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6화 〉괜찮아요. 오빠만 있으면 돼요 (46/72)


  • 〈 46화 〉괜찮아요. 오빠만 있으면 돼요

    그만한 소동을 피웠는데 뻔뻔하게 돌아갈 자신이 없던 나는 자취방으로 향했다. 마왕은 따로 할 일이 있다며 따로 가기로 했다. 유리도 어딘가로 가긴 했는데, 그건  알바가 아니었다.

    누가 내게 그런 편지를 보냈을까 생각하며 자취방이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엔 익숙한 얼굴이 2명이나 보였다.

    “이거 놓으세요, 선배.”


    “선배고 뭐고! 나랑 만나자니까?”


    마왕 동생인 세희가 어떤 남자애한테 일방적으로 구애하고 있던 것이다. 학교가 끝나고 바로 왔는지 교복 차림인 그녀는, 마찬가지로 고등학생 교복을 입은 남자애를 무시하려 했다.

    “싫어요. 제가  선배를 만나야 되는데요.”


    “야이씨! 너 내가 누군지 몰라? 나 ○○고 일진이야. 나랑 사귀면 너한테 이득 아니야?”
    당당히 양아치라고 밝히는 남학생은, 어제 세희를 삥 뜯을 때 같이 있던 패거리 중 한 명이었다.


    또 도와줘야 하나, 하면서 그들을 쳐다봤다. 그러자 세희가 고개를 돌리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오빠!”

    세희가 날 부르자 양아치도 날 쳐다봤다. 그는  알아봤는지 눈을 크게 뜨면서 놀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더니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같잖은 걸음으로 내게 걸어왔다.

    “야! 너 어제 그 새끼 맞지!”


    세희를 구해줬던 일을 떠올리며 남학생에게 태연히 대답했다.

    “어제  만나긴 했는데, 왜?”

    “뭐? 너?  새끼가 확!”


    내 앞까지 온 그는 때리려는 듯이 손을 들었다. 하지만  손을 휘두르지 않았고, 겁먹지 않은 날 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허!  새끼 가오는 살아가지고!”


    마왕에게 죽도로 죽도록 맞은 적이 있는 나였다. 비실비실한 양아치에게   맞는다고 겁먹진 않았다.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는 사이, 나보다 키가 큰 남학생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이마에 자기 이마를 들이받으며 눈을 부라렸다.


    “야, 너  나한테 반말하냐. 시발, 너랑 나랑 친해?”

    “넌 나랑 친한 것도 아닌데 왜 반말이냐?”

    그가  행동과 더불어, 입에서 풍기는 담배 냄새 때문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허! 씨발!”


    내 반응에 남학생은 헛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뒤로 젖혔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빠른 속도로 내 머리를 들이받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이미 읽고 있었기에, 고개를 숙여 얼굴이 다치는 걸 막았다. 얼마 가지 않고 정수리 부분에 물렁한 콧대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퍽!

    “억!”

    내가 고개를 숙인 건 얼굴 막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정수리 부분을 그의 얼굴이 닿을 위치로 옮겨, 자기가 알아서 자기 면상을 박도록 만든 것이다.


    고통에 몸을 뒤로 젖힌 그는 아픈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코뼈라도 부러졌는지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질질 흘러나왔다.

     피를 보고 내 머리에 묻었는지 정수리 부분을 만져 봤다. 살짝 거친 머리카락만 만져지고 피가 묻은 끈적한 감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한편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감싼 양아치는  향해  맹맹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어떻게 아냐? 아니면 알려주고 묻던가.”

    “이 씨발! 너 여기서 딱 기다려!”

    그는 정말로 내가 기다릴 거로 생각했는지, 다른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난 저 멍청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세희한테 다가갔다.

    “세희야, 괜찮아?”


    “네, 네.”


    그녀는 폭력을 처음 보는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나는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여긴 무슨 일이야?”


    “아니, 오빠, 오빠 만나려고 했는데요. 저 선배가 따라왔어요……”


    “아 그래?”


    다시 한번 양아치가 달려간 길을 쳐다봤다. 검은 아스팔트 도로에 헨젤과 그레텔처럼 붉은 피가 긴 흔적을 남긴  발견했다.

    혹시라도 양아치가 폭력으로 신고하면 어떻게 하면 될지 조금 걱정됐다. 하지만 하준네 부모님이 가면서 남겨준 합의금이 있었기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합의금을 합의금으로 갚는다니, 무슨 카드깡도 아니고……

    그런 실없는 생각을 집어치우고, 다시 세희한테 주의를 돌렸다. 그 사이 그녀는 진정됐는지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마음을 가라앉힌 그녀에게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근처에 볼일이라도 있어?”

