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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화 〉지헌은 짐을 완벽하게 만들어 준다네 (47/72)


  • 〈 47화 〉지헌은 짐을 완벽하게 만들어 준다네

    “언니!  사람이 날……!”

    복도에 마왕이 서 있던 것이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추리닝 상의에 손을 집어넣고 걷고 있다가, 엉망인 상태로 내 방에서 나오는 동생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마왕은 자길 향해 달려오는 세희를  번 쳐다보고, 그다음 날 바라봤다.

    “자네!”

    “아냐! 네가  생각하는지 다 아는데, 아니라고!”

    “짐이 그걸 모를  같나?”

    마왕은 보기 드물게 정색한 표정을 짓고 세희를 내려봤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 자기 동생의 앞섬을 정리했다.

    “세희야.  그랬니.”

    “언니……?”

    언니의 굳은 얼굴을 본 세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세희는 고개를 돌려 나와 마왕을 번갈아 봤는데, 이때 그녀의 눈동자 또한 떨리고 있었다.

    “아니, 언니. 저 사람이요……”

    “왜 그런 거니. 왜.”

    “네?”

    마왕은 대답대신 손을 들어 동생 머리를 쓰다듬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왜 우릴 쫓아다닌 거니?”

    “!”

    “!”

     말에 반응한 건 세희만이 아니었다. 나 또한 놀라며  말에 대해 물었다.

    “야! 너!”

    “미안하네.”

    마왕은  말을 끊고 날 쳐다봤다. 머리가 아픈지 미간을 찌푸린 그녀는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말투와 함께, 열린  방문 쪽을 향해 턱짓했다.

    “미안하지만,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하면 안 되겠나?”

    자기 동생이 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왕은 평소처럼 특이한 말투를 유지했다.

    “자, 들어가지.”

    마왕은 세희 어깨를 팔로 감싸고 방을 향해 걸어왔다. 세희는 당황한 표정을 하며 얌전히 걸었고, 나도 일단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자취방에 들어갔다.

    “이건 왜 그런 겐가?”

    냉장고 앞에 엎지른 물을  마왕이 한 말이었다. 물었으면서도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방으로 들어왔다.

    “자네는 의자에 앉아주겠나? 짐과 세희는 여기면 충분하네.”

    방에 들어온 그녀는 침대를 가리켰다. 딱히 반대하고 싶은 이유는 없었기에 나는 별말 없이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사이, 마왕과 동생은 침대에 나란히 자리잡았다. 마왕은 동생을 상냥하지만 엄격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세희야.  그랬던 거니?”

    “어, 언니. 저 사람이요……!”

    “저 자가 그럴 만한 인간이 아닌  짐은 잘 알고 있다네. 애초에 그럴 만큼 대담한 녀석이 아닐세. 오히려 기회가 와도 흐지부지하게 만들어버리는 멍청이에 불과하지.”

    마왕이  무죄를 믿고 있는 건 좋은데, 왠지 욕먹는 기분이었다.

    그 변호에도 세희는 격한 말투로 날 강간범으로 몰아갔다.

    “아니, 언니! 저 사람이 절 강간하려고 했다니까요!”

    “방금 말했잖나. 저 놈은 그럴 인간이 아니라고. 그리고, 이것 먼저 대답하면 세희, 널 믿어주지.”

    “언니!”

    “왜 우릴 따라다닌 거니? 사진은  보낸 거고?”

     질문에 나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아니, 그걸 세희가 보냈다고? 유리가 보낸 게 아니라?”

    마왕은 고개를 들어 날 쳐다봤다. 동시에 손을 움직여, 세희의 손을 강하게 쥐어 쥐었다.

    “당연하지 않나. 유리가 싫어하는  짐일세. 자네가 아니라. 그러니 칼질을 할 거였으면 짐에게 했겠지. 그녀도 사진을 보낸 적이 없다고 했고, 애초에 말일세. 짐과 자네가 키스한 사실을 아예 모르는 것처럼 보였잖나. 알았다면 그런 반응을 보이진 않았겠지.”

    확실히, 유리가  사실을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하긴 했다. 마왕 말대로 사진을 보낸 게 유리가 아니라고 해도, 세희가 그럴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세희는 왜 사진을 보낸 건데?”

    자기 이름이 언급되자 그녀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검은 장발이 얼굴을 가리는 바람에, 마치 검은 장막 속으로 숨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세희 대신 마왕이 입을 열었다.

    “짐이 말했잖나. 동생이 꽤나 과보호라고.”

    “이건 과보호 수준을 넘었잖아!”

    잘못하면 경찰에 체포될 뻔했다. 어쩌면 이 건물에 있는 누군가가 신고해서, 경찰차가 오고 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너네 부모님은 날 좋아하셨잖아! 그런데 얘는 왜 그런 건데!”

    “너무 소리지르지 말아주게. 세희가 겁먹지 않나.”

    마왕이 말한 것처럼, 손을 잡고 있는 세희의 손은 심하게 떨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어깨까지 격하게 요동쳤다. 그러다 결국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야!”

