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이 캐색휘보돠 좔해두릴게요오! 줘, 좌신있슴미당!
-언니 취향이 궁금하지 않아요?
그 말을 듣자, 이상하게도 조금 전 웃고 떠드는 마왕이 떠올랐다. 나와 달리 활발한 그녀는 주변인들을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여기서 이름 모를 감정에, 무의식적으로 묻고 말았다.
“뭔데.”
-언니 사실, 치마 입은 거 좋아해요. 남자가 입은 거요.
그 말을 들으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얀 배경을 뒤로하고 치마 입은 채 뛰어다니는 사람이 보였다. 여자와 달리 근육이 발달해 남자란 걸 알아챘고, 그가 내게 등 돌린 상태라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와중 그가 발레리나처럼 춤추며 몸을 회전시켰다.
그렇게 보인 남자의 얼굴을 보고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바로, 나였으니까.
-오빠?
헛! 너무 충격적인 말이라 머리가 잠깐 정지되고 말았다. 세희가 부르지 않았다면 현실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오빠, 무슨 일 있어요?
계속되는 부름에 난 정신 차리고 대답했다.
“아, 아니야. 잠깐 누가 불러서 그랬어. 근데 아까 뭐라고 했어?”
-언니가 치마 입은 남자 좋아한다고요.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아파지는 머리에 손을 올리며, 혹시나 이번에도 잘못 들었을까 봐 물었다.
“너네 언니가, 치마 입은 거 좋아한다고?”
-네.
진실은 잔혹했다.
-혹시 치마 필요하시면 제 거 빌려드릴까요?
“필요 없어!”
무심코 외치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이 하던 말을 멈추고 날 쳐다봤다. 난 바로 목소릴 낮추며 따졌다.
“그런 걸 알려주면 어떡해! 취향 알려준다며!”
-그래서 알려드렸잖아요.
“그, 그런 취향 말고 다른 거 말하는 줄 알았지!”
-다른 거요? 뭔데요?
“아니, 그, 언니가 좋아하는 남자 취향! 이상형! 그런 거!”
-왜요?
“왜라니, 왜라니!”
-그건 안 알려드려도 되잖아요. 이미 아시잖아요.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지!”
-……
전화기 너머 세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하아, 진심이에요?
“진심이지!”
-언니가 꽤 고생하시겠네요.
“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왜겠어요. 그건 그렇고, 전 언니 취향 알려드렸으니까 오빠도 사진 보내주세요.
“그 취향이 내가 말한 취향이 아니잖아!”
-안 보내주시면 언니한테도 오빠 취향 알려드릴 거예요. 뚝
그녀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통화가 꺼진 화면을 내려보며, 세희가 말한 ‘취향’이 진실인지 생각하려 했다. 마왕이 워낙 동생이랑 친하게 지내더라도 자기 야, 그런 취향을 알려줄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세희가 내 폰과 더불어 언니 폰에 해킹 어플을 깔았으니, 그녀가 뭘 보는지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다.
“짐이 없어 외로웠나?”
어느새 내 앞에 맥주병과 과자봉지를 든 마왕이 서 있었다. 그녀는 눈썹을 올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누구와 통화하고 있었나?”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마왕은 화면에 나온 자기 동생 이름을 발견했다.
“세희와 통화한 겐가? 세희가 요즘 자네에 대해 관심이 커진 모양일세.”
그녀는 과자와 맥주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아까처럼 내 옆에 앉았다. 병뚜껑을 딴 뒤엔 과자 봉지를 이빨로 뜯고는 테이블에 올리며 말했다.
“저번엔 자네와 함께 놀러 가자는 이야길 하더군. 언제 한 번 세희와 함께 소풍이라도 가지 않겠나? 도시락은 자네나 짐이 준비하면 될 걸세.”
“야.”
“음? 왜 그런가?”
마왕은 대답한 직후 과자를 입에 넣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과자를 씹는 그녀에게 진실 여부를 가리려 했다.