    “아니요, 오빠 만나러 왔어요.”

    “나 만나러 왔다고?”

    “네. 오빠가 보고 싶어져서요. 안 되나요?”


    “안 되는 건 아닌데, 아니  되는 건가?”


    중학생 여자애가 대학생 성인 남자를 만나러 오는 건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내 말을 분명히 들었을 세희가 내 손을 잡아, 건물 쪽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어, 세희야?”


    “오빠.”

     부른 세희는 날 향해 뒤돌아봤다. 그러더니 눈을 내리깔며 잡고 있는  손을 꼬옥, 쥐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될까요? 그 선배가 좀 있으면 온다고 했잖아요.”


    그제야 나는 그녀가 아직도 겁먹었다는 걸 깨달았다. 성숙한 미녀처럼 생겼어도, 속은 여린 중학생이었다. 조금 전까지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계속 같은 자리에 있으려는 내가 미련하게 보였다.

    겁먹은 듯한 세희를 보고, 난 앞장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빠?”

    “그래, 들어가자.”


    양아치가 정말 올지  올지 모르지만, 만에 하나라는 말이 있으니 안에 들어가는 게 좋아 보였다. 안 오면 세희를 보내면 되고, 진짜 와도 경찰을 부르면 되는 일이었다.


    1층에 있는 엘리베이터에 타고, 내 방이 있는 층으로 갈  있게 버튼을 눌렀다. 도착하는 걸 기다리다가 그제야 아직 세희 손을 잡고 있는  기억해 냈다. 혹시라도 그녀가 기분 나쁠까 봐,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잡고 있어서 미안.”


    그런데 세희는 오히려 내 손을 힘주어 잡았다.

    “……아니에요.”


    아직도 겁먹어서 그런  알고, 다시 손을 쥐었다.

    “왜, 아직도 무서워?”

    “아니요.”


    “안 무섭다고? 그럼 놔도 돼.”

    “그냥, 제가 잡고 싶어서 그래요.”


     말을 하는 세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차이가 나는 데다, 긴 장발 때문에 가려서 어떤 표정을 짓는지  수 없었다. 하지만 머리카락 사이에 난 귀는 화상입은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같이 부끄러워하긴커녕 오히려 마왕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가 자기 여동생과 손을 잡고 있는 걸 본다면 불같이 화낼 게 뻔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겁먹은 얘 손을 놔줄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했다.

    어색한 침묵이 엘리베이터 안을 감돌고, 몇 시간 같은 긴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문이 열렸다.


    “아, 도착했다.”

    나는 그렇게 외치며 일부러 잡고 있는 그녀 손을 떨쳤다. 그런데 세희가 다시 손을 들어 아까처럼 꽉 쥐어 버렸다.

    “……”


    할 수 없이 그녀 손을 잡은 채 내 자취방 방문 앞까지 걸어갔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비밀번호를 누르는 사이 세희에게 물었다.


    “세희야.”

    “네?”

    “여긴 어떻게 찾아왔어?”


    “언니가 말하는 거 들었어요.”


    “그래?”

    마치 유리 같다고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아까 나가기 전과 다르지 않은 방에 들어가며, 그녀도 들어올 수 있도록 빨리 신발을 벗었다.

    “들어와.”


    “네.”

    세희는 대답하며 잡고 있던 손을 드디어 놓아주었다. 그녀는 제자리에 앉아 신발 끈을 풀었다.


    그사이 나는 안으로 들어가 매고 있던 가방을 침대 위에 던져 주었다. 그리고 주방으로 향하면서, 들어오는 세희에게 물었다.

    “뭐 먹을래? 마실 거나. 아니면 과자 같은 거라도.”


    “괜찮아요. 오빠만 있으면 돼요.”

    말하는 게 점점 마왕과 비슷하게 변해갔다. 내 방이 신기한지 두리번거리는 세희에게 조금 두근거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교복을 입은 미성년자였고, 마왕의 동생이었다. 내가 반해도 되는 상대가 아니었다.


    “어어, 그래?”


    나는 어색하게 대답하면서 방 안쪽을 가리켰다.


    “서 있지 말고 어디 앉아. 저기 의자도 있으니까.”

    “여기면 충분해요.”

    그녀가 앉은 곳은 책상 의자가 아닌 내 침대였다. 아까 마왕과 내가 헝클어진 이부자리 위로 세희가 앉았다.

    교복 입은 중학생이 자취방 침대 위에 있는 게 어색하게 느껴져서, 뭐라도 하려고 냉장고로 다가갔다. 그 안에서 그녀에게 대접할 건 별로 없었다. 그나마 마실 만한 생수통을 꺼내고 주방으로 가 머그잔을 집었다.


