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키스는 북한 말로 입술 박치기
사나이의 고통을 엉덩이를 두드리며 참아내자, 몇 분 안돼서 마왕이 유리를 끌고 오는 게 보였다.
“이거 놔요!”
“자네 같으면 놓겠나?”
“아 왜 쫓아오는 건데요!”
“도망가니 잡았네만.”
“아 진짜! 아악! 아파요!”
“아프라고 한 건데 당연하지 않나.”
마왕은 시끄럽게 떠드는 유리의 팔을 꺾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태연한 얼굴로 내려보며 물었다.
“괜찮은가?”
“네가 맞아봐!”
“짐은 거기가 없네만. 자네 거 좀 빌려줄 수 있겠나?”
“미쳤냐!”
대화하는 사이 고통이 잦아들었고, 난 거기에 최대한 자극이 가지 않게 천천히 일어났다. 벽에 기대 일어나면서 유리를 보는데, 날 이렇게 만든 장본인을 고개를 돌려 피해자를 외면했다.
“미안해, 지헌아.”
차라리 그냥 말도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밉지는 않았다. 저 퉁명스러운 말투 때문에 짜증이 더 올라왔다.
후유증으로 벽에 등을 기대며 유리에게 물었다.
“유리야. 너 왜 그런 거냐.”
“내가 뭘.”
“요즘 나랑 얘, 선배 따라다니면서 미행했잖아.”
툭툭
말하는데 갑자기 마왕이 내 팔을 건드렸다. 찡그린 얼굴로 돌아보니, 그녀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따라다닌 것과 미행했다는 건 의미가 겹친다네. 그러니 따라다녔거나, 미행했다, 둘 중 하나만 고르게.”
“시끄러워!”
마왕이 헛소리를 지껄이는 사이 유리가 끼어들었다.
“이거 놔줘요. 선배.”
당연히 될 리가 없었다. 마왕은 황당한 얼굴로 그녀에게 대답했다.
“자네는 짐이 정말로 놓아줄 거라 생각하고 부탁하는 겐가?”
“안 도망칠 테니까 놔주라고요!”
비명 지르듯이 외친 그녀의 말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강의 중인 강의실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와 복도를 살피기 시작했다.
너무 시선이 끌린다고 생각한 난 마왕을 쳐다봤다. 그녀도 같은 생각인지 푸른 눈동자로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서 이동하는 건 어떤가?”
“그렇게 하자.”
“어디로 갈 겐가?”
“일단 여기만 아니면 괜찮을 거 같은데.”
“일단 밖으로 나가도록 하지. 자네 말대로.”
마왕은 유리 팔을 꺾은 채 계단으로 향했고, 난 고통으로 어기적거리며 그런 그녀들 뒤를 따라갔다.
천천히 계단까지 걸어가자 마왕이 유리에게 물었다.
“자네, 정말로 도망치지 않을 겐가?”
유리는 이 상황이 불만인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네!”
“진심인 겐가?”
“그렇다니까요!”
“만약 도망친다면, 지옥 끝까지 따라갈 테니, 알아서 하도록.”
말을 마친 그녀는 유리를 밀치듯이 잡았던 팔을 풀어주었다. 유리는 꺾였던 팔을 스트레칭하듯 풀면서 계단을 내려갔다.
그렇게 우리가 향한 곳은 학교 건물 앞에 위치한 잔디밭이었다. 거기엔 윗대가리 보여주기 용인지 산책로가 있었고, 거기 위치한 벤치에 유리를 앉혔다.
그녀는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며 자기 앞에 서 있는 마왕과 날 올려봤다. 물론 난 다시 차일까봐 두 발짝 멀리 서 있었다.
마왕은 팔짱을 낀 채 유리를 내려봤다.
“이제 말해보게. 왜 짐과 지헌을 따라다녔던 것이지?”
“제가요? 언제요?”
“이잇!”
뻔뻔한 대답을 들은 그녀는 유리의 이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딱밤을 때렸다.
빠악!
“꺅!”
마치 주먹으로 때린 것 같은 소리가 나고, 동시에 유리가 두 손을 들어 이마를 감싸며 상체를 숙였다.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던 그녀는 고개를 들고 마왕을 노려봤다.
“왜 때려요!”
“자네가 거짓말을 지껄이지 않았나! 그렇게 계속 마음에 들지 않게 군다면.”