“너 있잖아…….”
“음.”
“그, 너 혹시…….”
“왜 그런가. 우물쭈물하지 말고 말하게.”
“너 치마…….”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애초에 여자한테 ‘너 여장남자가 취향이야?’라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실례였다. 이 정보는 결국 마음속 깊이 묻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싱겁게 왜 그러는 겐가. 치마가 뭐 어째서 그런가?”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치마가, 아!”
눈치챘는지 마왕이 푸른 눈을 크게 뜨려 감탄사를 뱉었다. 들킨 줄 알고 심장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황급히 변명하려는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니, 사실 세희가,”
“짐의 치마차림이 보고 싶은 거였군!”
“어?”
“그러면 그렇다고 말하지 그랬나. 왜 그런 간단한 부탁도 못 하고 그러는 겐가? 답답했잖나.”
나는 말문이 막혀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마왕이 신나게 말하는 걸 지켜봤다.
“짐이 비록 치마를 꺼리는 몸일세. 허나, 자네 부탁이라면 못 들어줄 것도 없지. 음?”
그녀는 말하다 내 얼굴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왜 그러는가? 자네가 말하려던 게 이것이 아니었나?”
“마, 맞아! 맞지! 치마 입은 게 보고 싶어서 말한 거였어!”
“그런 거 치고는 과하게 당황하는 듯하네만……”
마왕이 말끝을 흐리며 내 얼굴을 자세히 바라봤다. 인형 같은 예쁜 얼굴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오자, 아까완 다른 이유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흠……”
진지한 얼굴로 바라보길 5초 정도가 지났다. 난 이미 고개를 돌려 눈길을 피한 상태였지만, 곁눈질로 그녀가 여전히 날 보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풋!”
갑자기 마왕이 웃어버렸다.
“아하핫! 왜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겐가!”
밝게 웃으며 내게 떨어진 그녀는 맥주를 종이컵에 따랐다.
“자네가 그리 보고 싶다면 입어주겠네. 이번 MT가 끝나면 주말이니, 그때 한 번 세희와 놀러 가세. 그때 입을 테니 걱정말게나. 자.”
방금 따랐던 잔을 내게 주더니, 다른 잔에도 맥주를 부었다. 줬던 잔을 받아들다 마왕은 자기 잔을 들어 건배했다.
“짠!”
종이컵이라 부딪혀도 버석거리는 소리만 날 뿐, 보통 건배할 때처럼 유리나 자기가 부딪칠 때 나던 맑은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고운 목소리로 마왕이 외쳤다.
“이번 주말 소풍을 위하여, 건배!”
“건배.”
“크하하, 꿀꺽, 꿀꺽!”
완전히 신난 그녀가 웃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테이블에 탁! 소리 나게 종이컵을 내리친 마왕이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역시 자네와 있으면 웃음이 끊이질 않는구만? 으하하하!”
밝게 웃는 모습은, 아까 여기서 떠들던 장면과 다르게 느껴졌다. 이 생각에 기쁘기도 하지만 뭔가 침울함도 느끼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아까도 잘 웃던데. 그건 연기였냐?”
“에이! 왜 연기라고 생각하는 겐가! 진심이었네!”
“진심이었어?”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다운됐다.
“그래도 허세 부리느라 힘들긴 했다네.”
“허세라고?”
“그렇다네. 허세.”
마왕은 고개를 돌려서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고, 과자를 먹으며 대화를 계속했다.
“작년에도 MT를 갔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다가오진 않았네. 짐이 다가가려 해도 그들은 멀어졌지.”
“그건, 말투가 특이해서 그런 거 아니야?”
“좀 전에 말할 때도 같은 말투였지 않았나.”
그 말대로였다. 마왕은 내게 대할 때처럼 활기찬 목소리와 그 특이한 말투로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그녀를 좋아했다.