    처음 보는 그녀의 격양된 표정이었다. 항상 얼음 같은 이미지만 유지할 것 같은 세희가 눈을 부릅뜨며 날 쳐다봤다.

    “언니한테 그딴 말투로 말하지마!”

    나만 놀란 건 아니었다. 마왕도 자기 동생이 이러는  처음 봤는지, 그녀는 파란눈을 커다랗게 뜨며 세희를 쳐다봤다.

    “이 새끼야! 너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되지 않았어! 너만 안 나타났으면!”

    당황한 언니 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그녀는 계속해서 퍼부었다.

    “왜 네까짓 게 우리 언니를 더럽히는 건데! 언니한텐 우리 가족만 있으면 충분했어! 너 때문에 언니가 힘들어하면 어떻게 할 건데! 너 때문에 엄마아빠가 힘들게 하면 어떻게 할 건……!”

    세희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그건 마왕이 그녀를 껴안았기 때문이었다.

    “미안하네!”

    “어, 언니!”

    “자네가 이렇게 짐 때문에 마음 졸일 줄은 몰랐네. 정말 미안하네!”

    “아니에요, 언니! 다 저 새끼 때문이에요!”

    “아닐세, 짐은 오히려 지헌 덕분에 진실된 날 발견할 수 있었네.”

    “네?”

    그 말에 세희는 이성을 잠시나마 찾은 것처럼 보였다.

    마왕은 세희의 어깨를 잡고 몸을 떨어뜨렸다.  상태로 그녀는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했다.

    “평소 말하던 말투가 아닌  알아챘을 게야. 부모님과 자네는 이게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건, 그건 원래 알고 있었어요. 부모님한테 숨기려고 그런 거잖아요.”

    “뭔가. 이미 알고 있었나?”

    그걸 말하는 마왕은 어딘가 허망하게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자신을 숨기고 평범한 사람을 연기했던 게 부질없는 짓인 셈이었으니까.

    “걱정마세요. 엄마나 아빠는 모르니까요.”

    “그건 그거 대로 걱정이군.”

    마왕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과거 짐이 여러  말했던 대로, 짐은 전생에 마왕이었네. 그런데 그 사실 때문에 부모님께서 괴로워하시는 걸 보고 일반인을 연기했던 것이지.”

    “그건 알고 있어요. 근데 왜 저 새끼가 언닐 도와준 건데요.”

    “그건 말이지……”

    말을 흐린 그녀는 날 쳐다봤다. 날 지긋이 바라보는 행동은 말해도 되겠냐며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마왕인  밝힌 그녀 때문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마왕이 내 정체를 말해줬다.

    “이 자가 바로 용사이기 때문이지.”

    “네?  새끼가요?”

    세희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나와 마왕을 번갈아봤다.

    “저렇게 얼빵하게 보이는데요?”

    “음, 확실히 얼빵한 면도 있지.”

    뭐 임마?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구석도 있고, 꽤나 귀여운 점도 있다네.”

    마지막 말을 마친 마왕은 날 보며 윙크했다. 난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있던 일이 떠올라 고개를 허공으로 돌렸다. 그런  본 그녀는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세희에게 말했다.

    “가끔씩, 불안하기도 했다네. 짐이 전생에 마왕이었던  그저 짐의 착각이고, 미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하지만 그런 불안을 지헌이 풀어주었지.”

    난 그녀에게 있어 그저 편한 친구나 장난치기 좋은 상대로 생각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소중한 의미인 줄은 몰랐다.

    “……언니.”

    잠깐동안 생각에 잠겼던 세희가 물었다.

    “저는 안 되나요?”

    “음?”

    “저는, 언니를 행복하게 만들 수 없는 건가요?”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닐세. 자네는 자네 존재만으로도 짐을 행복하게 만들지. 아버지와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짐을 웃게 만든다네. 하지만 지헌은 다른 방식으로 짐을 충족시키지. 아니 짐을 완성시킨다는 말이 맞을 걸세.”

     설명에도 만족하지 못했는지, 세희는 필사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왜요? 제가 여자라서 그래요? 아니면 동생이라서 그래요?”

    “그것이 아닐세.”

    “저도 언니 좋아해요. 언니도 저 좋아하잖아요. 그리고 저딴 놈보다 제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있어요. 자신있어요.”

    “세희야.”

    “싫어요!”

    이성을 찾은 줄 알았던 세희가 소리지르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지, 떨리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제가, 이딴 새끼보다 못하다고요?”

    “방금 말했지 않나. 그거와는 다르다고.”

    “그게 그거잖아요! 저는 그런 거 싫어요!”

    세희는 참지 못하고 현관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왕이 말릴 걸 예상했지만, 그녀는 세희가 나갈 때까지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결국 그녀가 나가고, 나는 마왕을 쳐다봤다. 그녀는 기분이 좋지 않은지 침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금은 짐이 쫓아가 봐야 역효과만 날 걸세. 가끔씩은, 자기 자신과 마주할 시간이 필요하다네.”

