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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화 〉짐이 여자로 보이고 싶은 사람은 단 한 명뿐이지 (48/72)



〈 48화 〉짐이 여자로 보이고 싶은 사람은 단 한 명뿐이지

마왕이 말한 대로 세희를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에 뭔가 걸려서 석연찮지 않았다. 스토커는 유리가 아닌 세희로 밝혀졌고, 들킨 이상 그녀가 같은 짓을 할 거로는 안 보였다.


사건은 해결됐는데 뭐가 문제인 거지……?

“미안하게 됐네.”


고민하는 사이 마왕이 진지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자네에겐 말해뒀어야 했네. 세희가 스토커일  있다는 걸 말일세.”

“너 알고 있었어?”


“자네가 여기로 돌아오기 좀 전,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네. 그녀가 학원에 가지 않았다고.”


“그래서 따로 간 거냐? 걔가 이리 올  예상하고?”

“그렇지.”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설마, 그 예상이 진실이  줄은 몰랐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이럴  쓰는 거였군. 세희가……”

“그렇게 처지지마.  심정도 이해 안 가는 건 아닌데. 설마 동성,”

“이리 짐을 과보호할 줄은 몰랐군.”

“과보호 수준이 아닌 거 같은데!”


내 대답에 마왕은 기운 없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부정하지 말아 주게. 다 짐을 걱정해서 한 행동이 아닌가.”


아무래도 마왕은 세희가 한 짓이 과보호의 일종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세희가 보여준 행동은 그 수준을 벗어난 거였다. 언니를 스토킹하고, 그녀와 친하게 지낸 나에겐 그런 사진까지 보냈다.


평범한 쿨데레라고 생각했던 여자애가, 사실은 근친 레즈 얀데레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지. 잠깐만. 근친과 동성애는 합법이 아니니까. 음수와 음수를 곱하면 양수가 되는 것처럼 근친과 레즈를 곱하면 합법이 되는 건가?

이해되지 않는 이 상황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 와중에도 어디선가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었다.

“왜 그런가, 자네.”


계속해서 인상을 찌푸리는 내게 마왕이 물었다. 그녀는 내가 세희에 대해 화가 풀리지 않은 것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아직도 세희를 미워가는 겐가? 자네 입장이 이해  가는 것도 아닐세. 도와줬더니 나중엔 강간범으로 몰릴 뻔하지 않았나.”


“아 맞다!”

그녀 말을 듣고 나서야 잊었던 걸 기억해 냈다. 자취방에 돌아오기 전, 나는 남고생한테 구애받는 세희를 발견했다. 남자애는  머리에 자기 코를 부딪치고는 친구들 불러온다며 어딘가로 달려갔다.

마왕은 그 장면을 목격했지만, 그 놈이 뭐라 말하는진 못 들은 것 같았다. 만약 들었다면 세희와 함께 나갔을 거였다.

어쨌든, 지금 세희가 나갔으니, 그녀가 자기 친구들을 데려온 양아치들과 마주쳤을 수도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현관으로 향했다. 급한 나머지 신발 뒤꿈치를 꺾어 신으면서 마왕에게 소리쳤다.


“야! 경찰에 신고해!”


“무슨 일 있는 겐가?”

“있으니까 빨리 신고하라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복도로 나갔다. 세희가 타고 내려간 탓인지, 엘리베이터는 1층에 멈춰 있었다. 버튼을 눌러 기다리는 사이 복도에 난 창으로 밖을 내려봤다. 그러자 골목길을 걸어가는 세희가 보였고, 그 뒤를 따라가는 남자애들을 발견했다.

“야!”


교복을 입은 그들이 세희를 불렀고, 이렇게 되면 엘리베이터가 오길 기다릴 순 없었다.

나는 엘리베이터와 옆에 있는 비상계단을 번갈아 보다, 비상계단 쪽으로 뛰어갔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계단을 뛰어 내려간 적은 없었다. 이때 뛴다는 RUN이 아니라 JUMP에 가까웠다.


계단 여러 칸을 한꺼번에 내려간 나는 오직 1초라도 빨리 내려가길 바랐다. 발바닥과 무릎이 아파지거나, 엉성하게 신은 신발이 벗겨져도 1층에 도착하는 걸 우선시했다.

발바닥이 화끈한 걸 넘어서 감각이 없어질 때, 난 겨우 1층에 도착했다. 차가운 시멘트로 된 바닥을 달려서 건물을 나갔다.


“대답 안 해? 어디 있냐고!”

나가니 세희는 양아치에게 머리를 쥐어 잡힌 상태였다. 아파서 얼굴을 찡그린 그녀를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여기 있다, 이 개새끼야!”


숨이  와중에도 최대한 허세를 부렸다. 마치 마왕과 싸웠을 때처럼.


“진짜로 친구 데리고 왔네?”

“허! 씨발!”


