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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화 〉영상통화로 중계해주셔도 괜찮아요. (51/72)


  • 〈 51화 〉영상통화로 중계해주셔도 괜찮아요.

    나는 주사위를 건네며 마왕을 불렀다.

    “야.”


    “왜 그런가.”

    마왕은 내가 건넨 주사위를 받으며 대답했다. 게임에 집중하느라 대충 대답하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런 게임은 도대체 어디서 가져온 거냐?”


    “인터넷에서 샀네만.”


    “이걸? 인터넷에?”


    마왕은 주사위를 던지다 말고 고개를 들어 날 쳐다봤다. 그녀는 왜 그렇냐는 얼굴로 질문했다.

    “음. 그렇네만. 이상한 점이라도 있는 겐가?”

    “이상한  없어서 더 이상한데!”


    그녀가 가져온 게임은 부르마불 비슷한 종류였다. 다만 배경이 현대 도시가 아니라, 이세계에 존재하는 지역명으로 었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 이름이 꽤 익숙한 점이었다.


    “문제없다면 던지겠네. 이얍!”


    말을 마치고 그녀는 주사위를 던졌다. 검은색으로 칠해진 주사위 2개는 판 위를 굴러, 4와 3을 윗면으로  채 멈추었다.

    “7! 7이면, 하나, 둘, 셋, 넷…… 아아악! 여기에 왜 네가 있는 것이냐! 세희!”

    “언니가 여기로 온 거죠. 여관 하나에 길드 건물 두 개니까, 1,300실링만 주세요.”


    “호, 혹시 봐주면……”

    “안 되죠. 어서 돈 주세요.”

    “부탁일세! 이번  번만 봐주게!”


    “저번에도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안되요. 그게 마지막이예요.  주시면 제가 가져갈게요.”

    세희는 냉정한 얼굴로, 그렇게 좋아하는 언니 돈을 가져갔다. 그녀는 돈을 세며 마왕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땅을 집중적으로 사시면 어떡해요. 분산시켜서 사셔야죠.”


    그 말대로, 마왕은 자기 전생에 집착하는지 마족 구역만 사는 경향을 보였다. 다른 지역에 발을 디뎌도 고민만 하고 사진 않았다.


    “오빠도요.”

    “응?”


    “오빠도 인간측 땅만 사시잖아요. 게다가 비싼 땅만 사시고.”

    “아니, 그래도 아릴레이아가 가격이 얼만데! 괜히 수도가 아니야! 밟기만 하면 2000이라고!”


    “안 밟으니까 문제죠.”


    “윽!”

    “게다가 건물 지을 돈도 없어서 맨땅으로 남겨 놓잖아요.”

    “으윽!”

    “음! 그래서 짐은 빈 땅인  알고 넘어가려 했잖나. 이 게임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네.”

    “마족 땅만 산 네가 할 말은 아니지!”


    게임의 승자는 세희로 결정 나고 있었다. 나는 현금이 거의 다 떨어지고 땅만 파는 것만 남았고, 마왕은 돈이 없어 건물과 땅을 팔아서 겨우 지지 못하고 게임을 연명할 뿐이었다.


    “게임이나 마저 하죠. 이제 누가 던질 차례죠?”

    “네 차례이지 않나. 세희.”


    “그런가요? 돈 세는 게 너무 바빠서 깜빡했네요.”


    “크윽! 그렇게 기만하다니! 두고 보세, 짐이 역전하는 걸 두 눈 똑똑히 뜨고 바라보게!”


    “알았어요. 이제 던질게요.”

    주사위가 던져지고, 세희의 게임말이 향한 곳은  땅이었다.

    “한 칸만 더 가면 짐의 땅이건만! 다음 턴을 각오하게!”

    “주사위가 2갠데 어떻게 1이 나오나요…… 아, 이 땅 사고 길드 건물 지을게요.”


    세희가 플라스틱으로 된 모형물을 가지러 게임 박스를 뒤졌다.

    “언니, 길드가 없어서 그런데 몇 개 좀 주실래요?”


    “왜 짐에게 달라고 하는 겐가! 네가 다 가져갔으니 알아서 하게!”