마왕은 유리를 주먹을 쥐어 그녀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이 남녀평등 펀치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그러니 부디 이번엔 진실을 말해주게.”
영문모를 말이었지만, 때린다는 말에 유리는 눈을 내렸다. 순순히 포기한 듯한 그녀를 본 마왕은 주먹을 풀었다. 그러더니 허리춤에 양손을 얹으며 물었다.
“왜 짐과 지헌을 따라다닌 것이지?”
“아니에요.”
“뭣이? 또 거짓말하는 겐가?”
“아뇨! 제가 왜 선배를 따라다녀요!”
“이것이 정말!”
마왕이 참다못해 다시 주먹을 들었다. 유리는 자신을 금방이라도 후려칠 듯한 주먹을 보고 황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전 지헌이 따라다녔거든요?”
“음?”
그 말을 듣고 의문 섞인 신음을 낸 마왕은 날 돌아봤다. 나도 마찬가지로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마주쳤다. 한동안 날 바라보던 마왕은 다시 유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게 무슨 말인가? 왜 지헌이를 따라다녔지?”
“지헌이를 사랑하니까요!”
또 어이없는 대답에 나와 마왕은 다시 서로 마주 봤다. 그러는 사이 유리는 계속해서 말했다.
“사랑해서 쫓아다녔어요! 그게 죄인가요?”
“스토킹은 당연히 범죄일세!
“그게 왜 범죄예요? 사랑은 죄가 아니잖아요!”
마왕은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유리를 어이없는 얼굴로 내려봤다. 하지만 유리가 곧이어 한 말을 듣고, 똑같은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지헌이도 그랬는데 왜 저는 안 돼요?”
“?”
“!”
그 말을 들은 마왕은 날 보며 눈으로 물었다.
진짜인가?
……홱!
난 그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허공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마왕이 날 향해 절규했다.
“자네! 유리가 말하는 게 진짜인 겐가!”
“아니, 진짜 딱 3번 그랬어! 3번!”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그랬나!?”
그사이 유리가 자랑스러운 말투로 끼어들었다.
“보세요! 선배는 지헌이 몰래 따라다닌 적 없죠? 지헌이는 선배를 안 좋아하나 보네요. 불쌍해서 어떡해요.”
유리가 한 말을 들은 마왕은 다시 그녀를 쳐다보고, 또 한 번 딱밤을 때렸다.
“자넨 좀 닥치게!”
빠악!
“꺄악!”
또 이마를 맞은 유리는 그 반동으로 몸이 뒤로 기울어지다 못해 아예 넘어졌다. 뒤로 자빠진 유리를 두고 마왕이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자네! 어떤 일이었는지 냉큼 말하게! 조금이라도 거짓이 섞여 있을 시엔, 각오하게……!”
날 노려보는 마왕에게서, 이세계에서 처음 봤을 때보다 더한 박력이 느껴졌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쏘아지는 압력에, 난 말을 더듬으면서도 그 일을 설명했다.
“아, 아니, 화이트데이 때, 내가 사탕 주려고 따라다녔단 말이야.”
“언제 그랬는가!”
“중학교 때 2번, 고등학교 1번!”
“유리 자넨 닥치라고 하지 않았나!”
마왕은 보지도 않고 벤치에 앉는 유리를 밀쳤다. 그것 때문에 입을 함부로 놀린 유리는 다시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다시 일어나려는지 말든지 마왕은 계속해서 날 노려봤다.
“저 말이 진짜인가?”
“마, 맞긴 한데……”
“그래서, 사탕은 전해줬는가?”
“줬죠! 지헌아! 사탕 맛있게 잘 먹었어! 쿠키도 맛있었고!”
“자네……!”
다시 끼어든 유리를 향해 마왕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도 자빠뜨리려 하는 줄 알았는데, 그녀는 씩 웃어 보이면서 물었다.
“훗, 그래봤자 지헌의 입술 맛도 모르지 않나.”
“네?”
“짐은 말일세, 지헌과!”
마왕은 날 언급하며 내 목에 자기 팔을 둘렀다. 그 팔에 강하게 힘을 줘서 껴안으려 했다.
“아악! 아파!”
아프다고 했는데도 그녀는 내 말을 무시하며 유리를 향해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었다.
“입을 맞춘 사이란 말일세.”
“!”
그녀가 한 말을 알아들은 유리 얼굴이 창백하게 식어갔다. 유리는 굳은 얼굴로 최대한 반박하려 했다.