  양아치는 잡고 있는 세희 머리채를 던지듯이 놓았다. 세희는 그것 때문에 바닥에 넘어졌고, 그녀에게 구애하려던 남자애는 신경 쓰지 않고 내게 걸어왔다.

“너 날 치고 무사할  알았냐?”

그는 휴지로 틀어막은 자기 코를 가리켰다. 난 그런 그를 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치긴  져. 네가 멋대로 내 머리에 박은 거지.”

그렇게 농담하면서 양아치 패거리를 탐색했다. 총 6명. 모두 남자애인 데다, 체격이 꽤 되어 보였다. 용사일 적에야 싸워볼 수 있지, 지금은 버티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내 목적은 이기는 게 아니라 경찰이  때까지 시간을 끄는 거였다.


혹시라도 그들이 덮치지 않을까 낌새를 살피며, 세희쪽을 쳐다봤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의식을 잃은 게 아니라, 놀라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얼굴이 좀 붉었지만, 그래도 양아치들 주의가 내 쪽으로 모여서 안전할  같았다. 이대로라면 경찰이 올 때까진 괜찮겠지.


하준이 날 차로 치고 언제 경찰이 왔는지 계산하면서 다시 한번 농담을 날렸다.


“그런데  인싸네. 친구가 맞았다고 그렇게 빨리 온 거 보니까.”

“좀 있으면 처맞을 건데 말도 존나 많네. 신발도 안 신고 왔으면서.”


“그거야 당연히 반가워서 그랬지. 얼마나 반가우면 양말만 신고 나오겠냐?”

“나도 너 존나 반갑거든? 그러니까 우리 악수나 좀 하자,  개새야.”


양아치는 날 비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장단에 맞춰주려 손을 들자, 그는 반대편 손을 휘둘러  때리려 했다. 체중도 실리지 않고 잽에 가까운 공격이었다. 속도가 느린 건 덤이고.


그 허접한 주먹에 맞으면 나와 단련한 마왕이 비웃을 게 뻔했다. 난 공격이 오기도 전에 내밀었던 손을 들어 양아치 목 부분을 가격했다.


“……!”

“꺄악!”


세희의 비명이 들리고 양아치는 가격당한 목을 쥐었다. 마치 누군가 목을 조른 것처럼 감싼 그는 천천히 무릎 꿇었다. 그리고 숨을 쉴 수 없는지 눈을 크게 뜨며 붕어처럼 입을 뻐끔뻐끔 움직였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지만, 적당히 힘을 빼서 때렸다. 이건 그저 아프기도 하고, 놀라서 숨을  쉬는 거였다.


“억……! 억……!”


정말  빼고 때렸는데?

“……커헉!”

숨 쉬는  보자 드디어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 나와 다르게, 친구가 맞은 걸  양아치들은 술렁였다.


보이지 않게 몰래 한숨 쉬고,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그들에게 물었다.

“야, 자기 친구가 맞았는데 그렇게 보고만 있을 거냐? 의리있는 새끼들인 줄 알았는데.”


“이씨……!”

말이 끝나자마자 한 놈이 내게 달려들었다. 그걸 보고 바로 준비 자세를 취했지만, 뒤에서 무언가가 날라와 양아치 얼굴을 맞혔다. 그는 놀라 쓰러지며 웃긴 단말마를 질렀다.


“악!”

양아치가 쓰러지면서 날아온  바닥에 떨어졌다. 그건 아까 계단에 두고 온  신발이었다.


“어찌 이런  알려주지 않은 겐가?”


“언니!”


역시나.

마왕이 나타나자 안심한 건 세희만이 아니었다. 나도 옅게 웃음지으며, 쓰러졌던 그 놈이 일어나는  노려봤다. 동시에 뒤에 누군가 접근하는 기척을 느끼곤 물었다.


“신고는 하고 왔냐?”

“이런 양아치들 때문에 신고하면 경찰 아저씨분들이 귀찮지 않나.”


“신고하고 오라니까.”


말은 그렇게 했어도, 신고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경찰이 오면 일이 커지는 데다, 저기 있는 세희가 곤란해질 수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미녀에 양아치들이 마왕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거기서 왠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을 느낀 나는 그들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눈 안 깔아? 눈깔 뽑아 버리기 전에 눈깔아!”

“자라나는 새싹에게 무슨 험한 말인가.”

마왕은 나와 나란히 서며 말했다.

“가급적 싸움을 피하려 해도, 인생이란 게 꽤나 귀찮군. 자네는 몇 멍 맡을 텐가?”


목 맞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놈을 제외하면,  5명이었다.


“내가 2명. 네가 3명.”

“사내가 왜 숙녀인 짐보다 적은 겐가.”


“남녀평등. 게다가  명 이미 누웠으니까 총 합하면 둘 다 3명이잖아.”

“뭐, 그것도 그런가.”

“야 이 씨발 새끼들아!”

나와 마왕이 느긋하게 대화하자, 양아치들이 끼어들었다.