    “돈 드릴게요.”


    “여기 있네! 5개면 괜찮겠나?”

    “2개면 돼요.”


    둘이 즐기는 동안,  이 게임에 대해 생각했다. 이 보드게임은 용사로 있을 때 있던 세계를 복사한  같았다. 각 지역명은 물론이었고, 화폐 단위나 건물 형태를 비롯한 모든 게 유사했다. 이런 것은 그 세계에 다녀오지 않으면 절대 알지 못했다.

    “그리 걱정하지 말게.”


    고민에 빠진 내게 마왕이 말했다.


    “짐도 처음 봤을 때 놀랐고, 두려운 점도 있었네. 혹시 몰라 게임 개발자에 대해 조사해 봤네만, 별다른 야망이 있어 보이진 않더군. 세계정복이나 그런 거 말일세.”


    “그래?”

    “음, 게다가 여성이었네.”


    “여자인 게 뭔 상관인데.”

    “처음엔 자네가 개발한 줄 알았단 말일세. 그런데 여자인 걸 알고 실망했지 뭔가.”

    “그러냐?”

    “……혹시 자네가,”


    “오빠.”


    마왕이 뭔가를 말하려는데 세희가 날 불렀다.


    “이제 오빠 차례예요.”

    “아, 그래?”

    주사위를 받아 들고 다시 마왕을 쳐다봤다.

    “근데 혹시 뭐? 뭐라고 말하려 한 거야?”

    “아무것도 아닐세. 그나저나 자네 차례이지 않은가. 어서 던지게!”

    그녀가 뭔가를 얼버무리려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시 물어보려는 순간, 어디선가 일본 애니메이션 노랫소리가 울렸다.

    “전화가 왔나 보군.”

    그 노래는 마왕 핸드폰에서 나오는 거였다. 그녀는 추리닝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네, 어머니.”

    전화한 사람은 그녀의 어머니인 것 같았다. 마왕은 평범한 말투로 전화를 계속하다가, 사색이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어, 어머니가 오신다네!”

    마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쪽으로 향했다. 얼마나 급했는지, 가면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우리에게 말했다.


    “둘은 짐이 설거지하는 동안 보드게임  치워주게!”

    대답하기도 전에 마왕은 주방으로 들어갔고, 나와 세희는 게임판을 치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끝까지 가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주사위를 내려놨다.

    “아쉽네, 재밌었는데.”


    “그러게요. 운이 좋았네요. 언니랑 오빠   모두.”


    “……일단 치울까! 세희야, 네 언니 자리에 있는 돈 좀 갖다줄래?”

    “얼마 없어서 안 치워도 되겠네요. 오빠도 마찬가지고요.”


    그녀 말을 최대한 무시하며 게임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판 위에 있는 건물과 말을 박스 안에 넣고 판을 접었다. 그 사이 세희는 돈을 단위별로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탁자위를 치웠다.

    세희는 보드게임 박스 뚜껑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방에 두고 올게요.”


    “나도 같이 갈까?”

    “아니요. 오빠는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나는 그렇게 아무도 없는 남의  거실에서 혼자 남게 되었다. 그렇다고 외롭거나 무서운  아니었다. 보이진 않아도 마왕이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리고, 계단을 걷는 세희의 뒷모습이 보였으니까.

    핸드폰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상자를 두고 온 세희가 내려오는  보였다.


    “오빠.”

     앞까지 다가온 그녀는  부르며 뭔가를 건넸다. 손바닥보다 작은 그것은 검은색으로 된 사각형 직육면체였다.


    “이게 뭔데?”

    “카메라요. 그거로 찍어주세요.”

    “안 찍어! 가져가!”

    “거기 언니 사진도 있으니까 심심하면 보시구요.”


    “그렇게 말해도 안 찍을 거야!”


    나는 당당하게 거절하면서 카메라를 바지 주머니에 넣어 보관했다. 이런 범죄 증거를 함부로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절대! 절대로 보고 싶어서 그런  아니었다.

     근데 혹시 모르니까 이것도 백업해야 하나?


    “아니면 오빠.”

    “왜.”


