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화 〉야야, 하다 자기야, 해도 된다는 소리지! (40/72)



〈 40화 〉야야, 하다 자기야, 해도 된다는 소리지!

-지헌아. 우리가 진지하게 물어볼  있어. 그러니 너도 진지하게 이야기해 주길 바래.


“어, 네.”

-지헌아, 넌 소희를 어떻게 생각하니?

그 질문을 들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움을 구하기 위해 어머니 쪽을 봤지만, 그녀는 TV 위에 걸린 일본도를 집고 있었다.

잠깐이나마 도움을 줄 거라 생각했던 어머니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지헌씨. 피하셔도 좋고, 반격하셔도 좋아요. 그런데, 다치지만은 마세요. 알았죠?”


충격적인 발언에 먼저 반응한 사람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도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는 걸 들었는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헌, 지헌아. 지금 아내가 뭐하고 있는지 아니?

“아니, 그.”


-나 좀 보여줄래?

그 말에 나는 태블릿을 집어 칼집에서 칼을 뽑는 어머니를 보여줬다. 그 효과는 대단했다.
-엇! 여보 뭐하는 거야!

아무래도 서로 상의 된 게 없는지 아버님께서도 당황했다.


-칼은 왜 들어! 여보!


“괜찮아요, 금방 끝나니까요.”

어머니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까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 봤던 미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섬뜩함이 느껴졌다.

-금방 끝나긴 뭐가! 위험하니까 칼 넣어!

“자기는 궁금하지 않아요?”

그녀는  손잡이를  손으로 쥐고, 능숙하게 자세를 잡아 언제든지 휘두를 수 있게 준비했다.


“지헌씨가 정말로 우리 소희를 지킬 수 있는지?”


-그러니까 지금 알아보려 하는 거잖아! 말로 하자, 말로! 응?


“말보단 주먹이 더 가깝, 죠!”


말을 마친 직후, 그녀는 금방이라도  것처럼 검을 치켜들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녀를 피하고자 소파 등받이를 타고 그 뒤로 굴러떨어졌다.

“피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빠른 걸음으로 소파를 돌아와, 아직 일어나지 못한 내게 검을 겨누었다. 그녀 손에 쥔 검날이 형광등 불빛이 반사되어 은빛으로 빛났다.

 나도 모르게 영상통화 중인 태블릿을 내밀었다. 그런데 화면 속 아버지가 소리쳤다.

-어어! 지헌아 그러지마! 이거 비싼 거야!

난 그제야 태블릿 뒤편에 있는 한 입 먹은 사과 마크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금  목숨이 위험했기에 내민 자세에서 변화는 없었다.


“죄송해요!”

-죄송이 아니라! 이거 아끼는 거라고!

얇은 플라스틱판이 상위 보호 마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있는 힘껏 내밀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검날이 날아오지 않았다.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니, 어머니는 굳은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걸 목격했다.

“……으윽.”

그러더니 갑자기 패배한 무사처럼 카펫이 깔린 바닥에 칼끝을 짚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서걱


-내 카페트가아아!

절규하는 아버지의 말씀을 뒤로하고, 난 어머니께서  저러는지 의아했다. 설마 전직 용사로서 잠재된 힘이 위기로 인해 각성한 걸까?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때리지도 않은 복부를 감싸 쥐었다. 그러면서 단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배가……!”

 내게 무릎 꿇었는지 이해됐다.  먹고 얼마 안 돼서 칼을 휘둘렀는데, 배가 안 아플 수가 없었다.

억, 근데 나도 배가!


밥 4인분을 먹었던 나도 윗배가 당기듯이 아파졌다. 마치 칼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태블릿을 바닥에 내려놨다. 그 후 네 발로 기듯이 어머니께 다가가 칼을 빼앗았다.

“지, 지헌씨!”

약간의 저항을 무시하며, 검을 들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더 이상 움직일 힘 나지 않아 가만히 서 있는  전부였다.


그런데 누가 쳐다보는 거 같은데……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주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세희가 무표정으로 과일 쟁반을 들고 서 있는 걸 목격했다.


세희는 바닥에 무릎 꿇은 자신의 어머니를 쳐다봤다. 그 직후 시선을 올려  옆에서 칼을 든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이 상황이 어떻게 보일지 알고, 나는 황급히 세희를 불렀다.

“세희야! 그게 아니라!”


“……”

그녀는 과일 쟁반을 든 채 말없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안 돼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무장갑을  마왕을 데리고 나타났다.

“왜? 무슨 일인데 그래, 어?”

당황한 표정으로 나타난 그녀는 이 상황을 발견하자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마주치며 표정으로만 물었다.