    이제 그 컵에 물을 따르려는데, 세희가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오빠.”

    “응?”


    “좋아해요.”

    “뭐!”

    물 흘리는 것조차 잊고 세희를 돌아봤다. 그녀는 어느새 일어나서 내 뒤까지 와 있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며 하던 말을 이었다.


    “사실, 오빠 봤을 땐 그냥 멍청이로 보였어요. 그런데 어제 구해주는 거 보고, 오빠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아, 아니, 세희야. 그건……”


    “그냥 착각이라고요? 아니에요.  분명히 오빠를 좋아해요. 특히 오늘 본 거로 오빠를 좋아한다는 데에 확신했어요.”


    말을 마친 세희는 고개를 들었다. 날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결심한 것처럼 힘을 준 상태였다.

    “오빠. 좋아해요.”


    그러더니 눈을 감으며 내게 얼굴을 들이밀려 했다. 하지만 그녀와 내  차이와 내가 한 발짝 이동함으로써  키스는 무산되었다.

    그런 행동에 세희는 눈을 뜨며 물었다.


    “왜요, 오빠. 제가 싫어요?”


    “싫은 건 아니지.”

    “아니면 제가 못생겼어요? 예쁘지 않아요?”


    “예뻐! 그런데……”


    “근데 왜요? 저 예쁘잖아요. 좋아하잖아요. 근데 왜 그래요?”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럼 제가 중학생이라서 그래요?”


    “그것도 있긴 한데!”

    “중학생인  왜요? 오빠 20살이죠.  16살이에요. 4살 차이밖에 안 나잖아요. 저희 부모님도 7살이나 차이 나는데, 뭐가……”

    나는 참다못해 세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외쳤다.


    “그거랑 이거랑은 달라! 세희야!”


    세희는 잠깐 말없이 날 지그시 쳐다봤다. 나 또한 눈을 피하지 않았고, 몇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녀는 입을 열었다.


    “설마 언니가 거슬려서 그래요?”

    “!”

    “어차피 언니랑 사귀는 사이도 아니라면서요. 언니한테 말하는 게 싫으면 비밀로 해도 좋아요. 사랑은 장애가 있는 편이 더 불타오르니까요.”

    마치 외운 것처럼 따박따박 말하는 세희를 보며, 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내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걸 알고 있었고 고백 받은  처음이기도 했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세희 말을 들을수록 마왕에 대한 왠지 모를 죄책감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마왕 동생이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죄책감이 느껴졌다.


    내가 아무 말도 안 하자, 세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아니면, 오빠.”


    그녀는 내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나더니, 두 손을 들어 교복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야!”


    “사귀지 않고 몸만 가지셔도 돼요.”

    “뭐해!”

    “괜찮아요. 처음이니까 살살해주세요.”


    “벗지 말라고!”

    나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가 옷을 벗지 못하도록, 옷을 잡고 있는 손을 잡았다.

    “……”


    세희는 고개를 내려 자신을 잡고 있는 내 손을 내려봤다. 그러더니 시선을 올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훗.”

    처음 보는 그녀의 웃음은 너무나 차갑게 느껴졌다. 액체 질소를 부은 것처럼 차갑고 냉정한 비웃음에 놀란 나머지, 손을 놓고 뒷걸음치고 말았다.


    내가 물러나는 걸  세희는, 그대로 입을 벌려 비명을 질러 댔다.

    “꺄아아아아악!”

    무의식적으로 귀를 막을 만큼 커다란 비명이었다. 이 건물 사람들이 다 듣게 소리 지른 그녀는 옷을 더 풀어헤쳤다.

    “꺄아아악! 살려주세요!”


    세희는 브래지어가 드러날 정도로 단추를 풀고, 머리까지 헝클어뜨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갑자기 튀어나가 내가 막을 사이도 없이 현관으로 향했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문을 열고 복소에서 소리쳤다.


    “누가 신고해주세요! 이 사람이  강간하려 했어요!”

    강간이라는 말에 난 바로 그녀를 쫓아갔다. 하지만 세희는 날 보자 마자 복도로 나갔고, 나도 그녀를 따라 나갔다.


    하지만 복도엔 의외의 인물이 서 있었다.

    “언니! 저 사람이 날……!”

    복도에 마왕이 서 있던 것이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추리닝 상의에 손을 집어넣고 걷고 있다가, 엉망인 상태로 내 방에서 나오는 동생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마왕은 자길 향해 달려오는 세희를  번 쳐다보고, 그다음 날 바라봤다.


     바라보는 그녀의 푸른 눈은, 분노로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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