내가 그걸 생각하는 사이 마왕은 병을 들어 다시 술을 따랐다.
“분명, 자네 덕분이겠지.”
“뭐?”
“짐에게 있어 작년과 올해 차이는 자네밖에 없지 않나. 필시 짐이 자네와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열었던 걸세. 아, 자네, 맥주 남았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내 종이컵을 내려봤다. 아까 그녀에게 받은 맥주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기껏 짐이 따라줬는데 마시지 않고 뭘 하는 겐가. 이번엔 마셔주게. 자.”
마왕이 고개를 돌려 날 바라봤다. 진지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그녀가 건배하려는 듯이 종이컵을 내밀었다. 나도 그 눈길을 피하지 않으며 컵을 들었다.
“역시. 짐에겐 자네밖에 없는 모양이군.”
그렇게 나와 마왕은 다시 건배했다.
탁!
종이컵을 부딪친 우리는 잔을 기울여 맥주를 마셨다.
“꿀꺽, 꿀꺽, 후우~.”
요란스럽게 마시던 아까와 달리, 차분한 모습으로 술을 마시던 마왕이 잔을 내려놨다. 평소 활기찬 분위기와 다른 그녀를 보고, 그 갭에 두근거렸다.
그때 엉뚱한 소리로 분위기가 깨졌다.
앙냥냥!
그 이상한 소리는 바로 마왕이 입은 추리닝 상의 주머니에서 나는 거였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손을 넣어 그 안에 있던 핸드폰을 꺼냈다.
난 핸드폰을 조작하는 그녀를 보고 물었다.
“너 그거 뭐냐?”
“무엇 말인가. 알림음 말인가?”
“알림음을 왜 그런 거로 설정했냐.”
“귀엽지 않은가. 음?”
그녀가 말하다 말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뭐길래, 하고 물어보는 순간 내 핸드폰에도 진동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그건 세희에게 온 문자였다.
세희: 오빠 왜 사진 안 보내요?
세희: 계속 안 보내시면 언니한테 오빠 취향 전부 밝힐 거예요.
그 내용을 보자마자 마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내 눈길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올려 눈을 마주쳤다. 장난스레 웃더니, 말없이 날 쳐다봤다.
평소와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고 바로 세희에게 답장했다.
나: 뭘 보낸 거야!
세희: 진짜 보낸 건 아니에요.
세희: 사진 안 보내실 거면 진짜로 알려드릴 거예요.
나: 알았어!
나: 보낼게!
세희: 5분 줄게요.
메시지 어플을 끄고 바로 마왕에게 말했다.
“우리 사진 좀 찍자!”
말하면서 너무 뜬금없어서 그녀가 의심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시원시원하게 찬성했다.
“알았네! 바로 찍지!”
그러더니 자기가 알아서 핸드폰 앱을 키고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나는 그녀의 적극적인 태도에 놀라면서도 카메라를 피하지 않았다.
아니, 난 마왕만 찍으면 되는데?
카메라에 비친 내 얼굴이 놀란 표정을 짓자 마왕이 물었다.
“자넨 짐과 찍고 싶지 않은 겐가? 세희에게 짐과 사진 찍고 싶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뭐? 내가 언제?”
“방금 세희가 짐에게 그리 말했네만. 아니었는가?”
세희가 자기 언니한테 보낸 게 그거였나? 그래서 마왕이 날 보고 웃는 거고?
내 취향을 안 보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언제 보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합쳐졌다. 결국 난 세희가 만든 계획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맞아! 사실 너랑 사진 찍고 싶었어!”
“그럼 당장 찍게나! 이리 붙게!”
마왕이 내 어깨에 올린 손에 힘을 줬다. 나도 그녀 어깨에 손을 올려 서로 어깨동무한 자세가 되었다. 마왕이 핸드폰을 뻗은 팔로 들어 올리자, 우린 자동적으로 카메라를 향해 웃어 보였다.
“찍겠네! 하나, 둘, 셋!”
