사돈!”

    아버지께서 일어나시자 어머니, 세희와 더불어 마왕도 일어났다. 나도 따라 일어나자 그녀 아버지는 수육을 옮기고 나온 아빠를 불렀다.

    “아, 사돈어른! 저희랑 같이 식사하시죠!”


    “…….”

    하지만 아빠는 말없이 그를 쳐다보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빠가 향한 곳은 주방이 아니라 술이 가득 든 냉장고였다.

    벌컥!

    아빠는 거기 안에 손을 깊숙히 넣어, 고급스러워 보이는 양주를 꺼냈다.

    “…….”

    그걸 마왕네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아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셨다. 아버님은 그걸 보시고는 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핫핫핫! 과묵하시더라도 잘 아시는 분이네요! 소주로 축하하려 했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가자, 사위!”






    “…….”

    “아!  여기서 일합니다! 우리 사위도 명함 받아!”


    “네, 네. ……소희야. PMC가 뭐야?”

    “그런 거 있어. 나중에 검색해봐. 세희, 이것  먹어. 맛있어.”


    “아까 오빠 어머니께서 주셨어요. 괜찮아요.”


    “어머나, 사부인께서 주셨다고요? 어쩜 이렇게 친절하실까!”

    “무슨 칭찬을요! 오호호호! 그나저나 우리 지헌이가 이런 여친을 사귈 줄은 몰랐네요! 얘가 영 순둥이라서요! 소희야, 우리 지헌이랑 사귀는  고생하겠어!”

    “아니요. 지헌이가 좀 순둥이긴 해도, 어디 위에선 안 그러거든요.”

    “야!”

    “핫핫핫! 좀 있으면 초음파 사진 볼 수 있겠네요! 이거 받으십시오, 사돈어른! 쨘!”

    “……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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