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화 〉평생 (29/72)



〈 29화 〉평생

검은 뿔테 안경을  의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기, 환자분. 슈퍼 히어로죠?”


너무 정색한 얼굴이라서, 내가 곧 있으면 죽을 거라는 말이라도 할 줄 알았다. 저번에도 들었지만 너무 황당한 말이었다. 침대에 앉은 난 황당한 말투로 그에게 되물었다.


“네? 슈퍼히어로요?”

“아뇨, 지금 환자분 있잖아요. 2시간 전에 차에 치이신 거 맞죠?”


“그런데요.”

“게다가 차에 매달렸다가 떨어지셨죠?”

“그랬죠.”

그의사는 자기가 가져온 카르테를 살폈다. 아까 이 병원에 오면서 찍은 CT나 MRI같은 사진들을 재확인한 그는 다시 나와 눈 마주쳤다.

“그런 것치곤 너무 멀쩡한데요? 어디 뼈 하나 금간 곳도 없고, 머리랑 손에 피  나는  전부 거든요? 근데 그것도 3~4센티밖에 안 찢어졌고요. 찰과상이랑 타박상도  있긴 한데, 그냥 좀 심하게 넘어진 거 정도밖에 안 돼요.”


의사 선생님 말씀이 맞았다. 과대에게 맞기 전까지만 해도 온몸이 쑤셔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마왕이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 설  있을 지경이 됐고, 결국엔 앰뷸런스도 내가 직접 탔다.

“진짜로 뭐, 비밀 결사대 들어가신 분은 아니죠?”

그가 의심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마치 내가 진짜 만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영웅으로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사실 제가 용사라서요, 그래서 상처가 빨리 낫는다고 마왕이 말해줬어요.”라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두마디에 불과했다.


“그럴 리가요.”


“그래도  이상한데……”


의사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가져온 진료부를 챙겼다. 그는 같이 들어온 간호사들에게도 “이상하지?”라는 농담을 던지며 병실을 나갔다.

나는 그들이 나가고 익숙한 이 병실을 둘러봤다. 여기는 내가 팔을 다쳤을 때도 입원했던 1인실이었다. 아마 이번에도 마왕이 자기 아버지한테 부탁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또 이 방에 배정 할리 없었다.


마왕은 나와 달리 앰뷸런스가 아닌 경찰차에 탔다. 정신을 차린 과대가 그녀가 자신을 마구 밟았다고 설명한 탓이었다. 그건 맞는 말이었지만, 마왕은 전혀 억울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내게 말했다.

“얼마  걸릴 걸세! 이따 보세!”


환하게 웃는 그 미소는, 어떤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 주인공은 마왕처럼 반드시 돌아온다고 말했지만, 결국 돌아가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물론 죽거나 아예 못 보는 건 아니겠지만, 폭행으로 잡혀갔으니 다시 만나려면 며칠 정도 걸릴 것 같았다.


벌써 그녀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병실 문을 열면서, “짐이 왔다네!”외치며 들어올 것 같은데……


드르륵!

“짐이 왔다네!”

회색 추리닝을 입고 백팩을 맨 마왕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마치 짠  같은 등장에 난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왜 이렇게 빨리 와!”

“뭐, 뭔가. 짐이 반갑지 않은 겐가?”


마왕은 당황하면서도 안으로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아니,  반가운 건 아닌데! 왜 이렇게 빨리 왔냐? 경찰서 간 거 아니었냐?”

“갔다 온 건 맞지만 구속된 건 아닐세. 불구속 수사로 넘어갔지.”

“그게 무슨 차이인데.”

“별 거 없네. 그냥 도주 가능성이나 증거 훼손 가능성이 적으면 불구속 수사로 가고. 그럴 가능성이 높으면 유치장에 가둬서 구속하지. 짐 같은 경우는 증거 확실하고, 거주지 확실하니 구속수사로  이유가 없는 것이라네.”


유창하게 말하는 그녀 이야기 속에서 난 놓치지 말아야 할 단어를 들었다.

“증거라고?”

“그렇다네. 읏차!”


마왕은 태연하게 말하면서 환자 침대 아래에 있는 간병인 침대를 끌어냈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날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짐이 과대 그 놈을 때린 영상이 꽤 있는 모양일세. 자동차 블랙박스는 물론이고 건물 안에서 촬영한 자들도 많다네.”