네가 한 거야?

아니.


진짜로?


아니라니까


내게 진상을 확인한 그녀는 자기 어머니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어머니, 무슨 짓을 한 거에요?”

불린 그녀는 고개를 돌려 마왕을 쳐다봤다. 고통으로 창백한 얼굴을 한 어머니는 인상을 찌푸리는 와중에도 말하려 노력했다.

“어? 그게……”

“말 안 해도 돼요. 어차피 칼 들고 달려 들은 거겠죠? 그리고 지헌아.”


“응?”


“위험하니까  좀 집어넣어 줄래?”

마치 몸은 어린아이지만 머리는 어른 같은 추리력이었다. 나는 그녀가 시킨 대로 TV 앞까지 걸어가 검집을 들고 칼을 끼워 넣었다.

그걸 TV 위에 걸고 돌아보자, 어머니께서 세희에게 부축받으며 소파에 앉는  보였다. 마왕은 이미 주방으로 사라졌고, 세희는 소파 너머에 있는 태블릿을 주워 다시 돌아와 탁자 위에 세웠다. 그러더니 바로 언니 따라 주방에 들어갔다.


그동안 고통이 많이 진정됐는지 어머니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지헌씨, 미안해요. 책에선 이렇게 하길래……”


도대체 무슨 책을 봤길래 그러는 걸까.

나는 일부러 묻지 않고 그녀 옆에 앉았다. 그러자 그사이  년 동안 늙은 것 같은 아버지가 화면을 통해 말씀하셨다.

-그, 미안해. 아내가 워낙 서프라이즈를 좋아해서. 정말로 해치려고 한 게 아니었을 거야. 그렇지? 여보?


“네……”

어머니께서 힘없이 대답하셨다.

면목 없어 하는 아버지의 태도와 달리, 나는 그녀가  덮치려 한  별로 화나지 않았다. 이런 점이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평소 마왕이 하던 행실이 떠올랐다. 워낙 기묘한 행동에 익숙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어차피 다치지도 않았고요.”


“그래도, 미안해요. 손님인데……”

어머니께서 휘두르셨잖아요. 하지만 이런 말을 하지 않고 대화 주제를 돌렸다.


“괜찮다니까요. 그런데 이야기하시려던 게 뭐예요?”


그러자 마왕의 부모님께선 진지한 표정을 지으셨다. 두 분은 잠깐 서로 화면을 통해 마주보다가, 아버지께서 입을 여셨다.

-그게 말이지, 지헌아. 넌 소희가 어떤 아이인지 알고 있니?


그 말을 듣고 난 마왕이 자신의 전생을 함부로 말하다 받았던 일을 생각했다. 그로 인해 마왕을 포함한 그녀의 가족이 고통받았다고 했다.

그런 걸 생각하자 얼굴이 굳어졌는지,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알고 있나 보네요. 소희가 말해줬나요?”


“네.”

-둘이 많이 친해졌나 보네. 그런 이야기까지 한 걸 보면.

아버지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너도 알겠지만, 소희에겐 친구가 별로 없었어. 아니  명도 없었지. 그런데 갑자기 너라는 존재가 소희한테 나타난 거야.


“처음엔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죠. 우리 소희가 밝은 아이긴 해도 그게 일부러 그런 척하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설마 남자 때문인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아하하하하!

그 말에  분이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오히려 죽을 맛이었다. 잠깐 동안이긴 해도 그들이 얼마나 가족을 중요시하는지 알아챘다. 그런데 내가 그녀와 (아무 일이 없긴 했어도) 같은 방에서 잤으니 날 좋아하지 않아도 이해했다.

“그, 죄송해요.”


내 사과에 화면 속 아버지는 손사래를 치셨다.


-아니야, 괜찮아. 우리가 착각한 거니까.

“게다가 딸아이 남자친구 가지고 이래라저래라하긴 싫으니까요.”

“네? 남자친구요?”


그 단어를 듣자마자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와 그녀 사이는 연인관계가 아니라는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전 소희랑 그런 사이가 아니라서요…….”

 대답에 어머니께선 마왕이 지었던 것과 비슷한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었다.


“네? 그럼 무슨 사이인가요?”

“친구, 사인데요.”

“친구요? 소희가 한 살 더 많고 선배이지 않나요? 선배를 허물없이 이름으로 부르는  뭐죠? 남편?”


-그건 사귀는 사이밖에 없지, 뭐.

“그렇죠? 연인 사이밖에 없죠? 게다가 들어보니 둘이 아주 꽁냥꽁냥대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둘은 날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난  둘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소희한테, 아니 선배한테 이야기 들었으면 알잖아요! 그냥 친구 사이에요!”


