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화 〉Someday (30/72)


  • 〈 30화 〉Someday

    나는 지프차 조수석에 앉은  물었다.


    “도대체 이번엔 어디 가는 거냐?”

    운전석에 앉은 마왕은 시선을 앞에만 고정하며 대답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알 걸세. 그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지.”

    “아니 너 그럴 때마다 좋게 끝난 적이 없다니까?”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을 떨쳐내려 창밖을 쳐다봤다. 저번에도 탄 적 있는 도색 벗겨진 은색 지프차는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1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자취방 침대에 누워서 빈둥대고 있었다. 그런데 마왕이 갑자기 쳐들어오더니 자기가 가져왔던 옷을 갈아 입히고, 차에 태워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내게 입혀준 녹색 추리닝을 내려봤다. 어깨선과 바지 옆 선에 흰색 줄이 두개 있는 디자인이었는데, 지금 마왕이 입고 있는 것과 똑같았다. 커플룩 같다고 생각하며 뒷좌석 쪽을 돌아봤다.

    의자를 떼어버린 뒤쪽은 저번에 탔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삽이나 곡괭이 같은 공구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보지 못한 물건이 보였다. 골프채 가방처럼 길었지만 두께는 배드민턴채 케이스보다 조금 더 두꺼운 녹색 가죽 가방이었다.

    “무얼 그리 보는 겐가?”

    운전석 쪽에서 들린 그녀 말에 고개를 다시 앞쪽으로 돌렸다. 마왕은 운전하는 틈틈이 곁눈질하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저게 그리 궁금하나?”


    그녀가 말하는 ‘저게’가 내가 봤던 가방인 건 틀림없었다.

    “당연히 궁금하지. 저게 뭔데?”

    “훗.”

    마왕은 왼손을 들어 코 밑을 훔치며 작게 웃었다.

    “지금 알려주면 재미없지 않나. 나중에 알려줌세.”

    “너 그럴 때마다 무섭다고, 좀.”


    이제는 질린 기색으로 엉덩이를 들썩여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마왕은 그런 날 힐끔 보더니 입꼬리를 올린  말했다.

    “힌트 하나 주지. 지금 자네로썬 만지지 못할 물건일세.”


    그렇게 말하니 더 궁금했다.


    “도대체 뭔데, 그게.”

    “아하핫! 일단 이걸로 참게. 자.”


    마왕은 호탕하게 웃으며 기어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뭐.”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지만, 낯뜨거워서 일부러 모른 척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말하지 않고 자기 오른손을 향해 턱짓했다. 그 모습을  난 팔짱을 끼며 고개 저었다.

    “안 해”

    내 거절에도 마왕은 눈웃음을 지은 채 말없이 바라봤다.

    “……”

    “안 한다고.”


    “……”

    “아 진짜!”

    나는 살짝 짜증을 내며 팔짱을 풀었다. 그러면서 왼손을 내밀어 마왕의 손등을 덮었다. 손바닥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자, 뜨거워진 얼굴로 물었다.


    “됐냐, 이제!”

    “흐흠♪”

    그녀는 말없이 입꼬리를 올린 채 콧노래만 불렀다. 난  모습을 보다가 마왕과 눈이 마주치자, 왠지 모르게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산만 보이던 풍경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아직 푸른 벼가 깔린 논들이 나오고, 그 너머로 붉은 슬레이트 지붕을 한 시골집들 몇몇이 보였다.

    위이잉

    그녀 쪽에서 창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창 밖으로 왼손을 뻗는 마왕이 보였다.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은발이 찰랑거리고, 바람을 만지는 듯한 마왕의 손짓에  넋을 잃어버렸다.

    이렇게까지 예쁘면, 사귀자고 고백하고 싶어지잖아.

    그녀 손을 잡고 있지만, 사실 우린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다. 워낙 그녀가 막무가내로 친근하게 굴다보니 손은 잡아도 사귀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물론 사귀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고백하다 실패하면 이런 관계를 부실 것 같아서 고민이었다.


    결국 겁쟁이인 내가   있는 건 이렇게 그녀의 오른손을 잡는 게 전부였다.


    ……응? 뭔가 이상한데?

    왠지 모르게 위화감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살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은발이 예술작품처럼 나부꼈다. 동시에 창 밖으로 내민 왼손은 햇빛을 쥐는 것처럼 손가락을 구부렸다. 결국 아름답게만 보이는 마왕에게서 위화감의 정체는 발견하지 못했다.


    뭐가 있는데, 분명히.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차가 가는 방향이 조금 비뚤어진 걸 발견했다. 불안감에 쥐고 있는 그녀의 오른손 손등을 만지작거렸다.

    “!”


