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생각해봐, 이 미친X아! (60/72)


  • 〈 60화 〉생각해봐, 이 미친X아!

    “이제 그만 좀 해!”

    그렇게 외치며 빈손을 유리에게 휘둘렀다. 그녀 머리가 있는 곳으로 날아간 손바닥은 부드러운 부분에 부딪혔다.

    찰싹!

    따귀를 맞은 유리는 더 이상 떼를 쓰지 않았다. 그때 난 폭력이라는 엎지른  때문에 참지 않았다.

    “내가 그런다고  좋아하게 되진 않아!”

    “……왜? 지헌아, 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그녀가 물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유리에게, 난 그동안 참았던 말을 퍼부었다.

    “네가 내 첫사랑이었어!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고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고!”

    처음 봤을 때의 유리는 세상 밝은 아이였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으며 당당하게 사람들과 교류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첫사랑이었다며! 내가 첫사랑이라며어!”

    “그때 넌  이랬으니까! 처음 만났을 때  자존심이란 게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뭐야! 그냥 갯벌 바닥에 앉아서 징징대는 찌질한 사람이잖아!”

    말에 유리가 목청 터져라 소리쳤다.

    “너!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그것도 나한테!”

    “너니까 말하는 거야!  첫사랑이니까! 그렇지 않았으면 이렇게 구해주러 오지도 않았어!”

    “좋아하니까 온 거잖아!”

    “아니라고! 좀!”

    나는 지금껏 잡고 있던 손목을 놓았다. 그 대신 그녀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아 억지로 일으켰다. 잘 보이지 않는 어둠 너머로 얼굴이라고 생각되는 둥근 윤곽에 대고 소리쳤다.

    “잘 들어! 난! 널! 지금! 전혀! 하나도! 좋아하지 않아! 전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런 마음이 전혀 안 든다고!”

    그러자 유리는 내 손목을 잡고 날 밀쳐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손에 힘을 준 채 멱살을 놓지 않았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자 그녀가 소리쳤다.

    “왜! 내가 이렇게 잘해주는데!”

    “뭐가 잘해주는 건데! 틈만 나면 쓸데없이 참견하는 거? 뭐라고 말만 하면 다른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땡깡 피우는 거?”

    “다 널 위해 한 거였잖아!”

    “너 자신을 위해서 한 거겠지! 웃기지마!”

    “어차피 너도 날 좋아할 거잖아! 지금은 아니라도 나중엔 날 좋아할 거잖아! 아니야?”

    “아니라고! 네가 이런 식인데 어떻게 널 좋아하겠어! 옛날의 넌 이렇지 않았다고!”

    “내가 왜. 뭐 어때서!”

    “생각해봐, 이 미친년아!”

    멱살을 놓는 동시에 바닥에 쓰러지도록 밀쳤다.

    화가 나긴 했지만 나도 욕이 나올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폭력을 쓸 줄이야. 내가 그만큼 이성을 증거였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유리가 내 감정을 알 수 있기를 바랬다.

    유리는 뒤로  걸음 물러나다 중심을 잃고 자빠졌다. 부드러운 진흙에다 물까지 차 있어서, 그녀가 쓰러지며 첨벙 소리를 냈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자, 드디어 그녀가 제 목소리를 냈다.

    “야!”

    그런 유리 앞에 걸어가, 제대로 들을 수 있도록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지금 네가 어떤지 알아? 적어도 고등학교 때는 이러지 않았어. 아니, 하준이 그놈 만나고 있을 때까지도 이러진 않았다고.”

    “이 개새끼야! 내가  위해서……!”

    “이런 비굴한 모습 좀 보이지마! 제발!”

    천천히 물이 들어오는 갯벌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차가운 바닷물이 바지 안을 적셨다.

    앉은 내 그림자를 봤는지 유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비굴해?”

    “그래. 비굴해.”

    “이제는, 나 안 좋아해?”

    “안 좋아해.”

    “그럼, 이젠  사람 좋아하는 거야?”

    유리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특정하지 않았다. 자그마한 힌트도 말해주지 않았는데,  은발 머리에 특이한 말투를 가진 그녀를 떠올렸다.