    “영상통화로 중계해주셔도 괜찮아요.”

    “안 해! 그게 뭔지 몰라도  해!”


    “그렇게 거절하시는 건, 같이 하고 싶다는 말씀이죠?”


    “안 한다니까?”

    거듭되는 거절을 이해해줬는지, 세희는 날 지긋이 바라봤다.

    “……안 하고 배길 수 있나 볼게요.”


    “왜, 왜? 어떻게 할 건데!”

    “그때를 기대하세요.”

     집 자매가 기대하라고 할 때마다 왜 이렇게 무서운지 모르겠다. 혹시 얘네가 알고 있는 ‘기대’랑 내가 알고 있는 거랑 다른 걸까?


    다른 방식으로 세희가 무서워질 때쯤,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딩동!


    “부디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까지 소름 돋는 말을 남긴 그녀는 현관으로 향했다. 세희는 거기 근처 벽에 달린 인터폰을 들었다.


    “누구세요? 아 어머니. 네. 잠시만요.”

    인터폰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밖에서 희미하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얼마 안 돼서 여신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북유럽 여신 같은 분위기를 가진 그녀는, 검은 정장을 입어 커리어우먼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어머니께선 굽이 낮은 구두를 벗으며 세희에게 말했다.

    “세희야, 잘 있었어? 언니는?”

    “언니는 지금 설거지하고 있어요.”


    “왜? 뭐 만들어 먹었니?”


    그 질문을 던지며 고개를 드셨다. 그러다 나는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마왕처럼 시리도록 푸른 눈과 그 아래 깔린 다크써클이 퇴폐미가 느끼도록 아름다웠다.


    나는 번개 맞은 것 같은 충격에 저절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

    여신님은  보고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지헌씨, 언제 오셨어요?”


    정신이 없었지만, 대답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입을 열었다.

    “좀 전에 왔어요. 좀 전에.”

    “그래요? 우리 소희 보러 오셨구나!”

    “네, 네.”


    가슴 떨리는 대화를 나누던 중, 주방에서 무언가가 달려 나오는  보였다. 휘날리는 은발만 볼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달리던 마왕은 계단을 빠르게 올라갔다. 하지만 그걸 어머니께서 안 보실  없었고, 그녀는 딸을 향해 소리쳤다.

    “소희야! 손님 앞에서 뛰어다니면 어떡하니!”

    처음 듣는 큰소리에 난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야단친 본인께서도 놀랐는지, 어머니도 눈을 크게 뜨며 자기 입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죄, 죄송해요. 손님 앞에서……”


    “아뇨, 아뇨!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어머니 오셨어요?”


    그새 갈아입은 마왕이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녹색 추리닝차림이었던 아까와 다르게, 지금은 폭이 넓은 아이보리색 면바지와, 마찬가지로 커 보이는 검은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몇 초 만에 옷을 갈아입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선 아까 입었던 추리닝을 잊지 않았다.

    “백소희!  아까 운동복 입고 있었지! 손님 있는데 그러면 어떡하니!”

    “어머니! 세희도 저렇게 입었는데요!”

     말에 어머니께선 세희를 쳐다봤다. 그제야 둘째 딸이 조금 전 언니와 마찬가지로 편한 복장차림인 걸 발견했다.

    “……세희는 좀 이따 보자?”

    “네.”


    세희는 대답했지만, 자길 고자질한 언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웃음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올  그저 보여 주기용으로 화목한 가족을 연기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다투는 모습을 보니, 마왕네 가족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지헌씨, 이런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하네요.”

    어머니께선 거실로 들어오시며, 세희가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세희가 눈치 없어서 미안해요. 둘만 있고 싶었을 건데.”


    “예?”

    “원래 이런 애가 아니거든요. 혹시 지금부터라도 둘이 나갔다 올래요? 다음날 와도 상관없어요.”


    “어, 그게요.”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해되기전, 마왕이 끼어들었다.


    “지헌아!”

    그녀는 내게 다가와, 멋대로 팔짱을 끼었다.

    “너 지금부터 나가야 된다고 하지 않았어? 내가 배웅나가 줄게!”