    그제서야 난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챘다. 마왕의 왼손은 창밖에 있고 오른손은 나한테 있었다.


    “이런 미친!”

    소리지르며  핸들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나보다 반사신경이 빠른 마왕이 먼저 핸들을 잡았다.

    “아하하하하! 이제 알아챘는가!”


    핸들을 잡고 경로를 수정한 그녀가 뻔뻔하게 웃었다.

    “언제 알아채는지 궁금했네.”

    “미쳤냐? 뒤질 뻔했잖아!”


    “안 뒤졌지 않나. 그렇게 화내지 말게나. 자, 진정하게.”

    마왕은 다시 기어 손잡이에 손을 짚었다.

    학기 초에 운전할 땐, 너무 긴장해서 말한마디 하는 것도 참는 그녀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이런 위험한 곡예 운전을 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아 진짜, 또 이세계 갈 뻔했네.”


    나는 투덜거리며 다시 그녀 손등을 감싸 쥐었다.

     뒤로 우리가 탄 지프차는 다시 산 곳으로 들어갔다. 비포장 된 길을 가느라 차가 요동쳐도,  감싸쥔 손을 놓지 않고 꽉 잡았다. 대충 10분 정도를 그렇게 가다가 차가 멈췄다.

    “자, 도착했다네.”


    마왕이 말하며 내가 감싸고 있던 자기 손을 치웠다. 아쉬운 기색 하나 없이 오른손으로 시동을 끄고 벨트를 푼 뒤 차에서 내렸다.


    나는 시원섭섭한 감촉을 손바닥으로 느끼며, 그 손으로 벨트를 풀었다. 마왕을 따라 차에서 내린 후 주위를 둘러봤다.


    차가 멈춘 이 곳은 넓은 밭 옆에 있는 작은 공터였다. 공터엔 평소 주차장으로 사용됐는지 잡초가 맨땅을 가르듯이  한가운데 나와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옆에 있는 밭이었다. 철사로 된 철조망너머로 고구마가 심어진 게 보였다. 그런데 철조망 일부가 급하게 수리된 것처럼 허술했고, 고구마 밭도 파헤친 부분이 보였다.


    “거기 서있지만 말고 이리 오게!”


    고개를 돌려보니 마왕이 지프 트렁크 문을  채  부르고 있었다. 그곳으로 향하니 그녀가 뒷좌석 쪽에서 내가 궁금해했던 길쭉한 가방을 여는 게 보였다.

    “이게 그렇게 궁금했나?”

    그렇게 말하며 마왕이 꺼낸 건, 바로 엽총이었다.

    “너, 그거!”

    “뭘 그렇게 놀라는 겐가.”

    마왕은 엽총을 익숙한 듯이 두 손으로 들어서 점검했다. 총열 밑 장전 손잡이 부분을 움직이며, 오히려 당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짐의 취미가 사냥인 건 잘 알고 있지 않나.”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가져와도 돼?”


    “괜찮네.”


    총을 확인하던 그녀는 옆 고구마 밭을 향해 턱짓했다.

    “멧돼지 같은 해수가 피해를 입히고 밭주인이 신고한 경우엔, 사냥철이 아니라도 총기를 꺼낼 수 있네.”


    “아니,  나랑 멧돼지 잡으려고 데려온 거였냐?”

    “그럴 리가 없지 않나. 그저 날씨가 좋아 나들이를  것 뿐이라네.”

    멧돼지 사냥이 무슨 나들이인지.


    마왕은 총을 담았던 가방 옆쪽에 달린 작은 주머니를 열었다.


    “게다가 오늘은 그저 사전 조사차 나온 것이네. 이  근처만 적당히 둘러보다고  걸세.”


    그렇게 말하며 작은 주머니에서 빨간색 엽총 총알을 꺼냈다. 엽총 밑 부분으로 2발을 장전하고 총기 케이스를 닫았다.

     총은 아마 5발 정도 들어갈 거처럼 생겼는데, 2발 밖에 넣지 않자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거 밖에  넣어?”


    마왕은 오른손으로 총끝을 하늘로 향하게 잡으며 대답했다.


    “전쟁 난 것도 아닌데 2발이면 충분하지 않나.”

    말을 마친 그녀는 왼손으로 트렁크를 닫았다. 총을 한 손으로 들고 있는 게 불안해 보이길래 다가가서 도와주려 했다. 그러자 마왕이 다급하게 말했다.

    “어어! 함부로 만지면 안 되네!”


    그걸 듣고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 그녀는 총을 다시 두 손으로 잡고 웃으며 말했다.


    “아까 말했지 않나, 자네는 만져선  되는 것이라고.”


    “미, 미안.”