    내 침묵을 긍정이라고 받아들인 유리가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래?”

    떨리는 말투가 점점 심해지더니 결국엔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떻게, 좋아하는 사람을 그렇게 쉽게 바꿀  있어? 너는 사랑이 그런 거야? 응?”

    사실, 그렇게 쉽게 좋아하는 사람이 바뀐 건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 7년, 이세계에서 7년. 내가 유리를 좋아하고 현대에서 마왕을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 유리에 대한 내 사랑은 점점 집착으로 변질하였고, 난 그걸 사랑으로 착각했다.

    이걸 생각하며, 난 그녀를 찰 때 썼던 말을 내뱉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그랬으니까.”

    “그런 거야?”

    “응, 그런 거지.”

    “…….”

     대답을 들은 유리는 한동안 훌쩍거렸다. 넘어진 것도 잊은 채 울기만 했다.

    나도 그런 그녀를 그냥 두고 싶었다. 다  때까지 지켜보다가 위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닷물이 정강이까지 찬 지금은 1초라도 빨리 갯벌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게 가자, 유리야.”

    “……”

    그녀는 대답 대신 팔을 내밀었다. 나는 그 팔을 잡아당겨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렇게 우리는 물이 종아리까지 차오른 갯벌을 걸어갔다.

    어? 아깐 정강이까지 아니었나?

    갑자기 물 들어오는 속도가 빨라지자 난 다급해졌다. 울고 있는 유리 앞에서 등을 보이며 말했다.

    “업혀!”

    “훌쩍, 응?”

    “업히라고! 물 들어오잖아!”

    “업히, 라고?”

    “아 진짜!”

    마왕이면 진작에 뛰어갔겠다!

    몸을 돌려 유리를 껴안았다. 어쩔 수 없이 엉덩이를 팔뚝으로 받치고, 중심을 잡기 위해 등에 팔을 둘러 끌어당겼다.

    “지, 지헌아? 꺅!”

    껴안은 데다 갑자기 들어 올리기까지 하자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지금은 두고 가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인 상황이었다.

    “꽉 잡아아아아아아!”

    “꺄악, 악, 악, 악, 악!”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유리가 지르는 비명이 끊겨서 까마귀 우는 것처럼 들렸다. 방금 전까지 그녀를 찼던 상황과 반전되는 이 순간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사람을 안고 달리니 그냥 걸을 때보다 더 깊게 발이 빠졌다. 이제 슬슬 무릎까지 찬 바닷물과 걷기만 해도 푹푹 빠지는 갯벌 위를 달리니,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렇다고 그녀를 놓고  순 없었다. 물론  첫사랑이라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물이 가슴 높이까지 잠길 때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유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허억!”

    아무리 전직 용사라도 사람을 안고 갯벌을 뛰어다니는  힘들었다. 숨을 고르는 내 옆에 유리가 다가왔다.

    “지헌아, 괜찮아?”

    대답하기 힘들 정도로 숨찬 나는 고개만 끄덕여 괜찮다고 밝혔다.

    도로에 가까워질수록 가로등 불빛에 의해 유리의 얼굴이 보였다. 진흙투성이가  그녀 얼굴은 전처럼 예쁘게 보이지 않았다.

    역시 내 마음은 다른 사람한테  있구나, 라는 생각이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괜찮은가?”

    고개를 돌려보니 주황색 가로등 불빛을 받아 빛나는 은발 미녀가 보였다. 그녀를 보고 어느 정도 숨이 돌아온 나는 힘겹게 대답했다.

    “이게 멀쩡해 보이냐!”

    나와 유리   진흙투성이에 하반신은 젖어 있었다. 하지만 마왕은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팔다리  잘린 걸 보니 멀쩡한 것 같군.”

    “도대체 넌 멀쩡한 기준이 뭐냐?”

    “살아만 있으면 다 멀쩡한  아니겠나?”

    “헛소리하네.”

    마왕이 내뱉은 말을 비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유리가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서 있는 게 보였다.

    “유리야.”

    “아, 응?”

    “가자. 바람 때문에 많이 춥네.”

    “알았어…….”