    그 말이 맞았다. 하지만 내 기분은 왠지 모르게 찜찜했다.




    사실 난 언니가 마왕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언니는 그저 별이었다. 누구나 볼  있게 반짝이지만, 누구도 만질 수 없는 존재. 창작물 속에 등장하는 히어로가 현실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처음엔 언니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끄러웠다. 그저 예쁜 언니로 남아줬으면 좋았을 건만, 자신을 마왕이라 칭하면서 특이한 말투로 시선을 끌었다. 안그래도 이 외모로 주변 여자애들에게  좋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는데, 언니가 그런 행동을 하면서부터 난 반에서 고립되기 시작했다.

    날 절망에 빠뜨린 사람도 언니였지만, 웃기게도 내게 희망을 갖게 해준 것도 언니였다.
    언니는 내게 있어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나를 여동생으로서 대해주고, 약자로서 보살펴줬다. 내가 반한 건 그녀의 태도였다.

    그녀가 아무리 이상한 짓을 하고 타인들에게 욕을 먹어도,  행동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행동이 그릇된 것은 아니었다. 교사의 비리를 밝혀내고, 왕따를 해결하며, 통장의 횡령을 조사하며,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일이 언니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빼어난 외모를 하고 있어도 평범한 미성년자에 불과하니까.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많은 고난이 그녀를 덮쳤다. 협박 편지는 물론이고, 동네 양아치들이 모아서 덮친 적도 있었다.

    그 고난 속에서도 언니는 당당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항상 빛이나는 미소를 지으며 문제를 해결했다. 패싸움의 결과로 대회 출전 정지를 받았을 때도 웃고 있었다.

    그런 일관적인 그녀를 보기만 했는데도 난 힘을 얻었다. 언니가 한 것처럼 옳지 않은 것들을 위해 움직이다 보니 반에서 중심이 되어 있었고, 단점으로 생각했던 외모로 남자를 쉽게 부릴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이미 언니를 사랑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언니가 부모님과 내게 연기할 때는 가슴이 찢어지는  했다. 하지만 웃음은 여전했고, 오히려 내가 그녀를 더 마음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 혹시라도 모자란 게 없을지 방에 몰래 도청기를 설치했고, 대학에 들어갈 때는 남자가 꼬일지 몰라 GPS 어플을 깔았다.

    남자들은 똑똑한 척해도  멍청한 존재였다. 패거리만 있으면 멋있는 줄 알고,  반반하게 생기면 모든 여자들이 자길 좋아하는 줄 알았다. 게다가 내가 조금만 웃어주면 내가 자길 좋아한다고 착각에 빠지는 미련한 놈들이었다. 그런 놈들에게 언니를 넘길  없었다. 언니와 어울리는 건, 오직 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언니가 유독  건물에 머무는 일이 벌어졌다. 게다가 얼마 안 되서 그녀와 함께 있는 남자의 정체를 뉴스를 통해 알아냈다.

    자주 가던 옷매장에서  그는 그저 얼빵한 다른 남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와 함께 있는 언니는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얼굴은 집에서 볼 수 없었던 종류의 미소였다.

    언니와 함께 있는 남자라 해도 어차피 남자. 내가 유혹하면 알아서 떨어질 것이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그를 언니에게서 떨쳐내야 했다.  그가 우리집에 오는 걸 사전에 알고, 장치를 하나 준비했다. 학교 양아치들에게 연극을 하나 부탁하면 되는 거였다.

    “야!”

    그 양아치 중  명이 길가는 날 불러 세웠다. 아까 그 놈한테 맞아서 코가 찌그러지고 피투성이가 된 놈이었다. 아까와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면, 친구들이 추가된 거였다.

    “너 이 씨발! 그 새끼 어딨어?”

    그는 거칠게 말하며 내 멱살을 잡아 올렸다.

    이래서 남자는 좋아하지 않았다. 거칠고, 억세며, 여자라면 사족을 못쓰는, 짐승과 별다를 게 없는 족속이었다.

    하지만 용사였다는 놈은 달랐다. 마왕이라는 언니가 용사라는 말을 붙여줄 정도로 그는 다른 남자애들과 차이점이 존재했다.

    “대답  해? 어디 있냐고!”

    그와 전혀 다른 양아치가 멱살을 놓고 머리채를 휘어 잡았다. 동시에 머리가죽이 뜯어지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것도 하나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언니가 남자를 포기하고  선택해줄 기회였다.

    “여기 있다, 이 개새끼야!”

    양아치 말이 끝나자 마자 내가 나온 건물 입구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언니인 줄 알았다. 저.하지만 등장한 사람은 내가 함정에 빠뜨리려던, 언니가 용사라며 부르는 그 인간이었다.

    “진짜로 친구 데리고 왔네?”

    그는 숨을 헐떡이는 모습은 형편없었지만, 항상 당당안 웃음을 짓던 언니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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