    마왕이 한 말에 내가 약속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위한 거짓말이란 걸 깨닫고, 그 말에 어울리기 시작했다.

    “아, 아아! 그랬지!”


    “어머니, 전 지헌이 데려다 주고 올 게요!”

    날 위한 게 아니라, 자길 벗어나게 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마왕이 날 이끌고 나가려 했다. 현관까지 도착했는데, 어머니께서 그녀를 불렀다.

    “잠깐만! 소희야!”


    “윽.”

    그녀는 뭔가 찔리는 게 있는지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팔짱을 풀며 어머니께 다가갔다.

    “네, 어머니.”

    어머니는 정장 외투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말씀하셨다.

    “바로 안 들어와도 되고, 여기 근처에……”


    이때 한 말은 마왕에게 속삭이느라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그녀가 빨개진 얼굴로 어머니께서 주신 돈을 받았다는 것밖에 없었다.

    마왕은 만 원짜리 몇 장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내게 다가왔다. 눈밭 같던 하얀 피부가 분홍색으로 달아오른 채, 그녀가 날 현관문 쪽으로 밀어 댔다.

    “자, 가자!”

    “잠깐만, 나 신발 좀 신고.”


    “시끄럽고! 일단 나가!”

    “나 신발 안 신었다고!”

    어찌찌 신발을 신은 나는 마당까지 끌려 나왔다. 날 트럭처럼 강하게 끌고 가는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봤다.


    “어머니께서 뭐라고 하셨어?”


    “일단은 가만히 가주게나.”


    “아, 알았어.”


    금방이라도 날 죽일 것 같은 기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끌려가는 도중, 뒤에서 현관문 소리가 나더니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야! 백소희!”

    “이크! 어서 가세!”


    그 말에 마왕은 어깨를 움찔하더니,  강한 기세로  대문 쪽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또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주방을 저렇게 엉망으로 하면 어떡해애애애!!!”


    어머니의 비명을 뒤로 하고, 우리는 대문을 나섰다. 마왕은 집에서 들려오는 야단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집과 멀어지자, 마왕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하아, 집에 가기 두려워지는구먼.”

    “도대체 뭔 짓을 했길래 그러시는 거냐?”


    “그저, 짐만의 방식대로 정리했을 뿐이네.”


    “진짜 정리였다면 저러시진 않을 거 같은데.”

    “시끄럽네. 정리는 정리일세.”

    일갈한 마왕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하아,  상태라면 몇 시간은 집에 못 들어갈 것 같네만.”

    “그럼 잠깐 나랑 있자. 너  받았잖아.”

    “음?!”

    내 말에 그녀가 놀라서 몸을 굳혔다. 그러더니 다시 빨개진 얼굴로 날 쳐다봤다.

    “자, 자네, 들었는가?”

    “뭘.”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 말일세.”

    “못 들었는데. 대충 그거로 같이 놀라는 거 아니야?”


    “노, 노는 건 맞네만……. 그, 어른의 놀이라고 해야 하나……?”

    “무슨 소리야. 너 그런 거 하고 싶었냐?”


    웬일인지 마왕은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안 하고 싶은 건 아니네만……. 자네는, 그, 하고 싶은 겐가……?”

    “너 하고 싶으면 할게.”


    “!”

    “근데 여기 근처에 피시방이 있나?”

    “뭣이?”


    마왕은  말을 듣고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왜 그렇게 반응하지는지 몰라서 물었다.

    “왜? 레4데나 그런 성인 게임 말하는 거 아니야?”

    “……아! 그런  말인가!”


    어찌나 당황했는지, 말까지 더듬는 모습을 보였다.

    “무, 물론 그거일세! 그럼 뭐라고 생각한 겐가! 아하하핫! 피시방은 이쪽일세! 어서 가세!”

    그녀는 내 팔을 놓지 않으며 골목길을 걸어갔다. 우리는 피시방에 도착할 때까지  팔짱을 풀지 않았다.





    나: 안 했네요.

    ♡우리 오빠♡: ?


    나: 하실 땐 말씀주세요


    나: 지켜보고 있어요

    ♡우리 오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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