    시무룩하게 대답하는 그녀를 두고 마왕에게 다가갔다. 마왕은 추리닝 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채 웃으며  반겨주었다.

    난 아까 유리가 말했던 ‘그 사람’ 이야기를 들었을까  왠지 모르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 이유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여긴 왜 왔냐?”

    “왜 왔겠나. 자칫하면 자네들이 뉴스 나올까 봐 걱정되어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그런데 좀……”

    마왕은 말을 흐리며 날 위아래로 훑어봤다. 가슴께까지 젖은 걸 확인한 그녀는 말을 이었다.

    “위험할 뻔했군?”

    “뒤질 뻔했거든? 이제 빨리 들어가자. 춥다.”

    몸 대부분이 젖은 데다 강한 바닷바람까지 부니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은근슬쩍 곁눈질하며 유리를 쳐다봤다. 그녀도 추운지 자기 몸을 감싸듯이 팔짱 끼며 팔뚝을 쓰다듬었다.

    마왕에게 추리닝 옷이라도 벗어주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유리가 착각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우리는 펜션까지 빠르게 걸어갔다. 나와 유리는 찜찜한 기분과 빨리 가고 싶어서 입을 열지 않았고, 마왕은 일부러인지 몰라도 말이 없었다.

    그렇게 펜션 마당에 도착하자, 아직도 술자리가 한창인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 중 일부는 우리 존재를 눈치채고 알은 척을 했다.

    “지헌아!”

    노랗게 머리를 물들인 선아가 내 이름을 부르며 걸어왔다. 아까 마왕이 그랬던 것처럼  몰골을 보고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

    하지만 내 뒤에 있는 유리를 보고 말을 멈추었다. 그녀가 뱉은 짧은 감탄사는 나와 유리가 겪었던 일들을 추리하는 것처럼 들렸다.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며 펜션을 나간 유리, 그런 유리를 쫓아 따라 나간 나. 바로 옆엔 바다가 있고 돌아온  다 젖어 있다.

    좋은 스토리가 나올 것 같진 않았다.

    “설마,”

    “아니야!”

    선아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끼어들었다.

    “유리랑 갯벌에서 놀다가 엎어졌어! 그래서 구르다가 젖은 거야!”

     말에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와 유리를 번갈아 봤다.  초동안 고민하던 선아가 입을 열었다.

    “……조심했어야지. 지헌아.”

    아무래도  말을 맞춰 주기로  모양이었다.

    하지만 정말 미안하게도, 내가 그녀에게 부탁할 일이 하나  있었다.

    “저기, 선아야.”

    “왜?”

    “유리 좀 봐줄 수 있을까? 나나 얘가 보기엔 좀……”

    마왕에게 턱짓하며 말을 흐렸다. 고맙게도 선아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내 말을 이해해 줬다.

    “알았어. 대신 나중에  한번 쏴.”

    “학식으로 살게.”

    “그 옵션으론 술도 사줘야 되는데?”

    선아는 “괜찮아, 유리야?” 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내 첫사랑은 선아의 부축을 받으며 여자 숙소로 향했다.

    왠지 모를 아련한 감정에 그들을 바라봤다. 그런 내게 마왕이 말했다.

    “그 금태양 같은 짓  안 하면 안 되는 겐가?”

    “내가 언제 했어!”

    “알고 행한 것보다, 모르고 행한  더 나쁜 거라는 것을 모르는 겐가?”

    “그러니까 언제 했냐니…… 에취!”

    젖은 채로 너무 오래 있었는지 재채기가 나왔다.

    “으, 춥다. 나  좀 갈아입으러 갈게.”

    코를 훌쩍거리며 남자 방이 있는 펜션으로 걸어갔다. 그런 날 마왕이 따라왔다.

    “너는 왜 따라오냐?”

    “이제 그만 대답해줄 때가 되지 않았나?”

    “뭐가.”

    내 대답에 마왕은 왜 기억하지 못하냐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자네가 가기 전에 짐이 고백받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그 일이 있긴 했다. 말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취한 남자애한테 고백받은 일을 떠올렸다. 당시 일을 생각하니, 유리 때와 다른 이유로 속이 답답했다. 일단 그걸 모른 척하며 물었다.