“거, 거짓말이죠! 지헌아, 거짓말이지!”
“거짓일 리가 있겠나. 잘 보게.”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은 마왕은 반대편 손을 올려 자기 입술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윗입술엔 어제 나와 입술을 부딪친 바람에 상처 난 증거인, 딱지가 있었다.
“허억……!”
놀라서 숨을 크게 들이마신 유리를 보고 마왕이 너스레를 떨었다.
“설마 지헌이 그런 취향일 줄은 몰랐네. 그렇게 격하게 할 줄이야…….”
“아닛! 그거 사고호오옥! 컥!”
“어이쿠! 지헌이 꽤나 부끄러운 모양이구먼!”
뭔가 말하려 해도 마왕이 내 목을 조인 팔에 힘을 줬다. 목이 졸리자 난 말을 끝마치지 못했고, 그 사이 마왕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지껄였다.
“지헌이 그렇게나 격하게 짐과 체액을 교환하고 싶은 줄 몰랐네. 자넨 알았는가? 아니, 알 리가 없을 테지. 기껏해야 사탕이나 받은 모양이니 말일세.”
“크윽!”
유리는 당당하게 말하는 마왕을 올려보며 이를 갈았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날 향해 두 손을 뻗었다.
“어허!”
하지만 마왕이 격하게 몸을 돌렸고, 그에 따라 내 몸도 움직였다. 그렇게 유리를 피한 마왕은 어림도 없다며 그녀에게 자조했다.
“어디 감히 짐의 남자와 입을 맞추려 하는가? 그건 명백한 성추행일세!”
내 목을 조르고 있는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잘 못 들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이 팔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난 최후의 힘으로 내 목을 조르고 있는 팔을 두드렸다.
탁탁…… 탁……!
“음? 자네 왜 그러는가? 어엇?”
마왕이 놀라 팔을 풀었고, 난 온몸에 힘이 풀린 상태에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바닥에 앉아 거친 숨을 고르며 마왕에게 소리쳤다.
“야! 숨 막혀, 헉! 뒤질 뻔, 헉! 했잖아! 허억.”
그런데도 마왕은 반성하긴커녕 유리를 향해 당당히 말했다.
“보았나? 지헌이 짐 보고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고 했잖나. 지헌이 자넬 보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나?”
“너한테도 한 적 없거든!”
겨우 기운 차린 나는 바닥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마왕과 유리에겐 난 안중에도 없었다.
“선배. 선배 진짜로 지헌이랑 키스했어요?”
“훗, 북한 말로는 입술 박치기라고 하지. 짐은 분명 지헌 입술과 박치기를 했다네.”
“이익……!”
“잠깐만!”
마왕에게 달려들려는 유리 앞을 가로막았다.
“진실을 부정하고 싶은 자는 천박하게 몸으로 해결하려 들지.”
그리고 자꾸 시비 거는 마왕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만하고! 우리 본론으로 들어가자!”
“음?”
“어?”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유리 양어깨에 손을 올려 강하게 눌러, 다시 벤치에 앉게 했다. 그다음 그녀에게 물었다.
“유리야. 너 진짜 나 따라다닌 거 맞아?”
나와 눈을 마주친 유리는 마왕을 볼 때처럼 독기 품은 표정이 아닌, 아침에 떠오른 햇살처럼 밝은 웃음을 지었다.
“응! 내가 너 사랑하니까! 그리고 내가 너 키스했다고 신경 안 써. 어차피 넌 그게 진짜 사랑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테니까. 바로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말을 하는 유리의 눈은 유리알처럼 초점이 잡혀있지 않았다. 그 눈빛에 소름이 끼치면서도 나는 할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럼 사진은 왜 보낸 거야?”
“사진이라니?”
유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난 사진 안 보냈는데, 무슨 소리야?”
“네가 보낸 거 아니야?”
“네 사진은 보관해야지. 아! 네 사진 보고 싶구나! 지금 클라우드에 보관했는데, 보여줄까?”
“아니, 아니! 괜찮아!”
괜찮다고 했는데도 유리는 폰을 꺼냈다. 화면을 조작하는 유리는 마왕을 향해 힐끔거리며 내게 말했다.
“보여줄 테니까 저 썅년 같은 선배한테 보여주면 안 된다?”
“이 년이 진짜!”
“어어, 야! 잠깐만!”
나는 유리를 향해 달려드는 마왕을 겨우 막아 세웠다.
그런데, 유리가 보낸 게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보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