“아 그거요?”

-둘이 아주 재밌게 놀던데. 그런데 그거 아니? 소희는 얼마 전까지 그렇게 밝게 웃지 못했어.
마왕이 밝게 웃지 못했다는 말이 낯설게 들려왔다. 지금까지 본 그녀는 항상 당당하게 웃으며 활기찬 모습을 보여줬다.


당황한 날 보며 어머니께서 부드러운 표정으로 설명하셨다.

“물론 아예 안 웃고 지낸 건 아니에요. 근데 마치 일부러 웃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았거든요.”


-맞아. 어떨 때는 연기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 근데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밝게 웃는 소희는 오랜만에 봤어.


“고마워요. 그런 소희를 보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네 덕분에 우리 가족이 좀  행복해졌어.


그렇게 말한 둘은 갑자기 내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사람의 그런 행동에 놀란 나는 횡설수설하며 고개를 들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 그러지 마세요! 저도, 저도 받은 게 많잖아요! 입원비나 치료비를 내주시기도 했고! 오늘 맛있는 저녁도 먹었고요! 게다가, 소희 덕분에 요즘 웃는 일이 많아졌어요!”


“음?”


-어?


내 마지막 말에 두 분이 고개를 들었다. 둘은  보지 않고, 서로 마주 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나눴다. 어머니는 소리 내지 않고  모양으로 말했다.


맞죠?

맞네.


마찬가지로 입으로만 말하던 아버지가 다시 내게 물었다.


-지헌아. 아까도 물었는데, 너는 소희를 어떻게 생각하니?

“네?”


“말 그대로 의미에요. 우리 소희는 지헌씨에게 어떤 의미에요?”


이때 나는 반박하는 것도 잊고 마왕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와 있으면 힘들긴 해도 안 웃던 적이 없었다. 어쩔 땐 웃는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리다가도, 아침에 숙취로 구토하는 소릴 들을 땐 온갖 정이 다 떨어졌다.

둘은 고민하는 날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직 애네요.”

-그러게 아직 애네.


“네? 무슨 소리에요?”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어머니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고, 아버지는 흐뭇하게 날 바라봤다. 그는 미소를 유지한 채 말했다.


-어쨌든 우리 소희를 잘 부탁해. 이건 친구 아버지로서 하는 말이야.

드디어 나와 마왕 사이를 친구라고 인정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생각은 어머니의 말씀에 쉽게 깨져 버렸다.

“그래도 이건 알아두세요.”

“뭔데요?”


“연인 사이라고 항상 불타는 사랑만 있는 법은 아니에요. 친구처럼 편한 연인도 존재하는 법이죠.”


“그게 무슨……?

-야야, 하다가 자기야, 라고 불러도 된다는 소리지!

“네?”

“농담이에요! 오호호호!”


농담이란  들었음에도 머리가 뜨거웠다. 그 사이 어머니께선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얘들아! 그만 듣고 나와서 과일 먹으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왕과 세희가 주방에서 나왔다. 세희는 아까 봤던 것처럼 과일 쟁반을 든  무표정이었지만, 마왕은 새빨개진 얼굴로 말없이 걸어왔다.

세희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소파  탁자에 과일 쟁반을 내려놨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와 어머니 사이에  자리를 차지했다.


“어머나?  차갑기만 하던 우리 세희가 무슨 일일까?”

어머니의 흐뭇한 반응을 무시하며, 세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오빠.”


“응?”


“좁아요. 옆으로 가보세요.”

“어, 응.”

엉덩이를 들썩거려  뼘 옆으로 움직였다.

“거기서 더요.”

“더?”

세희는 내가 소파 팔걸이 부분에 몰릴 때까지 요구를 그만두지 않았다. 내가 앉았던 자리보다 넣은 자리를 차지한 그녀는, 얼굴이 새빨간  서 있는 마왕에게 말했다.

“언니, 자리 비워 뒀어요. 앉으세요.”

하지만 마왕은 빈자리보다 내가 있는 팔걸이에 앉는  선택했다. 세희가 말없이 노려보자, 그녀는 그 눈을 피하며 말을 더듬었다.


“난, 난 여기가 더 편해서 그래!”

“……”


이번엔  노려보며 압박했다. 마치 내게 질투하는 것처럼.

한편, 이런 광경을 보고도 그녀들의 부모님은 눈웃음을 지으며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보기 좋네요. 여보.”


-그러게. 이미 가족이  거 같아.


“……”

이때 그 말을 들은 세희가 작게 중얼거렸다. 너무 작아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내게만 들릴 정도였다. 그녀가 한 말은 이거였다.

그렇게 둘 순 없어요.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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