찰칵!
셔터음이 나고 마왕이 가로로 든 폰을 내렸다. 거기서 끝난 줄 알았지만, 그녀는 다시 폰을 들어 올렸다.
“왜? 한 번 찍으면 됐잖아.”
“가로로 찍었지 않나. 세로로 찍어야 바탕화면으로 할 수 있잖은가.”
“바탕화면으로 하게?”
“그럼 앨범 속에 묵혀둘 텐가? 웃게! 스마일! 하나, 둘, 셋!”
그렇게 몇 번 더 찍고 나서야 마왕은 만족하고 핸드폰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보며 흐뭇하게 중얼거렸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짐은 아름답게 나왔구만. 자넨 참으로 얼빵하게 찍혔고.”
“야! 그럴 거면 다시 찍어!”
“싫네! 그러니까 더 좋은 거 아니겠나!”
나는 다시 찍기 위해 그녀 폰을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마왕은 내 손길을 요리조리 피하며 핸드폰을 막아냈다.
“내놔!”
“이미 찍었지 않은가!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말게!”
“지우라고!”
“이미 늦었네! 세희에게 보내서 백업해두었다네!”
뭐?
그 말이 끝난 직후 바로 내 핸드폰이 울렸다. 마왕 폰을 강탈하려는 걸 포기하고, 온 문자를 확인했다.
세희: 진짜 얼빵하게 생기셨네요.
“진짜 보냈냐!”
“보냈다고 하지 않았나! 자네에게도 보낼 터이니, 짐처럼 바탕화면으로 해두게!”
그렇게 말한 마왕은 내게 자기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그녀가 말한 대로, 바탕화면은 나와 마왕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미녀인 그녀 옆에 평범해 보이는 내가 있어서 그런지, 내가 상대적으로 못생기게 나왔다.
“아니, 지우라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은 이미 체념하고 말았다. 그래도 사진을 보냈으니 세희가 준 퀘스트는 성공한 거였다. 그거에 작은 안도감을 느끼며 마왕이 보낸 사진을 확인했다.
그때 뒤에서 괴성이 들렸다.
“얌뫄!”
고개를 돌려보니 나와 같은 조인 남자애가 보였다. 아침부터 마왕에게 말 걸던 그는, 아까 테이블에서 일어날 때와 달리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벌건 얼굴과 함께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넌뫄! 구라만 안대짐뫄!”
꼬인 혀 때문에 어눌한 목소리엔 진한 알코올 냄새가 섞여 있었다. 동기는 술에 취해 충혈된 눈으로 날 노려봤다.
“이 쫘슥이, 어! 여췬 있는뒈 봐뢈을 퓌면 어똑하냠뫄! 양돠뤼나 골치고 말야! 엉!”
누구 사귄 젓도 없는데 바람피우고 있다는 말이 당황스러웠다. 그런 나보다 먼저 마왕이 침착하게 대응했다.
“자네 취했나? 술을 얼마나 마신 겐가?”
그는 휘청거리는 몸으로 마왕을 쳐다봤다.
“어마 안 마셧써요! 근뒈, 손봬! 이딴 새퀴 말고, 저한테, 저한테 오새효!”
자길 지칭할 때 가슴팍을 두드리던 손이, 이번엔 내게 삿대질했다.
“이 캐색휘보돠 좔해두릴게요오! 줘, 좌신있슴미당! 글고 눠!”
동기는 다가와 내 멱살을 잡았다. 정확히는 내 멱살을 잡고 쓰러지지 않도록 기댄 거였다.
나는 취한 그의 행태에 어이가 없기도 했고, 술도 들어가서 그런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지막 남은 이성을 쥐어 잡고, 그만하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을 듣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눠, 유뤼랑 사기는데 그러면 안되짐, 마! 너 때뭄헤 유리곽, 얼머나 힘드러하는쥐 알아!”
내가, 유리랑 사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