“우리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냐!”

“개새끼들이! 우리 성당파를 건드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성당파라니.  그대로 웃음이 나오는 이름이었다. 마왕도 웃기는지 소리내서 웃었다.


“큭큭큭. 성당파라니. 경건해지는 이름이로군.”

“웃지마! 그리고 너!”


양아치는 마왕을 가리켰다.


“우린 여자  때리니까, 어서 꺼져! 게다가 볼일 있는 건 이 새끼니까!”

“뭣이? 여자는 때리지 않는다고?”


마왕은 그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짐은 자네들에게 있어 여자로 있고 싶지 않다네. 짐이 여자로 보이고 싶은 사람은 단 한 명뿐이지.”

그러면서 왠지 모르게 자기 팔꿈치로  건드렸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챈 나는 금방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때 세희 쪽을 쳐다보니, 그녀는 뭐라 형용할  없는 표정을 지으며 여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말일세.”


갑자기 그녀 목소리가 낮아졌다. 마왕은 차갑게 굳은 얼굴로 그들을 노려봤다. 그 전생 마왕의 눈빛에 한낱 양아치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굳혔다.

“저 아이는 때렸으면서, 여자는 때리지 않는다고? 말 그대로 어불성설 아닌가.”

마왕은 아직도 골목길에 앉아 있는 세희를 가리켰다. 머리가 헝클어진 세희를 본 그녀는, 내가 차에 치였을 때처럼 분노했다.

“저 아이는 짐의 여동생일세. 그러니,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진 않을 걸세.”

“무, 무슨 개소리야!”

 놈이 그 위압을 뚫으면서 용케 소리쳤다. 그러자 마왕은 여유롭게 반박했다.


“개소리는 자네들이 지껄이고 있잖나. 사내놈들이 싸우기로 했으면 싸워야지. 자네들이 안 온다면…… 짐이 가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녀가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 또한 싸움을 시작했다.

싸움은 몇 분 만에 쉽게 끝나고 말았다. 아직 고등학생인 거에 걸맞게,  대만 맞으면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결국 그들은 어깨동무하며 서로를 의지한 채 이 골목을 떠났다.

양아치들을 떠나보내고, 마왕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세희를 향해 달려갔다.

“괜찮은가?”


“어, 언니!”

“많이 무서웠을 테지, 괜찮아. 이제 다 끝났으니.”


마왕은 몸을 숙여 세희를 일으켜줬다. 그동안 다리에 힘이 빠져 일어나지 못하던 그녀는, 언니가 부축받았다. 그렇게 일어난 세희는 마왕을 껴안았다. 마왕은 당황하긴커녕 손으로 자기 동생 등을 쓸어주었다.

“옳지, 옳지. 괜찮아. 울지 말게.”


“……훌쩍”


세희는 키 차이 얼마 안 나는 언니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다 눈물 젖은 눈으로  불렀다.

“오빠, 미안해요……!”

감동스러운 자매의 만남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날 부르는 바람에 어쩔  없었다.


“어? 아니, 괜찮아.”

“제가, 오빠한테 나쁜 짓 하려고 했는데, 제가 잘못했어요!”

“괜찮다니까.”

“저 때문에! 오빠 발이!”


“어?”

내 발이 왜? 하면서 고개를 내렸다. 그러자 흰 양말이 피투성이가 된 채 붉게 젖어 있는 걸 발견했다. 맨발로 계단을 뛰어내려가고, 거친 아스팔트 바닥을 움직였으니 다치는 게 당연했다.

“크으윽!”

다친 걸 보자마자 고통이 밀려왔다. 발바닥을 강판으로 민  같은 통증이 밀려오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자네!”


“오빠”

 비명에 마왕과 세희가 내게 다가왔다.


“괜찮은가! 어디  번 보세!”


그녀는  앞에 무릎 꿇고, 내 다리를 잡아 올려 발바닥을 살폈다.

“병원에  필요는 없어 보이네만. 일단 방으로 가서 상처를 씻어 봐야겠네. 설 수 있겠는가?”


“히, 힘들 것 같은데……”


“그럼 이렇게 하지! 헛!”

“어, 야!”

마왕이 내 옆으로 이동해, 무릎 반대편과 겨드랑이 밑으로 양손을 넣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껴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가, 괜찮은가?”


공주님 안기, 아니 용사님 안기로 마왕이  안은 채 물었다.


“시끄러워! 내려놔!”


“그렇다고 짐이 내려놓을  같은가?”


마왕은 인형 같은 외모로 웃어 보이며 날 내려봤다. 그녀 얼굴이 평소보다 가깝다고 생각한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우리 앞에 서 있는 세희가 보였다.

나는 그녀가 화낼 줄 알고 어떻게든 내리려 했지만, 세희는 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화내거나 하지 않았다.

“……어쩔  없네요.”


세희는 슬퍼 보이지만, 왠지 모르게 후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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