    “훗, 아무도 안 보면 상관없지만 말일세. 자, 받게!”


    그러면서 엽총을 거의 던지듯이 내게 건넸다. 나는 놀라면서도 떨어뜨리지 않도록 총을 받았다.


    살면서 처음 잡아보는 총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차가운 촉감에 이게 쇠로 만들어졌구나, 하면서 엽총을 천천히 만져봤다.

    그런 날 보며 마왕이 물었다.


    “왜 그런가,  처음 보는 것도 아니잖나.”

    그녀 말이 맞았다. 이세계에서 난 화승총 부대를 만든 적이 있었다. 그런데 화약이 생각보다 비쌌고, 총보단 마법이  좋다는 보고 때문에 만든지 세 달도 못 가고 해체됐다.


    그런 걸 말하며 엽총을 돌려줬다. 총을 사선으로 잡은 마왕은 오히려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소린가? 자네 부대 때문에 마족측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는가?”


    “뭐?”

    “아무 훈련도 받지 않은 평범한 인간이, 손가락 하나 까딱한 것만으로 마법만  위력을 내는 거잖나. 당연히 두려워하지 않고 배기겠나. 그 위력도 상당했고 말이지. 게다가,”


    그녀가 총을 쳐다봤다.


    “이런 취미도 반쯤은 자네 부대를 보고 맛들인 걸세. 그만큼 총이란 무기는 인상적이었다네.”

    “아니, 근데, 왜 별로라고 보고했지?”


    “정말로 모르는 겐가?”

    날 보며 씨익 웃었다.

    하긴, 짐작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막강한 화력을 가진 부대가 내 밑에 있으면 안 되니까 그런 거겠지.

    “과거는 과거잖나. 그만 잊게. 이제 가세나.”


    그녀 말이 맞았다.  부하를 시켜서 날 죽이게 만든 게 왕국이었다. 이 정도는 실망할 거리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먼저 걸어가는 마왕 뒤를 따라갔다. 그녀와 나란히 걸으면서 물었다.


    “진짜로 멧돼지 잡을 거냐?”


    질문에 그녀는 시선을 앞으로 한 채 대답했다.

    “아까 말했지 않나. 그저 사전조사라고. 밭을 한바퀴 돌고, 그 놈 습성이 어떤지 암놈인지 숫놈인지만 알아볼 걸세. 나머진 짐의 삼촌이 알아서  게야.”


    “넌 안 잡고?”

    “어차피 짐은 자네와 나들이하러  걸세. 굳이 피를 안 봐도 되지 않나.”

    “그럼 총은  가져왔는데.”

    “혹시 모르잖나. 멧돼지 놈이 야행성이긴 해도, 낮이라고 안 돌아다니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럼 우리 안전한 거지?”

    “괜찮네. 안전하네. 짐이 비슷한 일을 여러번 했지만, 이렇게 대낮에 밭을 털러 온 적은 없었네. 짐이 장담하지, 우린 안전하네.”

    이거 플래그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천천히 마왕과 산길을 걸었다. 그녀는 가는  틈틈히 철조망을 확인하고 흙에 찍힌 발자국을 스마트폰로 찍는 등, 여기에  목적을 잊지 않았다.


    10여분 간 아무 일없이 산길을 걷게 되자, 나는 마음이 풀어져서 아무 생각 없이 두리번거리며 걸어갔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

    “어엇!?”

    갑자기 바닥이 쑥 꺼지는 감각과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거기서 멈췄으면 괜찮았을 건데, 여기가 낭떠러지인지 난 아래쪽으로 굴러 떨어졌다. 네다섯바퀴를 구르고 나서야 몸이 멈췄고, 온몸을 쑤기는 고통에 신음소릴 내면서 일어났다.


    “아야야……”


    “거기 괜찮나?”

    저 위에서 마왕이 소리치는 게 들렸다. 날 걱정하는 것처럼 들려도, 그녀의 말투엔 웃음이 가득 담긴  제대로 느껴졌다.

    “풉, 그러겍, 조심하지 그랬나! 푸후훗!”

    “사람 다쳤는데 웃냐!”

    난 마왕을 따라 웃으며 외쳤다. 팔다리가 긁히고 깨져 많이 아팠지만, 그녀 웃음소리를 나오지 자동적으로 웃음이 나왔다.


    “하핫! 미안하네! 일어설 수는 있겠나? 짐이 도와줘야 하나?”

    “아냐! 괜찮아! 거기 있어!”


    아픈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까 우리가 걷던 산길 바로 옆엔 경사가 완만한 낭떠러지가 있었는데, 내가 발을 잘못 디디는 바람에 넘어진 거였다. 그 증거로 경사진 곳 일부분엔 길이  것처럼 수풀 일부분이 뭉개져 있었다.