“그, 그럼 너 감옥 가는 거야?”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게. 운 좋으면 합의금이나 벌금으로 때우고, 아무리 나빠도 집행유예일세.”


“아니, 그래도 그 새끼가 합의 안 하면 어떻게 하게?”

“그땐 자네가 있지 않은가?”

그녀는 날 향해 턱짓했다.

“그 놈이 자넬 차로 쳤으니 특수 폭행이고, 특수 폭행은 일반 폭행보다 쉽게 넘어가지 않지. 특수 폭행은 징역 1년부터 시작하니, 자네와 무조건 합의하려 들 것이고. 그때 자네가 짐 이야기를 꺼내면 되는 것이지. 아니면 자네!”

마왕은 푸른 눈을 커다랗게 뜨며 경악했다. 그러고는 두 팔로 자기 몸을 감싸면서 꽈배기처럼 배배 꼬았다.


“그것을 빌미로 짐에게 그렇고 그런 짓을 하라며 협박할 겐가?”

“안 해, 이 멍청아.”


“뭔가, 안 하는 겐가……”


이상하게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등에 맨 가방을 벗었다. 가방을 열더니 거기서 익숙한 물건을 꺼냈다.


“너 또 게임기 가져왔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자네 집에서 게임하던 도중이 일이 터졌으니. 퀘스트는 끝마쳐야 할  아닌가.”


마왕이 가져온  스위치였다.

“병문안이 게임하러 오는 거냐? 무슨  때마다 게임기를 가져오냐?”

“이게 다 자넬 위해서일세. 어차피 짐 제외하면 병문안 올 이가 없어서 심심하지 않나.”


“그건 그런데……”

“훗! 그럼 짐은 설치나 해야 겠구만!”

그녀는 가볍게 웃어 보이며 스위치를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방에서 스위치 독을 꺼내고 양손에 하나씩 들고 병실 벽에 걸린 TV로 걸어갔다. 아래 있는 서랍장에 스위치를 설치하고 TV와 연결시켰다. 텔레비전에 익숙한 흰색 바탕화면을 띄우고는 내가 있는 침대로 다가왔다.

양손에 붉은색 파란색 컨트롤러를 하나씩 쥐고는 내게 말했다.

“좀 비키게. 짐도 눕겠네.”

“뭐? 야, 잠깐만!”

“시끄럽네. 비키라고 하지 않았나.”


“야!”


내 대답을 무시한  어거지로 내 옆에 누웠다. 그녀에게서 나는 부드러운 향기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좀 비켜 보게. 좁지 않나.”

“이미 끝까지  거거든?”


 몸은 이미 침대 구석지까지 몰려 있었지만, 마왕이 달라붙는 바람에 등을 대고 누울  없는 자세가 되어버렸다. 옆으로 돌아 눕는 자세라서 그녀의 인형 같은 외모와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최대한 눈을 돌리며 마왕에게 말했다.

“간병인침대 있잖아! 거기로 가!”

“거긴 딱딱하지 않나. 여기가 더 좋다네.”


“차라리 내가 가고 말지!”

참다 못해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마왕이  환자복을 잡아 억지로 눕게 만들었다. 온몸에 멍이 들었는데 침대 위로 쓰러진 온몸이 욱씬거렸다.


“악! 야! 살살 해! 아프다고!”


“여기 있게, 자네 침대이지 않나.”


“그럼 그냥 네 침대 해! 난 간병인 쪽으로 갈테니까!”

“부끄러워하지 말게. 그런데 옆으로  갈 수 없나?”

“다 간 거라니까? 네가 나보다 많이 차지했어!”

마왕이 오른편으로 흰색 시트로 덮힌 침대가 보였다. 그녀가 차지한 분량은 침대의 7~80%여서 오히려 내가 비키라고 해야  정도였다. 그런데도 마왕은 내게 좁다고 말하며 내게 밀착했다.

멍든 곳까지 아파오자, 난 참다 못해 소리쳤다.


“나 환자야! 배려 좀 해주라!”


“짐은 없는  치게. 후후.”

그녀는 웃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는 마왕의 머리가 가까워지자 달콤한 향기에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나는 반쯤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말했다.

“아, 진짜! 좀!”


“훗!”