    “그게 왜?”

    “자네는 짐이 그 고백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나?”

    “이따 말하면  되냐?”

    “자네가 유리를 찰 때까지 짐이 기다려주지 않았나. 그러니 이 정도 투정은 부려도 괜찮지 않나!”

    “그걸 꼭 지금 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때까지 기다리겠네. 정그렇다면 내일 그 고백을 받아들여야 겠군.”

    마왕이 뱉은 그 말에  반사적으로 말해버렸다.

    “받지마!”

    “후훗♥”

    대답을 들은 그녀는 흐뭇하게 웃었다.

    “방금 거절하라고 했나? 왜 그런 겐가? 한 번 대답해 보게.”

    “말하면,”

    “음?”

    “말하면 거절할 거냐?”

    마왕이 입꼬리를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가슴이 벅차 오르는  같은 표정인 그녀는 기뻐하며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 않나! 전에 말했지 않았나! 짐은 자네 밖에 없다고!”

    그 말은 아까와 좀 다른 의미로 들렸다. 그걸 자각하자 떨렸던 몸이 후끈하게 데워졌다. 부끄러워진 마음에 거의 뛰듯이 걸어가 숙소에 도착했다.

    동기 남자들이 자기로 한  안엔, 인싸 남자애들이 여자 동기들을 데려와 시끄럽게 술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즐겁게 청춘을 보내는 중에 물에 젖은 내가 등장하자 방은 침묵에 빠졌다. 나는 동기들의 눈빛을 피하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발을 벗었다.

    철퍽! 철퍽! 철퍽!

    바닷물과 진흙으로 축축하게 젖은 발로 실내를 걸을 때마다 무시할  없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진한 발자국을 남기며  바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바다에 빠졌나 봐.”

    그럼 비가 와서 젖었겠냐!

    한 여자 동기가 중얼거린 말에 속으로 반응했다. 그 말을 시작으로 그들은  보며 웅성거리거렸다. 하지만 그건 마왕이 들어온 덕분에, 주제가 나에서 마왕으로 바뀌었다.

    화장실에 들어간 나는 밖에 서 있는 마왕에게 부탁했다.

    “저 방에 가면  가방 있거든? 그것 좀 가져와 줄래?”

    “음.”

    짧게 대답한 그녀는 내가 가리켰던 방으로 걸어갔다. 자취방에 몇 번이고 온 데다 같이 학교  적도 여러 번 있었기에  가방을 알고 있을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이제 더럽고 축축한 청바지를 벗으려는 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여기 있네.”

    마왕은 문틈 사이로 내 가방을 든  내밀었다. 난 그걸 받고 변기 위에 올려 두었다. 이제 문을 닫으려는데, 갑자기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려 했다.

    “짐이 망보고 있을 테니 문 좀 열어주게!”

    “무슨 망을 봐!”

    “아니면 망사라도 보게 해주게! 낄낄낄!”

    “개소리 좀 하지마!”

    밖에 동기들도 있는데 못하는 말이 없어!

    황급히 마왕을 밀어내고 문을 닫았다. 하지만 방해는 계속됐다.

    “자네! 자네! 자네!”

    “그만 좀 해라!”

    “전화 왔네!”

    “가지가지 한다, 진짜!”

    “진짜일세! 세희한테 온 걸세!   받아보게!”

    “……진짜로?”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한 뼘보다 좁게 열린 틈 사이로 폰을 든 손이 들어왔다. 통화중인 화면을 보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받자마자 세희의 도도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무슨 일 있었어요?

    “없는  아닌데, 왜?”

    -오빠가 바다로 가더니 폰이 갑자기 꺼졌거든요? 무슨 일이예요?

    “뭐?”

     말에 무의식적으로 바지 주머니를 만졌다. 그제야 난 주머니에 핸드폰이 들어 있는 바지 차림으로 바다 속을 걸었던 걸 떠올랐다.

    얼굴에 피가 마르는 감각과 함께 서둘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차갑고 딱딱한 핸드폰을 꺼내 전원 버튼을 눌러봤다.

    “……유리, 이 썅년이!”

    내 첫사랑이 사라진 날, 내 스마트폰도 영영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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