    천천히 몸을 움직이는데 갑자기 뒤통수가 싸늘했다.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려보니, 그곳엔 멧돼지가 있었다.

    “어?”


    꿱?


     허리까지 올 만한 거대한 멧돼지가, 나와 5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커다란 회색 짐승을 보고 내가 움직이지 않자, 저 언덕 위에 있는 마왕이 소리쳤다.

    “왜 그런가? 무슨 일 있나?”


    아무래도 그녀가 있는 방향에선 멧돼지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보였어도 멧돼지가 있는 방향에 내가 있어서 함부로 쏘지 못할 위치였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옆으로 존나게 뛰는 거.

    “쏴!”


    그렇게 외치며 있는 힘을 다해 오른쪽으로 뛰었다. 달리기 시작하고  초 정도가 지나자, 뒤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타앙!


     그녀가 멧돼지를 잡은 줄 알고 발을 멈추려 했다. 하지만 다시 마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안 죽었네! 죽어라 뛰게!”


    “에임 진짜!”

    다시 뛰려는 순간  앞에 있는 나무가 눈에 띄었다. 두께도 괜찮고, 두꺼운 나뭇가지 위치가 2미터 좀  되어 보이는 나무였다. 그걸 본 순간 난 그 나뭇가지를 향해 뛰어올랐다.


    “으럇!”

    기묘한 괴함를 지르며 나뭇가지를 잡고, 철봉오르기처럼 그 위로 올라갔다. 가지를 두 팔 두 다리로 감싸 안은 채 아래를 내려봤다.

    바닥엔 옆구리에 피를 흘리는 멧돼지가 올려보고 있었다.

    후욱……! 후욱……!

    멧돼지는 거친 숨을 쉬더니, 갑자기 내가 매달린 나무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꿰엑! 쿵! 쿵!

    “어어어!”

    한 번 부딪힐 때마다 나무가 부러질 것처럼 흔들렸다.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며, 내가 매달린 나뭇가지까지 강한 진동이 전해졌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 나뭇가지를 잡은 팔다리에 힘을 줬다. 그러면서 비탈 위에 있을 마왕을 향해 소리쳤다.


    “야! 빨리 쏴!”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총소린 들리지 않았다. 서너차례 멧돼지가 나무에 부딪히자,  다시 외치려 했다.

    “야! 뭐해!”

    그런데 그녀의 외침이 들렸다.

    “쏘겠네! 하지만 조건이 있네!”

    한시가 급박한 상황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싶었다. 하지만 이건 다음에 할 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자넬 구해줄테니! 짐과 사귀어 주게!”


    “뭐, 어엇!”

    하도 어이없는 말이라서 손이 미끄러질 뻔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잡고 말했다.


    “뭔 개소리야!”

    “자네와 만나고 나서 하루도 두근거리지 않은 날이 없었네! 자네가 짐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지만, 하도 고백을 안하니 지금이 기회라 생각해서 말하네! 짐과 사귀어 주게!”


    “아닛, 진짜!”


    갑작스러운 고백이 기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거에 마음이 끓어오를 것처럼 두근거렸다. 하지만 이 두근거림은 마왕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쿵! 쿵!

    “어어어!”

    그 사이에도 멧돼지는 내가 매달린 나무를 향해 머리를 부딪혔다. 만약 내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어도 고백했을 상황이라, 난 수락한다며 소리쳤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쏴!”


    “그렇다면 짐과 사귄다고 말하게!”

    “뭐?”

    “어서 말하게! 이건 부탁이 아니라 협박일세!”

    “진짜…… 알았어! 나랑 사귀자!”


    “그리고 짐을 사랑한다고 외치게! 진심을 담아서!”


    “사, 랑”


    꿰에엑! 쿵!

    “해애액! 야! 떨어질 뻔 했잖아! 그냥 쏴!”

    “안 되네!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까진 안 쏠 것이네!”


    가지가지 한다, 진짜……!


    나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있는 힘껏 소리쳤다.

    “소희야! 사랑해! 나랑 사귀자아아아!”

    “자네 부탁을 수락하지! 짐도 자넬 사랑한다네!”

    타앙!


    꿱!

    총성이 울리고, 멧돼지가 단말마를 질렀다. 나무에서 몇 걸음 떨어지고는 그대로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쓰러진   나는 마왕이 있는 방향을 쳐다봤다.  손에 총을 든 채 추리닝 차림으로 비탈을 내려오는 그녀가 보였다.

    은발을 휘날리며 다가오던 마왕이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당당히 웃으며 말했다.

    “오늘부터 1일일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