결국 마왕을 말리는 걸 포기했다. 계속 설득해 봤자 궤변만 늘어놓고  들을 게 뻔했다. 차라리  일찍 포기하는 게 편했다.

옆으로 누운 내게 마왕이 거의 안을 것처럼 몸을 붙였다. 난 그걸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미칠 듯이 뛰는 심장을 막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박동소리가 그녀에게 들리지 않게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며 TV화면에 집중하려 했다. 그런 반면 마왕은 귀를 조금 붉히며 아무렇지 않게 컨트롤러를 조작했다. 아까 게임할 거라는 말과 달리 그녀가 켠 건 유튜○였다.


“너 게임한다며.”


“이것 먼저 보고 하지. 자네가 보고 싶어할 영상일세.”

마왕이  영상은 과대에 대한 정체가 나오는 뉴스였다. 그 뉴스엔 그가 저질렀던 일들이 등장했다. 날 사칭했던 건 물론이고, 내가 기록했던 녹음파일과, 그게 밝혀지자 날 차로 치려 했던 것까지. 거기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그가 미성년자 간음죄로 체포될 거라는 내용이었다.


아까 그걸 봤을 때, 어제 그 놈 폰에 중고등학생 여자애들 명단이 있던 걸 떠올랐다. 그냥 알고만 지내는 줄 알았는데 설마 건들었을 줄은 몰랐다. 어쨌든 이것까지 합쳐서 그는 실형을 피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영상이 끝나고, 마왕이 내게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어떤가? 속이 시원한가?”

“어, 그러긴 한데.”

“뭔가?”

“나 이거 아까 봤는데.”


팔뚝에서 실밥을 빼는 사이, 심심해서 폰을 만지다 발견한 영상이었다. 그녀가 이걸  때 느꼈을 후련함은 진작에 느끼고도 남았다.

“뭣이?”

마왕은 소리치며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찌 자네 혼자만 볼  있나? 짐도 자네와 같이 보려고 기다렸건만!”


배신당한 것처럼 말하는 마왕을 보고 난 억울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니 네가 이렇게 빨리 올  몰랐지! 알았으면 안 보고 기다렸지!”

“……진심인가?”

“그럼!”


여전히 뚱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코웃음을 치며 다시  옆자리에 누웠다.


“뭐, 그래도 이건 모를 걸세.”


“뭔데. 그리고 붙지 마라.”


은근슬쩍 내 가슴에 머리를 비비려는 마왕을 밀어냈다. 그녀는 포기했는지 다시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하준  놈도 여기 입원했다네.”

“뭐!”

놀라서 일어나려고 하는 날 마왕이 붙잡았다.


“그렇게 놀라지 말게. 짐이 너무 심하게 때리는 바람에 어쩔  없이 입원한 상태라네. 하지만 같은 병원이라고 하나 수갑을 차고 있으니 자네에게 해코지하지 못할 게야. 걱정 말게.”

“걱정은 무슨.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때린 거냐? 아까 봤을 땐 거의 죽이려 하더만.”


“그래도 얼굴은 피해서 때릴 정도로 이성은 남아 있었네.”


“왜 그런 건데. 아예 코를 뭉개 놓지 그랬어.”


“그래야 사람들이 얼굴을 보고 알아볼 거 아닌가. 그 놈이 개쓰레기라는 걸.”


“그런 거였냐.”


잘생긴 얼굴이 독이 되게 기사를 내보낸 건데, 마왕은 그걸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런 걸 생각하는 사이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말일세. 사실 그 놈을 죽이고 싶었던 게 맞았네. 자네가 말리지 않았으면 죽일 수도 있었지.”


이때 마왕은 끝나서 멈춘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그런 그녀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르고, 그녀가 다시 날 쳐다봤다.

“그러니 짐이 이성을 잃을  같으면 옆에서 말려주게.”


“말 안 해도 그렇게 할 거야.”


“평생.”

“뭐?”


대답하지 않으려는 듯이 그녀는 말없이 컨트롤러를 조작했다. 뉴스를 끈 그녀는 이번엔 프로필 창으로 들어가더니 자기가 샀던 영화를 틀었다.

그 질문을 잊기 위해 억지로 주제를 돌렸다.

“너 게임한다며.”

“지금 게임한다면 긴장해서 손이 미끄러질  같아서 말이지.”

나는 왜 긴장했는지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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